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fter I Died, My Husband Went Mad RAW novel - Chapter (134)
내가 죽고 남편이 미쳤다 (134)화(134/171)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 세벨리아는 바짝 긴장한 몸에서 힘을 풀기 위해 노력했다.
그때, 주동자로 보이는 영애 한 명이 앞으로 나서며 시무룩하게 말했다.
“폐를 끼쳐 죄송합니다. 금지 구역이라는 건 알지만 유령이 나온다는 말을 듣고 저희도 모르게 들떠 앞뒤 구분을 하지 못했어요. 요사이 그럴듯한 연회나 축제도 없었고…….”
“말하지 않아도 충분히 알겠습니다, 영애. 일단 이 일에 대해서는 각 가문에 따로 말씀을 드리죠.”
루드밀이 미간을 짚으며 차분하게 영애들을 타일렀다. 그러나 그도 속으로는 적지 않게 놀라고 있었다.
‘로잘린 인버네스가 왜 여기 있지?’
아직 약혼식만 치르지 않았을 뿐, 하레스의 정혼자나 다름없는 그녀가 또래 귀족 영애들과 어울려 다닌다는 소식은 듣도 보도 못했다.
‘일단은 여기서 마무리 지어야겠군.’
아무래도 돌아가는 꼴이 심상치 않았다. 그가 디하트를 곁눈질하며 대충 자리를 파하려는데 로잘린이 싱긋 웃더니 보란 듯 입을 열었다.
“여러분께서도 유령을 확인하러 오신 건가요?”
“로잘린 영애, 미안하지만 그건 우리가 말해 줄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에요. 그리고 영애도 친구분들과 함께 이만 돌아가도록 하는 게 좋겠어요. 이곳이 금지 구역이라는 건 알고 있지 않나요?”
경계를 늦추지 않은 채 세벨리아가 대화를 끝내려 했다. 그러나 로잘린은 포기한 기색이 아니었다. 딱딱하게 굳은 디하트를 흘깃 바라본 그녀가 다시 세벨리아에게 고개를 돌렸다.
“왜 그렇게 딱딱하게 구세요, 벨라 양. 따지고 보면 우리는 누구보다 가까운 사이가 될 수 있는 관계 아닌가요?”
“이만하시지 않으면 치안국을 불러오겠습니다.”
보다 못한 클로드가 딱딱한 목소리로 쏘아붙였다. 그에 로잘린이 눈꼬리를 휘며 웃었다.
“어머, 무서워라. 정말 뭐라도 있는 것처럼 구시네요. 혹시 그 유령의 정체가 벨라 양이 불러낸 환영이라도 되나요?”
떠보는 말에 세벨리아는 대답 대신 형식적인 미소를 지어 보였다. 로잘린도 답을 바란 건 아닌 듯 후후, 작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하긴 그럴 리 없죠. 셀리아 영애가 본 건 여자가 아니라 남자라 하였으니까…….”
“그만.”
묵직한 목소리가 연회장을 울렸다. 천둥처럼 떨어져 내리는 남자의 저음에 흥미진진한 눈으로 말싸움을 지켜보던 영애들의 어깨가 움칠 튀어 올랐다.
하지만 단 한 사람, 로잘린만이 기세등등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만하고 네 일행과 함께 돌아가거라, 로잘린.”
그와 동시에 디하트가 몸을 움직였다. 세벨리아를 가리듯 앞으로 나선 덕에 그와 로잘린 사이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이 정도의 축객령도 이해하지 못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고 싶군.”
삭막한 눈빛과 건조한 목소리는 가족이 아니라 남을 대하듯 무심했다. 로잘린이 눈을 깜빡이며 고개를 기울였다.
“이게 남매간의 대화라는 건가요? 색다르네요. 마치 명령을 받는 것 같달까.”
“네가 그렇게 받아들였다면 어쩔 수 없구나. 하지만 틀린 말도 아니지. 네가 정말로 내 동생이라면 가주의 뜻을 따르는 게 원칙이니까.”
“아하, 제가 없는 사이 도둑질한 그 가주의 권리 말이죠.”
로잘린은 재미있는 말을 들었다는 듯 가볍게 손뼉을 치며 눈을 반짝였다.
“흥미롭네요. 하레스 님이 결혼식을 올리기 전에 선물로 주신다고 했는데 슬슬 기대감이 커지는걸요?”
로잘린은 내내 생글생글 웃으면서도 디하트에 전혀 밀리지 않았다. 반면 디하트는 점점 평정을 잃어 가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보이지 않았지만, 그의 뒤에 가까이 서 있는 세벨리아만은 알 수 있었다.
“벨라?”
손을 꽉 잡아 오는 온기에 놀란 디하트가 고개를 돌렸다. 어느새 그의 옆에 선 세벨리아가 로잘린에게 지지 않을 정도로 화사하게 웃으며 말했다.
“이렇게 한가롭게 대화를 나누기엔 장소가 좋지 않네요. 따로 시간을 낼 테니 저택에 한번 방문하시는 건 어떠신가요.”
“네?”
“로잘린 영애께서도 오랜만에 만나는 가족분을 이렇게 보내 드리는 건 아쉬울 거라 생각했는데. 제 생각이 틀렸나요?”
디하트는 이게 어찌 된 영문인지 알 수 없어 멍하니 두 사람을 바라보기만 했다. 그사이 세벨리아는 대화의 주도권을 잡고 로잘린을 압박했다.
“예의 그 승계권에 관해서도 서로 간에 오해가 있으리라 생각해요. 그러니 꼭 제대로 된 자리를 마련하고 싶네요.”
“그건.”
방금 전까지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디하트를 상대로 전면전을 펼쳤던 로잘린은 이제 와 약한 모습을 보였다. 그녀가 이마를 살풋 찡그리며 둘러댈 말을 고르는데,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로잘린, 여기 있었군.”
따라붙는 치안국 관리들을 제치며 등장한 자는 하레스 삼황자였다. 그의 뒤를 따라 샤테이안이 골치 아프다는 표정으로 나타났다.
“이만 돌아가지.”
“…그럼 이만 자리를 떠나야겠네요. 벨라 양, 권유는 고맙지만 제가 이렇게 걱정이 많은 남자와 함께 살고 있어서 아무래도 궁 밖으로 나가는 건 무리일 것 같아요.”
세벨리아의 권유를 부드럽게 거절한 로잘린은 하레스의 팔짱을 끼고 기다렸다는 듯 연회장을 나섰다. 샤테이안은 지금 자기가 뭘 봤냐는 듯 어처구니없다는 얼굴로 고개를 내저었다.
한숨을 내쉰 그가 모두에게 들리도록 말했다.
“그래서, 이게 어찌 된 영문인지 내게 설명해 줬으면 하는데.”
어미에게 버려진 새끼 오리들처럼 연회장 구석에 몰려 있는 영애들이 그 말에 입술을 꾹 다물었다. 루드밀이 아차 하는 얼굴로 샤테이안에게 다가갔다.
“그것이…….”
루드밀이 그의 귓가에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설명하는 동안, 세벨리아는 디하트를 살폈다.
“손이 차가워요.”
“…당신 손은 떨리고 있잖습니까.”
디하트가 제 손을 꽉 잡고 있는 세벨리아의 손등 위에 다른 쪽 손을 올리며 말했다. 그녀가 떨고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고통스러운지, 그는 깊은 한숨을 쉬며 나지막이 속삭였다.
“먼저 나서지 못해 미안해요.”
“사과할 일이 아니라는 거 당신도 알고 있잖아요.”
“…….”
“오히려 나는 당신이 대단하다고 느꼈어요. 나를 미워하는 형제자매 앞에서 용기를 낸다는 거, 나도 해 봐서 아는데 쉽지 않은 일이거든요.”
보석처럼 투명하게 빛나는 푸른 눈동자가 그를 가만히 응시했다.
“심지어 당신은 그녀에게 죄책감을 가지고 있었잖아요. 나처럼 복수심에 불타는 게 아니었으니 더 힘들었을 텐데 자책하지 말아요.”
세벨리아가 손을 들어 그의 뺨을 천천히 쓸어내렸다. 푸른 눈동자가 보석처럼 영롱하게 빛나며 그를 응시했다. 그 속에 담긴 염려와 걱정이 뚜렷이 느껴져, 디하트는 숨이 턱 막혔다.
“이제 그만 가요. 여기 더 있어 봤자 좋을 게 없을 것 같아요.”
세벨리아가 샤테이안에게 먼저 가겠다며 인사를 건넸다. 샤테이안이 루드밀과의 대화를 멈추고 말했다.
“그래, 나도 정리가 필요하니 지금은 이만 돌아가. 내일 다시 입궁하는 것 잊지 말고.”
네이튼 웨든의 심문을 말하는 것이었다.
“실망시켜 드리지 않을게요.”
“믿음직스럽군. 그럼 또 보세.”
세벨리아는 맞잡은 손을 풀지 않고 그대로 디하트와 함께 궁을 나섰다. 클로드는 말없이 그 뒤를 따랐다.
궁 밖으로 나오니 어느새 저녁 무렵이었다. 짙게 물든 하늘을 바라본 그녀가 나지막한 한숨을 내쉬었다.
“이곳에 다시 올 일이 없었으면 좋겠네요.”
디하트가 그녀의 말에 잠자코 고개를 끄덕였다.
* * *
은백합궁으로 가는 길은 멀지 않았으나 하레스는 굳이 마차를 가져왔다. 로잘린이 그의 에스코트를 받아 자리에 앉자 곧 문이 닫히고 마차가 출발했다.
“…….”
“즐거운 나들이였나?”
창밖을 응시하던 금빛 눈동자가 하레스를 향했다. 가느다란 속눈썹이 그 위를 몇 번 덮더니 이윽고 아름다운 미소가 그려졌다.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즐거운 시간이었어요.”
“만족했다면 다행이군. 하지만 시녀들을 떼 놓는 짓은 그만두는 게 좋을 거야.”
하레스가 팔짱을 끼며 탐탁지 않은 기색을 드러냈다. 그는 자신을 향한 로잘린의 변함없는 사랑과 맹목적인 충심을 믿었지만 그것과 별개로 제 손에서 벗어나는 행동은 질색했다.
“그들이 절 갑갑하게 만드는 걸 어떻게 해요. 그리고 영애들과 어울리려면 오늘처럼 철없는 일에도 종종 어울려 줘야 하는 법이에요.”
로잘린이 대수롭지 않게 피식 웃으며 하레스의 말을 잔소리처럼 넘겼다. 애초에 중립파 귀족들의 영애들을 회유해 그들의 부모와 만날 기회를 만들어보자는 건 그의 의견이었기에 뭐라 반박할 말도 없었다.
“그래, 이번에는 봐주도록 하지. 앞으로 조심한다고 약속해.”
“그럼요.”
어렸을 때부터 습관적으로 짓곤 하던, 순종적인 웃음과 함께 로잘린이 그의 손을 부드럽게 잡았다.
“당신 심기 거스르는 일은 하지 않도록 조심할게요.”
* * *
“조심해서 내려요.”
“이젠 멀쩡하거든요?”
세벨리아가 웃으며 디하트를 타박했다. 연회장을 나올 때까지만 해도 잘게 떨렸던 몸은 어느새 평온을 되찾은 뒤였다. 하지만 디하트의 눈은 심각했다.
“혹시 모르니 워츠에게 간단히 진찰을 받은 뒤 식사를 하죠.”
“…걱정이 너무 심한 것 같은데. 그러면 당신도 같이 진찰받아요. 손이 얼음장처럼 차가워지는 것도 건강의 적신호 중 하나예요.”
“그래요.”
깔끔한 수긍에 도리어 당황한 건 세벨리아였다. 하지만 이미 뱉은 말을 다시 주워 담을 수는 없기에 두 사람은 워츠의 연구실 겸 진찰실로 향했다.
그곳은 지난번 해독약을 만들기 위해 꾸며 놓은 방인데, 그 후 해독약의 성과를 확인한 디하트가 아예 그에게 마음껏 쓰라며 열쇠를 내주었다.
복도를 걷는 동안 아주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 그러나 이윽고 디하트가 말문을 열었다.
“실은 궁금한 게 있습니다.”
“네? 뭔데요?”
“아까 전, 그러니까. 연회장에서 로잘린에게 왜 그런 말을 한 겁니까?”
질책하려는 의도가 아니라는 걸 표정으로 여실히 드러내며 디하트가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