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fter I Died, My Husband Went Mad RAW novel - Chapter (103)
내가 죽고 남편이 미쳤다 (103)화(103/171)
시간은 세벨리아가 개인실을 나와 복도를 빠져나왔을 무렵으로 돌아간다.
“으.”
“괜찮으십니까, 손님?”
걱정스레 물어 오는 직원에게 손사래를 치며 세벨리아는 걸음을 옮겼다. 한 발자국 내디딜 때마다 현기증이 일었다.
‘역시 사흘 동안 너무 무리했나 봐.’
하지만 감각 공유는 한 번 끊어지면 다시 잇기 힘들었다. 세벨리아는 치밀어 오르는 울렁거림을 참으며 겨우 발코니로 향했다.
“하아.”
식은땀이 맺힌 이마에 찬 바람이 불었다. 한껏 달아올랐던 체온이 빠르게 내려가며 몸이 으슬으슬 떨렸다. 그러나 이만큼 상쾌할 수가 없었다.
‘자, 이제…….’
발코니의 문을 걸어 잠근 세벨리아는 의자에 앉아 눈을 감았다. 하얀 깃털은 그 흐물거리는 특성만큼 형체를 유지하고 움직이는 게 까다로웠다. 그래서 세벨리아는 부득이하게 자리를 피할 수밖에 없었다.
이 모습을 넬리아에게 보여 줄 수는 없으니까.
‘조금 더 아래로…. 됐어, 이제 공중으로 올라서 의자 위로. 그래, 그렇게.’
깃털은 아주 조금씩 더디게 움직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세벨리아는 머리가 쪼개지듯 아파 오는 걸 느꼈다. 그러나 이를 악물고 참아 냈다.
바로 오늘을 위해 사흘 동안 클로드의 악마 같은 특훈을 견딘 게 아닌가. 곧 깃털은 소리 없이 움직여 넬리아의 목덜미 위에 부드럽게 내려앉은 뒤 투명하게 변했다.
“휴.”
이제 마지막 단계가 남았다. 세벨리아는 품에서 클로드가 준 부적을 꺼내 들었다. 그와 친분이 있다는 주술사가 만든 부적이었다.
찌익-.
세벨리아는 망설임 없이 부적을 찢었다. 그러자 그녀의 발아래에서 그림자 같은 무언가가 튀어나왔다. 가느다란 가시처럼 뻗어 나온 줄기는 순식간에 발코니 문틈을 스쳐 지나가 개인실까지 닿았다.
동시에 개인실의 바닥이 아주 잠깐 검게 물들었다. 바닥에 얼굴을 붙이고 있지 않는 한 알아차리기 힘든 변화였다.
“후우…….”
이제 됐다. 식은땀을 훔치며 세벨리아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가 발코니 문을 열고 복도로 돌아가려던 순간이었다.
[정말 이러고 싶지는 않았는데. 하여튼 뒤늦게 사춘기에 접어든 애는 너무 다루기 힘들다니까.]고막 안쪽으로 직접 전달되는 목소리에 세벨리아는 그대로 정지했다. 그래, 당신들이 내 비위를 맞춰 줄 리 없지.
‘한평생 손쉽게 이용하던 도구가 갑자기 말을 듣지 않으면 보통은 손을 보지, 달래 주지는 않잖아.’
그리고 가족에게 자신은 그런 존재였다. 세벨리아는 가슴 속에 시린 바람이 부는 걸 느끼며 눈을 감았다. 곧이어 눈꺼풀 안쪽으로 찬란한 색채가 들어찼다.
평소보다 조금 낮은 시야로 보이는 건 방금 전까지 머물렀던 개인실의 풍경이었다. 세벨리아는 지금 넬리아의 어깨에 자리 잡은 하얀 깃털과 시야를 공유하고 있었다.
넬리아는 잠시 부스럭거리며 무얼 찾는 것 같더니 작은 병을 꺼내 들었다.
“백치가 되지 않기만을 바랄게, 내 동생.”
투둑. 넬리아는 그대로 약병의 내용물을 세벨리아의 찻잔에 두 어 방울 정도 넣더니 직원을 불러 새 차를 주문했다. 그리고 방금 전과 동일한 행동을 반복했다.
다른 점이 있다면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찻주전자에는 남은 약물을 몽땅 쏟아 넣었다는 것뿐일까.
“……하아.”
세벨리아는 깃털과의 감각 공유를 최소한으로 맞춰 놓고 눈을 떴다. 머리가 핑핑 돌고 당장이라도 속을 게워 낼 것처럼 울렁거리는 가운데, 실소가 터져 나올 것만 같았다.
넬리아의 말과 행동으로 보건대 아마 그녀가 찻잔에 탄 약물은 수면제거나 이지를 잃게 만드는 종류의 약이 분명했다. 둘 중 하나를 택한다면 아마 후자일 것이다.
사람이 이렇게나 많은 찻집에서 쓰러진 여인을 등에 업고 나갈 수는 없으니까.
세벨리아는 탁하고 한숨을 내쉬며 문에 이마를 기댔다. 서늘한 감촉을 느끼며 그녀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럼 그렇지. 평생토록 멸시한 사생아를 상대로 그들이 진지하게 설득하려 할 리 없잖아.’
교활한 뱀 같은 사일러스가 그냥 대화나 하라며 넬리아를 보낼 리 없었다. 자신이 그러하듯 그 또한 애초부터 다른 생각을 품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더 이상 실망할 것도 없네.”
세벨리아는 얼음처럼 차가운 분노를 삼키며 발코니의 문을 열어젖혔다. 그러나 그녀가 향한 곳은 개인실로 향하는 복도가 아닌 휴게실이었다.
잠시 뒤, 무표정한 얼굴의 세벨리아가 휴게실에서 나와 개인실로 향했다. 오매불망 그녀를 기다리던 넬리아가 반갑게 그녀를 맞이했다.
“오래 기다리게 해서 죄송해요.”
세벨리아는 마치 대본을 외우듯 정해진 말을 내뱉고는 꿀꺽, 찻물을 삼켰다. 그러자 총기 어린 푸른 눈이 흐릿해지고 사지에 힘이 빠졌다.
그 모습을 확인한 넬리아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명령했다.
“세벨리아, 이제 그만 집으로 돌아가자.”
“…….”
세벨리아가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자 넬리아는 바로 그녀의 팔짱을 꼈다. 그리고 맞은편 개인실에서 기다리고 있던 네이튼과 합류해 그녀를 찻집 바깥까지 데리고 나갔다.
“잘했어, 누이. 아버지께서 무척 기뻐하실 거야.”
“어머. 칭찬은 됐어. 내가 할 일을 한 건데 뭘.”
이지를 잃은 세벨리아를 태운 마차는 뭐가 그리 급한지 순식간에 모습을 감췄다. 그리고 ‘진짜 세벨리아’는 그 모습을 마지막까지 똑똑히 지켜보다 휴게실을 나왔다.
그 모습을 목격한 직원이 눈살을 찌푸리며 다가섰다. 오늘 예약객 중에는 그녀와 같은 사람이 없었으니까.
“손님, 죄송하지만 이곳은 개인실 이용고객분들을 위한 휴게실입니다.”
“미안해요. 내가 급한 일이 있어서.”
“이보세요, 잠깐……!”
붉은 머리에 검은 눈을 한 독특한 외모의 여인은 직원의 제지를 뿌리치고 사라져 버렸다. 직원은 다음에 만나면 가만두지 않겠다며 성을 내고선 휴게실로 들어갔다. 가끔 제멋대로 들어온 손님이 휴게실을 난장판으로 만들어 놓는 경우가 있어 확인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아니, 이게 뭐야?”
아니나 다를까. 휴게실 안에는 형체를 알 수 없는 종잇조각이 타다 만 채로 발견되었다. 직원은 이를 득득 갈더니 쓰레받기를 가지러 뛰어나갔다.
사람들로 문전성시를 이루는 찻집의 언제나처럼 평범한 하루였다.
* * *
랑그 엘리사 5구역, 개중에서도 제일 목이 좋은 곳에 인버네스 공작의 수도 저택이 위치해 있었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관리되지 않았던 저택은 갑자기 주인이 머물기 시작하며 눈에 띄게 탈바꿈했다.
정원에는 값비싼 생화들이 흐드러지게 피어났고 새로 심은 정원수는 담장 위로 푸른 잎을 뽐냈다. 몸값을 높이고 싶은 하인들은 추천장을 들고 뒷문을 서성거렸고.
“대극장 이후로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다니. 그래봤자 북부 야만인일 뿐인데, 언제까지 저렇게 잘난 체할 수 있을까 모르겠군.”
높디높은 철문 앞에는 귀족들이 마차를 타고 문 너머를 훔쳐보다 험한 말을 내뱉고선 사라졌다. 아마도 집사가 헐레벌떡 달려 나와 그들을 안으로 초대하길 바라기라도 한 모양이었다.
뭐, 이래저래 북부 출신 미치광이 공작은 수도의 가장 뜨거운 화두였다. 만약 그가 원하기만 한다면 단숨에 수도의 모든 관심을 사로잡고 사교계를 장악할 수 있을 만한 호기심과 열기였다.
하지만 저택의 주인은 그런 것 따위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었다. 그는 지금 외출 나간 주인을 기다리는 늑대마냥 애가 타 끙끙거리고 있었으니까.
“나간 지가 언제인데 아직도 소식이 없는지…….”
디하트가 초조한 기색으로 벽난로 앞을 서성거렸다. 세벨리아가 외출한 이후로 30분마다 되풀이되는 행동이기에 클로드가 짜증스러운 얼굴로 그를 흘끗 보았다가 다시 책에 고개를 박았다.
아이의 첫 심부름을 응원하는 부모도 저 지경은 아니었다. 심지어 세벨리아는 미취학 아동이 아니었으며, 디하트처럼 건장한 남자조차 기절시키고 도망칠 만한 힘이 있었다.
그리고 그 힘을 지난 사흘간 열심히 갈고 닦았다. 바로 자신과 함께!
하지만 구구절절 설명해 봤자 소용없을 게 뻔했다. 이유는 너무나도 명백했다. 클로드는 이미 5차례나 디하트를 설득하려 했고, 번번이 실패했으니까.
‘제발 빨리 돌아와 줘요, 벨라.’
배다른 언니가 무슨 헛소리를 하는지 똑똑히 듣고 돌아오겠다며 떠난 제자를 생각하며 클로드는 간절히 빌었다. 그의 기도가 하늘에 닿은 것일까. 얼마 지나지 않아 철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그보다 먼저 디하트가 반응한 건 당연한 일이었다.
“……!”
바로 창문을 확인한 디하트는 응접실을 박차고 나가려다 멈칫했다. 그는 빠른 걸음으로 거울을 확인한 뒤 손으로 머리를 쓸어 넘기고 옷매무새를 정리했다.
“가지가지 한다.”
혀를 차는 클로드를 무시한 채 디하트는 계단을 구르듯 달려 내려가 홀의 문을 열어젖혔다. 집사가 나오기도 전에 어느새 그는 마차 문을 붙잡고 있었다.
“벨라.”
힘주어 문을 연 디하트가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그녀를 불렀다. 세벨리아는 그의 목소리를 듣고 푹 눌러썼던 후드를 걷었다. 디하트는 그대로 얼어붙었다.
“아. 맞다. 당신은 아직 이 모습을 본 적 없군요.”
후드를 걷자 나타난 건 세벨리아가 아닌 붉은 머리를 허리까지 늘어트린 검은 눈의 여인이었다.
“음, 디하트. 일단 내 말부터 좀 들어줄래요?”
다행히도 목소리는 세벨리아의 것이 맞았다. 디하트는 빠르게 혼란을 수습하고 물었다.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모습을 바꿔야 할 만한 일이 있었어요. 클로드가 풀어 줄 수 있는데… 그는 어디에 있죠?”
이 빌어먹을 숙부가. 디하트는 욕지기를 삼키며 세벨리아에게 다시 후드를 쓰게 한 뒤 응접실까지 안내했다. 그곳에서 한가롭게 책이나 뒤적이던 클로드는 바로 상황을 알아차렸다.
“이런. 결국 최후의 수단을 쓴 모양입니다, 벨라.”
“그렇게 됐어요.”
세벨리아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후드를 벗었다. 클로드는 애석하다는 듯 눈짓하더니 품에서 부적 같은 걸 꺼내 세벨리아에게 가볍게 던졌다. 그러자 남부 여인은 눈 깜짝할 사이 창백한 피부를 가진 푸른 눈의 여인이 되었다.
“그래서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그 광경을 잠자코 지켜보던 디하트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