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fter 100 thousand reincarnation he became a transcendent hunter RAW novel - Chapter 215
215화 타오르는 재능(4)
부패의 마족은 떠올렸다.
파리와 구더기가 들끓는 시궁창 속.
쓰레기 더미에 파묻힌 채 지독한 악취를 들이마시던 그 날.
건강이 악화되자 주인은 부패의 마족을 쓰레기장에 버렸다.
쓸모 있는 내장이나 장기를 뜯긴 채 그는 시궁창에 던져졌다.
최하위 마족으로 태어난 그에겐 당연한 처사였다.
‘······.’
자신의 태생을 증오했으며, 살아 있단 사실이 그저 혐오스러웠다.
쏟아지는 비가 피와 뒤섞여 쓰레기 사이로 흘러들었다.
그럼에도 죽고 싶지 않았다.
살고 싶었다.
콰득.
붙잡은 쥐를 생으로 뜯어먹으며 다짐했다.
아득바득 살아서 이 세계에 복수하겠노라 되뇌이며.
살아 남고자하는 일념으로 몸을 비틀었다.
마계의 시궁창은 그를 더욱 강하게 만들어줬다. 마치 처음부터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인 것처럼, 그곳에 쌓인 시체와 벌레들이 그의 몸을 재구성했다.
썩어 문드러진 고깃덩이와 쓰레기가 한데 뒤섞여 만들어낸 기적.
이어지는 건 복수였다.
자신을 내다버린 주인이었던 자를 죽였다.
혐오스런 상위 마족들을 하나 하나 죽였다.
부패의 마족 라그나.
그 이름이 도시 전체에 공포를 불러 일으키고,
도시 전체가 쓰레기와 마족들의 썩은 고기로 가득 찰 무렵.
– ······네 분노를 이해한다. 그러니 이 어리석은 세계를 직접 바꾸지 않겠나.
한 남자가 자신에게 손을 내밀었다.
모든 것을 아득히 초월한 힘과 격.
한없이 가라앉은 눈동자에선 어떠한 감정조차 읽을 수 없었다.
그러나 한 가지만큼은 확실했다.
그가 나아가고자 하는 곳에는 이상향이 있었다.
부패의 마족은 그를 따라갔다.
남자는 미래의 마계왕이었다.
그의 권속이 되어 수많은 차원을 돌아다녔다.
마계왕.
그는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점령하고 살육했으며 지배하기에 이르렀다.
마계왕이 바꾸고자 하는 세계는 하나가 아니었다.
그는 마계에서 벗어나 모든 범차원에 영향을 끼치고자 했다.
3만년이라는 시간.
무수한 세계가 있었고, 무수히 많은 종족이 있었다.
마족의 지배에 반기를 드는 이들은 살아남지 못했으며, 사도 부패의 마족은 충실히 마계왕의 명령을 이행했다.
무엇을 목표로 했는지,
무엇을 바꾸고자 했는지.
모든 것이 혼탁 해지고 희미해질만큼의 시간이었다.
그러나 한가지 확실한 것은······.
‘대적자, 네 놈은 마계왕의 길을 막는 명백한 위험 분자다.’
마계왕을 위해서 지금 이 자리에서 모든 것을 불살라야 한다는 것이었다.
여지껏 대적자 이지한처럼 마족에게 대항하는 이는 모래알처럼 많았다.
그러나 이만큼 위협이 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다른 차원의 희생을 양분삼아 압도적인 발전을 이뤄 온 마계는 단 한 번도 패배하지 않았다.
마계의 원로들이 고개를 젓는 치욕의 밤조차 사도인 부패의 마족에겐 시덥지 않게 느껴졌다.
‘지금 내 눈 앞에서 벌어지는 일은 그에 비할 바가 아니다.’
그의 자랑스런 병력이었던 언데드 병사들이 모두 대적자에게 집어 삼켜졌다. 이제는 대적자의 황금 물결이 대지를 뒤덮고 있다.
이것은 일개 헌터가 해낼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시스템의 혜택을 누린지 얼마되지 않은 문명계의 존재가 이룰 수 있는 업적이 아니다.
까악! 까악!
하늘에 퍼져 있던 까마귀들로부터 전해 받은 시야와 정보.
부패의 수호자들 전원이 패배했다 절망스런 소식이었다.
‘부패의 수호자들마저 패배했다 이 말이냐.’
부패의 마족의 눈가에서 피눈물이 흘러내렸다.
고작 단 한 명의 인간 때문에 모든 병력을 잃었다.
자신의 실패로 마계왕에게 폐를 끼칠까 두려웠다.
하여, 이제는 선택지가 없었다.
콰득!
부패의 마족이 검은 대지에 자신의 팔을 꽂아 넣었다.
치명적인 상처를 입은 그의 몸에서 끊임없이 검은 피가 쏟아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미소지었다.
그 고통도 이제는 끝이었기에.
“네놈만큼은 내가 배제하겠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 세계를 바꿀 수 있는 것은.
예정된 종말을 막을 수 있는 것은 마계왕 그분 뿐.
가지고 있는 마기를 전부 사용해서라도,
목숨을 내던져서라도 대적자를 막아야 했다.
쿠구구구······!
부패의 마족 라그나를 중심으로 썩은 고깃덩이가 부풀어오르기 시작했다. 나무뿌리처럼 뻗어나간 촉수가 점차 영역을 확장해 나간다.
『 해당 시퀀스가 차원의 억지력을 초과하고 있습니다. 』
『 사용자의 고유 마기를 소모하여 인과를 충당합니다. 』
부패한 고깃덩이가 무너진 성을 집어 삼키며 나아간다.
그것들은 대륙의 중심에서 대지의 끝을 향해 계속해서 부풀기 시작했다.
까악! 까악!
동이 터오는 붉은 하늘 위로 날아 오르는 까마귀들.
고깃덩이 속에서 태어난 까마귀들이 부패의 마족에게 새로운 정보를 제공해 줄 것이다.
썩은 땅의 중심부.
부패의 마족의 붉은 눈이 형형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는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대적자를 죽여야 했다.
그리고 그 시체를 손에 넣는다면.
이 모든 것을 만회할 수 있을 것이었다.
* * *
덜그럭, 덜그럭!
덜그럭, 덜그럭!
나는 우선 해골 병사들을 전진 시켰다.
질서정연하게 열을 맞춘 병사들이 일제히 부패한 땅을 향해 전진했다.
‘저 중심부에 부패의 마족이 있을 터.’
녀석은 현재 본체를 꺼낸 상태다.
본체를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무한히 증식하는 고깃덩이.
얼핏 보기엔 별 거 없어보이지만 그대로 놔뒀다간 행성을 집어 삼킨다.
아카식 레코드에 기록되어 있던 녀석의 능력을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거기에 더해 몸의 크기를 부풀리는 것으로 일자베기에 당한 상처를 어느 정도 커버할 수 있단 판단.
‘그러니 시간을 많이 줘선 안 된다.’
내 언데드들은 부패의 마족을 완전히 포위했다.
근처의 대지를 가득 채웠기에 숫자를 헤아리는 것조차 힘들다.
나는 일행에게 가볍게 설명했다.
“부패한 땅은 우리가 나아갈 수 없습니다. 마기에 의해 침식과 부패가 동시에 일어나기에.”
치이익!
시험삼아 해골 병사를 던져 넣자 녀석은 그대로 연기와 함께 증발해버렸다.
“제가 할 일은 간단합니다. 언데드들을 투입시켜 부패의 마족의 힘을 뺀 뒤, 저희가 본체를 처리하는 거죠.”
여기에 모인 것은 최정예 중에서도 최정예.
그러니 힘을 온존할 필요가 있다.
“당장은 근처에서 상황을 지켜보면 됩니다. 소모전이 될 겁니다.”
촤악! 촤아악!
해골들이 부패한 땅을 향해 뼈칼을 휘둘렀다.
땅에 퍼진 고깃덩이가 잘려나가며 놈의 영역이 조금 줄어들었다.
물론 부패의 마족도 가만히 앉아서 당하진 않을 거다.
촤아악! 콰드드득!
고깃 속에서 돋아난 촉수가 해골 병사를 파괴했다. 하나였던 촉수는 순식간에 수백 개로 불어나 언데드들을 부쉈다.
치지직!
촉수에 닿은 뼈는 순식간에 녹아내렸다.
놈의 부패는 닿는 것을 녹이고 썩힌다.
“상당히 징그러운데요.”
상황을 지켜보던 신태양이 검을 빼들었다.
혹시라도 촉수가 다가오는 걸 방지하기 위함이었다.
촤아악! 촤악!
물론 그런 일은 없을 거다.
해골의 수는 그야말로 압도적이니까.
앞에 있는 해골들이 아무리 부숴져도 뒷열에 있는 해골들이 다시 달려 들어 검을 휘두른다.
고통도 두려움도 느끼지 않는 것이 바로 언데드니까.
그래도 해골들의 공격만으론,
본체가 있는 중심부에 닿으려면 시간이 오래 걸릴 수 밖에 없다.
“이지의 수호자들의 차례다.”
“스, 스승님. 제가 지은 이름을 써주시는 거군요.”
“이야, 이걸 써주네.”
나는 이지의 수호자들에게 공격을 명령했다.
온 몸이 근육으로 가득한 전사가 가장 먼저 앞으로 나서 검을 들어 올렸다.
그의 검이 땅에 내려쳐지는 순간.
콰아아앙! 쩌저적!
거센 충격파와 함께 땅이 갈라지며 바닥의 균열에서 마력이 치솟았다. 부패한 고깃덩이들이 비처럼 떨어져내렸다.
후두두둑!
윤서현의 공간 왜곡이 낙하하는 고깃덩이를 한켠으로 치우고, 이지의 수호자 마법사의 불길이 고깃덩이를 태웠다.
이지의 수호자들의 공격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콰아앙—!
무도가, 궁수, 마법사, 사제, 도적.
지형을 송두리째 바꾸는 대규모 폭격.
그 힘은 부패의 마족이라고 해도 쉬이 감당해 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수많은 해골들과 수호자들의 공격으로 부패의 마족 본체가 차지하고 있던 땅이 점차 좁아지고 있었다.
그 공세는 돋아나는 촉수들로도 커버하지 못할 정도!
물량으로 찍어 누르는 공격 앞에 놈은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었다.
놈의 영역이 30%이상 줄어들었을 때였다.
【 대적자! 내가 두려운가?! 】
격이 담긴 부패의 마족의 목소리가 대지에 울려퍼졌다.
정신을 뒤흔드는 강렬한 진성 앞에 헌터들이 주줌했다.
“크으윽······. 아직도 이만한 힘을······.”
“마족 놈들은 도대체 무슨 놈들이길래······.”
나 또한 그에 맞서 격을 방출했다.
『 레전더리 스킬 ‘영웅의 격 Lv.12’를 발휘합니다. 』
『 해당 격의 발현자가 초월의 권리를 소유하고 있습니다. 』
『 격의 수준이 압도적으로 증대 됩니다. 』
초월체 언데드를 쓰러뜨리며 얻은 초월의 권리가 더 해지니, 사도를 상대로도 밀리지 않을 수 있다.
파직, 파지직!
허공에서 맞부딪힌 격이 스파크를 일으켰다.
주위에 맴돌던 압박감이 단숨에 중화되었다
“많이 초조한가보군. 어줍잖은 도발이나 할 정도로.”
나는 부패의 마족을 향해 입을 열었다.
이 고깃덩이 전체가 놈이나 마찬가지니 분명 듣고 있겠지.
부패의 마족이 축적해 온 힘에는 한계가 있다.
그 상당수를 소모한다 한들 시스템의 억지력을 뛰어넘기란 어렵다.
【 초조······. 네 놈 재미있는 말을 하는군. 귀찮은 짓은 질색이다. 결판을 내자. 네 놈도 그걸 원하는 거 아닌가? 】
놈의 말이 끝나자, 우리를 가로막고 있던 고깃덩이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치 이리로 들어오라는 듯 길을 형성한다.
“우왓, 완전 함정 아니에요?”
“설마 들어가려는 거 아니죠?”
윤서현과 진세아의 우려 섞인 시선이 내게 닿았다.
【 인정하마. 대적자. 아니, 이지한. 너는 내가 봐 온 어떠한 종족보다 강하다. 마계는 대적자 네 놈의 이름을 영원토록 기억할 것이다. 그러나······. 】
콰드드득······!
흉흉한 기운과 함께 고깃덩이들이 하나로 뭉쳐 거대한 얼굴의 형상을 만들었다. 부패의 마족이 만들어낸 얼굴.
【 네 놈은 마계왕께 이길 수 없다. 그 분의 진정한 목표를 알지 못한다. 만약 내 승부에 응한다면 그 비밀을 네게 알려주겠다. 부패의 마족 라그나의 이름을 걸고. 】
“!”
부패의 마족이 이름을 걸었다.
자신의 이름에 거는 맹약.
검의 마족을 옭아매는 맹약과 마찬가지로 마족이라면 벗어날 수 없는 약속이다.
마계왕의 비밀이라.
구미가 당기는 건 사실이다.
아카식 레코드에서도 마계왕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놈은 아카식 레코드에서 자신의 정보를 모조리 삭제했으니까.
정보를 우회해 단편적인 사실을 알아냈을 뿐.
놈의 진정한 목적을 나는 아직 모른다.
【 네 놈만 넘어와라. 승부를 하자. 】
그러나.
내 목적은 사도 및 마계왕 섬멸.
마계왕을 죽이고 문명계의 멸망을 막아내는 것.
“거절하지.”
내 단호한 대답에 부패의 마족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 진심인거냐······? 네 놈은 마계왕을 쓰러뜨릴 수 없다. 그 분의 강대함에 비하면 네 놈의 능력이 아무리 뛰어나도······. 】
서걱—!
일자베기의 푸른 선이 부패의 마족의 얼굴을 일격에 갈랐다.
“방금 결정했다. 교섭은 없다. 승부도 없다. 일방적인 사냥만이 있을 뿐.”
내가 손을 들어 올리자, 언데드 군단이 한층 격렬하게 진격하기 시작했다. 그 앞을 가로막는 건 무엇이 되었든 잘라내며.
부패의 마족의 영역을 차츰차츰 줄여간다.
【 대적자! 대적자······! 네 놈! 이 선택을 반드시 후회하게 될 거다! 】
마계왕에 대한 건 부패의 마족을 완전히 궁지에 몰아 넣고 들어도 늦지 않는다.
녀석이 말해주지 않는다면 그것도 상관없다.
콰아앙—! 콰앙!
부패의 마족이 점거한 땅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놈이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지만, 마지막 발악에 지나지 않는단 걸 잘 알고 있다.
내게는 이만큼의 군세가 있다.
부패의 마족이 모은 군단 전체가 내것이니.
【 빌어먹을 대적자! 이 몸이 이렇게 고개를 숙이지 않는가?! 대화를 하자고! 】
불리하면 대화를 외치는 게 마족의 종족 특성인가.
이제와서 웃기는 소리를 하고 있다.
“교섭은 없다.”
이건 사냥이다.
사냥감과 교섭하는 사냥꾼을 나는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