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fter 100 thousand reincarnation he became a transcendent hunter RAW novel - Chapter 125
125화 붉은 피가 흐르는 세계(1)
5일 후.
나는 게이트 바깥으로 나왔다. 뒤이어 너덜너덜해진 신태양과 엘리스가 어기적 어기적 게이트를 빠져 나왔다.
“하루 쉬고서 내일 내가 알려주는 장소에 다시 모인다.”
“······.”
“······.”
두 사람 모두 대답이 없었다.
대답할 기운도 없는 거겠지.
그만큼 훈련은 힘들었다. 신태양은 죽을만큼 맞았고, 엘리스는 죽기 직전까지 마력을 사용했다.
이계 규율 상점에서 구매 가능한 포션들이 거의 무한정 제공 되었다. 남아도는 포인트 덕이었다.
‘신태양에게는 영웅의 힘을, 엘리스에게는 초마력 회로를 전수했다.’
거기에 더해 신태양의 새로운 재능을 개화 시켰으니, 준비는 다 끝난 셈.
“······다녀오겠습니다.”
신태양이 사라졌다. 훈련에서 가장 고생한 건 녀석이지만, 본인이 강해졌다는 건 본인이 잘 알 거다.
엘리스는 자리에 남아 있었다. 내 쪽으로 터덜터덜 걸어와 소매를 붙잡았다.
“약속대로 찜질방에 데려다 주세요······.”
“그래.”
“와아······.”
힘 없이 양 손을 들어 올리는 엘리스.
훈련을 잘 끝마치면 데려다 주기로 했었다.
미래에서 차와 함께 한과를 내줬을 떄부터 예상은 했다만, 한국에 관심이 굉장히 많은 것 같다.
‘솔직히 엘리스에게 이런 훈련을 납득 시키긴 어렵다고 생각했는데······. 끝까지 잘 따라올 줄이야.’
운명의 사람이라는 예언.
지금의 엘리스와의 연결 고리는 그게 전부였지만 엘리스는 필사적으로 거기에 매달렸다.
“확실히 운명은 바뀌겠네요. 이런 훈련을 더 받았다간 오래 못 살게 분명해요. 수명이 10년은 줄었을 거에요······.”
그리 중얼거리는 엘리스.
그러다 번뜩 정신을 차리고선 내게 말한다.
“사부님, 그래도 덕분에 매우 강해진 것 같아요. S급의 눈 앞에 성큼 다가왔어요. 감사합니다.”
“사부님?”
호칭을 따로 정해준 건 아닌데도 이렇게 부른다.
“이렇게 부르면 안되나요?”
“맘대로 해.”
“감사합니다!”
녀석이 고개를 꾸벅 숙였다.
고작 5일.
무언가를 크게 바꾸긴 어려운 시간이다. 그러나 타재간파의 효과로 이들의 성장 속도는 4배에서 5배가 되었다.
약 한 달 가량의 훈련이라고 생각하면 되겠지.
그렇게 보면 이번 5일은 의미가 크다.
“오늘 하루는 편하게 쉬자.”
“네, 기대할게요!”
힘들었던 게 기억나지 않는다는 듯 어느새 싱글벙글이 된 엘리스였다.
* * *
수호 길드 본사.
트레이닝 룸에는 헌터들이 많이 모여 있었다.
“뭐야, 오늘도 다들 여기에 있는 거야? 공략도 끝났는데 어디 좀 놀러 나가라. 신태양 그 녀석 처럼.”
문을 연 선배 길드원은 능글맞은 미소와 함께 말했다. 수호 길드에서 부길드장 다음으로 강하다고 알려져 있는 이시온이였다.
“그러는 선배도 훈련하러 오신 거 아니에요?”
“뭐, 나도 그렇기는 한데.”
후배의 말에 어깨를 으쓱이며 다가와서는 덤벨을 뺏어 들었다. 이시온이 저도 모르게 휘청였다.
“윽, 뭐야. 엄청 무거운데?”
“이 정도는 해야 운동이 되죠. 다들 진지하거든요.”
그 말에 이시온이 주변을 둘러봤다. 선배가 온 줄도 모르고 훈련에 매진하는 모습이 꽤 보기 좋았다.
“거 참, 다들 너무 열심히 한다니까.”
굳이 입밖으로 내는 사람은 없었지만 수호 길드는 은빛의 날개에 뒤쳐졌다.
그것도 처음으로.
아득한 격차를 벌리고 있다고 생각한 상대에게 따라잡힌 것이다. 그 충격은 길드 내부에도 생생히 전달 되고 있었다.
머리를 긁적인 이시온이 옆에 있던 마력 봉인구를 집어드는 순간이었다.
지이잉—.
자동문이 열리며 익숙한 얼굴이 나타났다.
신태양이었다.
이시온이 반갑게 손을 들어 올렸다.
“오, 신태양이잖아. 너 이 자식. 스승님하고 얼마나 재밌게 놀았으면 연락도 안······.”
그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않았다. 신태양의 분위기가 너무 달라졌기 때문이다. 아니, 분위기라는 말로는 표현되지 않는다.
풍기는 아우라 자체가 변해 있었다.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태양아······?”
트레이닝 룸에 있던 헌터들도 훈련을 멈추고 신태양을 바라봤다. 그런 그들 사이를 뚜벅 뚜벅 걸어서 지나치는 신태양.
트레이닝 룸 전체가 침묵에 휩싸였다.
‘원래 저런 느낌 아니지 않았어?’
‘뭐야? 무슨 일이 있었던거야?’
신태양의 눈빛이 완전히 변해 있었다. 선하고 순수한 청년 같던 그의 눈가에 독기가 잔뜩 서려 있었다.
평소 장난스러운 태도를 이시온마저 무슨 일이 있었는지조차 묻지 못할 정도였다.
철컥.
신태양은 보관함에 있던 가방 하나를 꺼내 어깨에 매더니 다시 트레이닝 룸 밖으로 향했다.
그가 빠져나갈 때까지 트레이닝 룸이 얼어붙은 듯 고요했다.
“뭐, 뭐야? 5일 동안 뭔 일이······.. 누구 아는 사람 없어?”
“몰라요. 스승님하고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요?”
“그럴 수도 있겠는데. 근데 그 정도로 사람이 저렇게 변하나······.”
여러가지 억측이 난무하던 가운데.
지이잉—.
트레이닝 룸의 자동문이 다시 열렸다.
모습을 드러낸 건 의외의 인물이었다.
심각한 표정을 한 길드장 사최헌이었다.
“······방금 여기에 있던 사람 누구였어?”
부스스한 머리를 한 그대로였다. 자다가 깨서 급하게 달려 온 모양새였다.
그런 사최헌의 모습에 이시온이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누구긴 누구야, 신태양이지. 우리 길드장께서 애지중지하는 수퍼 루키 신태양.”
“아니, 농담하지 말고. 나 진지하다.”
“진짜로 신태양이라니까.”
이시온의 말에 운동을 하던 헌터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럴 리가······.”
사최헌은 못 믿겠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의 시선이 신태양이 사라진 복도 끝에 머물렀다.
그의 특기 중 하나는 타인의 기운을 살피는 것이었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느낄 수 있었다.
잠을 자던 그가 이곳까지 뛰쳐 나온 이유였다. 기운은 어느새 건물에서 멀어지고 있었다.
‘정말로 신태양이었단 말이야?’
길드원들이 거짓말을 할 리가 없었다.
하지만 사최헌이 아는 신태양이라기엔 너무 섬뜩한 기운이었다. 침을 삼킨 사최헌이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신태양한테 당장 전화 해봐. 무슨 일이 생긴 것 같다.”
* * *
다음날.
나와 엘리스는 산에 오르고 있었다.
“이게 한국의 산······! 풍경이 너무 멋져요. 우와, 천연기념물인 고라니잖아요! 사부님, 쓰다듬어 봐도 되나요?”
“잡을 수 있다면.”
엘리스는 등 뒤에 큰 배낭을 맨 채로 산 여기저기를 뛰어 다녔다. 근데 한국의 산이나 외국 산이나 그게 그거 아닌가.
– 이건 대한민국의 맥반석 계란! 식혜! 드라마에서만 보던 걸 진짜로 먹어 보게 되다니,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어요······.
어제 찜질방에서부터 시작해서 감탄사가 끊이질 않는다. 이 정도면 한국을 좋아하는 걸 넘었다.
목적지인 산 정상.
“야—호!”
“늦는군.”
엘리스가 건네 준 김밥을 씹으며 신태양을 기다렸다.
우우우······.
하늘 위에는 붉은 마기가 광대하게 펼쳐져 있다. 스산함을 넘어 불길함까지 느껴진다.
하늘과 가까운 이 장소가 아니면 확인할 수조차 없는 현상이다.
그 가운데에 선명한 붉은색의 게이트가 소용돌이치고 있다.
‘이번 게이트는 선혈의 마족이 독단으로 만들어낸 게이트다.’
상위 선혈의 마족.
후에 군단장 중 하나가 될 놈이다. 나약의 마족과 페어로 묶여다녀 처리하기 여간 성가신 게 아니다만.
이번에는 상황이 좀 다르다.
‘성격이 급하다고 그랬지.’
나약의 마족의 지시를 무시하고 뛰쳐나와 혼자서 해결하겠다고 만들어낸 게이트다.
내가 그들에게 정말로 위협이 될 존재라면 이런 기습적인 게이트도 막아낼 거라는 미친 발상일 거다.
‘실제로 막으러 가게 되었으니, 전략은 유효하다만.’
두 상위 마족이 서로 나뉘어진 지금이 나에게는 오히려 기회다.
“어, 사부님! 왔어요!”
저 아래 보이던 신태양이 빠르게 정상까지 뛰어왔다. 산을 정신 없이 뛰어 왔는지 머리에 나뭇잎을 붙이고 있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길드원들에게 상황을 설명하느라 늦어졌습니다. 제가 진짜 신태양이 맞는지 확인을 해야 한다나 뭐라나.”
나뭇잎을 떼어내는 신태양의 미간이 좁혀져 있었다.
‘······너무 많이 팼나.’
확실히 분위기가 달라져 있기는했다.
5일 동안 두드려 맞으면 사람이 변하는 게 당연하기는 하다. 괜히 애 하나 버려 놓은 게 아닌가 걱정이다.
그래도 같은 훈련을 거쳤을 미래의 신태양은 멀쩡해 보였다.
‘시간이 해결해 주겠지.’
그리고 나도 그만큼은 쳐 맞았다.
차이점이 있다면 불굴의 정신과 지고의 정신 스킬이 있다는 차이 정도겠다.
“왔으니 괜찮아. 다 모였으니 들어가자.”
“후우, 힘내봐요.”
“스승님과 한 훈련이 헛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마족에 대한 것은 이미 설명을 끝내 놨다.
신태양은 이미 마족의 심각성에 대해 인지하고 있는 상태였고, 엘리스는 그냥 무조건 날 믿기로 한 모양.
주변을 지키는 마족은 없었다.
‘얼마든지 들어와 보라는 건가.’
땅을 박차고 뛰어 올라 게이트 내부로 뛰어들었다. 순식간에 주변의 풍경이 뒤바뀌며 으스스한 분위기의 검은 땅이 모습을 드러냈다.
『 마(魔)를 따르는 자의 권역에 진입하셨습니다. 』
별 한 점 없는 검은 하늘 위에 떠오른 핏빛의 달.
그 아래로 보이는 귀족의 성.
흐르는 강물조차 새빨갛다.
분위기를 느끼기엔 충분했다.
『 마도 : 계약에 의거하여 제약이 발생합니다. 』
『 붉은 피 : 모든 대상은 붉은 피를 가지게 됩니다. 』
“제약······?”
“인간의 피는 원래 붉으니까 신경쓰지 않아도 괜찮아.”
“그, 그렇죠. 다행이네요, 외계인이 아니라.”
푸른 피를 가진 외계인이었어도 디메리트는 없었을 거다. 그런 보잘 것 없는 제약이다.
어디까지나 제약은 그렇다.
나는 검을 들어 올려 성을 가리켰다.
“목적지는 저기.”
이곳은 검은 숲의 한가운데다. 도중에 마주칠 마수들까지 생각하면 4일 정도는 걸리겠다.
내가 가장 앞장을 섰다. 중간이 엘리스, 마지막이 신태양이다.
‘S급 게이트를 세 명이서 공략할 수 있는가?’
거기에 대한 정답은 예스다.
오히려 세 명이 아니면 안된다.
이곳에서 나타나는 마수들은 특별하기에.
찌지직! 찌지직!
검은 박쥐 떼가 숲에서 날아올랐다. 위협적으로 우리의 주변을 배회하는 수 백마리의 흡혈 박쥐들.
“여긴 제가 하겠습니다.”
신태양이 옆구리에 차고 있던 검집에 손을 올렸다. 내가 건네 준 레전더리 ‘에이나시아 영웅검’이었다.
‘검집은 아이템인 건가?’
길드에 들렀다더니 가져 온 모양. 원래는 검집이 없는 검이었다.
『 동료 신태양이 스킬 ‘태양류 발도술 Lv.7’을 발휘합니다. 』
번쩍!
신태양이 검 손잡이에 손을 올리는 순간, 밝은 빛이 점멸했다. 동시에 박쥐들이 우수수 떨어졌다.
바닥에 떨어진 박쥐들은 죽지 않았다. 검은 기운을 내뿜더니 인간의 모습으로 변했다.
새하얀 피부에 붉은 눈.
뱀파이어들이었다.
“크으윽. 네 놈들······. 조금은 하는구나.”
엘리스가 양손으로 입을 막았다.
“마수가 말을 해요!”
“권속이니까.”
뱀파이어의 숫자는 총 20. 발도술에 당한 데미지는 그리 크지 않아보였다. 그저 얼굴을 찡그리는 정도.
놈은 바로 협박을 시작했다.
“네 놈들이 누굴 건드렸는지 알기는 하나? 죽지도 못하는 몸으로 만들어 평생을 노예처럼 부려주겠다.”
“나는 저기 저 여자애가 좋겠어.”
“나는 튼튼해 보이는 남자.”
뱀파이어의 특징은 권속을 삼는다는 거다. 상위 뱀파이어에게 잘못 당하기라도 했다간 꼼짝 없이 헌터 하나를 빼앗기는 셈.
회복하려면 고위급 해주 스킬을 가진 사람이 필요했다.
지원이 오히려 독이 되는 이유였다.
‘아쉽지만 성녀 채아람은 아직 준비가 덜 되서 어쩔 수 없다.’
스킬 습득은 단순 훈련으로 커버되는 게 아니니까.
“······가소롭네.”
뒤에 있던 신태양이 앞으로 걸어나왔다.
“네 놈들이 스승님을 노예로 부린다고? 쯧.”
잡몹처럼 보이는 뱀파이어들이지만.
그들 하나하나가 선혈의 마족의 권속이다.
S급 게이트의 마수인만큼 기본적인 강함도 무시 못할 정도.
하지만 신태양의 성장도 눈부시다.
“개소리가 따로 없군.”
신태양의 검 위로 푸른 오러가 타오르기 시작했다. 가볍게 달려나가는 신태양의 얼굴에 가벼운 미소가 생겨났다.
“멍청하긴! 우리한테 달려 오다니! 수의 차이를 모르는 건가?”
“네 놈부터 노예로 삼아주마!”
그러나 다음 순간.
신태양의 형체가 사라졌다. 가벼운 잔상을 남긴 채 사라진 신태양은 뱀파이어의 뒤편에서 나타났다.
콰과과과과——!
푸른 섬광이 폭격처럼 떨어져내렸다. 자리에 서 있던 뱀파이어들은 무차별적인 폭격에 사방으로 터져나갔다.
운 좋게 살아남은 뱀파이어 하나가 사시나무 떨듯 몸을 떨었다.
“이, 이게 무슨······?’
신태양의 새로운 재능 ‘리미트 해제’.
개인이 가지고 있는 한계를 쳐부순다. 정신적으로도, 신체적으로도 모든 한계를 돌파하고 새로운 경지에 오르는 것이다.
『 신태양의 레벨이 일시적으로 30 상승합니다. 』
서걱—!
신태양이 뱀파이어의 목을 가볍게 잘라냈다.
“가시죠, 스승님.”
믿음직한 제자가 그렇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