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fter I Died, My Husband Went Mad RAW novel - Chapter (136)
내가 죽고 남편이 미쳤다 (136)화(136/171)
시간은 훌쩍 지나갔다. 세벨리아는 디하트와 함께 마차를 타고 황궁으로 향했다.
“그럼 다녀와요.”
클로드는 이번 황궁행에 동행하지 못했다. 환영술사 클로드가 아닌 평범한 칼 어펜츠는 네이튼 웨든 심문에 참여할 자격이 없기 때문이었다.
마차는 황궁의 문턱을 넘어 가장 그늘진 곳으로 들어섰다. 그곳은 치안국이 관리하는 탑이 위치한 곳으로, 네이튼 웨든이 수감 중인 곳이기도 했다.
“어서 오십시오, 인버네스 공작님. 그리고 벨라 어펜츠 양. 오늘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치안국 경관으로 보이는 이가 나와 그들을 맞이했다. 세벨리아는 삭막한 주변 풍경을 한 번 둘러보았다가 말했다.
“네이튼 웨든이 있는 곳은 저 탑이겠군요.”
사람을 여럿 죽인 흉악범이지만 고명한 백작가의 장자이자 후계자였다. 사일러스가 그를 축축한 지하 감옥에 가도록 내버려 뒀을 리 없다.
“예, 그렇습니다. 올라가는 길은 간수가 안내해 줄 겁니다. 그럼 이만.”
경관은 모자를 벗으며 경례를 하고는 등을 돌렸다. 딱딱한 말투와 차가운 태도를 보아하니 자신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것 같았다.
‘미움받아도 어쩔 수 없지.’
세벨리아는 쓴웃음을 속으로 삼켰다.
환영술로 네이튼을 심문하자는 의견이 제시되었을 때, 치안국 내에서 반발이 많았다고 들었다. 샤테이안 이황자는 그들의 의견을 억누르며 일방적으로 일을 진행했고.
‘이렇게 된 이상 아직 밝혀지지 않은 피해자들뿐만 아니라 사일러스까지 한 번에 잡아넣을 증거를 확보해야 해.’
몇 번이나 이곳에 발을 디디게 될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포기하지는 말자. 세벨리아가 굳게 다짐하는 사이 탑에서 누군가 내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끼익-
곧 금속이 스치는 소름 끼치는 소리와 함께 묵직한 문이 열렸다. 간수가 그들을 맞이했다.
“들어오시면 됩니다.”
세벨리아는 디하트와 함께 조심스럽게 그 안으로 발을 들였다.
“햇빛이 없는 것도 아닌데 어쩐지 춥네요.”
“그렇게 느껴도 무리는 아니죠. 이곳에 갇혀 한평생 탑 바깥으로는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하고 생을 마감한 이들이 한둘이 아니니까 말입니다.”
세벨리아의 눈이 커다래졌다. 디하트는 그녀가 계단을 쉽게 오르도록 에스코트하며 속삭였다.
“네이튼은 아마 이곳이 아니라 지하 감옥에 가길 원했을 수도 있습니다. 거기는 차라리 죽거나 살아 나오거나 둘 중 하나인데, 탑은 그렇지 않으니까요.”
“무섭네요.”
“높으신 분들이 하는 짓이 다 그렇죠.”
두 사람의 대화를 들었을 게 분명한데도 간수는 한마디도 하지 않고 앞장서서 계단을 올랐다. 먹색의 철문이 나타났을 때가 되어서야 그는 세벨리아를 돌아보았다.
“이곳입니다.”
간수는 열쇠를 건네주고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마치 그녀로부터 거리를 두고 싶다는 듯이.
“약속대로 한 시간 뒤에 문을 열기 위해 돌아오겠습니다. 그 전에 무슨 일이 생긴다면 안에 설치된 설렁줄을 잡아당기시면 됩니다. 그럼 이만.”
깔끔하고 정 없는 설명과 함께 간수는 멀어져 갔다. 세벨리아는 그가 건넨 열쇠를 손안에 꾹 쥐었다가 열쇠 구멍에 밀어 넣었다.
찰칵.
“우으, 으. 으으!”
문이 열리고 안쪽에서 의미를 알 수 없는 웅얼거림이 들려왔다. 세벨리아는 숨을 들이쉬고 안쪽으로 당당하게 들어섰다.
그곳엔 입에 재갈을 물고 의자에 사지를 포박당한 네이튼이 있었다. 마치 잘 포장된 선물처럼 방 한가운데에 놓인 그는 분을 못 이기며 의자째로 바닥을 쾅쾅 내리쳤다.
“하아.”
세벨리아가 작게 탄식하며 고개를 살래살래 내저었다. 한심하다는 듯한 반응에 네이튼이 더욱 미쳐 날뛴 건 당연지사였다.
“디하트.”
“음?”
“죄수를 좀 조용하게 만들 방법이 없을까요?”
세벨리아가 진절머리 난다는 듯 시선을 돌리며 하는 말에 디하트가 싱긋 웃으며 앞으로 한 걸음 나섰다.
“물론 있죠. 사실 앞으로 이틀은 눈도 뜨지 못하게 해 줄 수도 있는데. 어떻게 할까요?”
“아, 그건 됐어요. 괜히 치안국 사람들에게 트집 잡히기는 싫으니까.”
디하트가 고개를 끄덕이며 걸음을 옮겼다. 점점 가까워지는 그의 모습에 네이튼은 몸부림을 멈추고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탑 안에서까지 이럴 거라고는 생각 못 한 모양이지.’
하여간 곱게 자란 놈들은 생각하는 게 참 평화롭다니까. 디하트가 차갑게 웃으며 그의 뒤로 돌자 네이튼이 개처럼 우는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우우, 우우우!”
“미안하군. 내가 미친놈이기는 한데, 그래도 짐승이랑 말이 통하는 수준은 아니라서 말이야.”
그와 동시에 디하트의 손이 네이튼의 목덜미를 빠르게 강타했다. 네이튼은 컥 하는 소리도 뱉지 못하고 의자 위에 축 늘어졌다.
“시작해요, 벨라.”
네이튼을 친 손을 손수건으로 닦으며 디하트가 부드럽게 말했다. 세벨리아는 어느새 기절한 네이튼의 어깨를 짚고 있었다.
“자, 그럼…….”
어떤 기억이 있나 한번 볼까.
‘아직 시신이 발견되지 않은 피해자들. 그 사람들이 실종된 날들이 나오면 좋겠는데.’
파아앗-!
세벨리아가 눈을 감자 푸른 빛이 온 사방으로 터져 나갔다.
* * *
환영술을 이용한 네이튼 웨든의 첫 심문이 성공적으로 끝난 것 같다는 소식은 순식간에 사일러스의 귀에 들어갔다.
“지금 내가 무슨 헛소리를 들은 거지?”
경악스러운 외침이 천장을 뚫었다. 사일러스는 도무지 믿을 수 없다는 듯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주먹으로 책상을 내리쳤다.
“환영술을 심문에 도입하다니. 그건 아직 제대로 검증도 안 된 능력이야. 도대체 누가 그런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들어준 거야!”
“그, 그것이. 샤테이안 이황자께서 허가하신 조치라고 합니다.”
“그 빌어먹을 새끼가, 그럴 줄 알았어! 그때 황후와 함께 보내 버렸어야 하는 건데!”
분노하는 사일러스를 앞에 두고 수하가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치안국 내에서도 반대하는 자가 있었으나 이황자가 함구령을 내려서 오늘이 되어서야 소문이 돌았답니다.”
그게 변명이 아니면 무엇인가. 사일러스는 제 마음대로 굴러가지 않는 상황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
‘이게 다 그년 때문이야.’
자신이 디하트를 죽이기 위해 이리저리 머리를 굴리는 동안, 그 빌어먹을 딸년은 감히 아비의 등에 칼을 꽂기 위해 제 오라비의 머리를 뒤적거리려 수작질을 부린 것이다!
“배은망덕한 것…….”
사일러스가 으드득 이를 갈았다. 그의 눈이 희번덕 빛나며 어느 한 곳을 훑었다. 주술사로부터 받아 낸 부적이 있는 곳이었다.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몸으로 만들어 주마.’
사일러스는 평소와는 다른 방식으로 움직이기로 했다. 고심해서 덫을 짜고 자신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에둘러 일을 시키다가는, 그사이 세벨리아가 네이튼의 머릿속을 뒤집어 오만 기억을 다 꺼내 버릴 수도 있었다.
“시간이 없어…….”
오늘은 어찌어찌 운 좋게 넘어갔다고 하지만 앞으로 이어질 심문에서 네이튼의 기억 속에 자신이나 일황비가 나오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었다.
‘모반과 관련된 기억이 밝혀지기라도 하면 곤란해.’
“빌어먹을!”
이렇게 궁지에 몰린 건 처음이었다. 심지어 자신을 구석에 몰아넣은 상대가 다른 누구도 아닌 사생아라는 사실에 사일러스는 몹시 치욕스러웠다.
그가 몸을 부르르 떨자 수하가 용기를 내 입을 열었다.
“후작님, 실은 말씀드리지 않은 사실이 있습니다.”
“내 화를 돋우려는 거라면 필요 없다.”
“아닙니다. 분명 듣고 나시면 생각이 바뀌실 겁니다.”
수하가 한 걸음 다가가며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보고 드리기 전, 정보를 입수하자마자 관리자들을 중심으로 벌써 작업이 들어갔습니다. 치안국을 아니꼽게 여기는 간수들을 몇 명 확보했으니 빠른 시일 내에 골칫거리를 해결할 수 있을 겁니다.”
그 말에 사일러스가 가는 눈을 떴다. 그는 수하의 말이 진짜인지 판별하는 시선으로 그를 몇 차례 훑었다.
수하의 얼굴빛은 흔들림 없었다.
“흠, 그렇단 말이지.”
마침내 사일러스는 탐탁지 않은 척, 자존심을 지키며 분노를 거두었다.
“한번 말해 봐라.”
“그럼 잠시… 귀를 빌려주시겠습니까.”
수하는 안심한 표정으로 사일러스에게 다가가 향후 계획에 대해 속삭였다. 그의 말이 이어질수록 일그러진 사일러스의 얼굴이 점차 펴졌다.
수하가 몸을 떼며 기대에 찬 얼굴로 물었다.
“이렇게 하면 어떻습니까?”
“…제법이군. 그거라면 확실히 한 번에 깔끔히 처리할 수 있겠어.”
사일러스가 만족스러운 웃음을 흘렸다. 상관의 칭찬에 기분이 좋아진 수하는 무슨 일이 있어도 골칫거리를 해결하겠다며 자신만만한 포부를 밝혔다.
“이것만 해결하면 이제 웨든가를 위협하는 건 없을 겁니다.”
피식 웃은 사일러스는 창문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가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본 사람처럼 눈을 크게 떴다. 순식간에 차갑게 굳는 그의 표정에 심상치 않은 기색을 감지한 수하가 창가로 다가갔다.
“무슨 일이십……!.”
수하가 놀라 사일러스를 바라보았다. 차갑게 가라앉았던 사일러스의 눈은 다시금 불타오르고 있었다.
자신의 사정이 급해 잠시 잊고 있었다. 당장 디하트를 죽이고 세벨리아를 손에 넣어 이 빌어먹을 상황을 단숨에 뒤집어엎어야 한다는 생각에 몰두하느라, 북부에 처박혀 아등바등 애쓰는 여자를 떠올릴 겨를이 없었다.
“그렌 인버네스.”
그의 입에서 그녀의 이름이 떨어져 내린 순간, 마차에서 내린 그렌이 고개를 올려다보았다. 붉은 머리칼과 녹빛 눈동자가 어둠 속에서도 확연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쳤다. 사일러스는 표독스러운 표정으로 미소 짓는 그렌을 보며 사납게 웃었다.
“더 이상 손 놓고 있지 않겠다는 건가.”
알고 지낸 세월만큼 진절머리 나는 상대를 바라보며, 사일러스는 주먹을 꽉 쥐었다. 그를 곁에서 바라보는 수하의 얼굴에 걱정스러운 빛이 스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