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fter I Died, My Husband Went Mad RAW novel - Chapter (139)
내가 죽고 남편이 미쳤다 (139)화(139/171)
세벨리아는 지체하지 않고 1층 휴게실로 향했다. 가는 도중 관객으로 변장한 인버네스 기사 한 명과 눈이 마주쳤다. 그는 놀란 얼굴로 세벨리아에게 다가오려 했으나 그녀가 손을 들어 막아 세웠다.
‘가서 디하트를 불러와요. 1층 여성용 휴게실로.’
그녀가 소리 없이 입 모양으로 말하자 기사는 고개를 끄덕이고 층계 위로 사라졌다. 세벨리아는 걸리적거리는 드레스 자락을 두 손으로 움켜쥐고 다시 걸음을 재촉했다.
“어디……. 찾았다.”
세벨리아는 거침없이 문고리를 잡아당겼다. 하지만 무슨 짓을 했는지 문은 덜컥거릴 뿐 열리지 않았다. 그때였다. 문틈에서 푸른 깃털 하나가 스르륵 빠져나오더니 달칵하는 소리와 함께 잠금쇠가 풀렸다.
[고마워.]세벨리아는 에티라에게 짧게 감사 인사를 하고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푸른 새는 작게 울더니 그녀의 소매 안으로 쏙 들어왔다.
“이게, 무슨.”
방 안을 훑은 푸른 눈이 당황에 일그러졌다.
어지간한 소극장 크기의 휴게실 안은 자욱한 안개로 꽉 차 있었다. 그와 동시에 쾅 하는 소리가 들렸다. 세벨리아는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등 뒤에 있어야 할 문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괜찮아. 침착하자.’
일단 디하트를 불렀으니 큰일은 생기지 않을 터였다. 그녀는 조심조심 안개에 감싸인 휴게실 안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분명 이 안에 로잘린이 있을 터였다.
‘이름이라도 불러야 하나?’
잠시 고민했으나 그러지 않기로 했다. 도움을 주려는 행위가 도리어 로잘린을 위험에 빠트리게 할 수도 있으니. 세벨리아는 대신 소매 안에 있던 에티라를 날려 보내기로 했다.
[에티라, 잘 들어. 만약 영애가 있는 곳을 발견하면 소리 내지 말고 내게…….]그때였다. 휴게실의 공간을 구분 짓는 가벽 너머로 무언가가 번쩍였다. 벼락이었다.
“……!”
세벨리아는 지체 없이 섬광이 번뜩인 곳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아까는 들리지 않았던 소리가 점차 귀에 잡히기 시작했다.
“으윽……!”
“정말 잘 도망치시네요, 영애!”
“저리 꺼져!”
“어머나, 무서워라.”
둘 다 완전히 귀에 익은 목소리는 아니었으나 누가 수세에 몰리고 있는지만은 확실했다. 로잘린이었다.
“큭!”
“이제 그만 포기해요, 로잘린. 당신이 진짜 공녀라는 건 인정해 줄게요. 그렇지 않고서야 누가 어머니의 유품이라는 말에 정신이 나가서 이곳까지 쫓아 들어와요?”
꺄르르 웃음이 터지고, 누군가가 목 졸린 신음을 뱉었다.
“가만두지 않을 거야.”
“네, 네. 기꺼이 그러세요. 어차피 살아서 이곳을 나갈 일은 없겠지만.”
세벨리아는 천천히 음성이 들린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짙은 안개 속에 점점 사람들의 형체가 보였다. 조심스럽게 다가가던 세벨리아는 우뚝 걸음을 멈췄다.
“커흑…….”
누군가 로잘린의 목에 밧줄을 감고, 그녀의 숨통을 조이고 있었다.
“당신은 죽어야만 도움이 되는 존재예요, 로잘린.”
그 순간, 세벨리아는 머릿속의 끈이 탁 하고 끊어지는 걸 느꼈다.
우우웅-
“꺄악, 뭐야!”
“쿨럭!”
목을 짓누르던 힘이 사라졌다. 로잘린은 눈물 맺힌 눈을 깜빡이며 멍한 얼굴로 몸을 일으켰다.
“……!”
저 멀리서 희미한 빛이 사방으로 뻗어 나가며 안개를 꿰뚫는 게 보였다. 시야가 확 트인 기분에 로잘린이 입을 벌리는데, 무언가가 허공을 날아가는 게 보였다.
자신의 목을 조르던 프리아 영애였다.
“아악!”
쿵! 프리아 영애는 반대편 벽에 부딪히고서 스르르 바닥에 쓰러졌다. 그대로 기절한 것인지 미동도 없었다. 로잘린은 그녀의 몸을 움켜쥔 새파란 빛줄기를 보며 몸을 떨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누군가 나를 도와주러 온 건가. 아니면……. 로잘린은 벼락을 일으키기 위해 손에 힘을 주었지만 소용없었다.
‘젠장.’
정체 모를 독무는 그녀를 무력하게 만들었다. 그때였다.
“로잘린 영애.”
파도처럼 청량한 음색에 로잘린은 숨을 덜컥 내뱉었다.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고개를 치켜든 그녀는 안개 속에서 빛을 받아 훤히 드러난 얼굴에 입술을 떨었다.
“괜찮아요?”
“당, 신은…… 쿨럭!”
“더 이상 말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디하트를 불렀으니 곧 올 거예요. 부축해 줄 테니 일어나 봐요.”
“여기는… 안 돼!”
로잘린의 눈이 더 이상 크게 뜨일 수 없을 만큼 커졌다. 어느새 정신을 차린 프리아가 날카로운 단도를 쥔 채 세벨리아의 등 뒤에 있었다.
도대체 언제?
모든 게 느리게 보였다. 검푸른 빛을 흩뿌리는 단도가 세벨리아의 목을 향해 내리꽂혔다. 안 돼. 로잘린은 손을 뻗어 세벨리아를 밀치려 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날카로운 검날이 세벨리아의 살갗에 닿는 순간이었다.
콰앙!
빛이 폭발했다. 방금 전 안개를 꿰뚫은 푸른 빛과는 다른, 신성한 힘이 감도는 금색의 광휘가 로잘린의 앞에 펼쳐졌다.
“아아악!”
프리아가 몸을 숙이며 비명을 질렀다. 단도를 쥔 손이 새카맣게 타고 있었다. 하지만 로잘린은 그보다 다른 것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아, 역시…….”
평온한 낯의 세벨리아는 뒤를 흘끔 돌아보더니 다시 고개를 바로 했다. 프리아 영애는 완전히 실신해 다시 일어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녀는 품 안을 뒤적이더니 무언가를 꺼냈다. 벨벳 리본이 달린 작은 상자였다.
태양처럼 찬란한 빛은 바로 그 작은 상자에서부터 뻗어 나오고 있었다.
“이렇게 말하려고 한 건 아니지만… 로잘린 영애, 혹시 저와 잠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요?”
“그게, 도대체. 아니…. 지금 이게 무슨 일이죠?”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로잘린을 바라보며 세벨리아가 쓴웃음을 머금었다. 작은 상자를 감싸고 있던 리본을 스륵 풀어낸 그녀가 뚜껑을 열며 말했다.
“먼저 저기 기절해 있는 영애와 달리 저는 거짓을 말하지 않는다는 걸 말씀드릴게요.”
“…….”
“이건 인버네스에서 대대로 간직하고 있는 성유물인 유리아의 팔찌예요.”
작은 상자 안에는 정교한 세공이 돋보이는 다이아몬드 팔찌가 놓여 있었다. 유리아의 팔찌. 그 이름을 되뇌던 로잘린은 이내 팔찌에 따라붙는 이야기를 기억해 냈다.
“소유자를 지키는, 수호의 성유물.”
로잘린이 멍한 얼굴로 읊조렸다.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성유물을 찾아다닌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러니.”
멀리서 굉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무언가를 부수고 걷어차는 듯한 거친 소음이 점차 가까워지더니 이윽고 디하트가 무시무시한 안광을 밝히며 등장했다.
“벨라, 로잘린!”
끓어오르는 듯한 음성과 함께 나타난 그는 단숨에 두 사람을 제 품으로 끌어당기더니 뒤따라 들어온 기사들에게 명했다.
“쓰러진 이를 포박해 저택으로 이송해라. 경비대와 치안국의 개입은 허락지 않는다. 황실에서 사람이 온다면 즉시 돌려보내고 반발하는 이가 있거든 내 이름을 대고 찍어 눌러라!”
포효처럼 내뱉어진 음성이 벽과 천장을 타고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기사들이 명을 받들고, 디하트는 문밖으로 성큼 걸음을 옮겼다.
“그는 밖에 있나요?”
“마차를 대기시켜 놓고 있을 겁니다.”
조금 멀리서 들리는 세벨리아의 음성에, 로잘린은 그제야 자신이 디하트의 품에 안겨 있다는 걸 깨달았다. 도대체 언제 빠져나간 건지 세벨리아는 멀끔한 얼굴로 디하트의 곁을 걷고 있었다.
“한시라도 빨리 저택으로 돌아가요. 영애의 상태가 좋지 않아요.”
“기사를 미리 보내 워츠에게 준비하라 일러야겠군요.”
“아니, 나는.”
황실로 돌아가야 해. 항변하려던 의지는 뒤늦게 몰려온 스트레스에 파도 앞 모래성처럼 스러졌다.
“으…….”
눈앞이 점차 검게 물들었다. 단단한 팔이 자신을 꽉 끌어안는 게 느껴졌다. 분명 미워해야만 하는 사람인데, 어째선지 안도감이 들었다.
* * *
“헉.”
눈을 뜨자 낯선 천장이 로잘린을 반겼다. 몽롱한 눈빛으로 주변을 살피던 그녀는 정신을 잃기 전의 상황을 기억해 냈다.
잘못 기억하는 게 아니라면 자신은 공작의 품에서 정신을 잃었다.
‘그럼 여기는 인버네스 저택인가.’
로잘린은 하얗게 질린 얼굴로 몸을 일으켰다. 그녀의 추측을 반증하듯 협탁 위에 놓인 수반에 인버네스 공작가의 문장이 새겨져 있었다.
‘돌아가야 해.’
이 소식이 하레스나 이황비의 귀에 들어가게 되면 어떤 파장을 낳을지 몰랐다. 그녀가 비틀거리는 몸을 겨우 추스르며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문이 열렸다.
“……!”
“정신을 차렸군요. 몸은 괜찮나요? 황실에는 이미 연락을 넣어 놨으니 걱정하지 말아요.”
온기 어린 눈빛이었다. 이유 모를 호의에 당황한 로잘린은 순간적으로 몸에 힘을 주는 것을 잊었다. 곧 몸이 기우뚱 기울며 푹신한 카펫이 순식간에 눈앞으로 다가왔다.
파아앗-
“무리하면 안 돼요, 영애.”
지난번 휴게실에서 보았던 힘이었다. 새벽의 푸른 빛을 하나로 엮어 만든 줄기가 로잘린의 몸을 부드럽게 감싸 안더니 그녀를 침대 위에 올려놓았다.
“무슨 생각인 거지? 내게 뭘 바라고 그런 짓을 한 거야. 황실에 연락을 취했다니 설마 날 인질로 잡고.”
혼란스러운 속을 뚫고 새어 나온 진심에 로잘린은 놀라 손으로 입을 막았다. 세벨리아는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침대 가에 앉아 그녀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음, 단순히 별다른 이유 없이 돕고 싶었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죠.”
“그렇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당신을 인질로 삼겠다는 말은 아니에요.”
대가 없는 호의란 없다. 어려서부터 그 사실을 깨달은 로잘린이 날카롭게 되물었다. 세벨리아는 잠시 침묵을 유지하다, 협탁의 서랍을 열어 익숙한 상자를 꺼냈다.
유리아의 팔찌가 들어 있는 상자였다. 그것을 본 로잘린은 눈매를 찌푸렸다.
“이걸로 그래서 뭘 어쩌겠다는…….”
“실은 이걸 가지고 당신과 협상을 하려 했어요. 물론 지금은 그럴 생각 없어요. 이 안에 들어 있던 힘은 딱 일 회분이었으니까. 이젠 평범한 팔찌가 되어 버렸죠.”
“무슨…….”
“내가 사람의 기억을 훑어 그걸 현실에 만들어 낸다는 건 알고 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