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fter I Died, My Husband Went Mad RAW novel - Chapter (131)
내가 죽고 남편이 미쳤다 (131)화(131/171)
“와악!”
“저것 좀 봐!”
사람들의 비명이 저택을 뒤흔들었다. 무슨 일이지. 디하트는 무거운 몸에 신음을 흘리며 눈을 떴다.
“윽…….”
머리가 깨질 것 같았다. 겨우 정신을 차리기는 했는데 눈앞이 어지러운 게 한 걸음 떼기도 어려울 듯했다. 하지만 그는 벽을 짚는 한이 있더라도 저 소란을 정리해야만 했다.
그래야만 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저 시끄러운 입들이 세벨리아를 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저게 그 환영술인가?”
“누구 제대로 보이는 사람 없어? 환영술사라는 여자 좀 보자고!”
개자식들이 감히 누구를 그런 식으로 불러. 디하트는 이를 악물고 비척비척 걸음을 옮겼다. 여차하면 정원을 모두 태워서라도 저 모기떼 같은 것들을 치워 버리리라.
그가 세벨리아가 알면 경악할 만한 결심을 하고 창문을 열어젖힌 순간이었다.
“…….”
경악해야 하는 건 그였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를 포함한 모두가 경악함이 마땅한 광경이었다.
“저게…….”
대체 뭐지? 디하트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떴다. 하지만 믿기지 않는 광경은 그대로였다.
바다 건너 대륙에 있다는 정글의 모습을 방불케 하는 녹음이 정원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울창하게 자란 나무와 이국적인 생김새의 꽃들.
그리고 그 사이에 사람 팔뚝만 한 덩굴에 붙들린 클로드가 있었다.
“읍, 윽!”
클로드는 당황스러움에 여러 번 몸부림을 쳤다. 제 딴에는 환영도 불러내려 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기껏 불러낸 환영마는 포르르 날아오르더니 세벨리아의 곁에 내려앉았다.
“……!”
배신감 서린 눈으로 몸을 떨던 클로드는 이내 포기한 듯 사지를 늘어트렸다. 디하트의 집무실 창문 아래쪽에 서 있던 세벨리아는 그 모습을 보고 고개를 살래살래 내저었다.
“그러길래 포기하라고 했잖아요.”
“…….”
클로드의 시무룩한 눈빛이 세벨리아를 향했다. 그녀는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푹 쉬고서 손을 휘둘렀다. 곧 담장 근처의 식물들이 몸집을 키우더니 사람들의 시야를 완전히 막았다.
“앞으로 또 그런 식으로 혼자 해결하려는 마음이 들 땐, 오늘 일을 기억해야 할 거예요.”
으름장과 함께 세벨리아가 손을 튕기자 그를 붙잡고 있던 덩굴줄기가 사라졌다. 맥이 풀린 클로드는 땅에 털썩 쓰러졌다.
‘그래서, 대체 저게 뭐야?’
동일한 질문을 반복하며 디하트는 창가에 스르륵 몸을 기댔다. 생각과 달리 너무 어처구니없는 광경이라 힘이 쭉 빠졌다.
그가 다시 지끈거리기 시작한 머리를 꾹꾹 누르는데, 누군가 밑에서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공작님!”
익숙한 목소리에 디하트가 고개를 내리자 그곳에는 일레이가 있었다.
“하?”
꾀죄죄한 꼴에 디하트의 눈에 의문이 섞였다. 부족한 수면과 불충분한 영양 상태로 인해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았다. 찬 바람을 몇 번 맞고 나서야 그는 자신이 일레이를 힐렌드 홀에 보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
디하트가 초췌한 얼굴로 낮은 신음을 흘렸다.
지난 며칠간 정신이 없었다. 로잘린의 등장으로 가문 안팎으로 생길 문제들을 미리 정리하느라 잠은커녕 제대로 식사를 할 시간도 없었다. 그러니 일레이에 대해서는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도 당연했다.
디하트는 연거푸 마른세수를 하며 정신을 차리기 위해 애썼다.
“후.”
겨우 사람다운 눈빛을 한 그가 말똥말똥 자신을 올려다보는 일레이를 향해 말했다.
“집무실로 올라와.”
낮은 목소리가 떨어져 내리자 일레이는 지체하지 않고 저택 안으로 들어섰다. 디하트는 잠시 숨을 고르다 창문을 닫았다. 비척대며 돌아가는 뒷모습이 무척이나 위태로워 보였다.
세벨리아가 말없이 그 모습을 지켜보는 동안, 클로드는 정원에 드러누워 지친 숨을 내뱉었다.
“진짜일 리 없어서 그랬습니다.”
세벨리아가 시선을 틀어 그를 내려다보았다. 클로드가 씁쓸한 미소와 함께 자신이 홀로 저택을 떠나려 했던 이유를 실토했다.
“진짜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아무 말 없이 사라지려고 했다는 게 말이 돼요?”
“그냥, 한번 알아보려고 했을 뿐이에요.”
클로드가 상체를 세우며 심각한 일이 아니라는 양 말했다. 그는 자신이 섣불렀다고 인정했으나 한편으로 그녀의 처사가 너무하다고 투덜거렸다.
“하아. 당신 생각은 알겠어요. 로잘린 영애가 가짜일 가능성, 그래요, 있죠. 나부터 시체를 만들고 도망쳤으니 그런 생각이 들어도 무리는 아녜요. 그래도 너무 독단적이라는 생각은 안 들어요?”
“…….”
“일단 들어가서 치료부터 해요.”
클로드의 손목과 발목에 남은 생채기를 보며 세벨리아가 눈썹을 찌푸렸다. 나름대로 힘 조절을 한다고 했는데 제대로 되지 않았나 보다.
클로드는 그제야 제가 단순한 흙투성이가 아님을 깨달았는지, 덩굴에 쓸린 손목을 보고 눈을 크게 떴다.
“지금 상황에서 이런 말 하기 뭐하지만… 대단한데요.”
“날 놀려서 방심하게 하려는 거라면 실패예요.”
으름장을 놓으면서도 세벨리아는 한편으로 안심되었다. 툭툭 털고 일어나는 클로드의 모습이 예전과 다를 바 없었기 때문이다.
세벨리아는 클로드가 혹여나 도망치지 못하도록 그의 팔을 붙잡으며 천천히 집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러면서도 머릿속으로는 자꾸만 방금 전 보았던 광경을 되풀이했다.
조각난 태양처럼 공허하던 디하트의 눈동자가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 * *
삼황자 궁은 유례없이 들뜬 분위기를 유지했다. 로잘린 인버네스의 존재를 공표한 이후로 물밀듯 들어오는 서신과 뇌물, 청탁이 줄을 이어 하레스를 기쁘게 만들었다.
“로잘린, 이걸 좀 봐. 며칠 전까지만 해도 내게 고개 한 번 숙이지 않았던 이들이 그들 손으로 바친 걸 좀 보라고.”
“정말 대단해요, 전하.”
로잘린은 하레스가 원하는 대로 생긋 웃으며 감탄의 말을 늘어놓았다. 만족할 만큼 추켜세움을 받은 하레스가 어깨를 펴며 말했다.
“그대가 인버네스 공작이 된다면 이런 것들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게 될 거야. 내가 장담하지.”
“어머.”
“그러니 이만 얼굴 풀어. 어차피 기억도 나지 않는 가족 아닌가. 그는 당신에게 남이나 다름없어.”
하레스가 응접실 가득 쌓인 상자의 포장을 풀며 말했다. 로잘린은 차를 마시며 그 모습을 가만히 구경했다.
멋들어진 예식용 장검을 발견한 하레스가 기쁨에 가득한 목소리로 외쳤다.
“아, 이거 정말 좋군.”
“이황비 전하께서 칼은 멀리하시라 말씀하셨잖아요.”
“그건 어릴 때 이야기지 않나. 그대도 참 걱정이 많아. 갈수록 어머니를 닮아 간다고나 할까. 흠, 어릴 때는 안 그랬던 것 같은데 말이지…….”
정교하게 세공된 검집을 내려놓으며 하레스가 말끝을 흐렸다. 그의 눈이 천천히 과거를 훑었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는 밤이 무섭다며 복도를 돌아다니다가 남작에게 혼이 났었지. 하하. 그때 당신은 정말로 귀여웠어.”
하레스가 웃으며 그녀의 머리 위에 툭 손을 얹고 쓰다듬었다. 로잘린은 말없이 웃으며 찻잔을 내려놓았다. 하레스의 손은 자연스럽게 뺨으로 내려와 그녀의 목덜미를 지분거렸다.
“이만 가 보셔야 할 시간이에요. 오늘 이황비 전하와 함께 북부 귀족들을 만날 예정이라고 하지 않으셨나요?”
그녀의 말에 하레스는 작게 눈살을 찌푸렸다.
“잔소리는.”
“잔소리가 아니에요. 그들의 지지가 있어야 제가 공작위를 계승할 가능성이 커지잖아요. 제가 지참금으로 북부를 들고 갈 수 없다면 전하께서 황태자의 자리에 오르는 것도 힘들어져요.”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래도 여전히 풀리지 않는 하레스의 미간에 로잘린이 서운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레스, 정말로 이럴 거예요? 이황비 전하께서도 지금을 놓치면 안 된다고 하셨어요.”
그 말에 하레스는 쩝 입맛을 다셨다.
그녀의 말대로 권력에 공백이 생긴 지금이 다시 없을 시기이긴 했다. 웨든 후작가의 추문 때문에 일황비와 일황자를 위시한 동부 세력이 축소되었으니까.
사실 사람들은 샤테이안이 날뛰는 걸 보면서도 일황비 세력이 언젠가 다시 위세를 떨칠 거라 예측했었다. 웨든가의 일이 네이튼을 처리하는 선에서 정리될 기미가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껏 몸을 낮춘 채 빈틈을 노려 오고 있던 하레스에게 그건 하늘이 준 기회였다. 그는 일황비가 다시 몸을 일으키기 전에 어머니가 오랫동안 준비해 왔던 비장의 패를 선보였다.
피비린내 나는 숲에서 데려온 기억을 잃은 어린아이, 로잘린 인버네스.
‘그건 그야말로 천운이었지.’
과거, 하레스는 어머니로부터 그날의 일을 전해 들었다.
그의 어머니인 이황비는 일황비의 일거수일투족에 집착했던 때가 있었다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를 낳은 이후로 자꾸만 안 좋은 사고가 일어났는데, 그 배후를 일황비라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다 어느 날 어머니는 일황비가 심상치 않은 움직임을 보이는 걸 알게 되었다. 그녀는 즉시 사람들을 풀어 그 뒤를 캤다.
그렇게 그녀는 비 내리는 숲에 쓰러져 있는 로잘린과 즐비한 시체들을 발견한 것이다.
[세상에……!]하레스를 해치려는 계획이라고 믿었던 건 사실 인버네스 공작가를 일거에 쓸어 버리려는 음모였다.
그건 일생일대의 기회이자 두 번 다시 주어지지 않을 결정의 순간이었다.
선택지는 두 가지로 보였다. 북부와 손을 잡아 일황비를 몰락시키는 것. 혹은 혼자서 일황비를 몰락시키는 것.
‘하지만 어머니는 그 무엇도 선택하지 않으셨지.’
그녀는 로잘린을 거두기로 결정했다. 일황비를 몰락시키지도, 북부에 진실을 알리지도 않은 것이다.
하레스가 부드러이 웃으며 로잘린을 쓰다듬던 손을 거뒀다. 그는 어린 날 어머니로부터 이 이야기를 전해 들었고, 그 후로 어머니처럼 그녀를 아끼고 사랑했다.
로잘린 또한 자신을 사랑하도록. 그래서 그녀가 자신을 떠날 수 없도록.
“전하.”
로잘린이 그를 재촉했다. 시계를 돌아보는 눈길이 제법 매서웠다.
“이러다 늦으면 이황비 전하께서 분명 실망하실 거예요.”
그녀는 늘 어머니만 엮이면 이렇게 안절부절못하고는 했다. 하레스가 그녀의 반응에 푹 한숨을 내쉬었다.
“조금 늦어도 혼날 일 없는데.”
“그거야 전하의 사정이죠. 저는 다르답니다.”
화난 척 눈썹을 치켜올리며 로잘린이 말했다. 하레스가 어쩔 수 없다는 듯 그녀의 뺨을 손가락으로 살짝 튕기고선 몸을 돌렸다.
“…….”
그런 그의 뒷모습을 로잘린이 무심하게 응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