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fter 100 thousand reincarnation he became a transcendent hunter RAW novel - Chapter 204
204화 세계의 기억(1)
“리더가 두 명?”
나를 발견한 천성호의 미간이 좁혀졌다.
내 시간대에선 중학생이었던 녀석이지만,
지금은 내가 아는 멸망한 세계의 리더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뭐냐, 네 놈은······.”
콰악!
내쪽으로 다가온 천성호가 내 멱살을 잡았다.
SSS급 헌터의 힘이 그대로 내게 전해졌다.
강렬한 살기와 격이 내 전신을 압박해 왔다.
그러나, 이전과 달리 못 받아낼 정도는 아니었다.
“마족이냐? 마계왕의 끄나풀인 거냐?”
“야, 진정해. 그런 게 아니야.”
그리 윽박지르는 천성호의 어깨에 신태양의 손을 얹었다.
천성호의 눈썹이 크게 일그러졌다.
“뭐? 지금 우리 말고 살아 있는 사람이 있을 리가······.”
“이 사람은 다른 시간대의 스승님. 너도 들었잖아. 스승님의 능력에 대해서는.”
그리 말하는 신태양의 나긋한 목소리에는 힘이 없었다. 이전의 쾌활함도, 수다스러웠던 검성의 모습도 남아 있지 않다.
그제서야 천성호가 멱살을 풀었다.
“······.”
무어라 말을 꺼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이곳은 멸망이 확정된 미래.
그런 내 곁으로 황금색의 불빛이 날아 들었다. 다른 이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듯 날아든 빛에서 세레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여기에 재현되는 건 지나간 과거에요. 아카식 레코드의 기적으로 재현된 환상. 지한씨가 보고 있는 건 일종의 역할극에 불과해요. 너무 감정 이입하지 않으셔도······.
알고 있지만, 쉽사리 입이 떼어지지 않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이전에 내가 갔던 미래와 달리, 이곳의 운명은 결정되어 있으니까.
어쩌면 내가 닿았을지도 모르는 절망적인 미래.
최후의 5인의 시선이 내게 모였다.
고오오오······.
붉은 하늘에 떠오른 초대형 게이트에서 나오는 소음만이 들려온다.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스킬을 배우러 왔다.”
“과거에 지한씨가 다른 미래에 갔던 것과 마찬가지인거죠?”
내 말에 윤서현이 반응했다. 머리를 길게 기른 그녀의 눈은 내가 아는 것보다 더 차갑게 가라앉아 있다.
“맞습니다.”
“쯧, 우리한테 배울 게 뭐가 있다는 거야? 보라고.”
미간을 좁힌 천성호는 엄지로 뒤쪽의 게이트를 가리켰다.
“이 자식이 스승님한테 말 버릇이 그게 뭐냐.”
“우리 형은 뒤에 잘 살아 있구만, 좋아. 오늘에야말로 끝장을 보자, 신태양.”
“그래, 세상 다 망한 김에 누가 더 강한지 아예 결착을 내자. 이 버르장머리 없는 자식아.”
천성호와 신태양이 치고박기 시작했다.
이 둘은 어느 미래에서나 여전하다.
여지껏 조용하던 진세아가 고개를 들었다.
공허한 눈빛이 나를 향했다. 녀석은 들고 있던 나뭇가지를 내게로 향했다.
“도와줄 수 있죠. 근데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건 뭐에요? 다른 세계를 구할 수 있다는 희망? 그런 거 사실 아무런 의미도 없잖아요.”
진정한 멸망을 앞둔 마지막 순간.
무조건적인 협력을 바라기엔, 너무 많은 것들이 변해있다.
그럼에도 내가 여기에 온 이유가 있었다.
‘유일하게 이 시간대의 모두가 레전더리급 스킬을 가지고 있다.’
그들을 설득하지 못하면 스킬을 배울 수 없다.
아카식 레코드의 기록 체험이란 그런 것이었다.
나는 준비해 온 말을 꺼냈다.
한참이나 과거의 존재인 내가 그들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하지만, 그들이 내가 아는 최후의 5인이라면.
한 가지는 확실하다.
“미래. 이 세계의 미래에 대해 알려줄게. 내가 줄 수 있는 건 그게 유일하니.”
끝에 다다른 지금 이 순간까지도.
그들 중 누구도 포기하고 있지 않을 것이란 것만큼은 확신할 수 있었다.
모두의 시선이 내게로 집중되었다. 눈빛이 달라진 걸 한 눈에 느낄 수 있었다.
“미래? 과거의 존재인 오빠가 어떻게 우리 미래를 알려주겠다는 거에요?”
“아니, 세아야. 어쩌면······.”
윤서현이 조심스레 입을 열려는 그 순간.
관심 없다는 듯 끝까지 뒤돌아 있던 남자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그가 움직이자 최후의 5인들의 고개가 돌아갔다.
“······그거 나쁘지 않군.”
윤서현과 진세아 뿐만 아니라,
신태양과 천성호까지도.
“교환하지.”
남자의 한없이 차가운 눈이 나를 응시했다.
* * *
그리하여 나는 레전더리급 스킬들을 전수 받을 수 있게 되었다.
– 생각보다 쉽게 허락해줘서 다행이네요.
물론 스킬을 배우는 과정은 간단하지 않았다.
뻐억! 뻐억!
나를 실컷 두들긴 신태양이 목검을 등에 얹으며 미소지었다.
“이야, 예전 생각이 떠오르네요. 스승님하고 훈련하던 추억이 새록새록이랄까. 참 많이 맞았었는데.”
“······.”
나는 몸을 털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 금방 일어나시네요. 빨리 끝낼 수 있겠어요. 그러면 다시 갑니다.”
이 폭력의 굴레는 언제까지 계속 되는 걸까.
돌아가면 녀석에게 제대로 전해두는 게 낫겠다.
내가 때리고 싶어서 때린 게 아니란 걸, 제대로 전해두자.
콰아앙!
마력을 두른 내 검이 신태양의 목검과 맞부딪혔다. 신태양의 눈이 커졌다. 의외라는 표정이었다.
‘드디어 녀석의 검이 보인다.’
타재간파의 스킬을 전부 활성화 하기는 했다만, 미래에서 검성에게 영문도 모르고 두드려 맞았던 시절을 생각하면 엄청난 발전이다.
콰앙, 콰앙!
검을 부딪힐 때마다 강력한 마력의 폭류가 터져나왔다. 메마른 대지를 파헤치는 폭발. 나는 전력을 다해 검을 휘둘렀다.
『 스킬 ‘영웅의 힘 Lv.12’를 발휘합니다. 』
그러지 않으면 당장이라도 폭발에 휩쓸려 날아갈 것 같았으니까.
“확실히······. 스승님은 스승님이네요. 하지만.”
검성 신태양이 있는 힘 그대로 검을 밀어 붙혔다. 그의 뒤편으로 푸른 마력이 날개처럼 맺혔다.
콰아아앙—!
마력의 형상화.
이어지는 압도적인 힘에 나는 대지에 긴 선을 남기며 밀려났다.
맞대고 있던 목검에서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나고 있었다.
유니크 스킬보다 한차원 높은 힘이었다.
“이런 느낌으로 힘을 발휘하면 됩니다. 쉽죠? 스승님이라면 분명 간단하게······.”
“······전혀 모르겠는데.”
“음, 그렇다면 자연스레 체득하는 게 빠르겠네요.”
신태양이 목검을 쥔 채 천천히 걸어왔다.
“······.”
자연스러운 체득이라.
말은 좋게 하는데, 그건 결국.
뻐억.
날 두들겨 패겠다는 소리잖냐.
* * *
“크으윽······.”
며칠이 지났는지도 가물가물해질 무렵.
『 레전더리 스킬 ‘태양류 검성 : 압도적인 힘 Lv.1’을 전수 받습니다. 』
나는 바닥에 쓰러진 채 간신히 메시지를 확인할 수 있는 꼴이 되었다.
방법이야 어찌되었든 스킬은 얻어냈다.
– 괘, 괜찮으세요? 지금이라도 기록 체험을 중지할까요?
기록 체험 중에 죽을 수도 있단다.
세레네가 도중에 몇 번이고 확인했지만, 나는 끝까지 거절했다.
“······앓는소리 한 번 안하실 줄이야. 하지만, 효과는 확실하죠. 스승님께서 직접 고안하신 방법이니까요.”
신태양이 내 머리 위에 포션을 부어줬다. 그 덕에 녀석이 내민 손을 붙잡고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었다.
근데 내가 이걸 만들었다고?
뭐, 이런 무식한 방법을······.
“이걸로 제 차례는 끝인데. 괜찮으시면 과거의 저에게도 이 기술을 전수해주세요. 더 빨리 강해졌다면 미래를 바꿀 수 있지 않았을까. 가끔 생각하거든요.”
“생각 좀 해봐야 될 것 같은데······.”
이 반복되는 폭력의 굴레는 이쯤에서 끊는 게 좋을 것 같다.
아무래도 다른 방법을 생각해 봐야겠다.
스킬의 전수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다음 차례는 진세아.
메마른 대지의 바위 위에 올라선 녀석은 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나한테 한 번도 붙잡히지 않고 일주일 동안 도망쳐.”
도망친다. 그걸로 충분한 건가?
진세아는 바위에 손을 얹었다. 녀석이 가진 절대 강탈의 힘이 대지의 힘을 빨아들였다.
“잡히면 어떻게 되는거지?”
“별 거 없어. 그냥 나한테 맞는거지.”
“······.”
어째 이 녀석들 전부 다 날 패고 싶어하는 것 같다.
“그러면 시작.”
나는 빠르게 타재간파부터 활성화했다.
진세아는 기척을 숨기지 않은 채 나를 향해 뛰어 들었다. 허공을 박차고 쏜살같이 쏘아져 왔다. 그 모습이 내 눈에는 정확하게 보인다.
『 유니크 스킬 ‘고속 정보 처리 Lv.12’를 발휘합니다. 』
아카식 레코드에서 얻은 스킬이 전투에서도 유용하게 사용된다.
빠르기는 하지만 전력을 다하면 못피할 정도는 아니란 판단.
『 스킬 ‘공중 기동 Lv.12’를 발휘합니다. 』
나는 진세아와 거리를 벌리기 위해 마력을 방사했다.
공중으로 날아 올라 곡예하듯 진세아에게서 멀어졌다.
‘너무 쉬운······.’
그리 생각하는 순간.
시야에서 진세아의 모습이 사라졌다.
은신 스킬? 그게 아니다.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이동한 거였다.
“잡았다.”
뒤쪽에서 나타난 진세아가 내 목덜미를 잡았다.
콰앙!
이어지는 진세아의 내던지기에 나는 지면과 충돌했다. 곧바로 따라온 진세아가 내게 연격을 퍼부었다. 미약한 살기마저 느껴진다.
“세계를 구하는 일이······.”
퍼버버버벅!
“그렇게 중요해?”
마력이 실린 펀치에 머리가 울릴 정도다.
신태양에게 얻어 맞을 때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충격이 나를 덮쳤다.
“커헉.”
“중요하긴 하지. 그래도 여기까지 왔으면······.”
이 녀석. 진심으로 날 패고 있었다.
빌어먹을, 할 말이 있으면 저기 있는 나한테 직접 해라.
“주변을 좀······. 보란 말이야!”
그러니까 그 이야기를 왜 나한테 하냐고.
콰아아앙!
– 지, 지한씨······!
세레네의 목소리가 귓가에서 윙윙 울렸다.
어디까지 날아왔는지도 모르겠다.
입가에 흐르는 피를 닦아낸 뒤, 나는 저 멀리에 있는 진세아를 바라봤다.
녀석의 전신에서 붉은 마력이 불길처럼 솟아나고 있다.
‘잡히지 말라 이거지.’
이렇게 된 거 전력을 다해서 도망치는 수밖에 없다.
한 번이라도 더 잡혔다간 진짜 죽을 것 같았으므로.
* * *
일주일이 지났다.
『 레전더리급 스킬 ‘환세의 도둑 : 초(超)민첩 Lv.1’을 전수 받습니다. 』
“쳇.”
아쉽다는 듯 혀를 차는 진세아.
당연하지만 몇 번 정도 더 붙잡혀서 흠씬 두들겨 맞았다.
『 유니크 스킬 ‘경이로운 맷집 Lv.12’를 획득합니다. 』
『 추가 스킬 : 절대 방어력 1% 추가 』
“내 차례는 끝이야. 다음은 천성호.”
나를 때릴 때는 전력이었지만, 추격에서는 전력을 다한 것 같지 않았다. 어디까지나 스킬의 전수가 목적이었으므로.
한가지 배웠다.
‘앞으로는 주변을 좀 더 돌아볼까······.’
응, 그렇게 해야겠다.
새삼 반성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투욱.
진세아가 반창고 하나를 던져줬다. 그냥 반창고가 아니라 치유 능력이 있는 아이템이었다.
“솔직히 지금 이게 무슨 소용인지 나는 모르겠거든. 이런다고 우리한테 득이 되는 게 있는 것도 아니고. 그래도······.”
나를 빤히 바라보던 진세아가 입을 열었다.
“오빠는 이겨. 알겠지? 지지 말란 말이야.”
녀석은 그렇게 말하고선 멀어져갔다.
이어지는 천성호의 수업.
“처음 봤을 때는 미안. 엘리스가 죽은 마당에 진짜 형일 거라곤 생각 못했거든.”
녀석은 마력에 의해 붉게 물들어 있는 머리를 쓸어 넘겼다.
멸망한 세계에서 보았던 카리스마 있는 얼굴이 잠시 드러난다.
“우리는 남아 있는 땅을 달릴 거야. 이 땅에 더 이상 마물은 없거든. 사람도 없는 게 문제지만.”
철컥.
천성호는 그리 말하며 내 발목에 구속구를 채웠다.
“······!”
중력이 수십 배는 강해진 것 같다. 내 몸이 내 몸이 아닌 것처럼 무겁게 느껴졌다. 천성호는 그걸 세 개나 더 가져왔다.
“형이 특수 제작한 영겁의 족쇄. 그립네. 이걸로 훈련 많이 했었지. 자, 달리자. 물론 나도 같이 할 거야. 사과하는 겸해서.”
그러면서 자신에게도 족쇄를 채우는 천성호.
나는 시험삼아 한걸음 내딛어봤다.
“크윽······.”
쿠웅!
바짝 마른 땅 위에 내 신발 자국이 깊게 찍혔다.
얼마나 무거운거냐 이건.
한 발자국 옮겼을 뿐인데 땅 위로 자욱한 모래 먼지가 솟아올랐다.
“뭐해, 형. 빨리 가자.”
천성호는 벌써 저 앞에 나가서 제자리 뛰기를 하고 있었다.
구속구를 여덟개나 차고 있다.
“할 말 많단 말이야. 기왕 이렇게 된 거 전해두고 싶은 것도 많고.”
이 상황에서 대화까지 할 거라고?
아무래도 내가 이 녀석들에게 지은 죄가 많은 것 같다.
‘그래도 포기는 없다.’
천성호와 함께하는 세계 일주.
멸망한 세계의 전체적인 모습을 눈에 담을 수 있었다. 아카식 레코드에서 확인한 내용이지만, 직접 눈으로 보는 건 다르니까.
“······.”
털썩.
나는 바닥에 쓰러졌다. 간신히 돌아왔다.
이번에는 조금 더 빠른 6일만에 스킬을 얻으며 끝을 낼 수 있었다.
『 레전더리급 스킬 ‘최후의 혜성 : 체력 Lv.1’을 습득합니다. 』
이로써 남은 스킬은 지력 하나.
마지막 스킬 전수는 윤서현이 맡았다.
“이미 초마력 회로를 가지고 있네요? 그러면 더 빠르겠어요.”
이번에는 좀 편하게 스킬을 얻을 수 있으려나.
내 손을 쥐어 본 윤서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응, 맞네요. 스킬은 금방 얻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제 마력에 거부하지 말아주세요.”
맞잡은 손을 통해 그녀의 마력이 흘러들어 오기 시작했다.
미래의 윤서현은 여제의 모습에 가깝게 보였다.
하지만, 차가운 눈빛에는 여제와 달리 따뜻한 시선이 남아 있다.
그래서일까.
나는 문득 물어볼 수 밖에 없었다.
지나가듯 무심하게.
“후회하지 않습니까?”
이 세계에서도 마찬가지.
나는 막무가내로 전진했을 것이고, 모두는 그런 내 뒤를 따라왔을 것이다.
설명 하나 제대로 해주지 않는 나를 리더라고 여기며.
쓰러뜨릴 수 있을지도, 이길 수 있을지도 가늠할 수 없는 마족에게 대항해 왔을 것이다.
“아뇨. 단 한 번도.”
즉답이었다.
“아무도 후회하는 사람은 없을 걸요. 누구한테 물어봐도 똑같이 대답할 거에요. 근데······.”
오히려 윤서현은 희미한 미소를 띄며 물었다.
“원망스러울 때는 있었어요. 왜 이렇게 사람이 무뚝뚝해요?”
“······.”
내가 침묵하자, 윤서현이 가볍게 내 손을 툭 쳤다.
“하긴, 성격에 이유가 어딨겠어요? 자, 끝났어요. 근데 초마력 회로때랑은 다르게 조금 아플 수 있어요.”
『 레전더리 스킬 ‘공간의 여제 : 절대 마력회로 Lv.1’을 획득합니다. 』
이로서 모든 완성 스킬을 손에 넣었다.
‘조금 아프다고?’
그러고보니 초마력회로를 익힐 때랑은 상황이 좀 다르다.
그때는 미래의 신체와 내가 중첩 상태에 있었다고 그랬나?
그래서 고통 없이 익힐 수가 있었는데.
“······.”
그리 생각하는 순간이었다.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고통이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피와 근육을 불로 지지는 듯한 고통이었다. 차라리 죽는 게 나을 것 같은 수준이다.
“지, 지한씨? 괜찮아요?”
아니 안 괜찮다.
『 스킬 ‘지고의 정신 Lv.12’를 발휘합니다. 』
이건 어떻게 봐도 조금이 아니지 않나.
스킬로도 버틸 수 없을만큼의 격통이 전신을 뒤덮었다.
“······.”
나는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내가 눈을 떴을 때.
붉은 하늘이 눈에 들어왔다.
고오오오오······.
여전히 초대형 게이트가 상공을 가득 메우고 있다.
이 세계의 종막을 알리는 최후의 게이트.
이미 다가오기 시작한 멸망을 막을 방법은 더 이상 없다.
“일어나라.”
생소하지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쉴 틈이 없구만······.’
소리가 들리는 방향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검은 코트를 걸친 채 나를 내려다보는 남자.
그곳에는 한 남자가 있었다.
멸망이 확정된 세계의 유일한 구원자.
그 외견은 완벽하게 나와 완벽히 일치한다.
그러나 남자의 손목에는 검은 팔찌가 없다.
그의 무감정하게 가라앉은 눈이 나를 향했다.
“마지막 수업을 시작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