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fter I Died, My Husband Went Mad RAW novel - Chapter (138)
내가 죽고 남편이 미쳤다 (138)화(138/171)
디하트가 눈살을 찌푸리며 시선을 돌렸다. 세벨리아는 집요하게 그의 눈을 쫓았다.
“역시 계속 거절당하는 중인 게 맞죠?”
결국 못 이긴 그가 한숨을 내쉬며 의자에 몸을 기댔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립니다. 무시당하는 중이죠.”
세벨리아가 살풋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생각보다 더 방어적이네요. 유언장을 보고는 싶지만 로잘린은 보내지 못하겠다는 걸까요. 아니면 그냥 덫이라고 생각하는 걸까요.”
디하트가 천천히 숨을 내쉬며 고개를 뒤로 젖혔다.
“어찌 되었든 로잘린을 만나야 하긴 합니다.”
계승권 싸움을 종식하기 위해서 뿐만이 아니라, 클로드의 끈질긴 미련을 끝내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확실한 결과를 보여 주지 않는 이상 클로드는 끊임없이 자책할 게 뻔하다고 디하트는 생각했다.
어린 자신과 로잘린에게 부모보다 더 큰 애정을 쏟던 게 클로드였다. 그러니 로잘린의 시체가 발견되지 않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긴 세월 동안 그녀의 생존에 한 자락 기대를 걸 수 있었겠지.
‘나조차도 그 애가 살아 있으리란 생각은 하지 못했는데.’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도 비 내리는 어두운 숲속에서 자그마한 여자아이가 혼자 살아남을 가능성은 크지 않았다.
자신이 살아 발견된 것마저 기적이라고 여겨질 정도였으니, 그보다 어렸던 로잘린은 어떠했겠는가.
“힐렌드 홀에서 유언장 말고 다른 것들을 가져왔으니 한번 살펴봐요. 로잘린이나 삼황자가 요새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것들 위주로 추려 왔는데…….”
디하트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복도를 울리는 발소리가 들렸다. 세벨리아가 고개를 들자 누군가 다가와 문을 두드렸다.
똑똑, 단정한 노크 소리와 함께 들려오는 목소리는 클로드의 것이었다.
“들어오세요.”
“아, 함께 있었군요. 잘됐습니다.”
클로드는 드물게 의욕적인 모습이었다.
“무슨 일이에요?”
“경매장에 갔다가 로잘린을 먼발치에서 봤는데, 오늘 저녁에 대극장에 간다더군요. 그래서 바로 무슨 오페라인지 알아보고 티켓을 사 왔죠.”
클로드는 꽤나 신이 난 것 같았다. 하긴, 그는 초대장이 보내는 족족 거절당하는 걸 목격한 뒤 디하트와 따로 움직이며 로잘린과 만날 방법을 모색해 왔다.
물론 지금까지 성공한 적은 없었지만.
“이번에는 꽤 자신 있으신가 봐요.”
“그럼요. 무려 바로 반대편의 박스석을 예매해 왔습니다.”
클로드가 자랑스럽게 말하며 티켓을 내보였다. 금박을 입힌 적색의 티켓은 고급스러운 태가 보였다. 세벨리아가 고개를 갸웃했다.
“대극장에서 그리 쉬이 박스석을 내주던가요?”
“아. 그건 다 방법이 있죠.”
저택을 빠져나가 수도를 돌아다닌 건 그저 시간 보내기용이 아니었다. 하지만 세벨리아에게 직접 이야기하기에도 뭣한 내용이라 클로드는 대충 둘러댔다.
“그럼 준비를 해야겠군.”
삼촌의 곤혹스러움을 꿰뚫어 본 디하트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세벨리아는 영문을 모르는 얼굴로 그를 따라 몸을 세웠다.
“마차를 대기시키라 할 테니 단장이 끝나면 내려오도록 해요. 그리고 일단 물건을 챙겨 갑시다.”
“음, 그래요. 그게 좋겠네요.”
자연스럽게 지나가는 화제에 클로드는 소리 없는 한숨을 내쉬며 디하트에게 가볍게 윙크했다. 당연히 디하트는 그를 무시한 채 세벨리아를 방까지 에스코트했다.
잠시 뒤, 세 사람은 엘리샤 대극장의 계단 아래 내려섰다. 마부가 작게 고개를 숙이고는 마차를 몰고 지정된 장소를 향해 떠났다.
“어쩐지 긴장되는군요.”
클로드가 펄떡거리는 심장 위로 손을 얹으며 말했다. 세벨리아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잘하면 오늘 로잘린의 진위 여부를 밝힐 수 있으니 긴장되는 게 당연했다.
“그것도 확실히 챙겨 온 게 맞죠?”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세벨리아의 물음에 디하트가 싱긋 웃으며 제 가슴께를 두드렸다. 자세히 보니 재킷 상의 부분이 작게 올라와 있었다.
그건 요새 로잘린이 관심을 보인다는 물건 중 하나로 그녀와의 협상을 위해 힐렌드 홀에서 급히 공수해 온 물건이었다.
‘부디 일이 잘 풀리기를.’
세벨리아는 간절한 얼굴로 디하트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계단을 올랐다. 클로드가 그들의 뒤를 따르는 걸 흘깃 어깨 너머로 확인한 그녀가 작게 속삭였다.
“그런데 일레이 경의 체력은 정말 대단한 것 같아요. 힐렌드 홀에 다녀온 지 얼마나 되었다고 다시 그 먼 거리를 왕복한 건지.”
“정확히 말하자면 검문소 근처까지만 갔다 온 겁니다. 그리고 그리 대단하다고 할 것도 못 됩니다. 정작 고생한 건 일레이에게 혹사당한 말이죠.”
“그건…… 그렇네요?”
뭔가 이상한데 묘하게 사리에 맞아 반박할 수가 없었다. 세벨리아가 기묘한 표정으로 생각에 골몰하는 도중 세 사람은 어느새 계단 끝에 다다랐다.
엘리샤 대극장의 장엄한 광휘가 그들을 감싸 안았다. 완전히 복귀한 프리마 돈나의 성대한 오페라가 곧 시작될 예정이었다.
문 앞에서 꽃을 파는 아이들을 본 세벨리아의 얼굴에 미소가 감돌았다. 하지만 그녀의 평온은 곧 긴장으로 바뀌었다.
문 안쪽으로 검은 머리를 하나로 곱게 땋아 내린 로잘린이 보였기 때문이다. 그녀는 땋은 머리 위를 백금과 다이아몬드로 장식했는데 덕분에 그녀가 작게 움직일 때마다 빛이 산란하듯 그녀 주위를 장식했다.
“걱정하지 말아요.”
그때, 낮은 목소리가 그녀의 귓가를 휘감았다. 굳이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 세벨리아는 바짝 붙은 남자의 체온과 함께 그의 다정한 목소리를 기꺼이 받아들였다.
“걱정은 당신이 해야 할 일이잖아요.”
만약 로잘린이 가짜라면 클로드는 큰 상처를 받을 것이다. 디하트 또한 알게 모르게 실망할 수도 있고.
하지만 세벨리아가 흘긋 올려다본 그는 개의치 않아 보이는 태도였다. 겉으로만 보이는 연기일까, 혹시 자신이 심란해할까 봐 무리하는 걸까. 세벨리아가 그런 생각을 하는 걸 알아차린 건지 그가 무심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이제 와 말하기 뭐하지만 이미 각오한 바입니다. 내게 승계권을 요구한 시점부터 원만히 풀릴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어요.”
“…….”
“그리고 만약 저 아이가 진짜라면, 그동안 그녀를 찾지 않고 그리워하지 않은 멍청한 오라비로서 그 화를 온당히 받아 내면 될 일입니다. 그게 몇십 년의 세월이 걸리더라도 말입니다.”
뒤이어 그는 작게 덧붙였다. ‘그래도 공작 위를 내줄 수는 없습니다.’ 뚜렷한 의지가 새겨진 목소리에 세벨리아는 저도 모르게 분위기를 잊고 작게 웃을 뻔했다.
그 순간, 또렷한 시선이 느껴졌다. 세벨리아는 천천히 웃음기를 거두며 고개를 바로 세웠다.
문 너머, 사람들로 북적이는 홀 한가운데 별처럼 반짝이는 로잘린이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 * *
오늘도 제국이 자랑하는 프리마 돈나는 완벽하고 흠결 없는 무대를 보여 주었다.
“자리에서 일어나는군요.”
1막이 끝나고 불이 켜지자 맞은편 박스석에 있는 로잘린의 모습이 아주 잘 보였다. 그녀는 허리를 숙여 함께 온 친구로 보이는 영애에게 무어라 속삭이더니 해사하게 웃으며 뒤를 돌아 사라졌다.
기다리던 때가 왔다. 서편에 위치한 여인용 휴게실은 1층에 있는 데다 현재 공사 중이라 출입이 불가능하니 그녀는 분명 동편에 있는 곳으로 갈 터.
세벨리아는 손에 쥔 작은 상자를 꽉 움켜쥐었다. 지체할 시간 따위는 없었다.
“잘 될 거예요, 벨라.”
“곳곳에 관객으로 위장한 기사들을 배치해 두었으니 혹여나 위협을 느낄 만한 일이 있으면 곧장 그들을 부르면 될 겁니다.”
클로드와 디하트가 연달아 그녀를 안심시켰다. 세벨리아는 그들의 걱정에 저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다녀올게요. 되도록 좋은 소식을 들고요.”
진짜이든 가짜이든, 어느 쪽이든 좋은 소식이자 슬픈 소식이었지만 그녀는 일부러라도 그렇게 말했다.
클로드가 희미한 웃음과 함께 그녀를 배웅했다.
* * *
세벨리아는 먼저 휴게실 앞에 자리를 잡고 로잘린이 오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인터미션의 끝이 코앞으로 다가왔음에도 그녀는 보이지 않았다.
점점 줄어드는 사람들의 수를 보며 세벨리아는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걸 느꼈다.
‘휴게실이 아니라 다른 곳으로 갔거나, 자리로 돌아간 거라면 기사들이 진작에 내게 알리러 왔을 거야.’
하지만 그 누구도 제게 로잘린의 행방을 알리지 않았다. 그 말인즉, 그녀가 기사들의 눈에도 닿지 않는 어딘가로 향했다는 소리였다.
어떻게라는 의문은 필요치 않았다. 세벨리아는 로잘린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 거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덫에 빠진 걸지도 모른다. 예전의 자신처럼.
그건 본능에 가까운 직감이었다.
“에티라.”
세벨리아가 작게 속삭이자 푸른 새가 소매 아래서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작은 새의 모습을 투명하게 만든 뒤 허공에 날려 보냈다. 다행히 복도에 남은 사람이 없어 누구도 그녀의 행동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로잘린 인버네스가 어디 있는지 찾으면 내게 알려 줘.]에티라는 마음속으로 작은 울음소리를 보내고는 날개를 퍼덕이며 건물의 서편으로 사라졌다. 세벨리아는 입술을 질끈 깨물고 계단을 뛰듯 내려갔다.
‘디하트가 기사들을 배치한 곳은 귀족들이 주로 모여 있는 장소라고 했어. 그럼 일단 휴게실과 중정, 카페테리아는 아니야. 그리고 관객과 배우들이 오가는 곳을 제외하면 남은 곳은…….’
그때, 가슴 속에 강한 고동이 울려 퍼졌다. 처음 느끼는 감각에 세벨리아는 헛숨을 들이키며 난간을 붙잡았다.
‘에티라.’
환영마와 연결된 영혼의 끈을 통해 전달되는 건 불안과 공포, 그리고 분노였다. 동시에 그녀는 에티라가 하얀 벼락의 이미지를 제게 보내려 애쓰는 걸 느꼈다.
로잘린을 찾은 게 틀림없었다.
세벨리아는 천천히 숨을 고르며 감았던 눈을 떴다.
‘에티라. 어디니? 어디에 있어.’
곧 섬뜩한 감각과 함께 그림이 펼쳐지듯 머릿속에 어떤 모습이 떠올랐다.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유지 보수를 위해 잠시 폐쇄되었다는 현판이 걸려 있던 미색의 문. 그곳은 바로 1층에 위치한 여인용 휴게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