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fter I Died, My Husband Went Mad RAW novel - Chapter (114)
내가 죽고 남편이 미쳤다 (114)화(114/171)
“디하트?”
“벨라, 안 자고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겁니까?”
“저는 그냥…. 아니, 그보다 그건 제가 당신에게 물어야 할 질문 아닌가요?”
“아.”
디하트는 그제야 자신이 일언반구도 없이 저택을 떠났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게, 그럴 겨를이 없었습니다. 미안해요.”
“흐음.”
세벨리아는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하는 디하트를 바라보며 숄을 여몄다. 처음에는 잠을 못 자서 헛것을 보나 했다. 그도 그럴 게 지금 그의 모습이 너무 낯설었기 때문이다.
‘도대체 뭘 하다 왔길래…….’
언뜻 보기에 디하트는 평범한 도시 청년 같았다. 그러나 가까이서 살펴보면 평범한 의복으로 숨길 수 없는 야성적인 분위기가 그대로 드러났다.
거친 재질의 셔츠 사이로 보이는 탄탄한 가슴팍과 옷 위를 가로지르는 가죽 서스펜더. 투박한 갈색 구두 위로 드러난 발목은 한두 번 접어 올린 바짓단 때문에 오히려 더욱 두드러져 보였다.
어딜 보나 초과 근무에 시달리는 사무직 청년의 모습은 아니었다. 세벨리아는 도대체 이 꼴을 하고 어딜 다녀온 건지 심각하게 고민했다.
‘설마 말 못 할 곳을 다녀온 건가?’
세벨리아의 추측이 엄한 곳을 향하는 것도 모르고, 디하트는 걱정스러운 눈으로 세벨리아에게 다가갔다.
“그런데 벨라, 왜 직접 주방까지 내려온 거예요. 설마 악몽이라도 꾼 겁니까? 여기 있지 말고 방에 올라가 있어요. 따뜻한 게 필요한 거라면 내가 가져다줄 테니까.”
연약한 그녀가 이리 찬 곳에 오래 있다가 감기라도 걸리면 어쩌나. 방금 전까지 눈 한번 깜빡하지 않고 자신의 가신이었던 이를 혹독하게 심문하고 온 남자의 눈에 걱정이 넘쳤다.
“아직 새벽 공기가 차가워요, 응?”
그는 조심스럽게 세벨리아를 향해 팔을 뻗었다. 하지만 손이 닿는 일은 없었다. 디하트가 조심스럽게 그녀의 소매를 잡아 돌려세우려는데 세벨리아가 갑자기 그의 팔목을 붙잡았다.
생각지도 못한 급습에 디하트가 느리게 눈을 깜빡였다. 그사이 세벨리아는 그의 품을 파고들었다.
“어, 음. 벨라?”
세벨리아의 손은 어느새인가 디하트의 옷깃을 거머쥐고 있었다. 디하트는 입술을 깨물며 몸을 물리려 했으나 소용없었다. 그녀는 마치 한 몸이 되기를 바라는 것마냥 찰싹 붙어 코를 킁킁댔다.
‘역시.’
이건 피 냄새야. 혹시나 잘못 맡았나 했는데 아니었다. 디하트가 저도 모르게 뺨을 붉히는 사이 세벨리아는 슬슬 머리가 아파 오는 걸 느꼈다. 이 남자는 도대체 어디서 뭘 하다 온 건지.
“후우.”
“너, 너무 가까운데.”
몸 상태도 엉망진창인 주제에 어린애마냥 행방도 알리지 않고 누군가를 신나게 패다 온 게 분명한 디하트를 보며 세벨리아는 애써 침착함을 유지했다.
“솔직하게 대답해요. 지금까지 어디서 뭘 하다 온 거예요.”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맞부딪혔다. 짧지도 길지도 않은 시간, 무언의 대치가 이어지고 디하트가 먼저 항복했다. 투명한 금빛 눈동자에 우울한 그림자가 얼룩지더니 곧 긴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서 할 만한 이야기는 아닌 것 같습니다.”
다시 한번 그의 멱살을 잡아 끌어당기려는 걸 막으며, 디하트가 세벨리아의 퀭한 눈 밑을 걱정스럽게 바라보았다.
“궁금한 것 모두 다 이야기해 줄 테니 일단 한숨 자고 와요. 걱정하지 말아요, 도망치지 않을 테니까.”
그럴 여유도 없고, 짧게 덧붙인 디하트가 붙잡힌 멱살을 빼고 세벨리아의 어깨를 그대로 잡아 돌렸다. 세벨리아는 무척이나 불만스러운 얼굴로 그의 손아귀에서 빠져나오려 했으나 한숨도 자지 못한 몸은 명령에 따라 주지 않았다.
“정말로 다 말해 줘야 해요…! 혹시나 내가 자는 사이 어떻게 숨기려 들어 봤자 소용없어요. 당신이랑 일레이 경이 같이 사라졌다는 거, 다 아니까.”
침실로 돌아가는 와중에도 세벨리아는 꿋꿋하게 진실을 요구했다. 자꾸만 감기려는 눈을 부릅뜨며 부리는 고집에 디하트는 자신의 패착을 순순히 인정했다.
커피고 뭐고 여유 부릴 게 아니라 그대로 욕실부터 직행했어야 하는 것을. 그랬다면 적어도 로덴과 그렌에 대한 건 이야기하지 않을 수 있을지도 몰랐을 텐데.
‘이미 늦었나.’
신경 쓸 거리를 더 늘려 주고 싶지는 않았는데. 돌아서는 디하트의 잇새로 침음이 흘러나왔다.
* * *
그로부터 수 시간 뒤, 땅을 적시는 여우비와 함께 아침이 밝았다. 촉촉해진 정원을 한 바퀴 산책한 클로드는 디하트의 부름에 고개를 기울였다.
“당장 집무실로 와 달라고요.”
“예, 친구분과 함께 와 달라는 전언이십니다.”
일레이가 워츠를 콕 집어 말하자 클로드의 얼굴이 미묘하게 변했다.
‘갑자기 워츠는 왜?’
대외적으로 워츠는 한때 광증에 빠졌던 디하트를 치료한 의원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자신은 그의 동업자이자 광증에 빠진 디하트를 발견, 제때 치료할 수 있게 도운 은인으로 행세하고 있고.
하지만 그건 죄다 세벨리아가 디하트의 곁에 머물 구실을 위해 꾸며 낸 말들이었다. 그래서 워츠는 웨든 후작을 물리치기 위한 계획에 참여하기는커녕 자기도 모르게 혹여나 관여될까 거리를 두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워츠가 필요하다니.’
클로드는 대충 일이 어떻게 된 건지 알 것 같았다. 그래서 그는 일레이를 붙잡아 구태여 이유를 묻거나 하지는 않았다. 어제저녁, 세벨리아가 약물에 관해 알아볼 필요가 있다며 의욕을 불태우는 걸 보았기 때문이다.
“날 불렀다고?”
“그래. 이제 더 이상 너 혼자 모른 척하게 내버려 둘 수는 없는 모양이야.”
“아무래도 상관없건만.”
워츠는 떨떠름한 얼굴로 클로드의 뒤를 따라 집무실로 들어섰다. 그리고 그곳에 미리 와 있었던 세벨리아를 발견했다.
“역시 먼저 와 있었네요.”
클로드는 반갑게 인사했다. 하지만 세벨리아는 듣지 못한 것 같았다. 심각한 얼굴로 고민에 빠진 그녀를 본 클로드가 멋쩍게 턱을 긁었다.
“분위기가 심각한 걸 보니 심상치 않은 일이 생긴 건 분명하군.”
아무래도 웨든 후작이 가지고 있다는 그 약물보다 더 심각한 일이 생긴 모양이다. 클로드가 긴장하며 자리에 앉자 워츠 또한 그 옆에 자리 잡았다.
“그래서 어떻게 된 일이지?”
클로드가 제게는 시선 한번 돌리지 않는 디하트를 바라보며 말했다. 삼촌을 불러 놓고 아는 척은커녕 인사조차 안 하는 게 무척이나 제 조카다웠다.
“아.”
죄인이라도 된 것마냥 입술을 잘근거리던 디하트는 그제야 클로드에게 고개를 돌렸다.
“일단 흥분하지 않겠다고 약속하고 들어.”
“무슨 일이길래 그런 조건을 다는 거야?”
디하트는 마른세수를 하더니 로덴으로부터 친절히 얻어 낸 사실을 곡해 없이 전달했다. 모든 이야기를 들은 클로드는 아주 침착한 태도로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했다.
“워츠, 내 청력에 이상이 생긴 모양인데 이따가 진찰 좀 해 줄 수 있나?”
“…네 귀에는 아무런 이상도 없을 텐데. 그래도 정 걱정이 된다면 수도에 머무르고 있는 정신과 의원을 연결해 줄 수는 있어.”
아무래도 현실 도피를 하고 싶어 하는 것 같으니 말이야. 워츠의 차갑고 냉정한 진단에 클로드는 더 이상 현실을 거부하는 걸 포기했다.
그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타들어 가는 듯한 목소리로 신음했다.
“그렌, 그 미친 여자가 도대체 언제부터 그런 더러운 짓을……!”
믿을 수 없었다.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자신은 이제껏 도대체 무엇을 한 걸까?
클로드는 선대 공작을 죽였다는 혐의를 받고 수배 명령이 떨어진 뒤 단 한 번도 인버네스로 돌아가 자신의 무죄를 밝히려 들지 않았다. 그건 자신의 잘못으로 가족을 함정에 빠트렸다는 죄책감 때문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디하트를 위해서이기도 했다.
그렌과 라쉬의 보살핌 아래서 건강하게 자라날 그를 위해, 그날의 끔찍한 악몽을 다시 불러일으킬 자신이라는 존재를 영원히 어둠 속에 묻고자 했다.
하지만 그가 믿어 왔던 현실은 달콤하게 꾸며 낸 거짓이었다. 그렌은 오래전부터 계획적으로 디하트에게 부작용이 심한 약을 먹여 왔다. 그로 인해 그녀가 얻어 내고자 한 것이 무엇인지는 몰라도… 한 가지는 확실했다.
자신이 로잘린을 찾아 허송세월하는 동안 디하트는 자신을 죽이려 드는 자들 사이에서 겨우 살아남았다는 것.
‘어떻게 감히 힐렌드 홀에서, 다른 사람도 아닌 한 가족이 그런 추악한 짓을……!’
클로드는 극심한 자괴감과 충격에 빠져 신음했다. 워츠는 그런 그를 안타까운 눈으로 지켜보다 디하트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는 제가 겪어 왔던 고통이 실은 그렌에 의한 것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음에도 크게 충격받지 않은 것 같았다.
‘이미 알고 있었던 건가? 아니면 클로드처럼 현실을 외면하거나 마음을 가라앉힌 건가.’
그러나 워츠는 제 생각이 틀렸음을 곧 깨달았다. 흔들림 없는 그의 시선과 태도는 현실 도피나 굳건한 마음에서 비롯된 게 아니었다.
그에게 중요한 건 자기 자신이 아닌 세벨리아였다. 태양처럼 강렬히 빛나는 두 눈동자는 그녀에게서 조금도 떨어지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 그의 모든 건 세벨리아를 위해 존재하는 것마냥 온 신경을 그녀에게 쏟고 있었다.
손등에 돋아난 굵은 힘줄도, 당장이라도 자리에서 뛰어오를 듯 긴장된 허벅지도. 디하트는 마치 세벨리아에게서 그렌의 목을 가져오라는 명령이 떨어지면 당장이라도 칼을 뽑아 들고 북부로 뛰어들 것처럼 숨을 고르고 있었다.
그러니 그렌이 그에게 해 온 짓이 무엇이든, 사실 그녀가 그를 죽이려 했던 그건 그다지 큰 고민거리가 아닌 것이다.
중요한 건 세벨리아가 웨든 후작의 계획에 그렌이 엮여 있다는 사실에 어떻게 반응할지, 그것뿐.
워츠가 그 소름 끼치는 사실을 깨닫기 무섭게 세벨리아가 고개를 들었다. 아주 작은 몸짓이었으나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세 남자는 자석에 이끌리듯 그녀에게 시선을 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