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fter I Died, My Husband Went Mad RAW novel - Chapter (119)
내가 죽고 남편이 미쳤다 (119)화(119/171)
“지금 나한테 소리 지른 거예요?”
믿기지 않는다는 듯 넬리아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딜리언이 버럭 화를 내며 고개를 치켜들었다. 가식적인 태도를 모두 집어치운 그는 성난 무뢰배나 다름없었다.
“그래, 지금 화를 내야 할 건 당신이 아니라 나니까!”
“뭐, 뭐라고요?”
“처음부터 호언장담하지 말던가. 아니면 제대로 된 대비책을 세워 놓든가 했어야지. 주술사 놈들을 비장의 카드라며 데려왔을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는데!”
“왜 이제 와서 내 탓을 해요? 그때는 당신도 좋은 계책이라고 했잖아요!”
“목표물의 능력도 정확히 알지 못하고 부득불 밀어붙인 주제에 뭘 그리 잘했다고 아득바득 소리를 지르는 거야. 지금 제일 곤란한 건 나라고, 나!”
딜리언이 탁자를 쾅쾅 내리치며 소리쳤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모습에 넬리아는 저도 모르게 입을 떡 벌렸다.
이 남자가 정말로 제게 달콤한 말을 속삭이던 그 남자와 동일 인물인가? 그녀는 정신이 아찔해졌다.
“그 자리에서 직접 시약을 들고나와 감식하는 걸 보고도 깨닫지 못한 건가? 그들은 처음부터 우리의 계획을 전부 알고 있는 거였어!”
현장에서 발견된 찻잔과 찻주전자 안에 섞인 약물에는 사람의 심신을 해치는 강력한 자백제가 섞여 있었다. 일부러 지난번보다 더욱 효과를 증폭시킨, 그래서 위해성을 부정할 수 없는 독극물이 된 약물.
그건 빼도 박도 못할 물증이었다.
“그래서 지금 나한테 화내는 거예요? 진심으로?”
넬리아가 밭은 숨을 터트리며 물었다. 그 모습에 딜리언은 진절머리가 날 지경이었다. 그동안 어머니의 조언에 따라 다정한 척 흉내를 내던 세월이 아깝게 느껴질 정도였다.
“더 이상 말 섞을 가치를 못 느끼겠군. 영애를 방으로 데려가라. 진정될 때까지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해.”
“이 손 놔! 딜리언, 딜리언! 당신이 어떻게 나한테 이래요? 딜리언! 이대로 날 내보내면 후회할 거예요. 당신이 사과하러 와도 받아 주지 않을 거라고요!”
넬리아는 끝까지 악을 지르며 끌려 나갔다. 딜리언은 머리를 짚으며 신음했다.
“죽일 수도 없고, 그대로 내버려 두기엔 위험성이 너무 크고… 젠장. 아주 제대로 물렸군.”
쾅! 탁자가 바닥을 굴렀다.
* * *
어찌 되었든 일황비는 네이튼을 그대로 버릴 수 없었다. 그를 아깝게 여겨서가 아니었다.
네이튼을 그대로 버린다면 그의 아버지인 웨든 후작이 가만히 있지 않을 터. 그가 마음을 바꿔 먹고 황제를 바꿔 치우려 했다는 계획을 고발한다면 일이 골치 아파진다.
결국 일황비파는 슬금슬금 네이튼을 구명하기 위해 움직였다. 그들의 주장은 대체로 세벨리아의 능력을 이상한 사술로 몰아가는 방식이었는데, 피해자의 친구 중 대귀족이 섞여 있어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았다.
그는 세벨리아의 능력이 사술이든 아니든 중요한 건 그게 아니라며 강경하게 나섰다. 가장 우선시 되어야 할 것은 바로 피해자들을 찾아내는 것이라며 으름장을 놓은 덕에 디하트는 뜻대로 움직일 수 있었다.
“어펜츠 양이 짚어 준 곳에서 정말로 실종된 영애들의 시신을 찾았답니다.”
세벨리아는 환영들을 법정에 출두시키지 않겠다고 말했지, 범인들을 가만히 내버려 두겠다고는 말한 적 없었다. 그녀는 네이튼이 끌려가는 걸 확인하자마자 방 안을 가득 메운 풍경을 유지하기 위해 온 힘을 쏟았다.
[저곳들, 저 장소들을 찾아야 해요. 그곳에 그녀들이 있을 거예요.]그날, 세벨리아는 그 말을 남기고 그대로 쓰러졌다. 그녀를 받아 든 디하트는 그녀의 명령을 충실히 이행했고 그 결과가 바로 이것이었다.
“그리고 그때 잡아들인 웨든 후작가의 하인들에게서도 자백을 받아 냈습니다. 대조 결과 하인들의 증언과 시신이 발견된 위치, 상흔이 일치합니다.”
루드밀이 수도경비대장이 올린 보고를 읊었다. 경비대장은 미해결 사건의 실마리를 잡아서인지 이곳저곳 날뛰며 사건을 착실히 파헤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피해자의 가족들과 그들의 친지들이 네이튼 웨든에 대한 처벌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습니다.”
루드밀의 보고가 끝나고, 샤테이안은 깍지 낀 손에 턱을 얹은 채 눈을 깜빡였다. 그는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는 것 같더니 툭 하고 물었다.
“폐하께서는 뭐라 하셨지?”
“…그것이.”
루드밀이 살짝 인상을 찡그리더니 마지못해 말한다는 태도로 입을 열었다.
“시신을 찾았다는 보고가 올라오기 전에는 이 사건을 딜리언 황자에게 일임하려 하셨습니다.”
“일황비가 꽤나 애를 썼나 보군.”
“예, 뭐. 그래도 이제 사건이 벨라 어펜츠 양의 납치, 살인 미수에서 연쇄 살인으로 커졌으니 그들도 함부로 움직이지 못하겠지만요.”
단순히 피해자의 수가 많아졌다고 끝날 일이 아니었다. 이제 사람들은 웨든 후작가를 주시하기 시작했다. 덩달아 그들과 긴밀한 사이인 딜리언 황자와 일황비, 그리고 동부 귀족들까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그건 일황비 측에겐 더할 나위 없는 악재였다. 이제 그들은 어떻게든 네이튼의 입을 막고 사건을 은폐하기 위해 애써야 하리라.
‘물론 그럴 시간 따위는 주지 않을 거지만.’
만족스레 웃은 샤테이안이 탁자를 툭툭 내리치며 말했다.
“감옥의 경비를 두 배로 늘려. 그리고 네가 좀 더 힘써 줘야겠다, 루드밀. 네 무시무시한 환영들로 우리 소중한 죄인을 지켜 드려야지.”
“…예.”
자신을 알차게 써먹는 이황자를 살짝 노려본 루드밀이 내내 침묵 중인 진짜 주인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하아…….”
긴 의자 위에 흘러내리듯 누운 발라크의 입에서는 한숨이 끊이지 않았다.
전시회가 열린 그 날부터 그는 계속 저 상태였다. 사촌 동생을 직접 구해 내지 못해서인지, 아니면 그날의 참상에 충격을 받아서인지는 모르겠지만.
“후회도 그 정도면 꼴사나울 정도야, 발라크.”
“…….”
“애초에 그녀가 자네에게 도움을 청한 적도 없잖아. 혼자서 투지를 불태우고 자책하는 꼬락서니라니, 애쉬렌트의 이름이 울겠군.”
샤테이안의 일갈에도 발라크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어쩌자고 저런 놈을 친구로 둬서. 샤테이안이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루드밀은 주인 놈의 꼴을 도저히 볼 수 없어 떠난 뒤였다.
“어디서 굴러먹다 온 노숙자 꼴로 사촌 동생을 만날 셈이라면 말리진 않지. 자네를 소개하는 내 체면은 땅바닥으로 처박히겠지만 뭐, 그걸 바란다면야.”
“지금 뭐라고 했나?”
벌떡 일어난 발라크가 그 비싼 입을 드디어 열었다. 샤테이안이 헛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내저었다.
“나 참, 정말로 잊고 있었군. 그날 그 자리에 자네도 있었잖아. 설마 그 한심한 죄책감 때문에 기억에서 지워 버린 건가?”
샤테이안이 한심한 눈으로 발라크를 바라보았다. 그가 손가락을 치켜세우더니 일 더하기 일을 가르치는 선생님처럼 말했다.
“벨라 어펜츠는 네이튼 웨든에 의해 납치당할 뻔한 피해자라는 것 외에 다른 혐의가 있어. 동부 귀족들의 입을 빌리자면 ‘네이튼을 음해하기 위해 벌인 괴상한 짓’ 말이지. 그녀는 그게 사술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기 위해 가장 먼저 책임자인 날 설득해야 해.”
“……!”
“즉, 자네는 새벽마다 인버네스 저택 앞을 서성거릴 필요가 없었다는 말이야.”
그간의 행적을 들킨 발라크의 목덜미가 빨갛게 달아올랐다. 샤테이안은 피식 웃더니 문을 가리켰다.
“자, 이제 돌아가서 그 몰골부터 어떻게 좀 하게. 비록 영웅이 되어 만나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가장 멋진 모습을 보여 줘야 하지 않겠나.”
발라크는 그 말을 듣더니 말없이 문을 박차고 나갔다. 졸지에 혼자 남겨진 샤테이안이 어깨를 들썩이며 웃음을 참았다.
* * *
수도를 휩쓰는 최악의 스캔들에서도 유독 조용한 곳. 폭풍의 중심처럼 휘몰아치는 사건의 당사자가 머무는 인버네스 저택.
그곳에서 세벨리아는 며칠째 능력 남용에 따른 후폭풍에 시달리고 있었다.
“윽…….”
오늘도 시작이네. 세벨리아는 머리를 부여잡으며 신음했다. 머리를 쪼개는 듯한 통증과 배 속에서부터 끓어오르는 열기가 몸을 홧홧하게 달구었다.
“세상에, 도대체 언제까지 이 모양일까요?”
전시회 날로부터 이제 나흘이나 지났는데 계속 이 모양이라니. 의자에 몸을 기댄 세벨리아가 지친 목소리로 혼잣말을 했다.
그러자 차가운 물을 가지고 들어서던 클로드가 눈살을 찌푸리며 답했다.
“그러게요. 생각보다 심하네요. 아무리 그래도 이 정도일 줄은 몰랐는데.”
약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였다면 차라리 좋았을 텐데, 이건 자체회복력에 기대야 하는 일이었다.
“여기, 마셔요.”
“고마워요.”
들끓는 속을 달래기 위해 연신 차가운 물을 마시는 세벨리아를 보며 클로드는 혀를 찼다.
“능력이 너무 출중해도 문제네요.”
“아하하.”
“그렇게 웃지 말아요, 벨라. 하아. 그때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요?”
웬만한 환영술사들을 압도할 정도의 능력인 줄은 알았지만 설마 그런 걸 만들어 낼 줄이야. 솔직히 말하자면 그때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오는 줄 알았다.
“뭐…. 그래도 잘 해결됐으니 다행이죠.”
세벨리아가 살짝 웃으며 의자 위로 늘어진 팔을 끌어당겼다. 그러자 손등 위에 포개져 있던 파란 새가 포르르 날아올랐다.
“에티라.”
피잇!
이름이 불린 게 기뻤는지 파란 새는 꽁지깃을 세우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 모습이 무척이나 귀여워 클로드는 저도 모르게 잔잔한 미소를 지었다가 바로 정색했다.
“그것도 혼나야 할 일인 거 알죠?”
“으음…….”
“열이 펄펄 끓는 와중에 이름이 떠올랐다며 바로 환영마를 자각시키다니. 솔직히 말해요, 벨라. 나을 생각이 없는 거죠?”
“그럴 리가요.”
클로드의 억측에 세벨리아가 푸스스 웃음을 흘렸다. 그건 정말 우연이었다. 특기를 자각한 순간 세벨리아는 저항할 수 없는 힘의 격류에 휩쓸렸고, 그 안에서 파란 새의 이름을 깨달았다.
에티라. 그것이 세벨리아의 하나뿐인 환영마의 이름이었다.
“그나저나 얼른 몸이 회복되어야 할 텐데요…. 이제 슬슬 제가 환영술사라는 걸 밝힐 때도 되었고.”
세간에 돌아다니는 소문을 떠올리며 세벨리아가 한숨을 내쉬었다. 저주받은 능력, 불경하고 더러운 힘 등등. 일황비파는 네이튼의 결백을 주장하기 위해 제 능력을 깎아내리고 있었다.
“아, 그렇지 않아도 황실에서 서신이 왔어요.”
클로드가 품에서 봉투를 꺼냈다. 앞면에 샤테이안 이황자의 이름이 멋들어지게 새겨져 있었다.
‘그러고 보니 찾아오라 했었지.’
그럼 이건 소환장인가. 그러나 편지 안에 적혀 있는 건 세벨리아의 예상과는 다른 내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