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fter I Died, My Husband Went Mad RAW novel - Chapter (130)
내가 죽고 남편이 미쳤다 (130)화(130/171)
하레스 벨크람 삼황자의 돌발 행동은 많은 이에게 충격을 주었다. 가장 크게 놀란 건 당연히 인버네스 공작이었으나 그다음으로 놀란 것이 바로 일황비였다.
“그만! 삼황자가 무언가 착각했나 보군요. 이황비, 당장 하레스를 궁으로 데려가도록 하세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일황비가 얌전히 앉아 있는 이황비를 향해 일갈했다. 허나 꽃처럼 아름답고 들풀처럼 순박한 이황비는 고개를 숙이기는커녕 비웃음을 입술에 달고 그녀를 응시했다.
“하레스는 본인이 해야 할 일을 할 뿐입니다, 일황비.”
뿌듯하기까지 한 이황비의 얼굴에 일황비는 눈을 크게 떴다. 수십 년 동안 단 한 번도 제게 반기를 들지 못했던 이였다. 그녀가 충격으로 말문이 막힌 가운데, 누군가 하레스를 향해 외쳤다.
“아무런 증거도 없이 그녀를 인버네스 가문의 공녀라 믿으란 말입니까!”
지극히 타당한 지적이었다. 하레스는 목소리가 난 쪽을 흘끗 보고서 피식 웃음을 흘렸다.
항상 딜리언의 곁에서 아부를 떠는 동부 귀족 중 한 명이었다. 하레스는 어지간하다는 듯 고개를 살래살래 젓더니 머리를 쓸어 올렸다.
“그런 말이 나올 줄 알았지.”
하레스가 내내 침묵하고 있던 로잘린을 향해 손을 뻗었다.
“로잘린.”
로잘린이 금빛 눈동자를 반짝이며 생긋 웃었다.
“잠시 귀를 막으셔도 좋아요.”
디하트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로잘린이 상냥한 조언을 건넸다. 그녀는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를 들으면서 천천히 눈을 감았다.
츠츳-
검게 물든 눈꺼풀 안쪽으로 금빛 벼락이 가득 찼다. 웅성거리는 소리가 더욱 커졌다. 로잘린은 미안하다는 듯 웃으며 손을 들어 올렸다.
콰광-!
* * *
그날, 황궁 밖에서 불꽃 축제를 기다리던 이들은 하늘을 수놓은 화려한 빛깔 대신 황금빛 벼락을 목격했다. 그 장엄하고도 섬뜩한 광경은 순식간에 사람들의 혼을 빼놓았고, 수도경비대장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어찌 된 일인지 알아봐!”
그러나 다행히도 경비대장이 윗선에 불려 가 문초를 당할 일은 생기지 않았다. 예정보다 일찍 마무리된 연회 탓에 기운 빠진 이들이 살롱으로 몰려들어 그들이 목격한 광경을 잔뜩 풀어놓았기 때문이다.
그들이 전해 주는 이야기에 황실 연회에 초대받지 못한 이들은 놀라 나자빠질 뻔했다.
로잘린 발레리 남작 영애가 실은 공작 영애였다. 거기까지만 해도 신문 수만 부는 팔려 나갈 이야깃거리였다. 그러나 몹시 흥미롭게도, 그녀는 그냥 공작 영애가 아니라 북부의 대표인 인버네스 가문의 영애였던 것이다.
“말도 안 돼!”
“세상에.”
금빛 눈동자와 검은 머리카락은 넓은 제국을 뒤지면 심심찮게 찾을 수 있는 조합이었다. 하지만 권능을 선보였다는 건 다른 문제였다. 그건 절대로 부정하지 못할 인버네스 가문의 특징이니까.
“죽었다던 로잘린 인버네스가 정말 살아 돌아온 거로군요.”
몇몇 사람들은 아쉬움에 한숨을 쉬었다. 진작에 알았더라면 하레스 삼황자의 자리를 자신이 차지할 수 있었을 텐데.
그만큼 로잘린 인버네스는 너무나도 매력적인 존재였다. 단순히 그녀의 외모와 능력 때문이 아니라, 선대 인버네스의 직계이자 현 공작만큼 강력한 권능을 가졌기 때문이었다.
“이제 곧 북부에도 파란이 일겠어요.”
그들의 예측은 사실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연회가 끝난 다음 날, 하레스 삼황자는 자신의 맹세를 지키겠다며 디하트를 상대로 로잘린이 가진 작위 계승권을 강하게 주장했다.
[애초에 선대 인버네스 공작은 죽기 전 후계를 정해 놓지 않았다.]그러니 작위를 이어받을 수 있는 권리는 로잘린에게도 있었다는 것이다.
그 소식은 순식간에 수도를 휩쓸고 제국 전역으로 퍼져 나가 북부에까지 닿았다. 디하트를 밀어내고 자신의 딸을 그 자리에 앉힐 생각으로 부풀어 오른 그렌 또한 그 충격적인 소식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사일러스가 디하트를 제거했다는 낭보를 보내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일어나다니.
“직접 움직였어야 했나….”
그렌이 뒤늦게 후회하며 머리를 짚고 신음하는데, 플로라가 달려오며 외쳤다.
“어머니, 신문 보셨어요? 로잘린이, 그 애가 살아 돌아왔대요!”
그렌은 겨우 일그러진 얼굴을 정리하고 그녀를 맞이했다.
“플로라, 진정하고 일단 앉으렴.”
“하지만…!”
“너무 걱정하지 말렴. 권능을 썼다고는 하나 그게 어떤 조잡한 술수로 사람들의 눈을 속인 건지는 알 수 없으니까.”
“그러면 뭐 해요. 기사 말로는 북부에서 이미 동요가 일고 있대요. 원로회가 이제 와서 그 애를 공작으로 추대하려고 하면 어떻게 하죠?”
“그럴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란다.”
내가 그렇게 놔두지 않을 거거든. 그렌은 속내를 삼키며 대신 플로라가 납득할 만한 말을 해 주었다.
“제대로 된 뒷배 없이 삼황자만 믿고 날뛰는 계집애가 감히 인버네스가를 집어삼킬 수는 없지. 네가 읽은 기사는 아마도 그렇게 우리를 혼란에 빠트리려는 목적으로 쓰인 걸 거야.”
“그럼 우리는 걱정 안 해도 되는 거죠?”
플로라가 안심한 듯 한숨을 내쉬며 그렌에게 안겼다. 그녀는 딸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더니 좋은 생각이 났다는 듯 말을 꺼냈다.
“그러고 보니 이곳에 머문 지도 꽤 오래되었구나. 자기가 로잘린이라고 거짓말하는 계집애의 정체도 알아볼 겸, 슬슬 수도에 가도 되겠어.”
“네?”
“왜, 싫으니?”
“아뇨!”
당황스러움은 짧았다. 수도, 랑그 엘리사는 북부에서만 살아온 플로라에게 동경의 대상이었다. 그녀의 얼굴이 순수한 기쁨으로 젖어 들었다. 그 모습을 보며 그렌은 결심을 확고히 다졌다.
‘이제 와 포기할 수 없어.’
단순히 치워야 할 장애물이 하나 더 늘어난 것뿐 아닌가. 심지어 자신이 로잘린이라며 나타난 여인은 플로라와 달리 그 어떤 지지 기반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러니 밟으려면 지금이 적기였다.
* * *
로잘린 인버네스의 등장과 함께 수도를 비롯해 제국 전체가 들썩거리는 가운데, 인버네스 저택은 때아닌 곤욕을 치르고 있었다.
삼황자가 비호하는 로잘린을 건드릴 수 없다는 건지, 기자들을 비롯해 온갖 사람들이 저택 앞에 장사진을 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날이 갈수록 느는 것 같은 기분인데.”
커튼 틈새로 살짝 내다봤는데도 심상치 않았다. 자연스레 한숨이 나왔다. 하지만 그보다 더 심각한 건 따로 있었다.
바로 로잘린의 가족인 인버네스 남자들이었다. 디하트는 저택으로 돌아오자마자 로잘린의 승계권 주장을 무효화시키기 위한 사전작업에 들어갔다.
집무실은 마치 전쟁을 앞둔 지휘관의 전초기지처럼 변했다. 그는 그곳에서 먹고 자고 하며 밤을 새웠고, 기사단 중에서도 그의 신임을 받는 이들 외에는 집무실에 들어가지 못했다.
‘잠을 자기는 하는 건지 모르겠어.’
사실 직접 보지 않았다 뿐이지 초췌해진 얼굴로 집무실을 들락날락하는 기사들의 얼굴만 봐도 그 안쪽의 분위기가 피부로 느껴질 정도였다.
‘그리고 클로드는…….’
세벨리아가 눈살을 찌푸렸다. 클로드는 로잘린이 살아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고 어디론가 훌쩍 사라져버렸다.
미처 말릴 틈도, 붙잡을 새도 없었다. 사실 세벨리아는 자신에게 기회가 있어도 클로드를 붙잡을 수 없었을 거라 생각했다.
그 순간 그에게 뭐라고 말해야 할지 알 수 없었으니까.
그렇게 세벨리아가 걱정에 허우적거리는 사이, 클로드는 소리 없이 돌아왔다. 그는 사람들이 진을 친 정문이 아니라 하인용 뒷문으로 들어왔는데 마침 근처를 지나던 워츠와 마주쳤다.
“어, 자네…….”
워츠가 그를 불러 세우려 했으나 헛된 시도일 뿐이었다. 이제껏 본 적 없는 눈을 한 클로드는 마치 그를 보지도 못한 것처럼 스쳐 지나갔다.
“…….”
워츠는 계단을 올라 사라지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긴 한숨을 내쉬었다.
‘생각보다 오래가는군.’
로잘린 인버네스. 그 존재는 그도 익히 아는 이였다. 그녀는 클로드의 가장 소중한 존재이자 가장 끔찍한 상처로 남은 기억이었으니까.
살아남은 디하트와 달리 흔적도 없이 사라진 로잘린을 찾기 위해 클로드는 제 평생을 바쳤다. 그러나 이십 년이 넘도록 그 어떤 단서도 잡지 못했다.
그런 그의 앞에 갑자기 로잘린이 살아 돌아온 것이다. 그것도 자신을 찾지 않은 가족을 증오하는 마음을 품고서.
결국 그녀는 디하트를 끌어내리겠다는 집념으로 가족에게 칼을 겨누었다. 클로드는 그것이 못내 충격적인 모양이었다.
“아, 워츠 씨. 어서 앉으세요.”
정찬실로 가자 그곳엔 세벨리아 한 사람뿐이었다. 눈살을 찌푸리며 빈자리를 바라보는 그를 향해 세벨리아가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디하트는 오늘도 바쁜 것 같아 방으로 식사를 올려 보냈어요. 클로드는, 음. 여전히 어디 갔는지 모르겠고요.”
그 말에 워츠의 미간이 구겨졌다. 그가 탐탁지 않다 못해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 녀석이 아주 제대로 사춘기가 왔군요.”
“네?”
“클로드라면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겁니다. 방금 전에 방으로 올라가는 걸 봤어요.”
“그래요?”
세벨리아가 식기를 쥔 손에 힘을 주며 환하게 웃었다. 워츠는 그녀의 미소에 걱정과 동시에 분노가 섞여 있음을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었다.
그의 추측대로 세벨리아의 심리는 상당히 복잡한 상태였다.
분명 먼저 연락을 끊고 사라진 건 상대고, 자신은 그에 대해 정당히 화를 낼 자격이 있건만 어째선지 이 상황에서 화를 내면 자신만 나쁜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랄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네.’
세벨리아는 식사를 이어 나가며 고민했다. 디하트는 그래도 괜찮았다. 방에 틀어박힌 게 우려스러웠지만 적어도 틈틈이 생사 확인은 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클로드는 어떻게 해도 좋게 봐줄 수 없었다. 로잘린의 귀환으로 충격받은 걸 트집 잡는 게 아니었다. 적어도, 그를 걱정하는 사람이 있다는 건 생각해 줬으면 싶었다.
어떻게 그를 대해야 하나 세벨리아가 깊이 고민하는 동안이었다. 갑자기 기사 한 명이 노크를 하고 들어왔다.
“아가씨, 부탁하신 대로 어펜츠 씨가 돌아온 걸 확인했습니다.”
“아, 고마워요.”
워츠가 미리 알려 주었지만 그래도 고마운 건 고마운 거였다. 세벨리아가 웃으며 그를 돌려보내려는데, 기사가 머뭇거렸다.
“왜 그러죠?”
“그게… 어펜츠 씨가 다시 나가시려는 것 같습니다. 지난번과 달리 짐을 챙기시는 게 어디 멀리 떠나시려는 것 같아 급히 달려왔습니다.”
무거운 침묵이 정찬실을 짓눌렀다. 세벨리아는 식기를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워츠가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딱히 그녀를 말리려는 눈치는 아니었다.
“식사 정도는 혼자 먹어도 됩니다. 걱정 말고 다녀와요.”
“고마워요.”
생긋 웃은 세벨리아는 거침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환영술사의 덕목은 뻔뻔함이라고 했던가. 그녀는 하나뿐인 스승의 가르침을 아주 충실히 이행할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