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fter I Died, My Husband Went Mad RAW novel - Chapter (107)
내가 죽고 남편이 미쳤다 (107)화(107/171)
오늘의 화끈한 소동이 하인들의 입에서 입으로 퍼져 귀족들의 귀에 들어가기까지는 한 시간이면 충분했다. 더불어 수도경비대장의 책상에 보고서가 올라가기까지는 딱 세 시간이 걸렸다.
“이게 말이나 되는 일인가!”
경비대장은 길길이 날뛰며 분노했다. 자칫하면 황실의 명예가 실추될 수도 있는 사안이라 그런 걸까. 방금 전까지 잡지를 뒤적이며 월급을 까먹던 모습과는 참 다른 모습이었다.
“너는 뭘 했어, 엉?!”
그는 당장 부관에게 인버네스 공작을 잡아들이라 명했다. 그러나 부관은 우렁찬 목소리와 함께 허리를 숙이는 대신 고개를 저었다.
“참으로 송구스럽습니다만 그건 불가능합니다.”
“자네 지금 뭐라고 했나!”
“공작은 한 번도 검을 뽑지 않았습니다. 그의 휘하에 있는 인버네스 기사단 또한 검집으로 경비대에 맞섰을 뿐, 발검한 이는 없었습니다.”
“……!”
검을 뽑지 않았다면 일단 모반 혐의를 억지로 덮어씌울 수가 없었다. 수도경비대장은 이를 갈며 머리에서 모반 혐의를 지웠다.
“하지만 권능을 쓰지 않았나. 황실 가족분들이 계신 수도에서 벼락을 쓰다니. 이건 황가에 대한 도전이라고 봐도 무방해!”
“아, 그것은…….”
애매한 얼굴로 부관이 말을 이었다.
“황실 정원수보다 오래된 나무가 감히 후작의 정원에 있는 걸 두고 볼 수 없어 불태웠다더군요. 그런 나무를 내버려 두는 거야말로 황가에 도전하는 것이나 다름없다며.”
수도경비대장은 이제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부관이 안타깝다는 듯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덧붙여 말씀드리자면 벼락을 맞은 경비대원들 모두 옷과 머리카락만 탔을 뿐, 상처는 경미합니다. 뭐, 정신적 충격 때문에 잠시 기절했지만 말입니다.”
“허, 허어……!”
“오히려 경비대와 맞선 기사들의 상해가 더욱 크더군요. 이 부분은 공작이 직접 수도 병동에서 떼어 온 진단서를 보시면 됩니다.”
수도경비대장은 입을 크게 벌리며 기함했다. 당장이라도 턱이 빠질 것 같은 얼굴을 바라보며 부관이 슬픈 목소리로 읊조렸다.
“심지어 공작은 납치된 벨라 어펜츠에 대한 수색을 집행하지 않은 경비대에 정식으로 서한을 보내왔습니다. 자신을 잡아들인다면 그 전에 경비대 전원이 먼저 옷을 벗을 각오를 해야 할 거라며…….”
부관이 디하트가 진작에 작성해 놓은 친필 편지를 슥 내보이며 말했다. 먹잇감을 낚아채는 독수리처럼 편지를 가로챈 경비대장이 이를 득득 갈며 편지를 읽었다.
요약하자면 웨든 후작이 납치한 벨라 어펜츠는 제 보호에 있는 소중한 손님인지라 피치 못하게 힘 좀 썼으니 대충 넘어가 달라는 말이었다. 덧붙여 목숨을 잃거나 피를 흘린 이도 없는데 괜히 트집 잡았다가는 일이 아주 귀찮아질 거라는 협박도 덤이었다.
“이, 이……!”
수도경비대장은 뒷덜미를 잡은 채 신음했다. 보아하니 증거부터 시작해 증인까지 완벽하게 섭외한 모양이었다. 이대로 인버네스 공작의 행실을 문제 삼았다가는 오히려 역풍을 맞을 게 분명했다.
결국 공작의 제안대로 서로 한 번씩 주고받았으니 사건을 덮는 게 최선이었다.
“북방의 개새끼가 내 집 안마당을 헤집는 꼴을 보고만 있어야 한다니……!”
이래서 북방 놈들을 제국에 편입시키면 안 되는 건데. 그러나 이제 와 지난 역사를 탓해 봤자 뭘 하겠는가.
“그럼 이만 물러나 보겠습니다.”
황제에게 뭐라고 변명하나 우울해하는 수도경비대장을 바라보던 부관은 고개를 숙이고 자리를 떠났다. 그의 입가에는 쌤통이라는 미소가 걸려 있었다.
* * *
디하트가 환영을 무사히 탈취해 돌아온 뒤, 저택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그를 기다리던 세벨리아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이에요.”
세벨리아는 바로 환영을 돌려보냈다. 한결 편안해진 그녀의 안색을 확인한 디하트는 즉시 자리를 떠났다.
충직하게 명령을 따르면서도 혼란스러운 눈을 숨기지 않던 기사들에게 상황을 대충 둘러대기 위해서였다.
‘하다못해 그 일레이마저 당황스러워했으니.’
분명 방금 전까지 함께 있는 걸 목격한 아가씨가 남의 집에서 나오다니, 심지어 납치되어 있었다니? 디하트 그 자신이 맞닥뜨린다 해도 몹시 납득하기 힘든 일이긴 했다.
디하트가 집무실을 나간 뒤, 세벨리아는 힘이 풀려 소파에 주저앉았다. 맞은편에 앉아 있던 클로드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정말 이걸로 괜찮아요?”
뜻 모를 소리였다. 세벨리아가 힘겹게 눈꺼풀을 들어 그를 응시하자 클로드가 미간을 좁히며 말했다.
“재판까지 가져갈 수 있는 일을 이대로 덮어도 괜찮냐는 말입니다.”
클로드는 아무래도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무리도 아닌가.’
세벨리아는 자신도 디하트와 함께 웨든 후작 저택으로 가겠다며 고집을 부리던 클로드를 떠올리며 작게 미소 지었다.
“너무 유하게 넘어가는 것 같아요. 벨라, 생각을 해 봐요. 그 작자는 당신이 백치가 될지도 모르는데 개의치 않고 그런 더러운 약물을 쓴 인간이에요.”
세벨리아가 생각에 잠겨 있는 동안 클로드는 착실하게 흥분하고 있었다. 어느새 붉어진 그의 얼굴을 본 세벨리아가 놀라 눈을 깜빡였다.
“클로드, 일단 진정해요. 설마 제가 아무 생각 없이 그랬을까요.”
“…설마 그들을 용서하겠다는 건 아니겠죠.”
“아니에요!”
“흠.”
새침한 얼굴로 팔짱을 낀 클로드가 그럼 어디 한번 들어 보자는 듯 턱을 살짝 들어 올렸다.
“그럼 도대체 무슨 생각인 겁니까. 황실에 탄원서를 보내고 그들을 고소하기는커녕 여기서 덮자는 편지를 쓴 저의를 한번 들어 보죠.”
세벨리아는 웃음이 터질 뻔한 걸 가까스로 막고 큼큼 헛기침을 했다. 표정을 갈무리한 그녀가 두 손을 깍지 끼며 진중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새벽에 들었듯 아버지가 절 필요로 하는 목적은 황제 대리를 세우기 위해서예요. 그리고 그건 다른 더러운 수 싸움 없이 제 능력으로 일황자를 후계자로 만들고자 함이겠죠.”
“아무래도 그럴 가능성이 크죠. 깔끔한 왕권 교체야말로 그들이 가장 바라는 일이니.”
고개를 끄덕인 세벨리아가 숨을 크게 들이쉬더니 손에 바짝 힘을 주었다.
“그래서예요. 이런 작은 일로 그들에게 제가 경계 대상임을 알리고 싶지 않았어요. 그들의 생각은 그저 운이 나빠 디하트에게 한 방 먹었다, 에서 끝나야 해요. 제가 그들의 속셈을 전부 간파한 게 아니라.”
“끝까지 얕보이고 싶다는 의미로군요. 그건, 납치된 게 환영이 아니라 당신이라는 걸 끝까지 믿게 하고 싶은 이유와 동일한 겁니까?”
“네.”
망설임 없이 튀어나온 대답에 클로드가 눈매를 좁혔다. 세벨리아가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다.
“절 필요로 하는 목적이 계승권 싸움인 이상, 아버지는 그 어떤 수를 써서든 다시 절 손에 넣으려 들 거예요. 그러니 지금 당장 그와 싸울 생각은 없어요.”
“…….”
“아버지 뒤에는 일황비와 그분의 세력이 있어요. 이제 적은 한 명이 아니에요. 아버지를 물리친다 해도 다른 이가 그 자리를 차지해 다른 방식으로 저를 노리겠죠.”
“일리 있는 말입니다.”
“그러니 제게도 준비할 시간이 필요하지 않겠어요?”
세벨리아의 말을 듣던 클로드의 눈에 알 수 없는 빛이 스쳐 지나갔다. 어쩐지 우울해 보이는 그 눈빛에 세벨리아가 의아해하던 순간이었다.
그녀의 뒤편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우리라고 해야죠, 벨라.”
“디하트.”
어느새 돌아온 디하트가 어딘가 뾰로통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요, 혼자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군요. 어쩐지 이 일을 덮자고 할 때부터 불안하다 싶더니만.”
한숨을 내쉰 디하트가 말을 이었다.
“그들과 맞서는 건 당신 혼자가 아니에요.”
세벨리아는 생각지도 못한 지적에 입을 달싹였다. 디하트는 눈매를 살포시 찡그리더니 성큼 다가와 그녀의 발치에 한쪽 무릎을 꿇어앉았다.
“또 무릎부터 꿇는 거예요?”
당황해서일까. 속마음이 그대로 튀어 나가 버렸다. 세벨리아가 입을 가리며 귀를 붉히자 디하트가 눈을 가늘게 뜨더니 그녀의 손을 붙잡으며 말했다.
“벨라, 내가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았다면 이런 말은 하지 않았을 거예요. 하지만 생각해 봐요. 이번만 해도 꽤 쓸만하지 않았나요?”
“…….”
“내게 기대 달라는 염치없는 부탁 같은 건 하지 않을게요. 애초에 내가 감히 그런 말을 할 위치도 못 된다는 건 잘 알고 있으니까.”
세벨리아가 깊은 눈으로 디하트를 응시했다. 그 푸르고도 넓은 호수 같은 눈을 바라보며 디하트가 말했다.
“오늘처럼 날 마음껏 이용해요. 언제든 피를 묻혀도 되는 도구처럼 다뤄요.”
“디하트.”
“그렇지만 이것만은 잊지 말아요.”
디하트가 그녀의 손에 뺨을 포개며 속삭이듯 말했다.
“나는 다른 누구도 아닌, 당신 손에 쥐어진 칼이예요.”
그러니 혼자라는 생각은 하지 말아요. 디하트의 서늘한 울림이 세벨리아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 * *
정원이 새카맣게 타고 대문이 반파되었던 웨든 후작 저택은 돈과 인력의 힘으로 어느새 예전의 모습을 복구했다.
허나 돈으로 집은 고쳐도 상처 입은 자존심은 고치지 못하는 법. 정신을 차린 네이튼은 침대에 누워 난동을 부리다 뒤늦게 도착한 사일러스의 눈총을 받아야만 했다.
“한심한 녀석.”
“아, 아버지.”
“너 자신을 희생해 공작을 붙들어 놓을 만한 용기는 없던 거냐.”
사태의 전말을 전해 들은 사일러스는 차가운 눈으로 네이튼을 내려다보았다. 겉으로는 꽤나 말짱한 그의 모습이 사일러스는 아쉬웠다.
‘적어도 팔다리 하나 정도는 날아갔어야 물고 늘어질 수 있을 텐데.’
쯧쯧 혀를 찬 사일러스는 엄살 부리는 네이튼을 싸늘하게 훑고 방을 나갔다.
‘이리 요란스럽게 일을 벌인다는 건 분명 세벨리아의 정체를 알아서겠지.’
디하트는 세벨리아의 정체를 알고 있을까, 에 대한 답은 오늘 일어난 소동으로 해결되었다. 세벨리아의 정체를 모른다면 결코 저지를 수 없는 미친 짓이었으니까.
“그럼 어찌한다.”
턱을 매만지던 사일러스가 눈매를 좁히며 창밖을 건너다보았다. 수도 랑그 엘리사의 제1구역, 그 이름도 찬란한 황궁이 우람한 몸체를 빛내고 있었다.
“흠.”
무언가가 떠오른 듯, 사일러스가 등을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