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fter I Died, My Husband Went Mad RAW novel - Chapter (135)
내가 죽고 남편이 미쳤다 (135)화(135/171)
“왜 그녀를 저택에 초대하려 했는지 내게 말해 줄 수 있어요?”
“아…….”
세벨리아는 탄성을 흘렸다. 어떻게 할까. 세벨리아는 잠시 고민했다.
‘디하트는 그녀를 어느 정도 가족이라 생각하는 것 같던데…….’
연회장에서 마주쳤을 때, 그는 가주로서 로잘린을 혼냈다. 그건 클로드와 달리 그녀를 인버네스의 일원으로 생각한다는 뜻이었다.
그런 그에게 로잘린을 초대한 뒤 진짜인지 아닌지 살펴보려 했다는 말을 한다면 마음이 상할지도 몰랐다. 세벨리아가 망설이는 사이, 계단을 오르던 클로드가 복도에 멈춰선 그들을 보고 다가왔다.
“무슨 일이라도 있어?”
“아, 그게.”
당황한 듯 잠시 머뭇거리던 세벨리아는 이윽고 무언가를 결심한 듯 그들을 열려 있는 방으로 이끌었다. 졸지에 함께하게 된 두 남자는 멀뚱한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다 터놓는 게 나을 것 같아요.”
“뭘 말입니까?”
“잠깐만요. 지금 발언권은 제가 아니라 클로드 씨에게 있어요. 자, 소중한 조카분 앞에서 그날 도대체 왜 그랬는지부터 말씀해 보세요.”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듯 눈을 깜빡이던 그는 이내 짧은 탄식을 내뱉더니 얼굴을 쓸어내렸다.
“벨라 양, 제발…….”
“이도 저도 아닌 제삼자인 제가 알고 있는 걸 디하트가 모른다는 게 말이나 된다고 생각하세요?”
세벨리아가 엄한 목소리로 말하자 디하트가 눈썹을 치켜떴다. 그러고 보니 자신이 집무실에 자리를 잡고 업무를 해치우는 동안 단 한 번도 클로드의 소식을 듣거나 그가 찾아왔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었다.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별거 아니야. 정말로 별일 아니라니까. 하기도 전에 붙잡혀서 아무것도 못 했어.”
“그럼 바른대로 말해 봐.”
삼촌에게 하기엔 몹시 버릇없는 언사였으나 지은 죄가 있기에 클로드는 시무룩하게 얼굴을 가리고 있던 손을 떼었다.
“그 애가 진짜인지 확인해 보려 했을 뿐이야. 세벨리아의 환영술이 정교하게 사람을 흉내 내는 것처럼 권능으로 보이는 능력이 이 세상 어딘가에는 존재할 수 있으니까.”
“그럴 수도 있겠군. 그럼 따로 확인할 방법도 마련해놓은 건가?”
순순한 반응에 세벨리아와 클로드가 크게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디하트는 지금 이게 무슨 반응이냐는 듯 눈을 치켜떴다.
“가정 중의 하나라면 받아들이지 못할 것도 없어. 오히려 확실하게 매듭짓는 편이 여러모로 편하지. 설마 두 사람 모두 내가 여기서 로잘린을 상대로 어떻게 그런 말을 하냐고 화라도 내길 바란 건 아니겠지?”
입을 벙긋거리는 세벨리아를 보며 한숨을 내쉰 디하트가 클로드에게 물었다.
“그건 그렇고, 그것 때문에 무슨 소동을 벌이기는 했다는 말이군.”
“흠흠.”
클로드가 주먹 쥔 손으로 입을 막으며 헛기침을 했다. 디하트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세벨리아를 자리에 앉히고 자신은 그 곁에 앉았다. 그리고 서 있는 클로드를 향해 명령조로 말했다.
“그럼 한번 말해 보시지. 내가 그 말도 안 되는 승계권 싸움을 막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동안 삼촌이라는 사람은 무슨 난장판을 벌이려 하셨는지.”
“너는 꼭 말을 해도.”
“사실 말할 필요도 없긴 해. 보나 마나 혼자서 알아보겠다며 사라지려고 했겠지.”
“어떻게 알았어요?”
세벨리아가 눈을 크게 뜨며 그를 돌아보았다. 디하트가 알 만하다는 듯 피식 웃음을 흘렸다.
“뻔한 일 아닙니까. 삼촌의 안에서 나는 아직도 울부짖는 꼬맹이니까, 로잘린과 관련해서 부담을 주거나 상처를 크게 키우는 행동을 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겠죠. 그러니 자기가 나서서 그녀의 진위 여부를 알아보고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나섰을 게 분명합니다.”
그야말로 클로드의 속내를 정확히 짚어 낸 말이었다. 클로드는 말문이 막혀 허, 하고 숨을 내뱉으며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정말 쓸모없는 고민을 하고 계셨군요, 삼촌.”
디하트가 입꼬리를 올리며 손에 턱을 괴었다. 말끝마다 삼촌, 삼촌 거리는 게 이 상황이 꽤나 즐거운 듯 보였다. 그 모습에 클로드는 저도 모르게 안심하는 자신을 발견했다.
‘나란 놈은…….’
입 안에서 혀를 찬 클로드가 디하트에게 물었다.
“그래서 너는 어쩌려고 했던 거냐?”
“진위 여부를 밝힐 계책을 왜 내게 물어보는 겁니까. 두 사람이 어련히 잘 마련했을 것 같은데.”
디하트가 손바닥을 내보이며 뻔뻔하게 말했다.
“하지만 공작으로서 대답해드리자면, 그 애가 진짜든 아니든 달라지는 건 없습니다. 나는 내 자리를 누구에게도 빼앗길 생각 없으니까.”
로잘린이 진짜라 하여도 제게 이빨을 들이미는 건 용납할 수 없었다. 그 누구도 자신에게서 공작위를 빼앗아 갈 수는 없었다.
이제 그에게 인버네스의 가주라는 자리는 단순히 북부를 대표하는 걸 넘어서 세벨리아를 지킬 힘이나 다름없으니까.
‘하레스 삼황자는 시기를 잘못 골랐어.’
그는 아마도 일황비의 세력이 주춤한 틈을 타 북부 세력을 등에 업고 황권을 손에 넣으려 한 모양이지만… 잘못된 선택이었다.
세벨리아의 장례식이 끝난 후, 미치광이 시절의 자신이었다면 분명 로잘린이 진짜든 가짜든 상관하지 않고 그녀에게 공작의 자리를 넘겨주었을 텐데.
디하트는 냉소를 흘리며 천천히 눈을 감았다 떴다. 방 안의 공기가 피부로 느껴졌다. 자그마한 호흡, 살갗을 스치는 옷감에서 나는 소리. 사소한 움직임 하나하나가 세벨리아가 살아서 그의 곁에 있다는 걸 알려 주었다.
곁에 앉은 이 존재가 얼마나 소중한지 새삼 깨닫자, 디하트는 등줄기를 타고 오르는 전율에 저도 모르게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세벨리아가 말문을 열었다.
“그럼 이제 제가 말해도 될까요?”
“얼마든지요.”
클로드가 관객을 초대한 주인처럼 손을 좌우로 펼치며 말했다. 긴장을 풀어 주려는 게 눈에 보여 세벨리아가 싱긋 웃었다.
“클로드 씨도 방금 전 로잘린 영애와 만났을 때 제가 한 말, 기억하시나요?”
“무슨 말을, 아. 저택에 초대하겠다고 한 것 말입니까.”
“네. 사실 클로드 씨의 말을 듣고 제 능력이 이번 일에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었거든요.”
클로드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기울이는 찰나, 디하트가 앉아 있는 쪽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과연.”
“디하트?”
“잘 생각해 봐, 클로드. 벨라의 ‘특기’가 뭔지. 그걸로 뭘 알아낼 수 있는지. 이미 알고 있잖아.”
디하트가 손깍지를 끼며 느른하게 뱉은 말에 클로드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의 고개가 홱 하는 소리와 함께 돌아갔다. 자신이 생각하는 게 진짜냐는 듯 물어 오는 눈빛에 세벨리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말해서 어린 날의 기억을 끄집어낼 수 있을 거라는 장담은 없어요. 그날, 네이튼의 기억을 환영으로 만들어 냈을 때도 제가 직접 그의 기억을 선택한 건 아니었거든요.”
그 날 이후로 특기를 시도해본 적이 없기에 사실 도박이나 다름없었다.
‘몇 번 더 시도해보면 감이 잡힐 것 같긴 하지만 시간이 넘쳐나는 것도 아니고.’
게다가 이만큼 빠르고 바로 결과를 알 수 있는 검증 수단도 없으니, 그녀로서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그런다 한들 로잘린이 초대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소용없는 일 아닙니까.”
“거절하지 못할 제안을 할 거예요. 그들은 선대 공작 전하의 유언장을 원하니까.”
며칠 전 하레스는 언론에 은근슬쩍 선대 공작의 유언장을 보길 희망한다는 이야기를 흘렸다. 공작이 지금까지 유언장을 공개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곳에 로잘린에게 공작의 자리를 계승한다는 내용이 있기 때문이라는 말까지 덧붙이며.
“유언장은 밖으로 내돌릴 수 없는 물건이니 저택으로 초대할 수밖에 없다고 하면 그쪽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죠.”
“오, 좋은 방법인데요? 흠, 거기에 더해 이런 조건은 어때요. 유언장을 볼 수 있는 건 고인의 가족뿐이니 삼황자는 동행할 수 없다든지.”
클로드가 씨익 웃으며 손깍지를 꼈다. 유언장을 보고 싶으면 로잘린을 혼자 보내라는 제안에 삼황자는 갈등할 것이다. 그냥 무시하기에는 지나치게 먹음직스러운 미끼니까.
어느 정도 이야기가 정리된 듯하자 디하트가 몸을 일으켰다.
“초대장은 내 이름으로 보내도록 하죠. 그럼 갑시다, 벨라.”
“음? 둘이 어디 같이 갈 데가 있어요?”
클로드가 눈을 크게 뜨며 묻자 세벨리아가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같이 워츠 씨에게 검진을 받기로 했거든요. 자, 가요.”
그렇게 말하며 그녀는 손을 내밀었다. 디하트는 제 앞에 내밀어진 손을 가만히 바라보다 입술을 꾹 다물고 조심스럽게 손을 맞잡았다.
그 모습이 꼭 처음 손을 잡고 수줍어하는 어린아이 같아 클로드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저렇게 이제 막 연애를 시작하는 커플 같은 행동을 보이는 이들을 누가 전남편 전부인 사이로 볼까.
클로드는 이 순간 어쩐지 발라크의 심정이 이해되는 것도 같았다. 하지만 그는 그와 달리 두 사람의 새로운 시작을 응원했다.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이래 봬도 자신은 디하트의 삼촌이 아닌가. 팔은 안으로 굽기 마련이었다.
* * *
워츠의 검진 결과 세벨리아는 가벼운 탈진과 미열, 디하트는 과로라는 진단명이 내려졌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가벼운 힐난이 섞인 눈길을 보냈다가 클로드에게 한 소리 들어야만 했다.
“이렇게 쉽게 탈진이 나서야… 안 되겠어요. 특훈이 필요한 시점이군요.”
“특훈이요?”
“네, 특훈이요. 기대하도록 해요.”
클로드는 그 말을 남기고 디하트를 억지로 부축해 돌아갔다. 졸지에 혼자 남겨진 세벨리아는 의문에 찬 상태로 하루를 보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세벨리아는 오찬실에 들렸다가 놀라 말을 잃었다. 긴 식탁 위에 한가득 차려진 식사가 아침에 먹기엔 너무 과하고 푸짐했던 탓이다.
어느새 나타난 워츠가 무덤덤한 목소리로 말했다.
“다 먹으면 좋겠지만 그건 불가능하겠죠? 일단 양껏 드십시오. 그 이후에는 시간을 두고 영양제까지 섭취하시면 됩니다.”
“이걸 다 먹일 생각이었어요? 아니, 그보다 영양제까지 먹는다고요?”
“영양학적으로 완벽하게 설계한 계획이니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됩니다.”
워츠가 단호하게 그녀의 간청을 무시했다.
“워츠 씨, 영양이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양이 문제라고요.”
“그럼 앉으실까요? 곧 디하트 씨와 클로드가 내려올 겁니다.”
항변은 통하지 않았다. 심지어 뒤이어 등장한 디하트마저도 처음에는 질색하는 눈빛으로 식탁을 노려보았다가 워츠의 말을 듣고는 순식간에 태도를 바꿨다.
“건강을 위해서라면 어쩔 수 없지. 벨라, 기초 체력이 늘면 쉽게 탈진할 일도 없어질 거예요. 자, 식사하죠.”
“하아.”
결국 세벨리아는 식기를 들 수밖에 없었고, 그녀를 제외한 세 남자는 만족스러운 눈빛을 공유하며 아침 식사를 시작했다.
‘이렇게 먹으면 정말 배 꺼질 일은 없겠어.’
질린 얼굴로 두툼한 스테이크를 썰며 세벨리아는 한숨을 삼키다가 생각을 고쳐먹기로 했다.
그렇지 않아도 오늘은 네이튼 웨든의 심문이 있는 날이었다. 환영술을 사용해야 하니 이렇게 든든하게 먹어 두는 것도…….
‘아.’
설마. 세벨리아는 저도 모르게 입술을 깨물 뻔했다. 자신을 향한 그들의 걱정을 뒤늦게 알아차린 탓이었다.
‘왜 이제 와서 식단 관리를 하나 했네.’
흘러나오는 웃음을 그대로 내버려 둔 채, 세벨리아는 빛을 받아 윤이 나는 토마토를 포크로 쿡 찔렀다.
이렇게 귀여운 걱정이라면 마음껏 받아도 될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