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fter I Died, My Husband Went Mad RAW novel - Chapter (101)
내가 죽고 남편이 미쳤다 (101)화(101/171)
2부가 끝났다. 긴 휴식기를 끝마치고 돌아온 프리마 돈나의 화려한 복귀 무대에 모두 흥분을 금치 못하며 객석을 나왔다. 그 와중에 몇 명은 박스석을 힐끗거렸다.
“…….”
대극장의 관람석이 모두 비워질 때까지도 디하트는 자리를 지켰다. 세벨리아가 아직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늦지 않게 돌아올게요.]디하트는 그녀가 귓가에 속삭였던 말을 떠올리며 성질을 죽였다. 들썩이는 몸은 당장이라도 뛰쳐나가고 싶어 안달이 나 있었으나 그럴 때마다 품속에서 작은 새가 발을 탕탕 굴렀다.
세벨리아가 얌전히 기다리라며 넘겨주고 간 환영마였다.
“하아.”
디하트는 눈살을 찌푸리며 가슴팍에 손을 얹었다. 그러자 난동을 피우던 몸짓이 멎는 게 느껴졌다. 클로드가 그 모습을 보고 입꼬리를 올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워츠와 함께 세벨리아가 돌아왔다.
“오래 기다리셨죠. 죄송해요.”
“아닙니다. 그보다… 웨든을 만났나 보군요. 안색이 좋지 않아요. 괜찮습니까?”
“걱정할 만큼 나쁘지는 않았어요. 안색이 좋지 않은 건…. 아무렇지 않게 제게 대화를 청하는 걸 직접 경험하니 아무래도 속이 편하지는 않네요. 그것 때문일 거예요.”
“어쩐지 홀에서 눈이 마주칠 때 당황한 기색을 보이지 않아서 이상하다 했습니다. 당신이 온다는 걸 미리 알고 있었나 보군요.”
디하트가 눈매를 찌푸렸다. 자신이 누군가와 함께 대극장에 방문한다는 사실 자체는 비밀이 아니었다. 보란 듯이 소문을 내려 일부러 티 나게 움직였으니까.
문제는 웨든 가에서 그 ‘누군가’가 세벨리아임을 미리 알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나름대로 일찍 떠난다고 했건만, 리시아 영애가 한발 빨랐던 모양입니다.”
디하트가 혀를 차는 사이 어느새 세벨리아는 그의 앞에 바짝 다가서 있었다. 디하트가 놀란 얼굴로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벨라?”
“아, 죄송해요. 답답해하는 것 같아서 저도 모르게.”
세벨리아가 아차 한 표정으로 그와 시선을 마주쳤다. 이미 그녀의 손은 디하트의 겉옷 안쪽을 파고들고 있었다. 그녀 스스로도 놀란 듯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미안해요.”
요사이 파랑새와의 연결이 강해진 탓이었다. 그녀는 파랑새의 감정을 이전보다 강하게 느꼈고, 그만큼 충동적으로 움직이는 경우가 잦아졌다. 디하트는 놀란 기색을 가라앉히며 고개를 살짝 내저었다.
“괜찮습니다. 이 아이도 저보다는 당신 손길을 더 반기니까요.”
디하트가 제 가슴팍을 가리키며 말했다.
세벨리아가 감사하다는 의미로 눈을 접어 웃었다. 곧 그녀는 아무렇지 않게 디하트의 겉옷을 들쳤다. 가슴 가까이 와닿는 온기에 디하트는 숨을 삼켰다.
피릿.
귀여운 울음소리와 함께 자그마한 새가 기다렸다는 듯 튀어나왔다. 동시에 세벨리아의 몸이 가까워졌다. 디하트는 열심히 입 안쪽 살을 깨물며 흐트러진 옷매무새를 정리했다.
그사이 아직 이름을 받지 못한 새는 세벨리아의 손바닥 위에 앉아 부리를 털었다.
“이런, 많이 답답했나 보구나. 참, 디하트 멋대로 옷에 손을 대서 미안해요. 다시 한번 사과할게요. 다음부터는 주의할게요.”
세벨리아가 한 발자국 멀어진 뒤에야 디하트는 가쁜 호흡을 갈무리할 수 있었다. 그가 달아오른 목덜미를 숨기며 헛기침과 함께 빠르게 말했다.
“아뇨, 상관없습니다.”
“네?”
꾸벅꾸벅 조는 새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던 세벨리아는 그의 말을 제대로 듣지 못했다. 디하트는 얼버무리며 말을 돌렸다.
“일단 돌아가죠. 이 이상 머무르다간 직원들이 기다리다 못해 우리 멱살을 잡으려 들 것 같군요. 자, 갑시다.”
“아, 직원들 생각을 못 했네요.”
극장을 나선 세벨리아는 디하트의 에스코트를 받아 마차에 올라탔다. 워츠와 클로드가 그녀의 뒤를 따라 올라탔다. 그 모습이 때마침 오페라 가수들의 퇴근을 기다리던 사람들의 눈에 똑똑히 담겼다.
* * *
인버네스 공작가의 문양이 그려진 마차는 느리게 포석을 밟으며 나아갔다. 몹시 느린 속도에 항의할 만도 하건만 디하트를 비롯한 그 누구도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
그렇게 보란 듯이 시내를 한 바퀴 돈 마차는 곧 대저택 안으로 미끄러지듯 들어갔다.
“그래서 어떻게 된 겁니까. 웨든 남매가 도대체 뭐라고 지껄였길래 2부가 다 끝나도록 돌아오지 않았던 거예요?”
응접실에 들어서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입을 연 건 클로드였다. 채근하는 그의 목소리에는 걱정과 초조함이 깔려 있었다. 아마도 마차를 타고 오는 내내 물어보고 싶어 입이 근질거렸을 것이다.
세벨리아가 소리 없이 웃으며 자리에 앉길 권유했다. 워츠는 자신이 깊게 관여할 이야기가 아니라고 생각했는지 이미 자리를 뜬 상태였다.
“그리 독촉하지 않아도 알려 드릴 테니 일단 한숨 돌리세요.”
“하아. 어떻게 그리 담담할 수 있는지. 이럴 때 보면 내가 백 살은 훌쩍 넘긴 사람을 제자로 맞이한 것 같다니까.”
가족으로부터 버림받은 경험이 있는 클로드는 세벨리아의 일이 제 일인 것마냥 과민하게 굴었다. 사실 수도까지 따라온 것에는 스승으로서의 책임감도 있었지만 세벨리아가 과거의 자신과 겹쳐 보였기 때문도 있었다.
“만약 그자들이 협박한 거라면 숨기지 말고 솔직히 말해요.”
“그건 아니에요.”
산뜻하게 고개를 내저은 세벨리아가 자신을 걱정스레 바라보는 디하트를 흘끗 바라보았다 다시 클로드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는 어느새 칼 어펜츠의 모습을 벗고 디하트와 같은 금빛 눈동자를 빛내며 자신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 눈에 서린 걱정과 염려에 세벨리아는 가슴이 살짝 일렁이는 걸 느꼈다. 혈육에게서도 받아 보지 못했던 눈빛에 일순간 눈이 시큰거렸다.
“얼른 말해 봐요.”
클로드가 다시 한번 채근했고, 디하트는 그 옆에서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세벨리아는 심호흡을 하고 입을 열었다.
“인버네스 공작과의 결혼 생활이 그렇게 싫었을 줄 몰랐다고, 이제 그런 식으로 강제 결혼시키는 일은 없을 테니 돌아오면 따뜻하게 받아 준다더군요.”
“뭐라고요? 하……!”
“엄청나죠? 어처구니없는 말을 들을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정말 그런 말을 들을 줄은 몰랐어요.”
“하.”
디하트가 짧은 웃음을 내뱉었다. 날 서린 웃음이 침묵이 내려앉은 공기를 예리하게 베었다. 그는 얼굴을 잔뜩 굳힌 채 이를 악물었다. 타닥, 타닥. 불꽃 튀는 소리가 미약하게 들려왔다.
세벨리아는 억지로 그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고개를 내려 깍지 낀 손을 바라보며 그녀가 이어 말했다.
“말하는 걸 들어 보니 그들도 ‘세벨리아 웨든’을 다시 살리려는 것 같지는 않았어요. 자꾸만 새로운 신분, 다시 시작할 기회를 강조하더니… 제가 끝내 넘어갈 것 같지 않자 뜻밖의 조건을 걸더군요.”
“그들에게 당신을 붙잡을 조건 따위가 있을 리 없잖습니까.”
디하트의 날카로운 지적에 세벨리아가 차갑게 웃으며 고개를 들었다. 시리도록 푸른 눈동자가 막막한 빛을 품고 디하트를 응시했다. 한참이나 소리 없이 입술을 달싹이던 그녀의 입에서 무거운 단어가 굴러떨어졌다.
“생모에 대한 걸 알려 주겠다더군요.”
“…….”
“이제 와서.”
목 안쪽이 턱하고 막혔다. 지저분한 불꽃이 몸 안쪽에서부터 타오르고 부풀어 올라 모든 걸 그을리는 기분이었다.
세벨리아는 눈을 감고 담담하게 고통을 흘려보냈다.
“단 한 순간도 그녀에 대한 걸 꿈도 꾸지 못하게 했으면서, 이제 와서…….”
그녀에게 어머니란 아주 어릴 적에 빼앗긴 단어이자 존재였다. 동화책에서 나오던 어머니란 언제나 따뜻한 품과 다정한 눈빛, 맹목적인 애정과 함께였으니, 세벨리아는 자연스럽게 어머니를 그런 존재로 생각했다.
‘언젠가 어머니가 돌아오면 나도 그런 사랑을 받을 수 있겠지. 따뜻한 품에 안겨 다정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지도 몰라.’
그리고 그 달콤한 상상과 기대는 사일러스에 의해 비웃음당하고 짓밟혔다.
[네 친모는 악독하고 끔찍한 이방인이었지. 그런 마녀와 한순간이라도 정을 통했다는 게 수치스럽다.] [그 여자가 왜 널 버렸는지 아직도 이해하지 못한 거냐? 모정 같은 낯간지러운 감정을 원하다니, 멍청한 게 딱 그 여자의 핏줄답구나.]산산조각 난 기대는 세벨리아의 심장을 난도질했다. 그 이후로 세벨리아는 단 한 순간도 생모를 궁금해하지 않았다. 아니, 할 수조차 없었다.
‘내게 어머니란 어린 딸을 버리고 간 악독한 마녀로 자리 잡았으니까.’
한데 이제 와서 그걸 미끼랍시고 내걸다니. 세벨리아는 헛웃음조차 나오지 않았다. 게다가 자신은 이미 그들의 힘을 빌리지 않고도 생모를 찾을 수 있었다.
방으로 돌아간 워츠를 떠올리며 감정을 가라앉힌 세벨리아가 무겁게 내려앉았던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자신을 걱정스러운 얼굴로 바라보는 두 남자가 보였다.
“힘들면 이야기는 그만하고 방으로 돌아가는 게 좋겠습니다.”
“디하트 말이 맞아요. 침실을 데워 놓으라 전할 테니 올라가는 게 어때요?”
머리카락 색만 조금 다르지 꽤나 비슷한 두 남자는 엄숙한 얼굴로 호들갑을 떨고 있었다. 그 모습이 상황과 어울리지 않게 조금 웃겨, 세벨리아는 저도 모르게 작게 미소 지었다.
“괜찮아요. 그보다 이 근처에 유명한 찻집을 알려 주실 수 있나요? 개인실이 있는 곳이라면 더 좋은데.”
“찻집 말입니까? 몇 년 전 수도에 잠깐 들렀을 때는 오슬라의 호수라는 곳이 가장 문전성시를 이뤘는데 아직도 그럴지는 모르겠네요. 한데 그곳은 왜요?”
클로드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세벨리아가 잔잔한 음성으로 말했다.
“넬리아와 다시 한번 만나기로 했어요. 시간과 장소는 제가 정하는 거로.”
“단둘이 만난다는 겁니까? 아무리 시간과 장소를 당신이 정한다 해도 위험해요.”
“괜찮을 거예요. 그리고… 평생토록 저주하기 바빴던 어머니에 대해 알려 준다고까지 하면서 절 되찾으려는 이유를 저도 알아야 하지 않겠어요?”
아무렇지 않게 버린 장기 말을 다시 주워 오려 할 만큼 간절히 바라는 무언가가 있다면, 그걸 박살 내는 게 가장 뜻깊은 복수가 될 테니까.
세벨리아가 뒷말을 삼키며 생긋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