after 100 thousand reincarnation he became a transcendent hunter RAW novel - Chapter 106
106화 오지 않은 미래(3)
미래(未來).
아직 오지 않았기에, 앞으로 다가올 시기.
그러니 내가 모르는 미래가 있는 게 당연했다. 하지만 막상 엘리스를 마주하고 나니 꽤 충격적이었다.
나는 그녀와 접촉할 생각이 없었다.
“······. 너는 미국의 헌터 아니었나?”
심지어 엘리스는 S급 헌터였다. 멸망 이전의 세계에서 S급 헌터의 가치는 상상을 초월한다.
그런만큼 엘리스가 내 제자로 있다는 건 이상한 일이었다.
“네, 그랬죠. 사부를 만나서 대한민국에 오게 됐어요. 하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에요.”
엘리스는 환한 미소를 짓더니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푸른 눈이 나를 응시했다.
“흐음, 흐음. 정말로······. 시간을 뛰어넘어서 오신거군요. 역시 사부. 인과를 뒤집는 일 따위 아무렇지 않다는 건가요.”
채아연이 엘리스를 불러 온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녀의 능력은 전세계에서 유일하고도 독보적이었다.
“알고 계시겠지만 제 능력은 시간 조작.”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고 해서 큰 유명세를 떨쳤었다. 물론 회귀만큼 직접적인 수준은 아니다. 그녀가 조작할 수 있는 시간은 극히 짧았다.
그러나 시간이 흐른 지금 시점에서는 SSS급 헌터가 되었을테니.
얼마만큼의 능력을 가지고 있을지는 미지수다.
그런 그녀가 내 제자라니. 아니, 애초에 제자라는 걸 두겠다는 생각 자체를 한 적이 없는 나로서는 황당할 따름이다.
“사부님의 시공 도약 지점을 살펴보자면.”
그녀는 엄지와 검지로 카메라를 만드는 것 같은 제스처를 취했다. 나를 살피더니 흠흠하고 고개를 끄덕인다.
“전투의 마족 처치 직후군요.”
“그래. 그게 전부야?”
“네? 네. 제가 알아낼 수 있는 건 딱 여기까지에요. 거듭 느끼지만 사부를 둘러싼 인과의 사슬은 제가 해석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에요. 복잡하고, 난해하게 얽혀 있어요. 으으······.”
엘리스가 손사래를 쳤다. 내 능력에 대해서나, 내가 회귀를 해왔다는 사실까지는 모르는 눈치다.
“저랑 만나는 건 그것보다 훨씬 뒤의 일이 되겠네요. 시공 도약이라니. 사부의 능력은 정말 미스테리하다니까요. 잠시만요.”
엘리스는 앉아 있던 의자에서 일어나, 로비 한구석에 놓인 서랍을 뒤지기 시작했다. 거기서 약과와 한과 봉지를 꺼내 접시에 담았다.
잠시후, 따뜻한 커피와 함께 한과를 가져왔다. 독특한 조합이다.
“손님 대접이 늦었네요. 마시면서 들어주세요.”
엘리스는 창밖의 붉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마족의 침투를 막는 신태양과 천성호의 섬광이 이따금씩 하늘을 뒤덮었다.
“사부가 보시기에 이 세계는 어떤가요?”
“······.”
인류는 사실상 패배했다. 본래 맞이 했어야 할 미래에 비하면 희망적이나, 그마저도 멸망을 앞두고 있다고 보는 게 맞다.
좀 더 좋은 결과를 만들 수는 없었던 걸까.
내가 고민하는 사이 엘리스가 먼저 입을 열었다.
“솔직히 아쉽죠. 최선을 다한 결과지만 너무 아쉬워요. 저도 그렇게 느껴요. 뭔가가 바뀌지 않는다면 사부는 또다시 이런 미래를 맞이하게 되겠죠······. 그건 너무 슬퍼요.”
엘리스의 푸른 눈 위로 씁쓸한 감정이 내비쳐졌다. 이내 고개를 들어 올린 그녀가 다짐하듯 내게 말했다.
“사부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도록 최대한 도울게요. 과거로 돌아가서도 미래를 바꿀 수 있도록요. 단 하나의 미래라도 바꿀 수 있도록.”
이 아이도 신태양과 천성호와 마찬가지다.
내게는 처음만난거나 다름 없는 상대지만, 엘리스에게선 나를 향한 깊은 신뢰와 믿음이 느껴진다.
“그런데, 혹시 몸은 괜찮으신가요?”
나를 유심히 보던 엘리스가 말했다.
“몸? 몸은 괜찮은데.”
“그렇다면 다행인데······. 아마······.”
그녀의 말이 끝까지 이어지기 전.
콰아앙!
강한 폭발이 기지 바깥에서 터졌다. 유리창이 검은 연기로 뒤덮이고, 가벼운 진동이 기지 전체를 훑고 지나갔다.
이어지는 푸른 섬광과 붉은 빛살이 어지러이 솟아오른다. 바깥에서의 전투가 격해지고 있었다.
아무래도 상황이 쉽게 정리 될 것 같지 않다.
엘리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희도 나서야 할 것 같아요. 사부의 능력은 전투의 마족을 쓰러뜨렸을 시점이라고 생각하면 되는 건가요?”
“그래.”
“충분하네요.”
멸망이 코앞까지 치달은 지금 시점, SSS급 헌터들만이 전투에 참가할 수 있는 상황에 내가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 칭호 ‘마계의 재앙’의 효과를 받고 있습니다. 』
『 데미지 1,000% 상승 』
이계규율의 칭호가 있으니, 전투를 보조하는 것 정도는 가능할 거다.
“여기에요 사부!”
엘리스를 따라 기지의 바깥으로 나왔다.
손목에 찬 시계를 확인한 엘리스가 상황을 간단하게 설명했다.
“후방으로 침입한 상대는 중위 재생의 마족.”
세계가 마계화 된 지금, 중위 마족이라고 해도 그 강력함은 내가 가늠할 정도가 아니다. 당장 SSS급 헌터들이 애를 먹고 있는 것만 봐도 그렇다.
붉은 암석 지대의 매캐한 연기 사이로 신태양과 천성호의 모습이 보였다.
신태양의 호쾌한 푸른 선이 곳곳에서 돋아나는 촉수들을 계속해서 잘라냈다. 허공에 발을 디딘 천성호가 검을 내려치자, 수십 붉은 운석이 떨어지며 대지를 강타했다.
그야말로 전쟁터다.
신태양이 베어내는 촉수의 수보다, 새롭게 돋아나는 수가 많다. 전투 자체는 우위였지만, 적을 없애는 게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큭, 베어내도 베어내도 끝이 없네. 천성호 똑바로 좀 해봐!”
“야, 누구한테 명령질이야!”
이 시점에서 둘은 아예 친구를 먹은 모양. 그런 둘을 뒤쪽의 성녀 채아연이 말렸다. 그녀의 뒤로 강렬한 후광이 폭풍처럼 휘몰아치고 있다.
“둘 다 정신차려. 여기서 뚫리면 끝이야.”
그녀의 손 끝에서 뻗어나간 빛이 신태양과 천성호의 몸을 감싸자, 둘의 움직임이 가속하기 시작했다.
이내 눈으로 쫓기 힘들 정도가 되어 촉수들을 베어내고, 파괴해나간다.
이것이 SSS급의 전투.
그러나 상대인 재생의 마족도 물러서지 않고 촉수들을 소환해 왔다. 저 멀리 보이는 본체의 입이 열렸다.
【 가련한 인간들이여. 네 놈들의 멸망이 머지 않았다. 예정된 운명을 맞이해라. 】
그 목소리는 단순한 음성이 아니다. 개인의 존재와 정신 자체를 뒤흔드는 강렬한 마성(魔聲).
피부가 찢어지는 것처럼 따갑고, 몸 전체가 후들거릴 정도다. 생물 본연의 본능이 직감적인 경고를 나타내고 있는 거다.
격의 차이.
이것을 극복하기 위해선 그만한 능력과 힘을 소유해야 한다.
‘크윽, 장난이 아니네.’
『 스킬 ‘불굴의 정신 Lv.11’을 발휘합니다. 』
고작 목소리만 들었을 뿐인데 정신이 아찔하다. 간신히 쓰러지지 않고 버텨냈다.
“사부, 괜찮으세요?”
“그래.”
마족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신태양과 천성호의 공격은 계속 되었다. 끊임없이 쏟아지는 유성과 푸른 선들.
재생의 마족이 다시금 분노를 쏟아냈다.
【 너희들로는 나를 가로막지 못한다. 네 놈들의 지도자를 불러와라! 】
전신을 덮치는 강렬한 충격. 내장을 다쳤는지 입가에서는 피가 흘러내린다.
“사, 사부?! 아연양, 여기 좀 봐줘요!”
“괜찮아.”
나는 입가를 쓱 닦아냈다. 아무 생각 없이 놈의 격을 온 몸으로 받아내고 있던 건 아니다.
『 유니크 스킬 ‘지고의 정신 Lv.1’을 획득합니다. 』
『 상위 격에 대한 대항력이 증가합니다. 각종 정신계 능력이 대폭 상승합니다. 』
‘좋았어.’
20만배의 경험치가 단번에 내게로 쌓이며 스킬로서 변화했다. 앞으로 상대할 상위 마족이 가진 ‘격’에 대항하려면 이 작업은 필수적이었다.
이른바 예방접종.
앞쪽의 상황은 그다지 좋아보이지 않는다. 신태양과 천성호가 촉수들을 베어내고 있지만, 재생 속도가 너무 빠르다.
“큭, 상대가 너무 안좋아. 이럴 때 스승님이 계셨더라면······.”
네가 원하는 스승 여기에 있다. 뭐, 진짜 이 시대의 나에 비하면 못 미칠지 모르지만.
재생의 마족을 상대로 내 일자베기는 꽤 통할 것 같거든.
『 타재간파의 서의 모든 항목을 활성화합니다. 』
『 광화, 신속, 오러블레이드, 초공간인지의 효과를 발휘합니다. 』
콰아아—!
내 주변으로 붉은 기운이 뻗어나왔다. 그 기척을 눈치챈 신태양과 천성호가 뒤를 돌아봤다.
“진짜로 스승님이 오셨잖아?!”
“리더! 여기는 너무 위험······!”
그런 걱정을 일축하듯 엘리스가 소리쳤다.
“어차피 사부가 아니면 저 마족은 못 쓰러뜨려요! 사부를 엄호해주세요!”
엘리스의 눈 위로 푸른 이채가 맴돌기 시작했다. 권총을 손에 든 엘리스는 내 옆으로 딱 달라 붙었다.
『 동료 엘리스가 스킬 ‘절대 미래 예지 Lv.8’을 발휘합니다. 』
그 순간, 내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 잔상처럼 표시되었다. 마족을 처치하기 위한 가장 빠르고 정확한 루트가 내 눈에도 보인다.
“지한 오빠, 버프 받아요!”
『 동료 채아연이 스킬 ‘초(超) 신성 축복 Lv.9’를 발휘합니다. 』
눈부신 빛이 내 몸을 휘감자, 모든 능력치가 비약적으로 상승하는 게 느껴졌다. 땅을 박차고 뛰어 오르는 몸이 전에 없이 가볍다.
촤아악—!
땅 속에 숨어 있던 촉수들이 날 막기 위해 솟아났다. 그 빠르기와 힘은 내가 반응조차할 수 없을 정도.
그러나 걱정할 필요는 없다.
신태양과 천성호가 우글거리는 촉수들을 단번에 베어내며 내가 나아갈 길을 만들어냈다.
“가세요, 스승님! 길은 저희가 뚫겠습니다!”
“리더! 저 개 같은 놈한테 한 방 먹여줘!”
잘려나간 촉수들이 어지러이 하늘위로 날아 올랐다. 나는 그것들을 헤치고 거침없이 마족을 향해 달려나갔다.
손에 쥔 역전의 검의 칼날이 새하얗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 크하하! 이지한! 드디어 나왔구나! 덤벼라, 네 놈을 죽이고 나는 상위 마족의 좌에 오르도록 하겠다! 】
마족이 내 이름까지 알고 있을 줄이야. 내가 얼마나 유명인이 됐는지 새삼 느껴진다.
『 유니크 스킬 ‘지고의 정신 Lv.1’을 발휘합니다. 』
이제 격에 대한 저항력은 충분하다. 스킬에 더해 타재간파의 서까지 모두 발휘했으니 목소리만으로 주춤되는 일은 없다.
【 죽어라! 】
촤르륵—!
놈이 뻗은 손에서 보랏빛 촉수가 나를 향해 쇄도했다. 솔직히 말해 보이지도 않는다. 놈과 나 사이에는 그만큼 압도적인 격차가 있다.
멸망한 세계라는 압도적인 격차.
그러나 내 심장을 노리고 날아드는 놈의 공격을 피하려고 노력할 필요는 없었다.
엘리스의 절대 미래 예지.
예지가 보여주는 잔상을 따라 몸을 움직일 뿐.
콰아앙!
【 뭣이? 】
간발의 차이로 빗겨나간 촉수가 애꿎은 바닥을 부쉈다. 그러는 사이 나는 놈과의 거리를 코앞까지 좁힐 수 있었다.
놈에게도 최후의 수단은 있었다. 마족의 입에서 솟아난 촉수가 나를 노리고 쏘아지는 찰나.
나는 역전의 검을 틀어쥐었다.
『 아이템 특수 효과 ‘역전의 기회’가 발휘됩니다. 』
『 절대적인 선공권을 1회 가지게 됩니다. 』
주변의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기 시작한다. 이 시간, 이 공간 속에서 오로지 나만이 검을 휘두를 수 있다.
여기까지 왔다면 망설일 건 없다.
나는 모든 힘을 다해 검을 휘둘렀다.
『 레전더리 스킬 ‘절대 일격 Lv.2’를 발휘합니다. 』
『 각성 스킬 ‘일자베기 Lv.13’을 발휘합니다. 』
마족을 양단하는 푸른 광선이 하늘 높이 치솟는다. 끝을 모르고 올라간 빛은 붉은 하늘을 가르고, 검은 먹구름마저 몰아냈다.
본질을 베어내는 레벨 13의 일자베기가 재생의 마족을 갈라냈다. 압도적인 상성의 우위다.
더 이상의 재생은 불가능할 터.
그리 생각하는 순간이었다.
【 어쩐지······. 약하구나······. 그렇구나······. 부상을 입었던 거구나. 그때의 전투에서······! 】
촤르르륵!
마기와 함께 돋아난 수 천 가닥의 촉수가 재생의 마족을 뒤덮기 시작했다. 여기서 다시 자신의 몸을 재생하려 시도하고 있었다.
“크윽!”
각성 스킬로 인해 90%의 체력과 마력을 잃었다. 온갖 탈력감이 밀려온다. 이대로 쏟아지는 마기와 촉수를 견뎌낼 재간이 없었다.
‘젠장, 물러나는 수밖에 없나.’
그리 생각하는 찰나였다.
내 뒤에 있던 엘리스가 속삭였다.
“제 능력은 시간 조작. 사부를 보조할게요. 마음껏 휘둘러주세요.”
그녀의 손이 가볍게 내 등을 밀자. 가벼운 빛이 전신으로 퍼져나갔다.
『 동료 엘리스가 스킬 ‘시간 조작 Lv.9’를 발휘합니다. 』
소모했던 체력과 마력이 거짓말처럼 되돌아왔다. 온 몸을 지배하던 탈력감이 씻은 듯이 사라져 있었다.
내 몸 상태는 각성 스킬을 사용하기 이전으로 돌아와 있었다.
“이거 좋은데.”
나는 다시 한 번 검을 들어올렸다.
시간을 되돌려 주기만 한다면, 몇 번이고 사용할 수 있다.
『 각성 스킬 ‘일자베기 Lv.13’을 발휘합니다. 』
일자베기 삼연타.
콰아아아—!
세 개의 푸른 줄기가 허공으로 치솟았다. 칭호 덕에 10배로 증가한 데미지가 지축을 울리고 대지를 갈랐다. 전례없던 규모의 공격이 재생의 마족을 덮쳤다.
무수히 솟아오른 촉수들이 재가 되어 허공으로 사그라들었다. 본질을 잃고 흩어진 재생의 마족은 단말마조차 내뱉지 못했다.
“하, 이게······. 형이지.”
천성호가 하늘을 올려다봤다. 신태양도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내내 붉었던 하늘의 틈새로 푸른 하늘이 얼핏 보였다. 멸망하기 전 푸르렀던 그 하늘이 잠시나마 본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내가 했다고 믿기지 않는 수준이다. 동료들의 도움이 있어서 가능했다.
털썩.
나는 검을 바닥에 놓고 주저앉았다.
‘윽, 죽을 것 같다······.”
엘리스의 시간조작을 받았음에도 손가락하나 까딱할 수가 없었다. 완벽히 시간을 되돌려주는 건 아닌가? 하여튼 몸에 힘이 하나도 없다.
“오빠, 지금 당장 치료할게!”
“사부, 괜찮으세요?!”
당황한 채아연과 엘리스가 나를 붙잡고 흔들었다. 괜찮으니까 그만 흔들어줬으면 좋겠다.
이어지는 레벨업 알림과 포인트 획득 메시지창.
그 사이로 생각치도 못한 메시지가 떠오른 건 그때였다.
『 이계규율의 정산이 끝났습니다. 』
‘응?’
파직, 파지직!
그런 내 시야 한켠으로 강렬한 스파크가 일어났다.
『 중위 전투의 마족을 처치하셨습니다. 』
『 중위 재생의 마족(미래)을 처치하셨습니다. 』
『 형언할 수 없는 수준의 업적을 이뤄냈습니다. 』
『 해당 업적의 실현 가능성은 0% 입니다. 』
‘뭐······?’
『 아카식 레코드에 해당 업적이 영원불멸 기록 됩니다. 』
『 소수의 초월자들이 당신의 업적에 감탄합니다. 』
전투의 마족을 처치한 일과 재생의 마족을 처치한 업적이 동시에 계산되고 있었다.
그리하여.
『 이계 규율이 보상을 지급합니다. 』
전에 없던 검은 빛이 내 몸을 휘감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