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fter I Died, My Husband Went Mad RAW novel - Chapter (118)
내가 죽고 남편이 미쳤다 (118)화(118/171)
“아아아악!”
“아…….”
왼쪽에는 차가운 강물이 흐르고 오른쪽에는 왁자지껄한 술집의 풍경이 머물렀다. 잔을 부딪치는 등 온갖 소음들이 정신을 어지럽게 했다. 흰 눈이 내려 고개를 들어 보니 골목길이 거꾸로 서 있었으며, 바닥에는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늪이 발목을 삼키고 있었다.
마치 각기 다른 화가의 그림을 가져다 한데 엉망진창으로 섞어 놓은 듯한 광경. 지옥을 통째로 옮겨 놓은 것 같은 환상 속에서 사람들은 저마다의 악몽을 마주했다.
[내 눈을 똑바로 봐. 왜 자꾸 고개를 돌려? 당신이 나를 죽였잖아. 내게 약을 먹이고 직접 목을 매라고 명령했잖아!] [오랜만이네, 응? 다시 만나서 기쁘지 않아? 내 얼굴이 기억나지 않아? 나는 아직도 기억나. 내게 ‘강물에 빠져’라고 한 목소리가, 물에 빠진 순간 들린 웃음소리가. 이걸로 또 두둑한 보상을 받겠다며 웃던 그 목소리가!]“미안해, 미안하다고!”
“이 빌어먹을 년들이 왜 나한테 그래. 난 억울해, 억울하다고! 난 그저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야!”
네이튼과 함께 무고한 여인들을 농락하고 그들을 죽여 온 하인들. 그들은 제 발목을 붙잡고 어깨에 올라타 저주의 말을 속삭이는 시체들을 떼어 놓기 위해 발버둥 쳤다.
[죽어, 죽어, 죽어.] [당신도 함께 가자. 저 차가운 강물 아래로, 함께 가라앉자!]“꺄아아아악! 이거 놔, 놓으라고!”
추악한 과거에 발목을 붙잡힌 건 어머니인 척했던 중년 여인도 마찬가지였다. 그녀의 발치에 달라붙은 이들은 기사들과 달리 남자도, 어린아이도 있었으나 모습은 하나같이 동일했다.
그들은 눈이 도려진 채 시커먼 피를 흘리며 그녀를 저주하고 있었다.
“아…….”
환영과 결계 주술이 얽힌 지옥도의 한복판. 세벨리아는 금세 이곳이 연구소의 주위를 감싼 결계와 비슷한 공간이 되었음을 깨달았다.
“미안해요. 미안해요. 나도 그러고 싶지 않았어……!”
환영에 잡아먹힌 이들 중 누군가는 울며 용서를 빌고, 누군가는 분노하며 주먹을 휘둘렀다.
그리고 세벨리아는 섬뜩한 깨달음에 탄식을 흘렸다.
“이거였구나.”
나만이 펼칠 수 있는 환영술은 바로 이거였어.
생각해 보면 단서는 아주 예전부터 있었다. 바로 연구소에서. 왜 그날의 일을 잊고 있었을까. 세벨리아는 팔을 감싸 안으며 눈을 질끈 감았다.
무모하게 뛰쳐나가려는 클로드를 말리던 순간 울창한 숲으로 변해 버린 복도. 부서진 마차의 잔해가 여기저기 널린 채 비가 내리던 그 우울한 숲.
그때 클로드는 끔찍한 것을 마주한 듯 크게 놀라며 정신을 잃었다. 이제 와 생각해 보니 그것은 아마도…….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 이었겠지.’
세벨리아는 탄식했다. 다시 한번 제 능력이 어떤 것인지 피부로 와닿았다. 아마도 그건 사람의 내면 깊숙한 곳에 묻혀 있는 기억을 불러일으켜 환영으로 현현시키는 것.
‘이게 내 특기였구나.’
며칠 밤낮을 새며 공을 들일 때에는 실마리조차 잡히지 않았던 특기가 절체절명의 순간 꽃을 틔우다니. 세벨리아는 허탈함에 웃음을 흘리다 곧 상황을 자각했다.
“…네이튼.”
그를 붙잡아야 했다. 그녀는 악쓰며 주위를 나뒹구는 하인들을 무시하고는 방 안을 살폈다. 그리고 곧 창문 손잡이에 매달려 악을 쓰는 그를 발견할 수 있었다.
“비천한 것들이 감히 누구에게 억하심정을 품고!! 처음부터 제 분수를 자각했다면 그런 일은 없었을 게 아니냐. 이 주제도 모르는 것들이!”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 대는 네이튼을 열 명이 넘는 여인들이 둘러싸고 있었다. 세벨리아는 그들의 정체를 쉬이 추측할 수 있었다.
‘네이튼에게 농락당한… 한때는 그와의 행복한 앞날을 꿈꾸며 행복해했을 불쌍한 여인들이구나.’
그들은 저마다의 분노와 슬픔, 애증을 삼키며 네이튼을 향해 손을 뻗었다.
“아아악! 살려 줘, 살려 달라고! 당장 이 문 열어!”
네이튼은 발작하며 창문을 두들겼다. 그러나 그가 세벨리아를 붙들어 놓기 위해 설치한 부적의 효과가 너무 강했던지 창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신은 노력하는 자를 버리지 않는다고 했던가.
세벨리아의 강력한 환영술에 결계의 힘이 눌리기 시작했다. 바닥을 빛내던 문양이 점점 희미해졌다. 곧 삐걱이는 소리와 함께 창문이 덜그럭거렸다.
손가락 한 마디 정도의 틈과 함께 바깥의 찬바람이 네이튼의 뺨을 스쳤다. 그가 환희에 가득 찬 비명을 내지르며 창문을 활짝 열어젖힌 순간이었다.
“이거 무척이나 끔찍한 광경이로군.”
귀에 꽂혀 들어오는 나른한 목소리와 특유의 비꼬는 듯한 어조. 그건 분명 이 방 안에 없어야 할 존재의 것이었다.
“웨든 소후작. 이 불쾌한 상황에 대해 설명해 줄 수 있겠나?”
활짝 열린 문 가운데 이황자 샤테이안이 서 있었다. 네이튼은 삐걱대는 창문을 등진 채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
이성을 잃은 그는 깨닫지 못했지만, 결계의 주술이 깨지면 열리는 건 창문뿐만이 아니었다.
“어…. 어어.”
네이튼이 얼빠진 얼굴로 넋을 놓은 사이, 복도를 가득 메운 귀족들이 방 안을 들여다보며 비명을 내질렀다.
“저, 저건… 말도 안 돼. 릴리아, 릴리아!”
“어머니, 아니죠? 지금 저기 서 있는 사람이, 그 애일 리가 없어요. 그렇죠? 제가 잘못 본 거라 말해 주세요, 어머니!”
그들의 비명은 끔찍한 것을 목도했을 때 사람들이 본능적으로 내지르는 고함이 아니었다. 그보다 더 깊고 개인적인, 그리하여 듣는 사람들의 마음에 같은 모양의 상흔을 남기는 비통한 외침이었다.
그렇게 사람들은 갑자기 실종된 그들의 소꿉친구, 과거의 연인, 홀로 마음에 품었던 상대를 생각해 본 적 없는 형태로 맞이했다.
[나를 사랑한다고 했잖아요!]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만나고 당신을 포기하려 했는데… 그랬는데…….] [처음부터 날 가지고 놀 생각이었지, 이 쓰레기! 죽어, 죽어 버려!]그들이 네이튼의 이름을 외치며 저주를 퍼붓는 광경을 지켜보는, 악몽 같은 무대의 관객으로서.
* * *
아수라장은 그 후로도 한참이나 수습되지 못했다. 통곡하는 소리, 현실을 부정하며 비명을 내지르는 사람들.
그리고 개중에는 빠르게 이성을 되찾고 행동에 나선 사람들이 있었다.
“그래, 저자야. 웨든 소후작. 왜 생각을 못 했을까. 몇 달 전 계속 릴리아의 곁을 맴돌던 게 저자인데……!”
“책임은 모두 제가 지겠습니다, 황자님. 제발, 단 하루만이라도 그를 지하감옥에 투옥시켜 주십시오!”
“흐음.”
샤테이안은 눈을 접으며 웃었다. 어떻게 할까. 그는 입꼬리를 올리며 사람들을 훑다 뺨을 뚫어 버릴 듯 강렬한 시선을 느꼈다. 디하트였다.
“공작. 할 말이 있다면 하세요.”
“제가 아니라 그녀가 할 겁니다.”
디하트는 조심스럽게 세벨리아를 부축하며 사람들 사이로 나아갔다. 세벨리아는 당장이라도 쓰러질 듯 어지러운 몸을 붙들고 고개를 치켜들었다.
푸른 눈동자는 귀기 어린 듯 영롱하게 불타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제야 방 안에 있던 게 네이튼 한 사람만이 아니었다는 걸 깨달았다.
“네이튼 웨든을 납치 감금 및 살인 미수 혐의로 황실 지하 감옥에 투옥시켜 주시길 청합니다, 전하.”
“지나친 요구로군, 벨라 어펜츠 양. 그런데 내가 왜 그래야 하지? 그대의 주장에는 어떠한 근거도 없어. 만약 저것들을 그 근거라 가져온다면 글쎄… 이 세상에 떠도는 모든 귀신을 법정으로 불러들여야겠군.”
샤테이안이 점점 흐려지기 시작하는 환영들을 응시하며 말했다.
“처음부터 그들을 법정에 출두시킬 생각은 없었습니다.”
흐리게 웃으며 하는 말에 샤테이안의 눈에 이채가 흘렀다.
“그럼 뭐지?”
“삼촌, 테이블 위에 있는 찻잔과 찻주전자를 가져와 주세요.”
그녀의 말에 숨죽인 채 상황을 주시하던 클로드가 움직였다. 그는 귀곡성을 울리는 환영들을 가뿐히 뛰어넘어 방 안에서 찻잔과 찻주전자를 가져왔다.
“네이튼 웨든이 제게 대접한 차입니다. 그리고 이 차에 들어간 건 제국에서 금지한 약재를 넣어 만든 새로운 종류의 자백제죠.”
세벨리아는 그렇게 말하며 클로드로부터 작은 크리스털 약병 두 개를 받아 들었다. 하나는 무색투명했으며 다른 하나는 푸른색이었다.
“그래서 그걸로 어쩌겠다는 건가.”
샤테이안은 점점 흥미진진해지는 상황에 웃음을 감추며 물었다. 세벨리아는 생각보다 제게 순순히 협조해 주는 샤테이안의 반응에 조금 의아했으나 계획한 대로 일을 진행했다.
“둘 모두를 저기 쓰러져 있는 하인 중 한 명에게 먹여 그 효과와 증상을 확인해 주십시오. 그리하면 그가 제게 먹이려던 자백제의 위험성과 이것이 백성들에게 퍼질 시 나타날 파장을 느낄 수 있으실 겁니다.”
샤테이안은 일부러 뜸을 들였다. 고개를 기울이며 고민해 보는 척 시간을 끌자 뒤편에서 낮게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네가 안 하면 내가 할 거야.”
제게만 들리는 발라크의 속삭임에 샤테이안은 결국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어쩔 수 없군. 놀리는 것도 여기까지인가.
샤테이안이 손을 내저으며 명령했다.
“어펜츠 양의 말대로 해라. 단, 그것이 이 지옥도를 설명해 주지는 않으니 어펜츠 양은 따로 나를 찾아와 이 참상에 대해 증언을 해야 할 것이다.”
그날, 네이튼 웨든은 샤테이안 이황자에 의해 황실 지하 감옥에 투옥되었다. 사일러스가 그 소식을 접했을 때는 이미 한발 늦은 뒤였다.
* * *
“딜리언, 어떻게 좀 해 줘요. 당신 동생이 내 오라버니를 감옥에 가뒀어요. 아무 증거 없이 무고한 사람을 그 흉악한 곳에 감금시켰다고요!”
넬리아의 째지는 듯한 목소리가 방을 울렸다. 계획이 실패한 걸 알고 일찌감치 그녀를 데리고 그곳을 빠져나온 딜리언은 눈살을 찌푸렸다.
“상황을 지켜보는 수밖에는 없습니다.”
“도대체 언제까지요?”
넬리아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날, 지옥도를 목도한 귀족들은 네이튼을 바라보던 눈빛 그대로 넬리아를 바라보았었다.
생전 처음 받아 보는 따갑고 차가운 멸시와 비난의 눈빛에 넬리아는 큰 충격을 받았다. 그녀를 더욱 억울하게 만든 건 그들이 제대로 된 증거 하나 없이 자기 가족을 가해자로 몰아갔기 때문이다.
“지금이라도 밝히면 되잖아요. 그 애가 거짓으로 환영을 만들어 내 우리를 음해하고 있다고 성명을 내면 되는데, 왜 막는 거예요?”
“미치겠군. 네이튼 웨든은 벨라 어펜츠에 대한 납치 및 살인 미수 혐의로 현장에서 잡힌 거야. 도대체 몇 번을 설명해야 알아들을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