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fter I Died, My Husband Went Mad RAW novel - Chapter (105)
내가 죽고 남편이 미쳤다 (105)화(105/171)
세벨리아는 그 길로 후들거리는 몸을 이끌고 디하트의 침실로 향했다. 제정신인 상태에서는 저지르지 않을 짓이었건만, 그녀는 지금 반쯤 이성을 놓은 상태였다.
가족이 자신을 도구로밖에 여기지 않는다는 건 알고 있었다. 제멋대로 이용하고 버려 놓고서 이제 와 살살 꾀는 척 다시 손에 넣고 주무르려는 것도 빤히 보였다.
하지만 그 이유가 반역이라니. 제 능력을 이용해 가짜 황제를 세우고 일 황자를 황태자로 옹립시키기 위해서라니!
“다들 미쳤어…….”
식은땀이 뺨을 타고 떨어져 내렸다. 세벨리아는 금방이라도 정신을 놓으면 쓰러질 것 같은 몸을 이끌고 복도를 지났다. 희끄무레한 새벽빛 사이로 푸르게 빛나는 안광이 번뜩였다.
‘환영이라는 게 들통나기 전에 가짜 세벨리아를 데리고 나와야 해.’
그리고 그 놀라운 모습을 가장 먼저 목격한 건 디하트의 침실 앞을 지키던 불쌍한 일레이였다.
“허억.”
지루함에 썩어 가던 일레이의 얼굴은 경악을 넘어 공포로 질렸다. 그는 저도 모르게 허리춤을 더듬다 쌕쌕거리는 숨소리를 듣고서야 상대가 살아 있는 사람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상대의 정체를 파악한 이후에는 몸을 떨었다.
‘공작 부인.’
정확히 말하자면 죽은 공작 부인일지도 모르는 여인이지만 일레이의 머릿속에서는 이미 어느 정도 확정된 사실이었다. 게다가 수도로 옮겨 온 이후 디하트는 일레이에게 직접 이렇게까지 말했다.
[태도를 확실히 해라, 일레이 허스필드.] [예, 예?] [알고 있다면 차라리 아는 티를 내. 사람 열받게 하는 애매모호한 눈빛으로 그녀를 혼란스럽게 만들지 말고.] […….]일레이는 그 순간 디하트가 독심술까지 하나 싶어 소름이 끼쳤다. 물론 그 생각은 오래가지 않았다. 독심술을 할 줄 알았다면 공작 부인을 상대로 이리도 구구절절한 행각을 이어 나갈 리 없었으니까.
“아, 일레이 경.”
디하트의 눈물겨운 여정을 떠올리던 일레이의 상념을 깨트린 건 세벨리아의 목소리였다. 어느새 가까이 다가온 그녀가 새삼스러운 눈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건 그러니까.”
그녀는 이제야 정신이 든 모양이었다. 세벨리아는 당황한 얼굴로 제 차림새를 내려다보고선 복도를 훑었다. 일레이는 고민했다.
‘이건 은밀한 데이트인 걸까.’
무슨 계기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레이가 보기에 두 사람의 관계에는 상당한 진척이 있었다. 서로를 대하는 부드러운 태도와 상냥한 말투가 그것을 증명했다.
그래서 일레이는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이건 사전에 협의된 상황인 걸까? 그렇지 않더라도 그녀는 디하트의 아내, 아니. 전 아내이긴 하지만 어찌 되었든 상관이 사랑하는 유일한 상대였다.
‘만약 나라면 어떨까.’
일레이는 깊게 숙고했고, 세벨리아는 그사이 흘러내린 숄을 잡아당기고 돌아가려 했다. 아침이 밝은 뒤 다시 오겠다는 그녀를 붙든 건 일레이의 다급한 외침이었다.
“제발 들어가 주십시오.”
“……예?”
일레이의 표정은 단호하다 못해 절박했다. 그는 이미 머릿속으로 한 차례 시연을 끝냈다.
만약 자신의 잘못으로 놓쳐 버린, 사랑하다 못해 무릎을 꿇으면서까지 붙잡고 싶은 상대가 밤사이 내 침실에 들어와 있었다? 세상에, 이건 기적이라는 말을 붙이기에도 모자란 일이었다.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도 저는 모르는 척하겠습니다.”
“…….”
세벨리아는 미심쩍은 얼굴로 일레이를 바라보았다. 어쩐지 꺼림칙한 기분이 드는 게, 상대가 이상한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아버지가 데리고 있는 환영이 가짜라는 게 언제 어떻게 들통날지 몰라.’
자신이 만든 환영은 진짜 사람과의 차이점을 알 수 없을 만큼 정교했다. 하지만 어딘가에 그 차이점을 구별하는 사람이나 도구가 존재할지 모르는 일이었다.
시간을 다투는 일에 결국 세벨리아는 꺼림칙함을 눌러두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부탁드릴게요.”
“예!”
일레이가 씩씩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문을 열었다. 세벨리아는 그의 정성스러운 안내를 받으며 디하트의 침실로 발을 들였다. 그리고 침음을 흘렸다.
“이건…….”
알싸한 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동시에 푸르고 붉은 연기가 눈앞을 스쳤다. 그걸 본 세벨리아는 눈을 크게 떴다. 매캐한 연기는 침대 머리맡에서부터 뻗어 나오고 있었다.
세벨리아는 방금 전까지 조심스러웠던 태도를 벗어던지고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향이 들어 있는 은갑을 확인한 그녀가 탄성을 흘렸다.
“세상에.”
로아델의 껍질로 만든 각성향이었다. 이걸 피우면 깊은 잠에 빠지지 않도록 항상 의식이 깨어 있게 된다고 세벨리아는 워츠에게서 배웠다.
중독성이 높고 신체균형을 깨트려 전쟁터에서나 쓰는 물건인데. 세벨리아는 타다 만 찌꺼기를 노려보다 은갑째로 품에 넣었다.
‘신경안정제 중독에서 벗어난 지 얼마나 되었다고.’
그렇지 않아도 부글부글 끓고 있던 속이 펑 하고 터져 버렸다.
세벨리아는 그대로 디하트의 이불을 침대 밑으로 던졌다. 그리고 방 안의 모든 창문을 활짝 열었다. 세찬 바람이 커튼을 밀어내며 방 안을 휩쓸기 시작했다.
“윽……!”
새벽녘의 서늘한 바람은 순식간에 각성향의 연기를 쓸어내 버렸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디하트는 신음을 흘리며 눈을 떴다.
금빛 찬란한 눈이 어둠 속에서 깜빡였다. 이윽고 해바라기가 태양을 쫓듯 자연스레 세벨리아를 향해 움직였다.
“벨라?”
몽롱한 얼굴에는 믿을 수 없다는 감정이 일렁였다. 느리게 눈을 깜빡인 그는 엉거주춤 일어나 그녀를 향해 손을 뻗었다.
“이상하다. 오늘은 꿈을 꾸지 않을 거라고 했는데. 아, 이럴 게 아니라 당신이 괜찮은지 보러 가야지, 맞아……. 워츠, 그 자가 뭐라고 했더라.”
세벨리아의 소매를 꼭 붙들고서 뭐라 웅얼웅얼대던 디하트는 점차 시간이 지나며 무언가 이상하다는 걸 깨달았다.
“…….”
조심스럽게 시선을 들어 올린 금빛 눈이 자신을 고요히 내려다보고 있는 푸른 눈동자와 마주쳤다. 동시에 무언의 깨달음이 디하트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설마.’
이건 꿈이 아니었다. 그녀는 환영도 아니었으며 유령도 아니었다. 섬뜩한 깨달음에 디하트의 등골이 떨렸다. 서늘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던 세벨리아가 갑자기 사과를 늘어놓았다.
“허락도 없이 이렇게 찾아와서 미안해요.”
그 담담한 목소리가 디하트를 더욱 공포에 몰아넣었다.
“무례한 건 알지만 달리 다른 방법이 없었어요. 시간을 다투는 일인 데다, 당신 말고는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없으니까.”
완전히 얼어붙은 디하트를 앞에 두고 세벨리아가 나지막한 어조로 말했다.
“혹시 내가 당신의 단꿈을 방해한 건가요?”
“아, 아니. 절대 아니에요. 그럴 리가 없잖아요.”
일부러 꿈을 꾸지 않으려고 각성향을 피워 둔 건데. 디하트는 뒷말을 삼키며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고요한 푸른 눈과 눈이 마주쳤다. 그 순간, 기묘한 위화감이 몸을 감쌌다.
그리고 디하트는 이를 악물었다. 제가 어떤 자세를 취하고 있는지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어쩐지, 어쩐지 뭔가 이상하게 느껴진다 했더니만! 그는 조심스럽게 세벨리아를 붙잡은 손을 내리며 입을 열었다.
“그보다 몸은 괜찮습니까?”
디하트는 몇 시간 전 손 쓸 도리 없이 쓰러진 세벨리아를 떠올리며 입술을 깨물었다. 다행히도 워츠의 진단은 단순한 탈진이었다. 아마도 능력을 지나치게 과용한 탓에 기력이 모두 소진된 것 같다고.
하지만 공포는 디하트의 안에서 쉬이 사라지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혹시라도 세벨리아의 신변에 무슨 일이 생길까 봐, 그녀의 목숨이 생사를 다투는 사이 자신은 또다시 아무것도 할 수 없을까 봐 각성향을 피웠다.
안온한 잠 따위는 세벨리아의 안전과 비교하면 아무런 가치도 없는 것이었다.
“갑자기 쓰러져서 다들 놀랐습니다. 클로드도, 깊이 후회하더군요.”
“아.”
세벨리아는 눈을 크게 떴다. 그러고 보니 아무 설명도 없이 쓰러져 버렸지. 각성향을 발견한 이후로 냉랭했던 그녀의 태도가 조금 누그러졌다.
“미안해요. 사실 넬리아를 만났을 때 예상치 못한 일이 생겨서 제 분신을 하나 만들었어요. 아마 그것 때문일 거예요. 갑작스럽게 많은 힘을 쓰느라…….”
“그렇게 된 거군요. 하아, 다행이네요.”
워츠의 진단과 같은 말에 디하트가 한숨을 내쉬었다. 이윽고 그는 세벨리아를 제 자리에 앉히고는 그 앞에 무릎 꿇고 앉았다. 몹시도 익숙한 흐름에 세벨리아는 눈썹을 치켜세웠다가 다시 내렸다.
“그래서 무슨 일입니까. 당신이 이 새벽에 달려올 정도면 분명 사소한 일은 아닐 테죠.”
금빛 눈동자가 진중하게 빛났다. 잠시 머뭇거리는 것 같던 세벨리아가 한숨과 함께 자초지종을 꺼냈다.
“어디서부터 이야기해야 할까요.”
“…….”
“그래요, 처음부터 이야기하는 게 낫겠죠. 사실 찻집에서 아버지가 넬리아를 시켜 저를 납치하려고 했었어요.”
“뭐라고요?”
금빛 눈동자에 하얀 줄이 죽죽 그어져 내렸다. 세벨리아가 다급히 그의 어깨를 붙들었다.
“흥분하지 마요, 디하트. 납치는 당연히 실패했어요. 지금 당신 앞에 앉아 있는 내가 가짜로 보여요?”
“그건……!”
“진정하고 이야기부터 들어요. 큰 소리 내지 말고요.”
세벨리아가 디하트의 어깨 너머를 흘긋 보고서 다시 그에게 시선을 돌렸다. 디하트는 왜 그녀가 문 쪽을 쳐다봤는지 이유를 알 수 없어 미간을 찌푸렸다.
“넬리아는 내 분신이 진짜 나인 줄 알고 그대로 저택으로 데려갔어요. 난 감각 공유를 끊지 않은 채 적당한 때를 기다리고 있었고요.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리더군요.”
잠시 뒤, 모든 이야기를 전해 들은 디하트는 비할 바 없이 흉포한 분위기를 온몸에 두른 채 침실 문을 열어젖혔다.
“어, 공작……님.”
그리고 일레이는 더없이 상쾌한 얼굴로 그를 맞이하려다 그 흉흉한 기세에 밀려 입을 다물었다. 뒤따라 나오던 세벨리아가 그를 힐끗 쳐다보고선 새침하게 디하트의 뒤를 따라 사라졌다.
“…….”
내가 잘못 판단한 건가. 침울하게 두 사람의 뒤를 바라보던 일레이는 이윽고 자신을 부르는 디하트의 목소리에 고개를 퍼뜩 들었다.
“멍청하게 서 있지 말고 가서 칼 어펜츠 씨를 집무실로 모셔 와라!”
“예, 알겠습니다!”
일레이는 금방 기운을 회복하고 복도를 질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