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fter 100 thousand reincarnation he became a transcendent hunter RAW novel - Chapter 62
62화 마력의 샘(2)
멸망(滅亡).
돌이킬 수 없는 끝. 그 두 글자는 이전과 같은 삶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는 희망마저도 앗아간다.
사람들은 나름의 방법으로 그러한 멸망을 받아들인다.
어떤 이는 분노하고 슬퍼하며, 또 어떤 이는 그저 겸허히 받아들인다. 어찌되었든 세상이 멸망했다는 사실은 사람을 변하게 만든다.
환세의 도둑 진세아는 처음부터 물건을 훔치지 않았으며, 또라이 김건도 아이템에 광적으로 집착하진 않았다.
멸망이 사람을 바꾸어 놓은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걸인 송정호.
그는 처음부터 한결 같았다.
“크아, 시원하군. 얼마만에 오는 찜질방이야. 고맙네, 학생.”
걸걸하게 웃으며 내 등짝을 두드리는 송정호. 깔끔하게 씻고 나니 매력 있는 중년 남성이 되었다. 지저분하던 수염조차 특유의 분위기를 낸다.
‘평소엔 잘 오지도 않던 곳인데, 막상 오니 괜찮네.’
뜨거운 탕에 몸을 담그고 나오니 한결 몸이 풀리는 기분이었다. 지금은 이렇게 당연한 것들이 멸망한 세계에서는 누릴 수 없는 일이었다.
“크흠, 시원하게 담구고 나오니 목이 마른데 말이야.”
송정호는 매점 쪽을 바라보며 은근한 눈치를 줬다. 원래 이런 사람이다.
나는 씩 웃으며 매점에서 달걀과 식혜를 구입해 왔다. 송정호는 환하게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
“오, 학생이 센스가 있구만.”
탁.
맥반석 달걀을 깨서 입에 넣은 뒤, 식혜를 벌컥 벌컥 들이켜는 송정호.
“크으, 그래 이 맛이지.”
꽤나 만족스러운 표정이다. 그는 달걀을 바닥에 툭툭치면서 물었다.
“그래서 학생이 아무 이유 없이 날 찾아왔을 리는 없고. 어디서 나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나본데, 대체 무슨 이야기를 들었을까.”
마족의 침략으로 세계가 멸망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나는 우연히 송정호에게 적선을 했다. 솔직히 불쌍하게 생겨서 기부한 거였다만, 그 덕에 목숨을 건졌다.
마수들에게 습격 당하는 나를 송정호가 구해준 것이다.
– 좋은 일을 했으면 보답 받는 게 당연하지. 그렇고 말고.
그 일을 계기로 송정호 아저씨와 친해졌다. 그는 모든 마법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아크 메이지였다.
처음엔 믿지 않았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믿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 영웅들이 그의 존재를 주목하기 시작했으니까.
그가 가진 스킬 ‘고유 서클 생성’ 때문이었다.
일자베기와 마찬가지로 기초적이면서 엄청난 효율을 가진 스킬. 그렇다고 들었지만, 나는 끝끝내 배우지 못했다.
재능이 부족해서.
그것에 대해 배우고자 여기에 왔다 그리 말하려고 했는데.
“왜 송정호씨 정도 되는 사람이 노숙자처럼 살고 계신겁니까.”
“응?”
나도 모르게 물어버렸다. 멸망한 세계의 송정호는 끝까지 알려주지 않았다. 송정호의 눈썹이 일그러졌다.
“나 정도 되는 사람이 뭔데?”
“S급 헌터.”
“내가? 에이,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손사레를 치면서 깐 달걀을 위로 던져서 한 입에 넣었다. 그가 능글맞은 미소를 지었다.
“아, 식혜를 더 먹으면 생각이 날 것 같기도 한데 말이야.”
“······.”
먹고 싶다면 얼마든지 사줘도 된다. 나도 이전과 같은 F급 헌터가 아니거든. 지금의 내 재력이라면 매점 정도는 털 수 있다.
그리 생각하며 매점으로 향하는 찰나였다.
“······?”
찜질방 한켠에 익숙한 실루엣이 보였다.
‘분명히 갇혀 있다고 그랬는데.’
잘못 본 건가 싶어 천천히 고개를 돌려봤다. 확실하게 있었다.
“엥?”
분홍색 찜질복에 양머리 수건을 걸친 진세아. 맥반석 달걀을 입에 넣으려다 나와 눈이 딱 마주쳤다.
진세아가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며 외쳤다.
“앗, 배신자!”
* * *
“어떻게하면 내 간절한 구조신호를 모른 척 할 수가 있어요?! 결국 내가 알아서 탈출했잖아요.”
“······.”
진세아는 가출한 상태였다. 병원에 가만히 있는 게 너무 지루해서 감시를 피해서 몰래 빠져나왔단다.
곧 가주려고 했는데······. 이러면 하이텍트 회장을 볼 낯이 없다.
“마침 심심했는데 잘 됐네요.”
녀석은 먹던 사이다와 계란을 들고 나를 쫄래쫄래 따라왔다. 매점에서 달걀과 식혜를 더 사서 돌아가니 송정호 아저씨가 진세아를 살펴봤다.
“이 애는?”
“제가 아는 앤데, 잠깐 데리고 있겠습니다.”
“흐음, 뭐 상관 없지. 그래서 어디까지 말했었지?”
“왜 노숙자 생활을 하고 있는지 물어봤습니다.”
멸망한 세계에서도 여러 소문이 돌았었다. 가족이 전부 죽었다느니, 미쳐버렸다느니······.
그러나 송정호의 답은 간단했다.
“그냥 이렇게 사는 게 좋아서지. 이러면 답이 됐나?”
“그렇습니까.”
미래에서 그가 말했던 것과 같은 답이었다. 송정호는 달걀을 까먹으며 말을 이었다.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으로.
“가진다는 것은 언제나 잃을 위험을 내포하는 일이거든. 그러니 이런 삶이 나에게는 적격인거지.”
“음, 알죠. 알죠.”
진세아가 머리를 연신 끄덕인다. 뭘 알았다는 건지.
‘말해주지 않는건가.’
어차피 방금 만난 사이인 나에게 깊은 이야기를 바라는 것도 무리가 있다. 나는 그냥 본론으로 넘어가기로 했다.
“그러면 송정호씨를 찾아온 진짜 이유를 말하겠습니다.”
“그래, 그럴 것 같았어. 아까부터 유심히 보곤 있었는데 두 사람 다 일반인은 아니지?”
눈썰미 하나는 기가 막힌 사람이었다. 그의 평가나 판단은 상당히 날카로운 면이 있었다. 대표적으로 검성이 언제 죽을지를 꽤 정확히 맞췄었다.
“헐, 어떻게 알았어요? 역시 티나나?”
진세아가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놀랐다. 이 정도로 놀랄 일은 아니었다. 각성자와 비각성자 정도는 통찰 스킬이 있는 나도 구분할 수 있으니까.
“예, 헌터 맞습니다. 그래서 말인데요, 송정호씨가 가지고 있는 스킬을 하나 전수 받고 싶습니다.”
“흐음.”
팔짱을 끼고서 미간을 좁히는 송정호.
“고유 서클 생성. 그 스킬 하나만 알려주시면 됩니다.”
실제로 스킬의 전수는 쉽게 이뤄지지 않는다. 이 세계에선 스킬 하나 하나가 큰 가치를 가지고 있으니까.
“거참, 대체 어디서 소문이 줄줄 새는건지. 그렇게 입조심하라고 항상 이야기하는데 말이야. 다들 들어먹을 생각을 안 해.”
내가 아는 송정호는 이런 부탁을 절대 거절하지 않는다. 자신의 손에 쥐는 것 없이 베풀기를 좋아하는 사람이었으므로.
곤란한 척 하던 그는 씩 웃으며 말했다.
“특별히 이번만 가르쳐 주도록 하지.”
“고유 서클 생성? 그런 스킬이 있어요? 서클이면 그 마법사들이 사용하는 그거에요?”
진세아는 처음 듣는다는 표정이었다. 아직까지 알려지지 않은 스킬이니 당연하다. 이름만 보면 별 거 없어 보이지만, 일반적인 서클 생성과는 궤를 달리하는 스킬이다.
식혜를 쭉 들이킨 송정호가 입을 열었다.
“음, 좋은 질문이야. 서클이 마법사를 위한 것이라면, 내가 고안한 이 고유 서클은 소유자의 능력에 맞춘 마력 저장소라고 할 수 있지. 나는 이걸 마력의 샘이라고도 부른다.”
마력을 사용하지 않는 직업은 없다. 대부분의 스킬은 필연적으로 마력을 소모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마력 양을 마나라고도 한다.
“마법사냐, 검사냐, 궁수냐. 이것에 따라 마력을 담는 그릇은 필연적으로 달라져야 하는 법이지. 뭐, 설명은 여기까지 하고. 백문이 불여일견. 직접 한 번 보는 게 낫겠지.”
송정호는 가부좌를 틀더니 눈을 감았다. 숨을 길게 들이마심과 동시에 전신의 마력을 희미하게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주변 사람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을 정도로 미약한 마력.
그러나 자세히 보면 분명히 보이고 있다.
송정호의 심장 근처를 회전하는 다섯 개의 원.
원들은 서서히 심장에서 멀어져 송정호의 주변을 맴돌기 시작했다. 맹렬히 회전하는 원들의 궤도는 불규칙하면서도 빨랐다.
‘근데 어디서 본 것 같은데.’
허공을 맴도는 원과 고리.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금방 떠올릴 수 있었다.
오늘 싸웠던 환결의 수장 신이준이 저걸 사용하고 있었다.
‘진짜 아무한테나 알려주나보네.’
각 원의 궤적이 만들어내는 서슬퍼런 마력의 선.
그것을 유심히 지켜보던 진세아가 말했다.
“전혀 모르겠는데요. 아저씨.”
“······이건 완성 단계니까 알기 어려운 게 당연하지. 일단 마법사가 아니어도 서클을 생성할 수 있단 걸 새겨두면 된다.”
진세아도 관심 있어 하는 것 같다. 송정호는 너그러운 사람이니 진세아 하나 더 배운다고 뭐라고 하진 않겠지.
현재 진세아의 헌터 랭크는 D.
신태양은 수호 길드에, 신아람은 은빛의 날개에, 윤서현은 협회에 속한 것에 비해 진세아의 성장 수준이 현저히 낮다.
빨리 수준을 끌어 올려야 했다.
‘진세아의 스킬 절대 강탈은 본인의 능력치에 영향을 받는다.’
어디서든 훔칠 수 있지만, 자신보다 강한 존재에겐 통하지 않는다. 그 결점을 메워야 했다.
미래에 다녀오고나서 확신했다. 최후의 11인의 능력을 그대로 썩히는 건 너무 아깝다.
진세아도 성장해 줘야겠다.
녀석에겐 앞으로 꽤 여러 역할을 맡길 것 같거든.
“일단은 서클을 생성하는 것부터 시작해 봐라. 마력을 심장 주변부로 끌어오는 거다.”
서클 생성 자체가 마법사 연합에서 정말 비싸게 팔아 먹는 스킬인데. 송정호는 친절히도 무료로 알려주고 있었다.
“으으······.”
끙끙대는 진세아를 바라보는 송정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게 쉬운 게 아니란 말이지. 최소 3개월은 잡고 훈련해야 할······.”
“됐어요!”
아직 송정호의 말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진세아가 소리쳤다. 진짜로 진세아의 심장 주변을 맴도는 서클이 보인다.
송정호가 머리를 긁적였다. 그러더니 나를 바라본다.
“알고 있었나?”
“뭘요.”
“이 꼬맹이 천재잖아.”
알고 있었다. 최후의 11인이 달성한 SSS랭크는 되고 싶다고 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자기 분야 하나에서만 뛰어난 걸로는 부족하다.
모든 분야에서 천부적인 자질을 타고나야 했다.
그 중 하나가 진세아다.
“엥, 내가 천재?”
송정호의 말을 들은 진세아가 눈을 반짝였다. 천재라고 신태양처럼 자기 재능을 잘 아는 건 아니다.
“뭐, 대충 짐작은 하고 있었어요.”
그러면서 코를 쓱 훔치는 진세아. 왠지 자신만만해진 얼굴이다.
하긴, 찜질방에서 서클 생성에 성공했다는 이야기는 들어 본 적이 없다. 천재는 천재다.
“그래서, 학생은.”
송정호가 왠지 기대감 어린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한 번 해볼까······.’
마력을 심장으로 움직이라 그랬나.
근데 그걸 어떻게 하냐는 거다.
대부분의 상위 헌터들이 할 수 있는 이 간단한 마력 조작이 내게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 순간이었다.
스륵.
손목 시계로 변해 있던 오르티마의 근처에서 붉은 물방울이 솟아났다. 물방울은 느릿하게 내 손 위로 올라왔다.
그 언저리에서 익숙한 기운이 솟아오른다. 체인지 웨펀을 통해서 무기에 마력을 부여할 때와 같은 느낌.
‘이게 마력.’
그러나 그 감각은 금방 희미해져간다. 나는 다시 한 번 내가 소유한 마력을 움직이려고 노력했다.
내 손 위로 푸른 기운이 조금이지만 넘실 거리기 시작한다.
회귀 전.
송정호에게 마력에 관한 지도를 받은 적이 있었다. 꽤 열심히 도전했었는데, 결과는 영 시원찮았다.
그는 내게 말했다.
– 아쉽겠지만 넌 마력 적성이 없다. 그렇지만 걱정하지 마라. 어중간한 재능보다는 아무 재능도 없는 게 때로는 나을 수도 있는 거야. 그 점을 긍정해라.
말 그대로였다. 본래의 내 재능이라면 마력을 불러오는 것조차 불가능. 아니, 마력을 느끼는 일조차 불가능했을 거다.
그게 당연한 일이었다.
한없이 0에 가까웠던 재능.
구제 불능의 둔재.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 기초 스킬 Lv.11의 효과로 레어 스킬 습득 확률이 올라갑니다. 』
『 인벤토리에 미약한 재능의 파편이 두 개 존재합니다. 』
비록 헤아릴 수 없지 적다고는 하나.
내 재능은 분명히 존재하고 있었다. 일련의 사건들을 겪으며 조금이나마 늘어났다는 것만큼은 확실하다.
그리고 존재하기만 한다면.
그것은 20만배의 경험이 되어 축적된다.
촤르륵!
『 일반 스킬 ‘서클 생성 Lv.1’을 전수 받습니다. 』
『 스킬 ‘서클 생성 Lv.2’를 획득합니다. 』
『 스킬 ‘서클 생성 Lv.3’를 획득합니다. 』
···
..
.
『 스킬 ‘서클 생성 Lv.10’을 획득합니다. 』
푸른 원 하나가 내 심장 주변으로 모여든다.
마력으로 이뤄진 선명하고 푸른 구체.
마법사들만이 가진다는 서클이 분명하다.
그것을 바라보는 송정호의 입이 벌어졌다.
“······.”
그는 눈을 깜빡이더니 말했다.
“내가, 뭘 잘못 보고 있는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