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fter I Died, My Husband Went Mad RAW novel - Chapter (133)
내가 죽고 남편이 미쳤다 (133)화(133/171)
다음날, 세벨리아는 뜻밖의 연락을 받게 되었다. 심문 준비로 골머리를 앓던 그녀는 샤테이안이 급히 보낸 서신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건…….”
당황스러움이 고스란히 묻어난 얼굴로 그녀는 클로드를 찾아갔다. 혼자 해결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세벨리아는 노크와 함께 문을 열고 들어갔다. 마침 그는 워츠와 함께 대화를 나누던 중이었다.
“잠시 시간 좀 내주실 수 있을까요?”
물어보는 어조가 평소와 달리 무척이나 심각했다. 클로드는 워츠와 대화를 나누다 말고 얼떨떨한 얼굴로 그녀에게 자리를 권유했다.
소파에 털썩 걸터앉은 세벨리아가 한숨을 푹 쉬더니 클로드에게 서신을 내밀었다.
“이것 좀 읽어 보시겠어요? 방금 전 샤테이안 황자님께 온 연락인데 아무래도 바로 입궁해야 할 것 같아요.”
황가 특유의 화려한 문양을 본 클로드는 잠시 질색했으나 진중한 태도로 서신을 읽어 내렸다. 워츠는 두 사람에게 줄 차를 타 오기 위해 자리를 비웠다.
천천히 서신을 읽던 클로드가 머리를 쓸어 올리며 인상을 찌푸렸다.
“황궁에 이상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는 소리는 처음 듣는데.”
예술 전시회장으로 쓰였던 궁에서 기이한 현상들이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샤테이안은 그것이 세벨리아의 환영술로 인한 현상일 수 있으니 와서 확인 후 대책 마련에 힘을 쓰라고 요청했다.
“보아하니 발생한 지는 얼마 안 된 것 같아요. 일황비 측에서 냄새를 맡은 것 같다며 빠른 처리를 부탁하셨어요.”
“그럴 만하군요. 첨언을 보아하니 인간의 형태를 띤 환영 같은 것들이 출몰한다고 적혀 있고… 안 좋은 소문이 돌기 전에 미리 어느 정도 해결하는 게 낫다고 결정한 모양이에요.”
결과적으로 샤테이안의 판단은 옳았다. 만약 황궁 안에 음산한 것들이 돌아다닌다는 소문이 난다면 일황비는 옳다구나 싶어 세벨리아의 환영술을 기분 나쁘고 음험한 종류로 몰아붙일 가능성이 컸다.
“일단 가서 직접 확인하는 게 좋겠죠?”
클로드는 고개를 끄덕이며 제가 스승으로부터 배운 것 중 이런 현상에 대한 것이 있었나 기억을 뒤졌다.
‘강한 힘이 흔적으로 남으면 기현상이 발생한다고 한 것도 같고…….’
어찌 되었든 현장을 살펴봐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클로드는 세벨리아를 향해 말했다.
“환영술을 이용한 첫 심문이 언제였죠?”
“내일이에요. 일황비 측에서 물고 늘어지기 전에 제게 먼저 서신을 보내신 것 같아요.”
“그럼 당장 입궁하는 게 좋겠군요. 날이 저물기 전에 다녀옵시다.”
세벨리아는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때맞춰 차를 타 온 워츠가 눈을 깜박이다 허무함이 묻어 나오는 음성으로 말했다.
“뭐… 잘 다녀오십시오.”
“미안해요, 워츠. 돌아와서 봐요.”
방을 나선 세벨리아는 자연스레 디하트를 데리러 가기 위해 집무실로 향하다 걸음을 멈췄다. 뒤따르던 클로드가 의아한 눈으로 그녀를 응시했다.
“왜 그래요?”
“전시회가 끝나고 그곳에서 다른 연회나 전시회가 열린 적이 있던가요?”
죽은 이들이 환영이 되어 모습을 드러낸 날 이후, 전시회장에는 사람들의 출입이 금지되었다. 치안국 소속의 무관들이 돌아가며 입구를 지키고 있어 그 안에서 무슨 일이 발생하든 알아차릴 기회가 없었다.
그런데 도대체 어떻게 이상 현상이 발생한다는 소문이 퍼지게 되었을까. 그 사실을 알아차리려면 무관들의 눈을 피해 몰래 숨어들지 않는 이상 불가능할 텐데.
“아니면 누군가를 매수했거나…….”
세벨리아가 낮게 읊조리며 눈살을 찌푸렸다. 기현상이 발생한 건 우연이라 할지라도, 이 사실이 알려진 데에는 누군가의 손길이 닿은 게 분명했다.
‘하지만 일황비는 아니야.’
만약 일황비가 알았더라면 샤테이안 황자가 연락을 넣기 전에 발 빠르게 여론전을 시작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남은 건 한 사람뿐이었다.
황위 계승 전쟁에 새로이 참여한 참가자, 지금까지 몸을 납작 엎드리고 무해한 척 위장해 왔던 삼황자 하레스 벨크람.
‘그런데 왜 일을 해결할 여지를 준 거지?’
무슨 목적인지는 몰라도 의도가 그리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찜찜하다며 손 놓고 방관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생각 정리를 끝낸 세벨리아는 입술을 깨물며 집무실의 문을 열어젖혔다.
“벨라, 무슨 일입니까?”
“갑자기 찾아와서 미안해요. 지금 바빠요?”
“아뇨. 별일 없습니다.”
“그럼 같이 입궁할 수 있을까요? 이야기는 가면서 마차 안에서 하도록 할게요.”
“알겠습니다. 바로 마부를 대기시키죠.”
디하트와 함께 마차에 올라탄 세벨리아는 터져 나오려는 한숨을 억지로 삼켰다.
아무래도 느낌이 좋지 않았다. 이대로 궁에 가서 로잘린을 만날 것 같다는 강렬한 예감을 지울 수 없었다.
‘언젠가 만나야 하는 사이긴 하지만 지금 당장은 안 돼. 간신히 붙잡아 놓은 상태가 더 안 좋아질지도 몰라.’
되도록 빨리 기현상을 해결하고 돌아가도록 노력하자. 세벨리아는 심란한 마음을 다잡으며 디하트에게 입궁하게 된 연유를 설명했다.
* * *
마부가 열심히 노력해 준 결과, 마차는 빠른 속도로 황궁에 닿았다. 샤테이안에게 미리 언질을 받았는지 통과 절차도 빨랐다.
“루드밀 경.”
“어서 오십시오 벨라 양, 인버네스 공작님. 그리고 칼 어펜츠 씨. 전하께서는 다른 일로 바쁘신 탓에 제가 모시게 되었습니다.”
전시회관으로 쓰였던 궁 앞에서 루드밀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떻게 된 일인지에 대해서는 서신을 통해 알고 계시겠지요?”
“네, 따로 설명하실 필요는 없어요. 이대로 들어가면 되나요?”
세벨리아가 의욕적인 태도를 보이자 루드밀이 눈을 접으며 웃었다.
“생각보다 빨리 해결될지도 모르겠군요.”
작게 웃은 루드밀이 품에서 열쇠를 꺼내 정문을 열었다. 세벨리아는 문의 좌우를 지키고 있는 치안국 관리들을 흘긋 살펴보았다.
복도로 들어서자 루드밀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들은 오늘 처음 배속된 이들이니 경계하지 않아도 됩니다. 이전에 근무했던 자들은 지금 샤테이안 전하께서 심문 중이에요.”
“…제가 그렇게 티 나게 행동했나요?”
“제 눈썰미가 좋은 거라고 해 두죠. 이쪽으로 오시면 됩니다. 길은 기억하고 계시나요?”
세벨리아가 느리게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사실 그때 어떻게 궁을 나섰는지도 모르겠어요.”
“이해합니다.”
중앙회장을 지난 이들은 어느 복도에 이르러 멈춰 섰다. 복도 한쪽에 낯익은 문이 보였다. 전시회가 열린 날, 가짜 어머니를 만나기 위해 들어섰던 응접실이었다.
“저곳을 중심으로 해서 복도를 빙 둘러 환영들이 나타난다고 합니다. 유리창 밖에서도 보인다고 하더군요.”
“형상은 편지에 쓰신 것 그대로 희끄무레한 사람의 모습, 그것뿐인가요?”
세벨리아가 천천히 복도를 살폈다. 클로드는 세 발자국 멀리 떨어져서 루드밀의 눈에 띄지 않게 관찰을 시작했고, 디하트는 가만히 선 채로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며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 감각을 끌어올렸다.
루드밀이 고개를 끄덕이며 가지고 온 서류를 들춰 보았다.
“예, 시간대와 관계없이 나타납니다. 저도 확인차 들른 날 우연찮게 목격했습니다. 사실 그날 벨라 양께서 불러낸 환영의 잔상이 남은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말끝을 흐리며 그가 한 지점을 바라보았다. 침묵과 동시에 사람들이 그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복도 반대편에 희끄무레한 형체가 보였다. 짧은 머리카락을 가진 훤칠한 키의 청년은 어딜 봐도 그날 환영으로 나타난 네이튼의 피해자 중 한 명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저건…….”
도대체 누구지? 세벨리아가 의아해하는데 디하트의 목소리가 들렸다.
“황제 폐하의 이복동생인 리제트 대공이군. 희한한걸. 그는 지금 변경 지방에 가 있는 데다… 누가 봐도 저렇게 젊지 않거든.”
리제트 대공은 이미 중년을 훌쩍 넘긴 나이였다. 그 덕에 세벨리아는 환영의 정체를 알게 되었으나 혼란은 더욱 가중될 뿐이었다.
그때, 응접실 주변을 살피던 클로드가 탄성을 터트렸다.
“역시 이래서였군.”
“삼촌?”
“네 힘이 여기 붙들려 있구나, 벨라.”
클로드가 가리킨 곳은 주술사의 이중 덫이 그려져 있던 바닥이었다. 그가 품 안에서 가루 같은 것을 꺼내더니 확 하고 뿌렸다.
우웅-
그러자 무게감 있는 울림과 함께 미처 지우지 못한 주술의 잔재들이 드러났다. 그것 때문에 세벨리아가 펼쳐 낸 환영의 힘이 풀리지 못한 채 고여 있던 것이다.
“다 지우고 나면 자연스럽게 흩어질 거야.”
그의 말에 루드밀이 눈을 빛냈다.
“그럼 더 이상 환영이 나타나는 일은 없을 거라고 황자님께 보고 드려도 될까요?”
“예, 사람들을 불러 가구와 카펫을 들춰내고 완벽히 지우고 나면 이틀도 지나지 않아 기현상은 더 이상 나타나지 않을 겁니다.”
“아주 좋군요.”
만족한 루드밀과 함께 세벨리아 일행은 돌아갈 채비를 했다. 한편, 디하트는 클로드의 말을 들은 뒤 무언가를 고민하는지 내내 심각한 표정이었다.
‘강한 힘이 붙들려있는 곳, 장소에 머물러있는 기억…….’
힐렌드 홀에서 나타난 세벨리아의 환영을 이 사건과 연결 짓는 건 무리인 걸까. 디하트가 천천히 생각을 정리할 무렵이었다.
중앙회장으로 다시 돌아온 일행의 귀에 이상한 소리가 포착되었다. 먼 곳에서부터 들리는 소리는 숨죽인 웃음소리와 작게 속삭이는 목소리였다.
“정말로 본 게 맞아요? 그냥 커튼이 흩날리는 걸 본 게 아니라?”
“진짜라니까요. 놀라서 울지나 말아요.”
점점 가까워지는 목소리에 네 사람은 일제히 걸음을 멈췄다. 곧 대여섯 명 정도 되어 보이는 영애들이 연회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어머!”
“꺅!”
누군가 있을 거라는 생각은 꿈에도 해 보지 않은 듯, 놀라 비명을 내지르는 영애들의 손에는 피크닉 가방과 가벼운 담요가 들려져 있었다. 누가 봐도 사람 없는 궁에 몰래 놀러 온 분위기였다.
루드밀이 눈썹을 치켜들었다.
“허, 참.”
앞뒤가 얼추 추측이 되었다. 아마 저들 중 한 명이 뒷문이나 개구멍을 통해 궁에 들어와 환영을 목격한 것이리라.
‘그리고 놀라운 걸 목격했다며 친구들을 끌고 온 건가.’
심약한 이들이라면 놀라 달아났겠지만 상대는 한창 호기심이 들끓는 나이대의 영애들이었다. 루드밀은 그들 중 한 명이 심지어 와인을 들고 온 걸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루드밀이 이 어처구니없는 사태를 어떻게 샤테이안에게 보고할까 고심하는 가운데, 세벨리아는 침음을 흘렸다.
그들 가운데 익숙한 얼굴이 있었다.
“로잘린 영애.”
창백한 얼굴들 속에 금빛 눈동자가 유독 해사하게 반짝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