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fter I Died, My Husband Went Mad RAW novel - Chapter (12)
내가 죽고 남편이 미쳤다 (12)화(12/171)
인버네스 공작 저택에 흉흉한 일이 생겼다는 소문이 조금씩 바깥으로 새어 나가고 있었다.
처음에는 다들 공작가를 걱정했다. 북부인의 애정을 한 몸에 받는 그들이 안전하기를 소망했다. 그러나 소문의 주인공이 뻔뻔한 공작부인이라는 게 알려지자 사람들의 태도는 일변했다.
“그렇게 될 줄 알았어. 초대 공작부인이 그런 년을 가만히 두고 볼 리 없지.”
“이제라도 저주받아 죽는 편이 덜 꼴사납긴 하지. 첩자로 목이 잘려 죽는 것보다는 명예로운 죽음이잖아?”
그렌은 점점 흉악해지는 소문에 들뜬 마음으로 매일매일을 보내고 있었다. 남편이 돌아오지 않는 게 걱정되긴 했지만 일이 다른 방향으로 잘 풀리고 있었으니 괜찮았다.
그렌이 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나른한 목소리로 말했다.
“신은 노력하는 이를 사랑하신다지. 정말 그 말 그대로야.”
“네?”
그녀의 품에 안겨 과일을 먹던 플로라가 의아한 듯 눈을 들어 올렸다.
“뭐라고 말씀하셨어요?”
“아무것도 아니란다. 그저 이렇게 집안의 해악이 사라지게 되어 기쁘다는 이야기였어.”
말을 흐린 그렌의 시선이 서랍으로 향했다.
그곳엔 살인청부업자에게 보내려다 만 편지 한 통이 잠들어 있었다. 사실 그렌은 세벨리아를 자살로 위장해 살해할 계획이었다.
준비는 모두 다 끝마쳤다. 편지 한 통만 보내면 세벨리아는 바로 끔찍한 소문에 비관하여 자살한 공작부인이 될 터였다.
‘하지만 저주로 미쳐서 자살하는 쪽이 더 깔끔해.’
자신의 손을 더럽힐 필요도 없으니 확실히 이쪽이 이득이었다. 만족스레 웃던 그녀는 플로라와 눈이 마주치더니 갑자기 머리에 손을 짚으며 고통을 호소했다.
“그런데 자꾸만 불안하구나.”
“뭐가 그리 불안하세요, 어머니. 제가 있잖아요.”
그녀의 품에 안겨 있던 플로라가 고개를 들어 눈을 맞췄다. 애교부리듯 볼을 부풀리는 모습에 그렌은 겨우 미소 지었다.
“설마 그 저주라는 게 불안하신 건 아니죠? 어머니는 유령 같은 건 믿지 않으신다고 하셨잖아요.”
“아아.”
저주라, 그래. 그년도 유령이 되어 다른 사람들을 죽게 만들 수 있다고 했지.
다시 들어도 해괴망측한 이야기에 그렌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렇지 않아도 세벨리아가 언제쯤 죽으려나 기대하며 그녀의 상태를 감시하라고 보낸 하인들이 기절한 채로 발견되는 일이 적지 않았다.
그들은 대낮에 유령을 보았다며 억울해했지만, 막상 그렌이 별채로 갔을 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하여튼 북부인들은 미신을 지나치게 맹신한다니까.’
그래도 대비를 해서 나쁠 건 없었다. 자신만 해당된다면 그냥 무시할 수 있지만…….
“걱정 마세요, 어머니. 그 사생아는 결코 우리를 해치지 못할 거예요.”
플로라가 그렌의 허리를 감싸 안으며 그녀의 품에 안겼다. 그렌은 사랑스러운 딸을 내려다보며 결정을 내렸다. 딸아이를 위해서라면 그런 허튼소리라 할지라도 믿어야 할 때가 있었다.
그렌이 플로라의 손을 잡으며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내가 듣기를 멀지 않은 곳에 실력 있는 주술사가 살고 있다더구나.”
“네?”
“특히 저주에 관해 해박하다지….”
그녀는 능글맞게 말하며 플로라의 뺨을 가볍게 꼬집었다.
“네가 아직도 저주를 무서워하고 있는 것 다 안다, 아가. 그 악독한 년이 널 끌고 갈까 봐 매일 밤잠을 설치고 있지?”
“그, 그건.”
플로라가 부끄러움에 얼굴을 붉혔다. 그렌이 웃음을 터트렸다.
“걱정 마렴. 벌써 주술사를 불러 놓았단다. 그가 별채 주변을 결계로 격리하고 저주가 밖으로 새어 나오지 못하도록 할 거야.”
그렌이 플로라의 이마에 키스하며 말했다.
“넌 영원히 안전할 거란다.”
“어머니…….”
“그러니 조금만 더 기다리렴. 내 너를 인버네스의 주인으로 만들어 줄 테니.”
플로라는 감격에 가득 찼다.
“감사해요.”
그녀는 힘주어 어머니를 마주 안았다. 디하트와 결혼할 날을 꿈꾸면서.
* * *
한편, 데니사는 세벨리아가 지참금으로 받아 온 보석들을 무사히 판매하고 그 대금을 손에 넣었다.
중개상을 통해 먼 도시에서 급하게 팔아 치우느라 원래 값보다 적게 팔아야 했지만 세벨리아는 그걸로도 충분하다며 만족해했다.
“아가씨는 너무 욕심이 없으셔서 문제야.”
데니사는 식사를 준비하다 말고 한숨을 내쉬었다. 항상 포기하며 살았어야 해서일까. 세벨리아는 어려서부터 뭔가를 욕심내지 않는 아이였다. 그 어린아이의 눈에 체념과 포기가 서린 걸 보면서 어찌나 가슴이 아팠던지. 그래서 그녀는 무심코 주눅 든 아이의 손을 잡았다.
신입 하녀밖에 되지 않는 주제에 감히 아가씨를 동정했다.
‘그때는 다들 내게 미쳤냐고 했었지.’
데니사는 과거를 떠올리며 데운 그릇에 천천히 스프를 담았다.
그녀는 결국 부모에게 어떻게 들어간 후작가인데 그런 애 때문에 미래를 망치냐는 소리까지 들었었다. 하지만 자신은 후회하지 않았다.
‘세벨리아는 사랑받아 마땅한 아이야.’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없었다. 세상에 사생아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경멸받아 마땅한 아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데니사는 트레이를 들고 조심스럽게 세벨리아의 방으로 향했다. 그녀는 아직도 침대에 누워 있는 채였다. 이불을 얼굴까지 올려 쓴 모습에 데니사가 작게 웃었다.
“별채로 온 이후로 제시간에 일어나시는 법이 없네요. 갑자기 어린애로 돌아가시기라도 한 걸까.”
데니사는 놀리듯 말하며 이불을 확 걷어 내렸다. 그리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버렸다.
“어머!”
놀란 가슴을 내리누르며 자세히 보자 그곳에 누워 있는 건 벨리타였다.
“세상에, 세상에.”
곧 데니사의 눈에 쌍심지가 켜졌다.
“아가씨……!”
“데니사.”
마침 씻고 나온 듯 수건으로 머리를 말리며 세벨리아가 나타났다.
“무슨 일이야? 아.”
그녀의 시선이 침대에 누워 있는 벨리타에게 향했다. 어색한 웃음을 짓는 세벨리아를 엄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데니사가 팔짱을 꼈다.
“……다 사연이 있어.”
“도대체 어떤 대단한 사연이길래 저게 아가씨의 침대에 누워 있는 걸까요.”
빈정거리는 데니사의 말에 세벨리아가 멈칫거리다 조심스럽게 자리에 앉았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스프가 맛있는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그녀는 스푼을 집어 들려다 데니사의 눈초리에 결국 먼저 입을 열어야만 했다.
“가짜 시체를 만들어 두고 결국 난 멀리 떠나있어야 하잖아. 거리를 두고도 환영이 멀쩡한지 알아봐야 했어.”
세벨리아가 만들어 낸 환영은 이제껏 그녀 주위를 벗어난 적이 없었다.
그게 바로 세벨리아가 거사를 앞두고 깨달은 맹점이었다.
“다행히도 거뜬한 거 같네.”
“그런 거면 미리 말씀을 하셨어야죠. 놀라서 심장이 멎을 뻔했다구요.”
미안해, 세벨리아가 데니사에게 사과하며 감자 스프를 한 입 떠먹었다. 그러자 포슬포슬하고 기분 좋은 식감이 입 안을 가득 채웠다.
가슴 안쪽까지 따뜻해지는 맛이었다.
“그렇지만…… 이제 끝이야, 데니사.”
세벨리아는 부드러운 미소와 함께 햇빛이 들어오는 창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드디어 이 지긋지긋한 저택을 벗어나는 거야.”
그녀의 푸른 눈이 햇살을 받아 희미하게 반짝였다.
* * *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도시 외곽은 축축한 비린내로 뒤덮여 있었다.
‘냄새 한 번 죽여주는군.’
피 냄새가 분명했다. 디하트는 인상을 쓰고 거리를 유지하며 라쉬의 뒤를 쫓았다.
이 빌어먹을 길은 도대체 어떻게 만든 건지. 중간에 여러 갈래로 나뉘어 하마터면 라쉬를 놓칠 뻔했다. 그렇게 쫓아다니기를 한참, 라쉬는 두터운 철문이 인상적인 담장 안으로 홀연히 사라졌다. 디하트는 인상을 쓰며 높은 담장을 바라보았다.
“안쪽에 문지기가 있거나 아니면…….”
그 순간, 문을 살피던 디하트의 눈에 이채가 돌았다.
“오호라.”
그의 손끝이 철문의 가장자리를 훑었다. 그러자 미묘한 진동음과 함께 검은 철문 위로 기이한 문양이 떠올랐다.
“주술이 걸린 흑철이로군.”
그렇다면 고민할 필요 없겠어.
피식 웃은 그가 갑자기 팔을 치켜들었다. 라이언이 흠칫하며 뒤로 물러났다.
콰앙-!
순식간의 일이었다. 금빛을 두른 하얀 가시가 허공을 가르고 철문이 두 동강 났다.
쿠웅…….
두 쪽 난 철문을 발로 찬 디하트가 여상한 얼굴로 담장 안으로 발을 들였다. 라이언이 그 뒤를 따르며 한숨을 삼켰다.
“뭐야, 무슨 일이지?”
“입구 쪽이다. 움직여!”
저 멀리서부터 사람들이 소란스럽게 움직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분명 이곳을 지키는 더러운 쥐새끼들이리라.
“소란이 커지기 전에 빨리 정리해야겠군.”
금색 눈 안쪽으로 흰빛이 차올랐다. 라이언이 더욱 필사적으로 담장에 몸을 붙였다.
‘아무리 빨리 돌아가고 싶으시다지만 너무 하시는 거 아닙니까.’
하소연이 목 끝까지 차올랐으나 전해지지는 않았다. 곧 디하트의 귀를 시끄럽게 울리던 소음은 침묵으로 바뀌었다.
“아, 한결 잘 들리잖아. 이거 봐.”
손목을 돌려 검에 묻은 피를 털어 내며 디하트가 피식 웃었다. 그가 하얀빛으로 물들어 있는 두 눈을 감았다 뜨자 건물 안쪽에 있을 라쉬의 목소리가 들렸다.
“……씨의 활약에 감사… 대단한 실력……. 하루라도 빨리…….”
“…그러면……. 바로 다음으로……대기 중에 있어….”
“아직 아내에게서 연락이…….”
눈을 감은 채 소리에 집중하던 디하트는 갑자기 고개를 떨궜다.
“하……. 하하.”
텅 빈 웃음이 시체 위로 떨어져 내렸다. 그는 방금 제가 들은 말을 어떻게든 이해하려 애썼다.
‘제국 전역에 그녀의 추문이 퍼졌다고? 그녀의 죽음을 자살로 위장할 암살자가 대기하고 있다고?’
내가 지금 제대로 들은 게 맞나? 두 손에 얼굴을 파묻은 디하트가 괴로운 신음을 흘렸다. 그의 등줄기에서 새하얀 빛줄기가 파직파직 튀어 오르기 시작했다.
‘감히,감히,감히…….’
끔찍한 감정이 몸 안으로 스며들었다. 그것은 핏속까지 스며들어 심장을 요동치게 만들었다.
“……라이언.”
손가락 사이로 광기 서린 두 눈이 번뜩였다. 라이언은 어느새 그의 앞에 부복해 있었다.
“당장 북부로 가라. 가서 내 아내를 안전한 곳으로 피신시켜.”
음산한 목소리가 피로 물든 복도를 울렸다.
“그 누구에게도, 그래… 숙모님과 집사에게도 네 행적을 알리지 말고 신속하게 진행해라.”
라쉬가 그의 등에 칼을 찌른 이상, 그 누구도 믿을 수 없었다. 절도 있게 물러나는 라이언에게서 시선을 떼며 디하트가 피에 물든 장갑을 벗어 던졌다.
‘세벨리아……,제발 안전히 있길.’
이때의 그는 알 수 없었다. 세벨리아는 이미 저택을 떠났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