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fter I Died, My Husband Went Mad RAW novel - Chapter (13)
내가 죽고 남편이 미쳤다 (13)화(13/171)
어쩐지 오늘따라 예감이 좋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제 시체가 될 환영을 점검하고 있던 세벨리아는 불안함에 고개를 치켜들었다.
“이상해.”
화창한 햇살 아래, 따스해야 할 공기가 불길하게 일렁이고 있었다. 그녀는 가짜 시체를 침대에 눕혀 두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천천히 창가로 다가섰다. 내려진 커튼 사이로 슬쩍 바깥의 동향을 엿본 그녀의 가슴이 빠르게 오르내렸다.
‘저건…….’
주술사였다.
별채 주위를 서성거리는 회색 로브의 사내. 그 특이한 복장 덕에 세벨리아는 단숨에 그의 정체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주술사를 왜? 아…!”
세벨리아는 저택을 들끓게 만들고 있는 저주가 결국 그들을 이곳으로 오게 만들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들의 걱정과 두려움이 한계치를 넘은 셈이다.
“이런…….”
세벨리아는 재빨리 주술사에 대해 자신이 알고 있는 바를 떠올렸다. 그리고 안도감에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히도 주술사들은 환영술과 별다른 접점이 없었다. 그들의 영역은 주로 저주와 결계, 그리고 약초 등에 한정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대로 손 놓고 지켜볼 수는 없어.”
세벨리아는 그에게 제 위치가 들키지 않게끔 자리를 바꿔가며 조심스럽게 주술사를 관찰했다. 다행히 오늘은 점검 차 온 건지 별다른 도구 없이 별채 주위만 빙빙 돌고 있었다.
주술사는 환영과 궤를 달리하는 힘을 다루는 이들이었다. 그에게 환영술이 간파당하지는 않겠지만…, 잘못하다간 별채에 갇히게 되는 수가 있었다.
‘저주를 해제한다는 걸 핑계로 날 가둬 둘 수도 있어.’
거기까지 생각이 닿은 세벨리아는 단숨에 계단을 달려 내려가 저녁 준비 중인 데니사를 붙들었다.
“데니사!”
“아가씨?”
국자를 휘젓던 데니사가 놀라 그녀를 돌아보았다. 세벨리아의 다급한 표정에 데니사는 화들짝 놀라 앞치마를 벗어 던졌다.
“무슨 일이예요.”
“오늘 밤 계획을 실행할 거야.”
“네?”
예정일은 이틀 후였다. 그러나 세벨리아는 직감했다. 바로 오늘 밤, 모든 일을 끝내야 했다.
“계획을 바꿔서 미안해. 하지만 밖에 주술사가 와 있어. 포섭해 둔 이들에게 바로 연락을 넣어 줘.”
“알겠어요.”
주술사라는 말에 바로 상황을 이해한 데니사가 외투를 챙겨 별채를 나섰다. 그녀가 외출하고 혼자 남은 세벨리아는 창백해진 손끝을 맞잡고 떨리는 호흡을 내쉬었다.
“잘 될 거야.”
그녀는 위층에 누워 있는 가짜 시체와 도망을 위해 준비해 놓은 것들을 떠올렸다.
“난 할 수 있어.”
깍지 낀 손에 이마를 맞대고 한참이나 속삭이던 그녀는 곧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방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결연한 표정으로 종이에 무언가를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성공적인 죽음의 마지막 단계, 바로 유서 쓰기였다.
* * *
“디하트, 진정하렴. 네가 도대체 왜 이러는 건지 모르겠구나.”
사방이 두꺼운 벽으로 둘러쳐진 방 안.
곤죽이 되어 널브러진 남자를 뒤로하고 라쉬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갑자기 일언반구도 없이 문을 부수고 들어와 남자를 피투성이로 만든 디하트의 행동에 크게 놀란 상태였다.
“그래, 이해한다. 내가 이런 곳을 드나들어 네가 많이 실망했겠지. 하지만 말이다. 내게도 사정이라는 게 있단다.”
라쉬는 억울함을 뱃속 깊숙이 집어넣고 계속해서 변명을 이어 나갔다.
그는 디하트의 난폭한 행동을 단순히 자신을 걱정해서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만큼 그는 자신을 향한 디하트의 애정과 신뢰를 굳게 믿고 있었다. 자신은 그를 직접 키운 아버지 같은 사람이니까.
‘이대로 저놈이 깨기 전에 어서 데리고 나가야…….’
침을 꿀꺽 삼킨 라쉬의 눈이 널브러진 길드 마스터를 빠르게 스쳐 지났다.
그 순간이었다.
“숙부님.”
내내 침묵하며 그의 변명을 가만히 듣고 있던 디하트가 그를 불렀다. 라쉬의 심장이 펄쩍 뛰어올랐다 가라앉았다.
“그, 그래.”
다시 시선이 마주친 순간 라쉬는 무언가 크게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저는 기회를 드렸습니다.”
“무슨 말을…… 헉.”
차갑게 불타오르는 금빛 눈동자, 그 가장자리에 선연한 백색의 빛.
그는 분노하고 있었다.
‘설마….’
라쉬는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뭔가 이상했다. 디하트는 지금 폭발 직전의 상태였다. 단순히 숙부가 이상한 곳에 드나들어 생긴 화라기에는 정도를 넘어서 있었다. 자신을 아버지처럼 신뢰하는 디하트가 저렇게까지 화를 낸다면 아마 그 이유는…….
꿀꺽.
라쉬의 목울대가 거칠게 움직였다. 너무 늦은 깨달음이었다. 그러나 이미 그에게 기회란 사라진 뒤였다.
독사 앞에 놓인 개구리처럼 파랗게 질린 라쉬를 향해 디하트가 유순히 웃어 보였다.
“어릴 적 제게 검술을 가르쳐 주신 적이 있었지요.”
“디, 디하트. 이러지 말거라. 우리는 가족….”
“가족이니까 이렇게까지 신경 써 드리는 겁니다.”
소년 같은 미소를 지으며, 그가 라쉬의 멱살을 잡아챘다.
* * *
디하트와 헤어진 뒤 라이언은 바로 숙소로 돌아가 짐을 챙겼다. 강행군에 지친 말 대신 튼튼해 보이는 말 두 마리를 그 자리에서 사들인 그는 바로 북부로 떠났다.
‘너무 느려.’
강풍이 불어 이동에 지장이 생기고 있었다. 라이언은 고민하다 길옆에 난 숲으로 고삐를 돌렸다. 위험하지만 시간을 단축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 어둠이 내린 숲속을 빠르게 해치며 그는 공작부인의 모습을 떠올렸다.
가을날 들판처럼 아름다운 금빛 머리칼, 호수처럼 푸른 눈동자.
기대와 설렘을 가득 안고 제 주인을 바라보던 그 표정까지.
그러나 봄날의 꿈은 한순간에 깨져 버렸다. 꽃봉오리는 잔인하게 짓밟혀 다시는 꽃을 피울 수 없게 되었다.
‘끔찍한 일이었지.’
아내의 배신으로 디하트는 겨우 열던 마음의 문을 완벽하게 닫아 버렸다. 그러나 라이언은 알고 있었다.
그가 세벨리아를 마음속에 품은 채로 그 문을 닫아 버렸다는 것을.
그래서 내내 괴로워하고 있다는 것을.
“이게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는데…….”
라이언은 말을 재촉해가며 일정을 서둘렀다. 이대로 밤새도록 달려야 겨우 북부 근처에 닿을까 말까였다.
까악-
불길한 울음소리를 들으며 라이언은 디하트가 애지중지하고 있는 새를 떠올렸다.
옅은 금색 깃털이 아름다운 그 까다로운 새를.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라이언 경?”
그리고 그가 겨우 도착한 힐렌드 홀은 온통 검은색의 물결이었다.
“옷차림이 꼭… 설마!”
달려 나가는 그의 등 뒤로 세벨리아의 부고 소식을 들은 사람들이 속속 모여들고 있었다.
바야흐로 공작부인의 장례식이었다.
* * *
시간은 며칠 전으로 돌아간다.
주술사가 도착한 다음 날 아침, 자결한 공작부인의 시신이 별채에서 발견되었다. 최초 발견인은 그녀와 함께 지내던 하녀 데니사였으며, 사인은 수면제 과다 복용으로 인한 자살이었다.
“아가씨, 흐흑…….”
데니사는 구슬프게 울었으나 누구도 그녀를 위로하지 않았다. 오히려 눈살을 찌푸릴 뿐이었다.
“결계를 치기 전에 죽었다고?”
“그러면 안심할 수 없잖아….”
다들 별채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으려 했다. 당연하게도 주치의 또한 강력하게 그녀의 사망 확인을 거부했다.
“저주가 저에게도 옮으면 어떻게 합니까?”
결국 데니사가 동네 의원 중 하나를 데려다 사망 확인서를 작성하게 해야 했다. 그리고 모두가 이것을 당연한 처사라 여겼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기다리던 일이 드디어 벌어져 속이 시원했다.
“이제 공작부인이 죽었으니 유령이 나타날 일도 없겠네.”
“주제도 모르는 안주인을 모신다고 무시당하는 일도 이제 끝이잖아. 일석이조라고.”
사용인들의 조잘거림을 뒤로하고, 그렌은 빠르게 상황을 정리했다. 먼저 그녀는 바로 금고에서 금화를 꺼내 자리를 떴다. 그리고 사용인들로부터 장례식이 끝날 때까지 사망 사실을 발설하지 않겠다는 침묵의 약속을 받아 냈다.
“누가 진정으로 너희를 가까이서 지켜봐 왔는지 잊지 않겠지.”
공작이 부재중일 동안 그녀의 명령을 받아 왔던 사용인들은 당연하다는 듯 복종했다.
뒤늦게 소식을 들은 플로라가 달려와 그렌을 끌어안았다.
“어머니, 드디어…!”
그렌은 태연하게 그녀에게 사망 확인서를 내밀었다.
“여기 보렴. 사망 확인서란다.”
“세상에나.”
플로라는 세벨리아의 죽음을 손에 쥐고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게 웃었다. 그런 딸의 모습을 기특하게 보며 그렌이 손뼉을 쳤다.
“관은 이미 준비해 뒀으니 질질 끌 것 없어. 이대로 끝내자꾸나.”
그렌이 잔잔히 웃으며 앞으로의 계획을 떠올렸다. 정말 완벽하기 그지없었다.
그때, 집사가 들어와 그녀에게 무언가를 건넸다. 받아든 그렌의 미간이 미미하게 찌푸려졌다.
“유서라고?”
그녀의 말에 플로라가 목소리를 높여 조롱했다.
“미친 게 유서 쓸 정신이 남아 있었다니 놀랍네요.”
“그러게나 말이구나.”
그로스와 함께 장례식에 어떤 옷을 입을지 상의하는 플로라를 내버려 두고, 그렌은 빠르게 유서를 읽어 내렸다.
“…….”
그녀의 표정이 미묘하게 굳었다. 그녀는 그로스를 향해 손짓하며 말했다.
“수고했어요. 이건 내가 보관하죠. 그로스는 장례식 준비에 유념해 줘요.”
“어머니, 빨리 아버지와 오라버니를 불러요.”
플로라가 그제야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그렌이 고개를 저었다.
“아가. 굳이 그럴 필요 없단다.”
“예? 하지만…….”
“굳이 바쁜 애를 불러들여서 괜한 충격이나 주는 일이잖니. 아버지도 지금은 바쁘시고. ”
그렌이 권위적인 태도로 플로라에게 말했다.
“이건 우리끼리 해결하는 게 낫단다. 인버네스를 위해서도 이게 최선이야.”
그렌이 라쉬의 입버릇을 따라 하며 우아하게 등을 돌렸다.
“네 아버지도 내 뜻에 따르실 거다.”
디하트 없이 빠르게 장례식을 해치우려는 이유는 간단했다.
세벨리아가 공식적으로 사망 처리되면, 북부와 중앙간의 평화 협정은 자연적으로 효력이 사라진다. 그러니 당연히 디하트가 올 때까지 기다릴 수 없는 것이다.
“세상을 떠난 그 애에겐 미안하지만…… 우린 가문을 위해 옳은 일을 하는 거야.”
그렌이 안타까운 표정을 꾸며 내며 가슴 위에 손을 얹었다.
때마침 그로스가 돌아와 장례식에 필요한 서류들을 건네주었다. 그렌은 서류들을 여유롭게 읽어 내리며 입을 열었다.
“플로라.”
“네?”
“가서 장례식날 입을 옷을 새로 맞추렴.”
“네!”
플로라가 기뻐하며 뛰어나갔다. 그렌은 소리 없이 미소 지었다.
이리도 마음 편한 날은 오랜만이었다.
그리고 그건 세벨리아에게도 마찬가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