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fter I Died, My Husband Went Mad RAW novel - Chapter (1)
내가 죽고 남편이 미쳤다 (1)화(1/171)
성대하고 장엄한 장례식이 열리는 날이었다. 날씨는 험상궂었고, 우아한 장송곡이 빗줄기에 맞춰 울려 퍼졌다.
남편을 배신했던 공작부인의 죽음을 비웃기 걸맞은 날이었다.
마지막으로 사제가 기도문을 낭송하기 위해 앞으로 나섰다.
쾅!
그 순간, 큰 소리가 나며 장례식장의 문이 부서졌다.
“세상에!”
“누구야?”
소란의 주인공은 고인의 남편이자 북부를 이끄는 공작가의 수장, 디하트 인버네스였다. 그는 사나운 걸음으로 사람들을 가로질러 단 위에 놓인 관으로 향했다. 사람들의 눈에 당혹감이 어렸다.
‘못 온다고 하지 않았어?’
‘저 꼴은 도대체……’
이리저리 퍼져 나가던 속삭임은 곧 사라졌다. 디하트가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관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말도 안 돼.”
잔뜩 억눌린 목소리가 차가운 공기에 섞였다. 그의 두 눈이 흔들렸다.
“이게 진짜일 리가 없어. 당신이, 정말로.”
디하트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이곳까지 달려오는 내내 애써 부정하던 현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가 내내 사랑하며 증오하던 부인이 정말로 죽어 버렸다.
‘세벨리아.’
자신을 이리 내버려 두고, 그의 아내는 평안한 얼굴로 관 안에 누워 있었다.
디하트는 어느새인가 관 앞에 무릎 꿇고 있었다.
‘안 돼. 이렇게 당신을 보낼 수는 없어.’
이제야 겨우 그녀가 자신을 위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러나 세벨리아는 이미 그의 곁을 떠났다. 그가 없는 저택에서, 홀로 고통에 몸부림치며 숨을 거뒀다.
“안 돼, 세벨리아. 안 돼, 제발…….”
이제 그에겐 용서를 구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뒤늦은 후회가 그를 뒤덮었다.
* * *
시간은 다시 뒤로 돌아간다.
불길한 장송곡 대신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만이 유일한 인버네스 저택, 힐렌드 홀. 그곳에서 세벨리아는 가만히 온실 앞을 지키고 있었다.
‘이 저택은 촘촘한 거미줄이나 다름없어.’
언제인가부터 세벨리아는 이 집이 그렇게 느껴졌다. 자신을 옴짝달싹 못 하게 붙들어 놓고, 끝에서부터 조금씩 파먹어 가는 거미줄 같다고.
“길을 잘못 드셨나 봅니다.”
때마침 집사의 무뚝뚝한 목소리가 상념을 깨트렸다.
“이대로 공작님과 마주치시면 분명 난감해지실 텐데요. 이만 돌아가시는 게 좋겠습니다.”
외알 안경을 쓴 집사는 그렇게 말하며 손목시계를 흘끗 바라보았다. 빨리 돌아가라는 듯한 제스쳐였다.
공작부인을 상대로 참으로 무도한 자세였다. 이대로 언성을 높여도 할 말이 없는 태도였다. 그러나 세벨리아는 알고 있었다. 자신이 그럴 수 없다는 걸. 그리고 그가 저렇게 행동할 수 있게 만든 건, 다름 아닌 온실 안에서 태연히 시간을 보내는 제 남편이라는 걸.
그동안은 당연한 일이라 인내했다.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사생아와의 억지결혼. 그것도 돌아가신 아버지가 정적과의 화합을 바란다며 제멋대로 정한 혼약.
서로에게 좋은 감정이 생기리라 기대하는 게 바보 같은 일이며, 증오하지 않는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한다는 걸 알고는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나는 당신을 사랑하고 싶었어.’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었어. 그래서 그렇게 노력했던 거야. 그것도 당신에게는 모두 배신을 위한 덫으로 보였겠지만.
씁쓸한 미소를 지은 세벨리아는 한숨을 내쉬며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그러나 그것도 오늘로 마지막이지.’
“아직 안 가셨습니까?”
집사가 곤란한 듯 인상을 찌푸리며 그녀를 질책했다. 그러나 세벨리아는 그를 무시하고 직접 문고리에 손을 얹었다.
“마님, 예의에 어긋나는-”
집사가 언제나처럼 그녀를 가르치려는 찰나.
“그래서?”
여느 때와 달리 말대답이 돌아왔다.
“내게 예의를 가르칠 셈인가?”
“마님!”
집사는 욱한 마음에 그녀를 노려보았다. 그리고 화들짝 놀랐다. 마주친 눈은 오한이 들 정도로 희고 새파랬다. 마치 죽은 자의 그것처럼 말이다.
‘뭐, 뭐야?’
집사는 저도 모르게 목을 움츠렸다. 세벨리아는 메마른 시선으로 그를 쓱 훑고는 문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오늘은 남편의 그 고상한 취미 생활에 한 번 동참해 보고 싶네.”
얼빠진 집사의 얼굴을 위아래로 훑은 그녀가 툭하고 내뱉었다.
“내가 나올 때까지 굳이 기다릴 필요는 없어. 그럼 이만.”
세벨리아의 말을 끝으로 유리온실의 문이 닫혔다.
* * *
“아….”
달콤하고 무거운 공기가 순식간에 그녀를 침묵으로 끌어내렸다. 천천히 온실 안으로 걸어 들어간 세벨리아는 덤불 장미에 둘러싸인 제 남편을 바라보았다. 검은 머리칼 아래 냉담한 금빛 눈동자가 인상적인 조각 같은 남자를.
“당신을 초대한 기억은 없는데.”
찰칵. 그의 손에 들린 가위가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맞부딪혔다. 그림자를 집어삼킨 것처럼 어두운 금색 눈동자가 그녀를 무겁게 응시했다.
“세벨리아.”
섬세하게 빚은 듯한 입술이 움직여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그러나 입술 끄트머리에 매달린 건 미소가 아닌 무심함.
그가 바로 저주받은 인버네스의 가주, 디하트였다.
‘그리고 날 밀어내고 증오하는 남편이지.’
세벨리아는 마치 다시는 못 볼 사람처럼 그를 응시했다.
“넋을 놓을 장소가 필요한 거면 이곳 외에도 많은 곳이 있었을 텐데…….”
서늘한 목소리가 귓가를 스쳤다. 잘 벼린 칼날처럼 날카로운 예기에 세벨리아는 어깨를 떨었다.
“어째서 이곳에 있는 건지 모르겠네요.”
정신을 차리자 디하트가 언제나와 같은 무심하고 냉정한 얼굴로 자신을 응시하고 있었다.
“설명이 필요한 상황 같은데.”
어조는 무감했으나 그 아래 깔린 위압은 그녀를 몰아붙이고 있었다. 세벨리아는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었다.
“할 말이 있어서 왔어요.”
차분한 숨결에 섞여 나온 말에 사내는 눈꺼풀을 내려 닫았다. 잠시 고민하는 것 같던 그는 가위를 탁자 위로 내던졌다. 철컹, 하고 듣기 싫은 쇳소리가 울려 퍼졌다.
“내 시간을 방해할 만큼 가치 있는 용건이길 바라죠.”
디하트가 장갑을 벗어 던지며 세벨리아를 집요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말해 봐요.”
사내는 오만한 태도로 머리를 쓸어 올렸다. 그리고 그의 눈이 날카롭게 세벨리아를 훑어 내렸다. 곧 비틀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저번처럼 억지만 부리다 가지 말고.”
익숙한 경고에 세벨리아는 물안개 같은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그건 평소처럼 포기와 체념에 물든 미소가 아니라 순수하게 이 상황이 우스워 짓는 미소였다.
그걸 본 디하트의 눈이 일순간 커졌다 작아졌다. 그의 눈에 알 수 없는 빛이 어렸다.
‘뭐지?’
위화감이 그의 목덜미를 스쳐 지나갔다. 자신이 밀어내면 당황하면서도 끝까지 매달리는 게 바로 평소의 세벨리아였다.
그러나 오늘은 조금 달랐다. 미묘한 미소를 머금은 그녀는 어딘가 거리감이 느껴지는 태도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디하트는 표정을 싹 지워 내고 고개를 돌렸다. 이유 모를 불쾌함이 전신을 내달렸다. 아니, 그건 불쾌함이 아닌 다른 무언가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디하트는 언제나처럼 가시 돋친 언행으로 그녀를 상처입혔다.
“또 당신 가문을 위해 내게서 정보를 캐내러 온 건가요. 하긴, 그게 아니라면 당신이 나서서 날 찾을 이유가 없긴 하지.”
표정은 여전히 무심하기 그지없었으나 입 밖으로 나오는 말들은 매정하고 차가웠다.
‘예전이었다면 그렇지 않다고 온 힘을 다해 빌었겠지.’
그리고 그는 끝끝내 나를 믿지 않을 거고.
이런 일들은 수없이 반복되었다.
세벨리아는 지친 한숨을 삼켰다. 다행히도 제 심장은 이제 너무 딱딱해져 피 한 방울 흘리지 못했다.
그래, 그래서 죽어가는 것일지도 모르지.
그 순간 정신을 차린 세벨리아는 본론을 꺼냈다.
“실은 하루만 늦게 떠날 수 있나 물어보려고 왔어요.”
“어처구니가 없군요.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건지.”
디하트가 즉각 어이없다는 듯 웃어 보였다.
“이번엔 내가 늦게 도착해야 당신 아버지가 이득을 보는 일이 생겼나 봅니다.”
그가 테이블에 쌓인 장미 더미를 무신경하게 만지작거리며 내뱉었다. 가시 돋친 줄기가 그의 손가락을 날카롭게 할퀴었다.
“그런 의미로 한 말이 아니에요.”
예전이었다면 이쯤에서 쉽게 포기하고 나갔을 텐데. 세벨리아는 그러기는커녕 차분한 낯으로 한 걸음 그에게 다가갔다.
“내일이 우리 결혼기념일이에요.”
“…….”
“기억 못 하고 있었겠죠. 알아요. 탓하려는 게 아니에요. 그저 이번만은 꼭 함께 있어 줬으면 해요. 당신에게 전하고 싶은 게…….”
이어지는 세벨리아의 말을 디하트가 무참히 끊었다.
“결혼이 기념할 만한 날이었던가.”
그의 표정은 싸늘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
“아, 당신에게는 그랬겠군요. 그래…….”
디하트의 눈동자에 번개 같은 빛이 번쩍였다. 움켜쥔 장미 다발 사이로 핏물이 뚝뚝 흘러내렸다.
“곱게 자랐다고는 하나 한낱 후작가의 사생아가 공작과 결혼할 기회는 많지 않을 테니까.”
디하트의 차가운 눈이 흔들림 없이 그녀를 응시했다.
벽처럼 단단한 그 모습에 세벨리아는 침묵했다.
‘……당신은 변하지 않는구나.’
처음부터 이 결혼에 두 사람의 의사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디하트는 선대 공작이 멋대로 정한 조약에 의해. 세벨리아는 살인귀 공작에게 시집가기 싫다는 언니 넬리아 때문에. 사랑과 이해 따위는 없는 결합이었고, 당연하게도 디하트는 그녀를 눈엣가시로 여겼다.
[난 주제 파악을 잘하는 사람에게 관대하지.]그게 세벨리아가 첫눈에 반한 남자에게 들은 첫 마디였다.
[그리고 당신이 그런 사람이라 믿고 싶군.] […….] [내 기대를 저버리지 않길 바랍니다, 부인.]내심 그와의 결혼을 좋게 생각하고 있던 세벨리아는 큰 충격을 받았다. 그러나 내색하지 않았다. 비록 정략결혼이었으나 언젠가 마음이 풀리면, 자신이 노력하면……, 관계가 좋아질 거라 믿었다.
그러나 그런 동화 같은 결말은 존재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끝이 정해져 있는 시작이었어.’
그는 날 사랑할 생각이 없는 남자였고, 나는 바보같이 그에게 사랑받길 원하며 매달렸지. 씁쓸한 미소가 그녀의 입가를 스쳤다. 세벨리아는 돌연 또렷한 목소리로 말했다.
“예전부터 물어보고 싶은 게 있었어요.”
“아직도 할 말이 더 남아 있었다니 놀랍군요. 참 놀라워.”
“내가 넬리아였어도 당신은 똑같았을까요?”
갑자기 튀어나온 이름에 디하트는 눈살을 찌푸렸다.
넬리아 웨든.
그녀는 세벨리아의 배다른 언니이자 인버네스가 원했던 웨든 후작가의 적녀였다.
“언니였다면 함께 결혼기념일을 보냈을 건가요?”
세벨리아가 옅은 금빛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담담하게 물었다. 마치 답을 알고 있는 듯한 태도였다. 그리고 그녀의 예측은 틀리지 않았다.
“아니.”
북풍처럼 시린 음성은 더할 나위 없는 사실만을 읊었다.
“가능하다면 웨든의 핏줄과는 얼굴도 마주치고 싶지 않아.”
세벨리아는 제 얼굴이 기묘하게 일그러지는 걸 느꼈다.
웃는 것도, 우는 것도 아닌 이상한 얼굴.
그것을 본 디하트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러나 세벨리아는 날뛰는 감정 때문에 정신이 없어 보지 못했다. 그녀는 크게 심호흡을 하고 어질거리는 눈을 감았다 떴다.
‘다행이다.’
당신이 나만 미워하는 게 아니라서.
그의 입에서 웨든의 모든 이들을 싫어한다는 말이 나왔을 때……. 이상하게도 기묘한 해방감이 들었다.
그건 자신이 곧 죽기 때문일까?
이런 이상한 마음이 든 건 처음이었다.
“더 할 말이 남았습니까?”
세벨리아는 찌푸린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남편을 향해 미소 지었다.
“별거 아닌 일로 시간을 뺏어서 미안해요.”
그녀는 곧장 온실을 나와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자신을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는 집사에게는 시선 한 번 주지 않았다.
햇볕이 잘 들지 않는 차갑고 구석진 방. 빠른 걸음으로 문을 잠근 그녀는 기다렸다는 듯 입을 틀어막았다.
“쿨럭…….”
마치 감옥 같은 그곳에서 그녀는 입가에 흐르는 피를 닦아 냈다.
[앞으로 길어 봤자 6개월입니다.]비밀리에 자신을 진찰했던 의사의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변함없는 그의 모습이 떠올랐다.
“다행이네. 내가 죽어도 당신은 그대로일 테니.”
세벨리아는 평온한 낯으로 침대 밑에 넣어 두었던 가방을 꺼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