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fter I Died, My Husband Went Mad RAW novel - Chapter (102)
내가 죽고 남편이 미쳤다 (102)화(102/171)
수도 사교계는 벨라 어펜츠의 등장으로 들썩였다. 물론 화제는 그녀가 진짜 웨든 후작의 잃어버린 딸인가 아니면 얼굴만 닮은 다른 사람인가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뜨겁게 타오르는 쟁점이 있었으니, 바로 공작 부인과 닮은 이를 곁에 두고 있는 디하트의 속내였다.
그는 정말로 미친 걸까? 죽어 버린 공작 부인을 향한 후회와 미련 때문에 똑같이 생긴 여자를 곁에 두고서 대리만족을 하는 기괴한 변태가 되어 버린 건 아닐까?
하지만 그렇다기엔 그녀를 대하는 태도가 너무 신사다웠으며 허우대 또한 멀쩡했다. 심지어 벨라라는 여자에게는 숙부라는 어엿한 후견인까지 있었다.
사람들의 머릿속이 오리무중이 되어 가는 가운데, 대극장에서의 우연한 만남 이후 드디어 사흘이 지났다. 아침 일찍 공들여 치장한 넬리아는 사람들의 시선을 즐기며 찻집의 문턱을 넘었다.
“어머, 넬리아 영애잖아. 의외네, 최근 황실 외에는 다른 곳에 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잖아.”
“혹시 모르죠. 일 황자 전하와 색다른 데이트를 즐기고 싶으셨을지도.”
“하긴 평상시보다 훨씬 신경 쓴 게 티가 나네요. 걸치고 있는 장신구 좀 보세요. 저건 얼마 전 일 황비께서 구입하셨다는 루비 목걸이로 보이는데…….”
낮은 속삭임이 공기를 타고 넬리아의 귓가를 간지럽혔다. 그 속에서 들끓는 부러움을 감지한 넬리아는 여느 때처럼 활짝 웃었다.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 건 언제든 기분 좋은 일이었다. 특히나 그것이 저에 대한 부러움과 질시를 담고 있다면 더욱더.
“오랜만이네요, 영애. 좋은 시간 보내도록 해요.”
시선이 마주친 사람들에게 한 명 한 명 인사를 건넨 넬리아는 고상한 태도를 견지하며 개인실로 향했다. 사뿐사뿐한 발걸음이 하늘을 나는 듯한 그녀의 기분을 대변했다.
[역시 너뿐이로구나, 넬리아.]세벨리아가 생모라는 말에 흔들렸으며, 사흘 뒤 만나자는 약속을 잡았다고 전하자 아버지는 다정한 목소리로 그녀를 칭찬했다. 사일러스는 칭찬에 박해, 넬리아는 제가 이뤄 낸 결과가 몹시 자랑스러웠다.
‘오늘은 꼭 세벨리아를 데리고 돌아가야지.’
넬리아는 가방 안에 든 작은 약병을 떠올리며 자꾸만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참았다. 강력한 환각제에 외국산 희귀 약재를 섞어 만든 새로운 약물은 단 두 방울만으로도 상대를 뜻대로 움직이게 할 수 있었다.
‘부디 세벨리아가 다시 착한 아이가 되었으면 좋겠다.’
부작용을 장담할 수 없는 무색의 약물을 떠올리며 넬리아는 개인실 앞에 멈춰 섰다.
“휴우.”
그녀는 콩닥거리는 가슴을 느끼며 상냥한 웃음을 지으려 노력했다. 어린 세벨리아가 가장 좋아했던 웃음 말이다.
그러자 자연스레 과거가 떠올랐다. 아버지에게 혼나고 울며 침대 밑에 웅크려 있던 세벨리아. 네이튼에게 머리채가 잡혀 끌려다니다 자신을 발견하고 손을 뻗던, 멍청하고 불쌍한 세벨리아.
[처음부터 네가 제대로 했으면 이럴 일도 없었잖아. 그렇지, 세벨리아? 울음이 멈추면 따뜻한 우유를 마시고 아버지께 사과하러 가자.] [응, 언니…….]한심한 세벨리아는 울다가도 다정한 미소와 함께 등을 토닥여 주면 언제 그랬냐는 듯 울음을 그치고 제 잘못을 수긍했다. 그리고 어른들은 그런 자신을 몹시 자랑스러워하며 칭찬을 퍼붓고는 했다.
넬리아는 그게 정말 좋았다.
달칵.
그래서 넬리아는 버릇없이 자신을 일어나 맞이하지 않고 차나 마시고 있는 세벨리아의 모습에도 전혀 화가 나지 않았다.
“내가 제때 온 모양이로구나.”
한심한 동생을 훈육한 뒤에는 언제나 달콤한 보상이 기다리고 있었으니까.
* * *
한 시간이나 늦게 도착한 넬리아는 문을 열자마자 웃으며 말했다.
“내가 제때 온 모양이로구나.”
세벨리아는 어처구니가 없어 답하지 않았다. 그 대신 넬리아가 오지 않는 동안 세 번째로 시킨 차를 한 모금 마셨다. 그러는 동안에도 넬리아는 문가에 선 채로 세벨리아를 빤히 응시했다.
어서 인사하라는 듯 강렬한 눈빛을 보내는 모습에 세벨리아는 벌써 질리는 느낌이었다.
‘이러다간 기가 전부 빨려서 환영을 만들 정신이 남아 있지 않겠어.’
그렇지 않아도 요 며칠 클로드에게 혹독한 훈련을 받느라 잠이 모자란 상태였다. 세벨리아는 부디 환영과의 감각 공유가 제대로 이어지길 바라며 한숨을 삼켰다.
그래야 넬리아 편에 몰래 심은 첩자용 환영이 제게 그들의 속내를 전부 전달해 줄 테니까.
세벨리아가 정신을 다잡는 사이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른 넬리아가 톡 쏘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쩜, 세벨리아. 앉으라는 말까지는 바라지도 않았지만 인사조차 하지 않다니, 도대체 어떻게 된 거니?”
“아, 죄송해요. 이리 앉으세요. 다과는 미리 주문을 넣었으니 머지않아 나올 거예요. 그나저나 오랜만에 뵙네요, 넬리아 영애.”
하는 수 없이 인사를 건네자 넬리아는 마음에 든 듯 생긋 웃었다. 그리고 숨 쉬듯 자연스럽게 세벨리아를 깎아내리는 언사를 늘어놓았다.
“영애라니. 언니라고 불러야지. 맹한 구석은 여전하구나. 그 점은 고생을 해도 고쳐지지 않는 건가 봐. 그래, 이제 마음은 좀 풀렸니?”
넬리아는 호들갑을 떨며 맞은편에 앉으려다 멈칫했다. 외투와 가방을 들어 줄 시종이 없었기 때문이다.
순간적으로 허공에 머물렀던 그녀의 손은 미적거리며 가방을 벗어 옆에 놓았다. 세벨리아의 푸른 눈이 예사롭게 번뜩였으나 넬리아는 그 모습을 보지 못했다.
넬리아가 투덜거리며 숄을 풀어 헤쳤다.
“어쩜 약속 장소도 꼭 너 같은 곳으로 골랐구나. 안목이 없어도 그렇지 이런 데를 누가 오니? 그렇지 않아도 요새 유명한 예절 선생을 한 명 잡아 뒀어. 집으로 돌아오는 대로 다시 교육을 받자꾸나.”
넬리아는 이미 세벨리아가 돌아가는 게 기정사실인 양 제멋대로 앞으로의 계획을 늘어놓았다. 세벨리아는 그 헛소리를 의례적인 미소로 받아 주다가 툭 하고 내뱉었다.
“다정하기도 하셔라. 이제 겨우 두 번 만난 사이인데 이리도 제게 신경 써 주실 줄 몰랐네요.”
“어휴, 정말.”
왜 자꾸 처음 보는 사이인 것처럼 말하니? 넬리아는 툴툴거리며 세벨리아의 말을 한 귀로 흘렸다. 그리고 부끄럽다는 듯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혹시 쑥스러워서 그러는 거라면 그러지 말아. 우리는 한 가족이잖아. 언니로서 동생을 챙기는 건 당연한 일이야. 나만큼 너를 챙기고 걱정하는 사람이 어디 있다고.”
그 순간, 세벨리아는 예상치 못하게 가슴에 화끈한 통증을 느꼈다. 뾰족한 톱니에 가슴팍이 뜯겨져 나가는 듯한 감각이었다.
‘날 챙기고 걱정한다고?’
그럴 리가. 세벨리아는 속으로 그녀의 말을 비웃었다. 네이튼과 달리 넬리아는 나서서 자신을 괴롭힌 적은 없었다. 하지만 그게 그녀가 자신을 살뜰히 챙겼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그녀에게 자신은 어른들에게서 착하고 참한 언니라는 칭찬을 받을 때 필요한 도구였으니까.
‘그래서 다 큰 나는 효용 가치가 떨어졌었지.’
세벨리아가 더 이상 말썽쟁이 울보가 아니게 되자 넬리아는 그녀에 대한 관심을 완벽히 거둬들였다. 그녀가 힐렌드 홀에서 약을 먹고 자살한 그 순간까지 말이다.
“…동생을 그렇게 챙겨서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않으셨던 건가요?”
세벨리아는 찻잔을 내려놓으며 더없이 차분한 목소리로 읊조렸다. 일변한 말투에 놀란 넬리아가 고개를 들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참 우습네요.”
냉혹한 시선이 날카롭게 넬리아의 속을 파고들었다. 섬뜩한 느낌에 넬리아는 어깨를 파드득 떨었다. 그리고 곧 자신이 세벨리아에게 그런 감상을 받았다는 게 분해 이를 악물었다.
‘이 애가 정말 미쳤나?’
세벨리아가 북부 생활이 싫어 죽음을 가장하고 도망쳤다는 이야기는 들었다. 그런데 그 분풀이를 왜 자기가 받아야 하는지, 넬리아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지만 이대로 그녀를 질책해 좋은 분위기를 망칠 수는 없었다. 적어도 아버지가 얘기하신 시간까지는 세벨리아를 이곳에 붙잡아 둬야 했다.
넬리아가 속셈을 숨기며 부드럽고 다정한 눈으로 세벨리아를 응시했다. 그녀는 심지어 상체를 숙여 세벨리아의 손을 붙잡기까지 했다.
“세벨리아. 네가 화가 났다는 건 알아. 하지만 이제 와서 과거를 돌이켜 봤자 무슨 소용이겠니. 우리는 단지 네가 원하는 대로 해 줄 뿐이야. 세벨리아라는 이름이 싫어서 버렸으니까 그것에 맞춰 주겠다는 것뿐인데 왜 아버지의 진심을 곡해하는 거야.”
“지금 진심으로 하시는 말인가요?”
“화풀이는 이만하고 돌아가자꾸나. 네 방의 위치를 옮기고 새로 꾸몄어. 옛날부터 노래를 부르던 새하얀 구름이 그려진 벽지까지 발랐단다. 어때, 당장이라도 보고 싶지? 응?”
어린애를 꾀는 듯한 달콤한 목소리에 세벨리아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목소리나 태도는 그렇다 쳐도 새하얀 구름 벽지라니. 도대체 넬리아는 자신을 몇 살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차라리 네이튼을 상대하는 게 낫겠어.’
말이 통하지 않는 상대에 세벨리아는 머리가 지끈거리는 걸 느꼈다. 말다툼은 이쯤하고 계획대로 움직이는 게 나을 것 같았다. 한숨을 내쉰 세벨리아가 의자를 짚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의 손끝에서 희끄무레한 연기가 피어오르더니 자그마한 깃털이 되어 살랑 움직였다. 세벨리아와 감각을 공유하는 환영이었다.
“너무 오래 앉아 있었나 보네요. 잠시 바깥 공기를 좀 마시고 올게요.”
세벨리아는 아무렇지 않게 탁자 아래에 환영을 숨긴 뒤 복도로 나왔다. 그 와중에도 넬리아의 원망스러운 시선이 뺨을 뚫을 것 같아 속이 울렁거렸다.
* * *
복도를 지나는 세벨리아의 발걸음 소리가 멀어졌다. 넬리아는 숨죽인 채로 그녀가 완전히 복도를 벗어나길 기다렸다. 이윽고 발소리가 완전히 사라지자 넬리아는 안타깝다는 듯 한숨을 쉬었다.
“정말 이러고 싶지는 않았는데. 하여튼 뒤늦은 사춘기에 접어든 애는 너무 다루기 힘들다니까.”
그러나 아쉬운 음성과 달리 활짝 미소를 지은 그녀는 기다렸다는 듯 약병을 꺼내 들었다.
“백치가 되지 않기만을 바랄게, 내 동생.”
투둑.
넬리아는 세벨리아의 찻잔에 두 방울을 넣고 혹시 몰라 직원을 시켜 새로운 차를 다시 시켰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찻주전자가 나오자 넬리아는 그 안에 남은 약물을 모두 털어 넣었다.
“후.”
끓어오르던 김이 기세를 조금 잃을 무렵, 세벨리아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오래 기다리게 해서 죄송해요.”
“아냐, 차가 다 식은 것 같아서 새로 주문했어. 바깥은 추웠을 텐데, 어서 마시도록 해.”
세벨리아가 사르르 웃으며 찻잔을 집어 들었다. 꿀꺽, 적당히 식은 찻물이 식도를 타고 넘어가는 소리가 개인실을 울렸다.
“어쩜 어릴 때랑 똑같다니까.”
짙은 호선을 그리는 넬리아의 목덜미에 하얀 깃털이 어른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