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fter 100 thousand reincarnation he became a transcendent hunter RAW novel - Chapter 129
129화 붉은 피가 흐르는 세계(5)
『 마계의 틈 : 초목계 』
우리의 앞으로 드넓게 펼쳐진 평원.
저 멀리 보이는 푸르른 초목의 숲.
햇살은 따사롭고, 산양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어먹는 평화로운 광경.
“여, 여기는······?”
거대해진 슬라임 오르티마의 안에서 기어나오는 신태양의 눈이 커졌다.
핏빛의 소용돌이 속을 지나오자 완전 딴판인 세계가 펼쳐졌다.
“스승님, 여기에 선혈의 마족이 있는 게 맞나요? 아니면 내가 환각을 보고 있는 건가······.”
방금 전까지 칠흑의 성 위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였단 게 믿기지 않을 정도. 주변을 가득 메우던 비릿한 혈향도 온데 간데 없다.
향긋한 풀내음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시간의 흐름이 완전히 달라졌어요. 이 공간은 대체······.”
엘리스는 경계를 늦추지 않고 주변을 살폈다.
이내 두 사람의 시선이 내게로 모였다. 설명을 요구하는 눈빛이다.
‘나도 직접 오는 건 처음이지만.’
당황하지 않을 수 있는 건 미래에서 얻은 지식 덕분이었다.
“대부분의 마족들은 마계의 틈이란 고유한 장소를 소유하고 있어. 이 장소는 선혈의 마족이 소유한 공간이겠지.”
“공간이라기보단 세계 아닌가요? 끝이 보이지 않아요.”
엘리스의 말대로다.
녀석은 하나의 세계를 통째로 소유물로 삼고 있는 거다. 중위 마족이 소유하는 것이 공간에 그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미래의 엘리스의 말에 따르면 이곳은 누군가가 잃어버린 세계라고 했던가.’
마족에게 점령 당해 잊혀지고 사라진 세계.
“여기 어딘가에 선혈의 마족이 숨어 있을 거다.”
“그 마족하고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장소네요. 한가해 보이는 양들도 있고. 귀엽긴하네.”
신태양이 무심코 근처의 산양의 머리를 쓰다듬으려 했다.
“잠깐······.”
내가 미처 말리기도 전이었다.
콰아앙!
“커허억!”
산양이 힘껏 휘두른 뿔 박치기.
갑작스런 공격에 신태양이 허공을 날았다. 그대로 땅을 주욱 그으며 밀려났다.
“이, 이게 무슨······?”
흙투성이가 된 신태양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산양을 쳐다봤다. 자신을 함부로 만지려했다는 사실이 맘에 들지 않는지 발을 퉁퉁 구르는 산양.
“마, 마수인건가요?”
엘리스도 한발자국 물러섰다.
리미트 해제 상태가 아니라곤 해도, S급 헌터가 산양의 박치기 한 방에 날아갔다. 도저히 정상적이라고 보이지 않는 상황.
그러나 이곳은 마계의 틈이다.
“함부로 만지지 않는 게 좋을 거야. 여기 생물들은 가지고 있는 힘 자체가 다르니까.”
알게 모르게 마기를 듬뿍 머금어서 마계에 동화 되어 간다. 겉모습은 평범해도 마계와 가까운 장소라는 걸 잊어선 안된다.
나는 산양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당연하게도 녀석은 가만히 있지 않았다.
산양이 발광하려는 찰나.
뻐억!
머리에 꿀밤을 한 대 먹여줬다.
산양은 그대로 기절했다.
“스, 스승님은 괜찮으신겁니까?”
“난 괜찮아.”
“여, 역시······.”
역시는 뭐가 역시야.
이계 규율 칭호의 영향을 받아 나는 본래 세계에 있을 때보다 훨씬 강해졌다.
격의 차이는 딱히 없다. 개인이 가진 강함과 격이 일치하는 건 아니다.
‘실제 등급은 아직 A급 헌터에 불과하기도 하고.’
모든 스킬을 다 발휘한다면 모를까.
어쨌든 신태양이 감탄하는 것에 비해 이 산양은 강하지 않다.
신태양도 기습 공격에 당했을 뿐이다. 금방 털고 일어났다.
“중요한 건 이 세계의 존재들이 약하지 않다는 거. 그것만 기억하면 된다.”
“예, 명심겠습니다.”
“어? 저기 누가 다가오고 있어요!”
방금 전 소동 때문일까.
저 멀리 양치기 하나가 우리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뙤약볕에 그슬린 피부가 이국적인 소년이었다.
“거기서 뭐하시는 겁니까!”
순식간에 우리 앞까지 달려 온 양치기 소년은 숨을 몰아쉬었다.
소년의 시선이 바닥에 기절한 산양에게로 향했다.
“지, 지금 저희 양한테 무슨 짓을······!”
거품을 물고 쓰러진 산양의 몸을 부둥켜 안은 소년이 우리를 쏘아봤다.
“당신들 뭐에요?! 경비대에 신고 할 거에요!”
마족이 다스리는 세계에 존재하는 주민.
‘탑’에도 존재하는 이러한 이들을 우리 헌터들은 흔히 이렇게 부른다.
“이 남자애는 NPC 인건가요?”
None Player Character
게임 속에서 플레이어에게 퀘스트를 주는 역할을 맡은 이들.
그러나 마계의 틈에 존재하는 사람들은 그 성질이 다르다.
정말로 존재하는 사람이다.
물론 당장은 그 구분이 중요하진 않지만.
나는 소년의 앞으로 나서면서 말했다.
품 안에서 마정석 하나를 꺼내 내민다.
몬스터의 마력이 풍부하게 담긴 마정석은 이곳에서 보석이나 다름 없게 취급 된단다.
“어어······?”
마정석을 바라보는 소년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그래, 경비대를 불러줄래? 서쪽의 마녀에 대해 할 말이 있거든.”
* * *
“더 드세요! 많이 있어요!”
양치기 소년은 우리를 집으로 안내하더니 극진한 대접을 해주기 시작했다.
산양젖으로 만든 치즈와 스튜, 벌꿀잼과 잘 구운 식빵 같은 음식들을 내왔다.
그 맛으로 말할 것 같으면.
“다, 달아여. 이러케 맛있을 수가 있다니······?”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토스트를 냠냠 먹어치우는 엘리스.
“기가 막히네요······. 지금 저희가 게이트 공략을 나온 건지. 소풍을 나온 건지 모를 정도네요. 피로가 확 풀리는 맛입니다.”
신태양도 벌써 스튜를 다섯 그릇째 비웠다.
게이트를 공략하는 동안 대부분의 전투를 신태양이 도맡아서 했다. 선혈의 마족과 싸운 것도 사실상 녀석이었다.
음식을 먹어서 피로가 풀린다면 다행이다.
‘맛있네.’
맛이 없을 수가 없었다.
『 달콤하고 고소한 풍미가 당신의 정신을 일깨웁니다. 』
『 일시적으로 지력 + 1% 』
『 스튜의 따스한 기운이 당신의 몸을 데웁니다. 』
『 일시적으로 체력, 힘 + 1% 』
음식을 먹는 것만으로도 능력치가 상승한다. 이걸 가능하게 하는 건 스킬 밖에는 없다.
그것도 최소 중급 요리.
‘내가 찾던 요리 스킬을 가진 사람이 여기에 있었군.’
미래에서 얻은 정보 중 하나.
– 사부, 상위 마족이 가지고 있는 마계의 틈이나 SS급 게이트에서 얻을 수 있는 건 보상 뿐이 아니에요. 다른 사람이라면 불가능하겠지만······. 사부라면 더 많은 걸 얻을 수 있을 거에요. 예를 들면 스킬이라던지.
미래 엘리스의 말대로였다.
어차피 경비대가 올 때까지는 시간이 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양치기 소년에게 향했다. 녀석은 마정석을 받아서 싱글벙글이었다.
우리 세계보다 이곳에서 그 가치가 높은 모양이다.
“음식은 입에 맞으신가요? 필요한 게 있으시면 팍팍 말씀해주세요.”
“네가 가진 요리 스킬이 혹시 중급 요리인가?”
“아, 네. 제가 자랑하는 기술이랍니다.”
스킬에 관해선 말이 빨라서 다행이다. 스킬에 관한 것 자체를 모른다면 설명하기가 더욱 복잡해지니까.
“내가 요리를 배울 수 있을까 하는데.”
“네? 나으리께서 직접요?”
마정석 하나로 대접은 제대로 받는구나 싶다. 현 시점 우리쪽 세계에서 중급 요리 스킬을 가진 사람은 없다.
있어봤자, 일반 요리 스킬이다.
때문에 전수 가능 여부를 모른다.
‘만약 전수가 안된다면 아쉽겠어.’
이미테이션 장갑은 아직 사용할 수 없다. 1주일의 대기 시간이 끝나지 않았다. 하루 정도가 남았지만 엘리스의 시간조작으로 되돌리기엔 너무 길다.
다행히 양치기 소년은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알려드리고 말고요! 전수 가능한 기술입니다. 몇가지 비법만 알고 계신다면 어렵지 않답니다. 나으리 덕분에 제가 집을 새로 장만하게 되었는데 못 해드릴 게 뭐가 있겠습니까!”
집을 장만한다라······.
이곳에서 마정석의 가치가 어마어마하긴 한 모양이다.
“오······.”
내가 요리 스킬을 배운다는 말에 어째 엘리스와 신태양이 더 기쁜 표정이었다.
스킬을 배우는 건 금방이었다.
마력의 부여와 온도의 조절이 관건이었다. 그 방식만 제대로 익힌다면 어려울 건 없었다.
‘이건 혼자서는 절대 못 했겠는데······.’
물론 그 독학이 불가능한 수준의 창의성을 요구했다.
“나으리는 불속성 친화력도 소유하신 것 같네요? 그러면 더욱 쉽습니다.”
오르티마가 먹은 정령 덕분일까. 스킬 획득을 알리는 메시지창이 금세 떠올랐다.
『 레어 스킬 ‘중급 요리 Lv.1’을 획득했습니다. 』
“빠, 빠르시네요. 나으리께서 요리에 재능 있으신 것 같습니다.”
“그런가.”
20만배의 경험치가 없는 재능도 있게 만들어 줄 뿐이다.
『 스킬 ‘중급 요리 Lv.2’을 획득했습니다. 』
『 스킬 ‘중급 요리 Lv.3’을 획득했습니다. 』
···
..
.
『 스킬 ‘중급 요리 Lv.10’을 획득했습니다. 』
“나, 나으리······?”
내게 요리를 가르치던 양치기 소년의 눈이 미친듯이 흔들리고 있었다.
달그락, 달그락.
치익, 치이익.
달걀을 한 손으로 까서 프라이를 만들고, 다른 한 손은 식빵 위에 우유를 적정량만큼 붓는다. 동시에 마력을 적정량 부여한다.
내 손은 두 가지 요리를 자연스럽게 해내고 있었다.
『 스킬 ‘중급 요리 Lv.11’을 획득했습니다. 』
『 추가효과 : 요리에 부여되는 능력치가 2배로 증가 합니다. 』
그렇게 11레벨 요리까지 완벽하게 배운 순간.
끼익. 쾅!
“이 시간에 경비대를 찾는 이방인 놈들이 누구냐? 으응?”
거나하게 술에 취한 경비대장이 요란하게 등장했다.
* * *
“서쪽 땅 끝에 있는 죽음의 땅. 그 악독한 마녀를 토벌해주시겠다는 겁니까? 이런 영웅분들이······.”
마정석을 손에 쥔 경비대장은 굉장히 공손해져 있었다.
“마을의 공간이동 장치로 충분히 이동할 수 있는 장소입니다. 제가 직접 안내해드리죠.”
양치기 소년과 작별 인사를 하고서 우리는 경비대장을 따라 움직였다.
“사부님. 여기는 선혈의 마족이 다스리는 세계인 거 아닌가요? 이곳에서도 마녀라고 불린다니······.”
“그런 걸 즐기는 거겠지.”
“즐긴다고요?”
그냥 하는 말이 아니다. 마계의 틈에 존재한 세계의 구성은 전적으로 마족의 취향에 따라 갈린다.
선혈의 마족의 유흥을 위해 존재하는 장소니 당연하다.
한마디로 부수기 위해 유지되는 평화라는 말. 이곳은 놈이 심심할 때 언제든지 파괴될 수 있는 위태위태한 장난감에 불과하다.
마족의 노리개로 전락한다는 게 이런 뜻이겠지.
‘만약 우리 세계가 끝이 난다면······.’
그 끝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도착했습니다. 경비본부에서 곧바로 공간이동을 이용할 수 있게 준비해두겠습니다.”
한적한 시골길에서 벗어나자 그럴듯한 중세의 마을이 나타났다. 경비대원들이 우리를 보고 주춤하자, 경비대장이 허리를 꼿꼿히 폈다.
“어이, 나야 나. 문 열어. 어허, 괜찮으니까.”
마정석이라는 뇌물이 가진 효과는 대단했다. 우리는 이방인임에도 아무런 방해 없이 마을 내부까지 들어올 수 있었다.
“그러면 부디 살아서 돌아오시길.”
평평한 바위 위에 새겨진 마법진 위에 섰다. 마법사들이 부산스럽게 움직였다.
곧이어 밝은 빛과 함께 주변의 공간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익숙한 변화였다.
우리 앞에 죽음의 땅이 모습을 드러냈다.
핏빛 강물과 검게 변한 땅.
저 멀리 보이는 검은 탑.
신태양이 심호흡을 했다.
“후우, 다시 전투가 시작되는 거군요.”
“이번 전투는 방금 전하고는 다를 거다. 상위 마족의 본체와 겨루게 되는 거니까.”
“각오는 하고 있습니다.”
“사부님을 보조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게요.”
두 사람이 각오를 다졌다.
내 심장도 요동치고 있었다. 미래에서 도착한 뒤, 전력을 다하는 첫 싸움이다.
스윽.
나는 장갑을 바꿔꼈다.
붉은색의 이미테이션 장갑에서 푸른색의 초회의 장갑으로.
이전에 얻었던 레전더리급 장갑이다.
그 효과는 이러하다.
『 첫번째 공격의 데미지가 250% 상승합니다. ( 쿨타임 : 24시간 ) 』
처억.
『 오르티마가 ‘회수의 창’으로 변화 합니다. 』
『 타재간파의 서를 활성화 합니다. 』
화르륵!
회수의 창 위로 푸르른 오러가 타올랐다.
『 무성 등급 칭호 ‘마계의 재앙’이 발휘 됩니다. 』
『 1성 등급 칭호 ‘마(魔)의 대적자’를 발휘 합니다. 』
타앗, 탁.
두 번의 도움 닫기 이후.
『 유니크 스킬 ‘영웅의 힘 Lv.10’을 발휘합니다. 』
『 유니크 스킬 ‘초가속 Lv.10’을 발휘합니다. 』
나는 모든 힘을 실어 창을 던졌다.
콰아아아—!
혜성처럼 푸른 꼬리를 그리며 날아간 창이 저 멀리에 있던 검은 탑에 부딪혔다.
콰아아아앙!
귀가 찢어질 듯한 굉음과 함께 붉은 핏물이 하늘 높이 솟구쳤다. 검은 탑은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무너져내리기 시작했다.
쿠구구구······.
마기가 조금 사그라든 기분이다. 적지 않은 피해를 입혔다는 게 느껴진다.
휘이익—! 타악.
회수의 창이 다시금 내 손에 안착했다. 오르티마도 방금 전의 여운이 채 가시지 않은 듯 살짝 떨리고 있었다.
“가보자.”
“예, 스승님.”
“네, 사부님!”
실수는 용납되지 않는다.
처음부터 전력으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