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fter I Died, My Husband Went Mad RAW novel - Chapter (104)
내가 죽고 남편이 미쳤다 (104)화(104/171)
사흘 전, 세벨리아는 디하트와 클로드에게 자신의 계획을 설명했다. 웨든 후작이 아무 이유 없이 자신을 원할 리 없다고. 그의 뱀 같은 성정을 여러 차례 느낀 바 있는 디하트는 그에 동의했다.
“내가 알기로 당신이 해야 할 일은 하나뿐이었어요. 넬리아를 붙들어 놓고 시간을 보내다 그녀에게 염탐용 환영을 심어 놓는 것.”
“알고 있는 그대로 행하고 왔는걸요.”
“벨라, 당신 앞의 나는 언제나 무지렁이에 한낱 죄인에 불과하지만 그게 상황을 파악하지 못할 만큼 바보라는 소리는 아니에요.”
짧은 웃음을 토해 낸 디하트가 한층 더 낮아진 목소리로 읊조렸다. 성큼 다가온 그가 세벨리아의 팔을 붙들었다.
“아까부터 계속 몸을 떨고 있잖아, 당신.”
“…….”
세벨리아는 그제야 제 상태를 알아차렸다. 두꺼운 망토에 가려진 몸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그녀는 제 팔을 붙든 디하트의 손을 붙잡고서 침음을 흘렸다.
기억나지 않지만, 아무래도 마차를 탄 순간부터 이랬을 게 분명했다.
“자기가 떨고 있는 것조차 모를 정도로 정신이 나가 있다니.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묵직한 저음이 세벨리아의 고막을 강타했다. 금빛 눈동자가 탁한 빛을 품고 그녀를 응시했다. 추궁하는 눈은 아니었다. 그러나 세벨리아는 어쩐지 그의 눈빛에 목이 말랐다.
“분명 아무 일도 없을 거라 내게 약속했잖아요.”
“…….”
“상처 하나 입지 않고 돌아오겠다는 말을 믿는 게 아니었는데.”
건조한 목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세벨리아가 두 눈을 크게 뜨며 고개를 내저었다. 별일 아니었다고 말해야 했다. 한데 왜일까. 목소리를 내는 게 힘들었다.
‘뭐지? 혀가 굳어서 움직이지를 않아…….’
게다가 시야까지 가물거리는 게 전체적으로 몸이 이상했다. 세벨리아는 점차 둔해지는 감각을 느끼며 느리게 눈을 깜빡였다.
‘아, 그러고 보니 분신을 만들었었지.’
사람과 똑같은 환영을 만드는 데에는 상당한 힘이 필요했다. 그렇지 않아도 염탐용 환영을 만들고 조작하는 데 대부분의 힘을 쓴 상태였는데, 그거로도 모자라 남은 힘을 박박 긁어 분신을 만들었으니. 용케 마차에서 기절하지 않은 게 놀라울 정도였다.
“벨라, 정말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겁니까?”
디하트가 뭐라고 말하는 것 같은데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무엇보다 몸이 너무 무거워 제대로 서 있을 수가 없었다.
세벨리아는 저도 모르게 디하트에게 몸을 기댔고, 디하트의 얼굴은 더욱 험악해졌다.
그때, 가만히 관망하는 것 같던 클로드가 나섰다.
“너무 몰아붙이는 것 같은데. 아무리 남보다 못한 가족이라지만 얼굴을 마주하는 게 쉬웠을 리 없잖아. 그녀에게도 잠시 쉴 시간이 필요하다고.”
그는 디하트의 손을 떼어 내며 세벨리아를 푹신한 안락의자에 앉혔다. 디하트는 지쳐 보이는 세벨리아의 얼굴에 입술을 깨물었다. 클로드의 말대로였다.
“미안합니다. 내가 또 성급하게 당신을 몰아붙여서…….”
그럴 자격도 없으면서 섣부르게 욕심을 부리고 말았다. 디하트의 낯이 자괴감에 일그러졌다. 스스로가 한심하고 부끄러워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푹 쉬어요.”
내뱉듯 말한 그가 몸을 돌려 응접실을 뛰어나가려던 찰나였다. 안락의자에 힘없이 늘어져 있던 세벨리아의 몸이 일순간 파드득 튀어 올랐다.
“읏.”
“벨라!”
클로드가 놀라 소리쳤다. 세벨리아는 그의 말이 들리지 않는 듯 두 눈을 크게 뜨고 허공을 바라보았다. 아주 잠깐 새파란 빛이 그녀의 눈동자에 머물렀다. 이윽고 그녀는 무언가를 노려보듯 입술을 꽉 깨물었다.
“윽……!”
그리고 잠시 뒤 비명과도 같은 짧은 외침을 남기고 세벨리아는 축 늘어졌다. 실이 끊긴 인형처럼 사지가 의자 위로 널브러진 모습에 끔찍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쾅! 굉음이 복도를 울렸다.
“당장 의원을 불러와!”
“워츠, 워츠가 있잖아!”
응접실 문을 부수고 나온 두 남자는 그대로 워츠가 머무는 방문까지 박살 냈다. 러크우드에 관한 소식을 읽고 있던 워츠는 그대로 멱살이 붙잡혀 어느새 제 침대에 누워 있는 세벨리아를 진찰해야 했다.
* * *
그레이스 광장의 왼편, 콧대 높은 중앙 귀족들의 보금자리인 3구역 중심부에는 황홀하리만치 아름다운 웨든 후작 저택이 자리 잡고 있었다.
대대로 유서 깊은 역사를 자랑하는 웨든 후작 저택은 그 명성만큼이나 커다란 위용을 자랑했으니, 일 황자조차 저택을 둘러보고서 감탄할 정도였다.
그리고 그렇게 아름답고 사치스러운 저택의 복도를 아무 감흥 없이 지나가는 남자가 있었다. 바로 이 모든 것을 물려받을 사일러스의 정당한 후계자 네이튼 웨든이었다.
뚜벅, 뚜벅.
값비싼 명화가 줄줄이 걸린 복도를 지나 평소에는 잘 걸음 하지 않는 외곽까지 도달한 네이튼은 망설임 없이 먼지가 내려앉은 문을 열었다.
“아버지.”
“왔구나.”
햇빛 한 점 들어오지 않는 방 한가운데, 사일러스가 우두커니 선 채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의 시선 끝에는 창백한 얼굴로 눈을 감은 세벨리아가 있었다.
“이렇게 보니 장례식 때가 생각나는구나.”
사일러스가 픽 웃더니 세벨리아의 뺨을 쓸어내렸다. 그녀는 무어라 앓는 신음을 내더니 다시 고른 숨을 내쉬었다. 사일러스가 고개를 살짝 틀어 네이튼을 응시했다.
“그래, 일 황비 전하께서는 뭐라 하시더냐.”
“소식을 듣고 기뻐하셨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이 황자 때문에 상당히 골머리를 앓고 계셨으니까요.”
“환영술사라는 게 그리도 쓸만한 존재인 줄 그분도 모르셨던 거지.”
나처럼 말이야, 사일러스가 나직한 목소리로 덧붙였다. 세벨리아를 내려다보는 그의 입술이 호선을 그렸다. 만족감 어린 표정이었다.
“북부의 주술사라는 녀석들보다 훨씬 활용도가 높다니. 이럴 줄 알았으면 뒤처리를 하라고 시키지 않았을 텐데 말이다.”
“이 녀석의 생모 말입니까?”
“그래. 그녀도 환영술사였으니까.”
아쉬움이 느껴지는 목소리로 사일러스가 말했다.
“아이를 낳고 버리고 간 거로 봐서는 분명 습격에서 살아남은 걸 테지. 이리될 줄 알았으면 살살 구슬려 첩으로라도 놔둘 걸 그랬어.”
“…그랬다면 일이 더 쉽게 풀렸겠군요.”
네이튼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그 생모라는 여자에게 황제의 대역을 만들게 했다면 계승권 싸움을 여기까지 질질 끌 이유도 없었을 테고 말입니다.”
“아마 그건 아닐 거다.”
사일러스가 아직도 모자란 아들을 한심하다는 눈으로 흘기며 고개를 내저었다. 네이튼이 눈을 크게 뜨고 사일러스를 응시했다.
“만약 그랬다면 이 황자 녀석이 벌써 골골대는 황제를 치웠겠지. 아마 마법사들이 그러하듯 각자 잘하는 분야가 따로 있는 모양이다.”
“그럼 사람 같은 환영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게 이 계집애 하나뿐이라는 소리입니까?”
네이튼이 경악하며 세벨리아를 가리켰다. 믿고 싶지 않다는 얼굴이었다. 사일러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 곱게 다뤄라. 이지가 돌아올지 아닐지는 모르지만 예전처럼 짓궂은 장난을 거는 일은 없어야 할 거야.”
그에 네이튼이 대답 대신 고개를 돌렸다. 사일러스는 눈썹을 치켜들었으나 구태여 그를 혼내지는 않았다. 애초에 자신이 세벨리아의 잠재성을 일찌감치 알고 잘 관리했다면 이렇게 복잡한 상황은 생기지 않았을 테니까.
세벨리아의 능력을 환영술이라 지칭한다는 것은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 하지만 마법과 달리 환영술에 대해서는 세간에 알려진 바가 없었다.
때문에 환영술은 오랜 시간 동안 꺼림칙하고 불길한 무언가로 취급받아 왔고, 간혹 환영술에 대해 조금이나마 아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 선입견에서 벗어나기는 힘들었다.
‘나 또한 마찬가지였지.’
사일러스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는 세벨리아의 어머니가 종종 나비 같은 걸 만들어 내며 그것을 환영이라 칭하는 걸 봤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래봤자 수습 마법사들 언저리를 웃도는 능력일 뿐이었으니까.
이 황자가 새로 등용했다는 젊은 환영술사가 그들이 보내는 모든 암살자를 막아 내고 역공을 가하는 걸 보기 전까지는 말이다.
‘이래서 정보가 중요하다는 건가. 여태껏 우리는 환영술사를 북부 주술사들과 똑같이 별 볼 일 없는 야만적인 힘일 뿐이라고 생각했으니…….’
참 아쉽게 되었다며 사일러스가 혀를 찼다. 환영술의 범위가 그리 방대하고 정교할 줄 알았다면 그녀를 처리하는 게 아니라 잡아서 붙들어 뒀을 텐데 말이다.
‘하나라도 건진 걸 다행이라고 해야겠지만 참 아깝단 말이지.’
사일러스가 제 불찰로 놓쳐 버린 기회를 곱씹는 사이, 네이튼이 얼굴을 찌푸리며 고개를 틀었다. 그의 성 난 눈빛에 사일러스가 눈썹을 들어 올렸다.
“그런데 아버지, 사람 같은 환영이라면 그것대로 문제 아닙니까.”
“뭐가 말이냐.”
“지금 저기에 누워 있는 게 환영인지 사람인지 우리에게는 확인할 방도가 없지 않습니까!”
네이튼이 세벨리아를 삿대질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사일러스는 머리를 둔기로 얻어맞은 듯 강한 충격을 받았다.
* * *
“허억…….”
세벨리아가 식은땀을 흘리며 일어났을 때, 시간은 어느새 새벽을 훌쩍 넘겨 있었다. 그녀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이리저리 흔들었다.
“미쳤어, 정말 미쳤다고.”
부르르 몸을 떤 세벨리아는 넋이 나간 얼굴이었다. 그녀는 환영과의 연결을 통해 방금 전 사일러스와 네이튼의 대화를 모두 엿듣고 그들의 속셈을 알게 되었다.
환영을 이용해 황제의 대역을 세운다니. 이미 그것 자체로도 반역이었다. 그런데 그 계획에 일 황비가 함께하고 있다니, 도대체 이게 어찌 된 일인가.
‘계승권 싸움……!’
이 정도로 큰일을 계획하고 있을 줄이야. 어쩐지 뻔뻔하리만치 간절하게 자신을 원한다 했다. 세벨리아는 이를 악물고 이불을 걷었다.
사일러스의 계획을 알게 된 건 정말 커다란 소득이었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지금 저기에 누워 있는 게 환영인지 사람인지 우리에게는 확인할 방도가 없지 않습니까!]웨든 후작 저택에 있는 세벨리아를 하루빨리 탈취해 와야 했다. 그녀가 가짜라는 게 밝혀지기 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