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fter 100 thousand reincarnation he became a transcendent hunter RAW novel - Chapter 220
220화 격변하는 세계(4)
“태, 태초의 마족? 뭔 개소리를 당연하게 짓껄이는 거냐.”
“태초의 마족은 마계왕 한 분 뿐이다. 제정신인가?”
두 마족의 비난이 쏟아졌다.
“지금 그 발언은 네가 마계왕이었다고 말하는거나 다름 없다.”
불사의 마족은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은 채 침묵했다.
“그랬던 거였군.”
이제야 이해가 간다.
불사의 마족이 사실은 태초의 마족이었다면.
그가 어째서 반란을 꾀했는지도 명확해진다.
반역이 아니라, 자신의 자리를 되찾고자 했던 건가.
“믿는 것은 자유다. 하지만 마계왕은 본래 역사에 없던 존재다. 마족의 역사를 개변하고, 자신의 뜻대로 주무르고 있는거지.”
녀석의 말대로라면 지금의 마계왕은 진짜가 아니란 거다.
도중에 한 번 바뀌었지만, 그 누구도 그 사실을 모른다는 뜻.
“정리하자면 불사의 마족은 사실 태초의 마족이었고, 마족들은 현 마계왕의 목적에 이용되고 있다는 뜻이네요. 이게 대체······.”
윤서현의 말에 나는 입을 열었다.
“달라지는 건 없습니다.”
마족들이 이 세계를 멸망시키고자 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문명계를 처참히 박살내고, 정복하려고 있단 그 사실은 그대로.
따라서 전력으로 막아낼 뿐이다.
마계왕을 쓰러뜨릴 때까지.
불사의 마족의 시선이 내게로 향했다.
“그래, 그 말대로. 달라지는 건 없다. 그저 싸울 뿐이다.”
그의 손이 허공으로 뻗어졌다.
동시에 짙은 마기가 사방으로 흩뿌려졌다.
“마계왕을 죽이기 위해. 지워진 역사를 되찾기 위해. 나는 오랜 시간 준비해왔다.”
마기는 지하실 곳곳으로 퍼져나가며 실험체들의 정보를 표시했다. 이해할 수 없는 문장이지만, 자동으로 번역되어 눈에 들어 온다.
“금제에 대해서 알고 있나?”
금제.
그것은 제약의 중복을 의미한다.
만약, 검을 반드시 사용해야 하는 검의 제약과.
검을 사용해서는 안되는 두 개의 제약이 겹친다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그 모순된 상황을 마족들은 금제라고 부르며 금기시 해왔다.
“나는 금제의 덫을 계속해서 조사해 왔다. 마계왕을 쓰러뜨릴 수 있을거라 믿고서. 하지만 그렇지도 않았던 모양이군. 대적자가 내 진명을 가지고 있는 걸 보니.”
“사라졌던 마족들이······. 지금까지 보이지 않던 제약들이 전부 여기에 있었다는 건가.”
“미치광이가 따로 없구만······.”
검의 마족과 부패의 마족이 헛웃음을 흘렸다.
그러나 반대로 내 입가에는 만족스런 미소가 떠오른다.
불사의 마족이 준비해 온 반란.
그 무기는 내 예상을 뛰어넘고 있다.
‘지금까지 제약은 오롯이 마족의 것이었다.’
부패의 마족의 심장에서 짙은 마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사용하기에 따라 인류를 지킬 무기로도 사용할 수 있겠지.’
불사의 마족의 눈 위로 다양한 감정이 소용돌이 치고 있었다.
분노, 복수심, 원한, 절망······.
“대적자, 너와 나의 목적은 일치한다. 그러니 협력하겠다. 아니 부탁하건데 나를 동료로 삼아다오.”
고고고고······.
놈의 심장에서 흘러나온 마기가 검게 뭉쳐지며 심장의 형상을 띄기 시작했다.
“마계왕을 쓰러뜨릴 수 있는 방법은 그대가 유일하다는 걸 나는 알고 있다. 내 이름의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기에 지금 이 자리에서 맹약하겠다.”
『 태초의 마족 ‘유그리아스 아르카나’가 당신에게 복종의 맹약을 제시합니다. 』
불사의 마족은 무릎을 꿇고 내게 고개를 숙였다.
이 녀석을 100% 신용할 수 있는가?
당연히 그런 건 불가능하다.
“이렇게까지 한다는거냐······?”
검의 마족과 부패의 마족 모두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다.
최상위 마족의 복종의 맹약.
불사의 마족이 고개숙이는 대상은 다름 아닌 인간 이지한.
아카식 레코드에 새겨져 있던 마계의 역사를 돌이켜 봐도, 이러한 일은 없었다.
‘태초의 마족이라······.’
그렇기에 맹약의 무게만큼은 확신할 수 있다.
불사의 마족이 진심이라는 것을.
스윽.
맥동하는 검은 심장 위로 나는 손을 뻗었다.
내 푸른 마력이 심장 속으로 파고 들어, 맹약의 일부가 된다.
『 이제 마족 ‘유그리아스 아르카나’는 당신의 종복입니다. 』
파아아—!
그 심장 위에 내 마나의 각인이 새겨졌다.
이제 인류에게 새로운 무기가 하나 더해졌다.
지금까지 어떠한 시간선에도 존재한 적 없는 제약이라는 무기가.
* * *
투두두두——!
은빛의 날개 본사 옥상.
백묵과 헨드릭스가 탄 헬기가 착륙했다.
은빛의 날개 길드마스터 윤지은이 팔짱을 낀 채로 그들을 맞이했다. 불만스러운 표정이었다.
“솔직히 너무 갑작스러운데요. 지금 이지한 헌터 없어요.”
“해외에 나간 건가요? 전화도 안되던데. 뭐, 상관 없어요. 기다리면 되니까요.”
헬기에서 내리는 백묵의 입가엔 여유로운 미소가 맺혀 있었다.
윤지은의 심기가 한층 불편해질 수밖에 없었다.
‘저 여우 같은 인간이······. 지한씨를 만나러왔다는 건······. 스카웃 제의겠지.’
뻔한 일이었다. 전세계 각지의 길드에서 연락이 쏟아지는 이 상황에, 이지한을 향해 스카우트 제의를 하러 온 거겠지.
정보 길드 호라이즌의 수장 백묵.
그가 헌터계에 미치고 있는 영향은 광범위했다.
마족에 대한 주요한 정보는 대부분 그에게서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의 활동이 헌터계 전반에 영향을 끼친다는 건 공공연한 사실이다.
정재계의 유력인사들과의 커넥션도 강하고.
최근에는 해외에서도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마냥 내쫓기엔 성가신 사람이었다.
“잠시 기다려주세요. 언제 돌아올지는 모르지만, 기다리겠다니 어쩔 수 없죠.”
은빛의 날개 회의실을 내준 뒤, 윤지은이 나갔다.
회의실에는 백묵과 헨드릭스 그리고 그의 비서가 남았다.
백묵이 테이블을 툭툭 두드렸다.
기다린다고 하긴 했지만, 얼마나 기다려야 할지는 미지수.
그래도 이지한 헌터를 먼저 만날 수 있다면 문제 없다.
그는 이만한 시간을 투자할 가치가 충분히 있는 인물이었다.
“이지한 헌터가 내 제의를 받아드릴 확률. 얼마나 된다고 생각해요?”
백묵이 그 비서에게 물었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백묵의 행보를 가장 근처에서 지켜 본 비서.
옆머리를 쓸어 넘긴 그녀가 입을 열었다.
“70% 이상이라고 봅니다. 이지한 헌터가 F급이었을 때부터 지원을 아끼지 않으셨으니까요. 그가 성장할 발판을 마련해주신 것도 전부 백묵님이니까요.”
“난 다르게 봅니다.”
헨드릭스가 머리를 긁적였다.
“그만한 힘을 가졌는데, 굳이 누구의 밑으로 들어 오려고 할 리가······.”
“그 말도 일리가 있네요.”
본래대로라면 이미 이지한을 자신의 부하로 삼았어야 했다.
‘성장이 지나치게 빠르다. 내가 상정한 성장의 범위를 훌쩍 뛰어넘었어.’
그것조차 과대하게 부풀려 잡은 성장치였다.
이지한은 계속해서 백묵의 예상을 뛰어넘는 활약을 보여왔다.
백묵이 잠시 머뭇거린 사이 이지한의 능력이 훌쩍 뛰어 오른 것이다.
그것도 상식을 아득히 뛰어 넘은 형태로.
벌컥.
예상보다 빠른 시기에 회의실의 문이 열렸다.
그곳에서 모습을 드러낸 건 이지한이었다.
은빛의 날개에서 기다리는 게 정답이었던 셈이다.
이지한이 회의실로 천천히 걸어들어왔다.
그 옆에는 윤지은이 붙어 있었다.
이지한을 간단히는 보내지 않겠다는 견제의 의미로 보였다.
“물고 늘어지면 곤란하겠는데요.”
백묵의 비서가 그리 속삭였다.
은빛의 날개에 이지한의 동료가 많이 있다는 정보.
이지한의 주된 무대는 보통 은빛의 날개였다.
그러나.
“백묵님?”
이지한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로 백묵이 굳어져 있었다.
이지한이 회의실로 들어 온 순간부터 단 한 번도 눈을 떼지 않고 있었다.
정확히는 뗄 수 없었다고 보는 게 맞았다.
‘······.’
새하얀 이채가 깃든 그의 동공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정보의 마안(魔眼).
백묵을 이 자리에 있게 만들어 준 그의 능력이었다.
상대가 가지고 있는 정보를 다각화하여 확인할 수 있는 힘.
구체적으로 수치를 나타내는 능력과는 조금 달랐다.
대상의 정보를 감각적으로 파악하는 것에 가깝다.
헨드릭스의 재능은 상대의 재능을 확인하는 정도에서 그치지만,
정보의 마안을 사용하면 더 많은 걸 알 수 있었다.
백묵은 이 눈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봐왔다.
각성한 부랑자, 살인자, 빌런, 영웅, S급 헌터······.
세계 1위의 헌터 그렉스와 연이 닿을 수 있었던 것도, 그가 초창기에 그렉스의 재능을 알아봤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백묵은 이번에도 이지한을 직접 보고 그의 성장을 확인하고자 했다.
그가 얼마나 뛰어난 헌터가 되었는지, 영상이 아니라 직접 만나서 분석하고자 했다.
분명 그런 마음이었을텐데.
‘다들······. 눈치채지 못한 건가?’
백묵의 고개가 주변의 헨드릭스와 비서를 향해 돌아갔다. 그 앞에 서 있는 윤지은에게도.
그러나 모두가 평소와 같은 반응이었다.
과장이나, 허풍이 아니라 진심으로.
눈 앞의 이지한이 마음만 먹는다면.
먼지 한 톨 남기지 않고 이 자리의 모든 것을 앗아갈 수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나 말고는 모른다는 건가? 다들 아무렇지 않다는 거야? 그럴 순······. ‘
그제서야 백묵은 깨달았다.
무수한 각성자들을 직접 보며 쌓인 데이터가 그의 몸에 감각으로 남아 있던 것이다.
‘······당연히 나밖에 모르지.’
지금까지 만나왔던 헌터들 모두 뛰어난 사람이 한가득이었다.
전 세계 1위의 그렉스조차 결국에는 사람이었다.
예상된 범위 안의 존재.
S급 헌터라고 해도 결국엔 인간.
최소한의 상식을 벗어나지 않는다.
초인으로서의 한계가 분명히 존재하니까.
백묵 자신이 S급 헌터이기에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지금 눈 앞의 이지한은 그러한 경지를 아득히 뛰어넘어 있었다.
명백한 인외(人外).
그 거대한 실체를 정보의 마안으로도 어렴풋이 파악할 뿐이다.
고작 한 달.
이지한을 마지막으로 본지, 겨우 그 정도의 시간이 지났을 뿐이다.
그런데 이 말도 안되는 성장은 무엇이란 말인가.
“······.”
처음으로 제대로 된 판단이 되지 않았다.
그의 현재 수준과 앞으로 다다를 경지가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다.
지금까지 백묵이 쌓아 온 데이터가 오히려 그를 옭아매고 있었다.
“그래서 제게 할 말이 있으시다고······.”
이지한이 그리 백묵에게 묻는 순간.
그의 등줄기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생전 처음 겪는 일에 백묵 스스로도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다.
‘진정해라.’
자기 자신도 왜 이러는지 모를 지경.
백묵은 천천히 숨을 들이 마셨다.
어차피 주도권은 자신에게 있을 터.
처음부터 이지한을 후원하고 키워 온 건 자신이다.
“그러니까, 제안을 하나 하고 싶습니다.”
그리 말하는 백묵의 목소리는 우습게도 떨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말을 내뱉는 순간.
백묵은 완전히 깨달았다.
이지한은 이미 자신의 손을 떠나갔다고.
그의 입가가 미세하게 떨려왔다.
‘뭐가, 처음부터 후원이냐.’
헨드릭스의 말대로였다.
영상으로 볼 때는 몰랐던 사실이, 이지한을 직접 마주하고 나서야 이해 된다.
‘이지한 헌터는 더 이상 내가 통제 가능한 인물이 아니다.’
그에게 기회와 판을 깔아준 것은 맞지만.
몇 가지 도움을 준 것도 맞다만.
처음부터 주도권을 쥐고 있던 적은 없었다.
“······.”
“백묵님? 괜찮으십니까?”
비서의 말이 먹먹하게 들려 왔다.
처음으로 두려움을 느꼈다.
이지한은 자신의 제안을 거절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었을 때 자신은 무엇을 할 수 있지?
그에게 어떤 제한을 걸고, 어떤 식으로 그를 통제할 수 있지?
지금까지는 그에 대한 답이 명확했다.
모든 판이 그의 주도하에 돌아가고 있었으니까.
‘그런 방법은 없다. 이지한은 너무 강해졌다.’
이지한은 명백하게 백묵의 판을 벗어난 인물이 되었다.
그러니 이 관계에 우위는 없다.
과거의 온정에 기대어 제안할 뿐.
백묵의 입이 어렵사리 열렸다.
“······이번 공략으로 전세계에서 마족의 위협을 인지했습니다. 각 국가의 상층부에서도 마족의 존재를 두려워하고 있고요.”
이지한의 무표정한 얼굴.
이전과 달리 그 너머가 읽히지 않는다.
아니, 이전부터 일방적인 착각에 불과했을까?
“조만간 인류종말대책위원회가 발족될 겁니다. 위원회 12인은 헌터계에서 영향력 있는 인사들로 구성될 거고요. 물론 저도 그 중 하나입니다.”
다른 인물들도 백묵의 입김이 거세게 작용하는 사람들이다.
사실상, 위원회 자체를 백묵이 좌지우지 하는 게 가능하단 의미였다.
“위원회는 초법적 길드 ‘레기아(Regia)’를 출범할 계획입니다. 전 세계에서 법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활동이 가능한 길드입니다.”
백묵은 차마 떨어지지 않는 입을 열었다.
“이지한 헌터. 레기아의 길드 마스터가 되지 않겠습니까?”
이게 아니었다.
본래는 레기아의 수장이 되어라.
자신을 위해 움직이는 충실한 부하가 되어라.
그렇다면 모든 것을 손에 넣을 미래를 약속하겠다.
그리 말했어야 했다.
이 모든 게 이지한의 선택이 아닌, 백묵의 선택에 의해 결정되었어야 할 일이었다.
“······.”
이지한의 가라앉은 눈이 백묵을 향했다.
백묵은 초조함을 느꼈다.
거절하기 힘든 제안이다.
애시당초 이지한이 손해 볼 것 하나 없는 제안.
그저 수장으로 군림하며 인류를 마족에게서 지켜내기만 하면 된다.
다른 국가와의 분쟁에 휘말릴 일도 없다.
하나의 국가에서 소유하기보단, 차라리 전세계를 지킬 수 있는 헌터를 만들자는 합의하에 만들어진 기관이니까.
이지한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답은 정해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