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fter I Died, My Husband Went Mad RAW novel - Chapter (142)
내가 죽고 남편이 미쳤다 (142)화(142/171)
“그래서 이렇게 넘어가기로 했다고요?”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했다. 세벨리아의 말에 디하트도 동의했다. 로잘린의 억류는 삼황자 측에게 기회였다.
인버네스 공작은 로잘린이 대극장에 온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맞은편 박스석에 모습을 보였고, 그날 바로 로잘린의 암살 시도가 벌어졌다. 심지어 공작은 범인을 치안국에 넘기지 않고 자신이 데리고 갔다.
이것저것 부풀리고 중상모략하기 딱 좋은 소재였다. 그런데 이리 좋은 기회를 제 손으로 떠나보냈다는 건 로잘린이 힘을 썼다는 방증이나 마찬가지.
삼황자가 한 말이 진실이라면 그녀가 자신들의 편을 들어줬다는 것이 된다.
클로드가 심각한 어조로 이야기를 꺼냈다.
“이 상황 자체가 처음부터 그 애의 뜻이 아니었을지도 몰라. 그래, 생각해 보면 그 애가 온전히 자기 의사를 피력할 만한 입장이라고 볼 수도 없지.”
“공작가의 승계권 싸움을 시작한 게 로잘린 영애의 뜻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는 말이군요.”
따져 보면 무리인 말도 아니었다. 그녀는 부모님의 유품을 찾기 위해 하레스의 눈을 피해 움직이다 습격까지 받지 않았는가.
‘만약 삼황자가 기꺼이 도움을 줄 사람이었다면 분명 그에게 부탁했을 텐데…….’
단독적으로 행동했다는 건 로잘린 주위 사람들이 그녀가 부모님을 그리워하는 걸 용납하지 못하는 분위기라는 뜻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하아…….”
마음이 불편했다. 마음 놓고 어머니를 그리워하지 못했던 어린 시절 자신의 처지가 떠올라서일까. 자꾸만 로잘린의 마지막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이번에는 상황이 여의치 않아 결국 보내 줘야만 했지만 다음번에는 결코 그리 허무하게 보내지 않을 거야.’
분명 돌아가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으리라. 이를테면 소중한 이가 인질로 붙잡혀있다던가, 하는.
“디하트, 혹시 로잘린 영애가 발레리 영지에서 지내던 시절에 대해 알아본 게 있나요? 그녀가 기어코 하레스 황자에게 돌아가야만 하는 이유가 그곳에 있을지도 몰라요”
“그거라면….”
두 사람이 심각한 얼굴로 대화를 나누는데, 생각에 잠겨있던 클로드가 두 눈을 번뜩이며 외쳤다.
“환영회, 환영회가 있었지.”
“네?”
그의 말을 놓친 세벨리아가 어리둥절해 하며 되물었다. 하지만 클로드는 그렇게 외치고서는 다시 자신만의 생각에 빠진 뒤였다.
“황제궁에서 열린다는 환영회를 말하는 것 같군요.”
그녀의 궁금증을 해소해 준 건 디하트였다. 담담한 목소리로 입을 연 그가 의자에 등을 기대며 클로드의 말을 풀어서 설명해 주었다.
“타국에서 온다던 대사를 맞이하기 위해 열리는 환영회에는 황실 인척과 그들의 파트너가 참석한다고 하니… 아마도 거기서 로잘린을 빼내 오자는 계획 같습니다.”
차분하게 깔린 목소리와 달리 그의 눈은 강렬하게 빛나고 있었다. 툭툭, 책상을 내리치는 손가락의 뼈마디가 불거져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네이튼 웨든의 두 번째 심문은 포기해야 할 텐데.”
“그럴 필요 없어. 나 혼자 가지.”
어느새 상념에서 빠져나온 클로드가 자신에게 맡기라며 자신감을 내보였다.
“클로드, 연회가 열리는 곳은 다른 곳도 아닌 황제궁이에요. 지난번에 들렀던 전시회관보다 보안이 훨씬 철저할 거라고요.”
세벨리아의 걱정에 클로드는 싱긋 웃었다.
“이황자님께 부탁드릴 생각이야. 그분의 파트너로 참석한다면 어떻게든 되겠지.”
“설마 그분께 정체를 밝힐 셈이에요?”
제발 아니라고 말해 달라는 듯한 세벨리아의 눈빛에 클로드는 상냥한 표정을 되돌려 주었다. 그의 입에서 부정의 말이 흘러나오길 기다리던 세벨리아의 기대는 산산이 깨졌다.
“로잘린을 구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죠.”
“맙소사.”
“이 정도의 위험은 감수해야 삼촌이라고 불릴 자격이 있지 않겠어요?”
“잠깐만요. 만약 전하께서 부탁을 들어주신다고 하더라도 파트너가 되기 위해서는…….”
“아, 그거라면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클로드가 손을 들어 제 얼굴을 한 번 쓸어내렸다. 짧은 순간, 세벨리아는 중년 남자의 얼굴이 녹아내리고 그곳에 수수한 여인의 이목구비가 자리한 걸 목격했다.
“여인의 모습은 반나절밖에 유지할 수 없지만, 로잘린을 빼내 오는 데는 충분하겠죠.”
멍하니 넋을 놓은 세벨리아를 뒤로하고 클로드가 디하트에게 말했다.
“황자님을 설득하는 건 네게 부탁하마.”
“오랜만에 아주 마음에 드는 청인걸.”
능글맞은 샤테이안의 얼굴이 일그러지는 걸 상상하며 디하트가 상큼하게 웃어 보였다.
친구인 발라크 때문인지 세벨리아에게 굉장히 신경을 쓰고 있으니 그녀를 위한 일이라고 하면 거절하지 못할 게 뻔했다.
“그러면 드레스나 액세서리 등은 황자 전하께 부탁해야겠군. 이쪽에서 준비한들 그분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소용이 없으니.”
“그럴 필요는 없지 않나.”
“정신 차려, 클로드. 황자 전하의 파트너가 길거리 옷가게에서 산 기성복을 입고 황제궁에 들어가면 무슨 소리를 들을지 상상도 안 가나?”
클로드가 새삼스러운 충격에 허우적거리는 사이, 누군가 집무실 문을 두드렸다. 다급함이 곁들어진 노크 소리의 주인공은 일레이였다.
허락과 함께 들어온 그는 언뜻 초조해 보이는 듯한 기색이었다. 질끈 베어 문 입술이 창백했다.
“여러분도 함께 계셨군요.”
“아, 일레이 경.”
드디어 정신을 차린 세벨리아가 그에게 인사를 건넸다. 일레이는 어쩐지 망설이는 기색이었다. 그가 두 사람의 눈치를 본다는 걸 알아챈 디하트가 나직이 말했다.
“알아도 상관없는 사람들이니 보고해.”
“……예.”
짧게 숨을 들이켠 일레이가 품 안의 두꺼운 서류를 디하트에게 넘겼다. 첫 장에 적힌 글을 읽은 디하트의 눈이 점점 온기를 잃어 갔다.
“지금부터 제가 하는 말은 모두 라이언 경의 전언입니다.”
잠깐 간격을 둔 일레이가 말을 이어 나갔다.
“명령하신 대로 라쉬 경과 그렌 부인이 공작 부인을 음해, 살해하기 위해 의뢰를 넣은 지하조직에 대해 추적했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오래전부터 동부에 뿌리를 두고 활동 중인 지하조직인 ‘세타아르’로 밝혀졌습니다.”
일레이는 빠르고도 정확하게 보고를 이어 나갔다.
“동부 출신인 그렌 부인이 오래전부터 이곳을 이용했을 거라고 상정한 뒤 오랫동안 그녀의 수발을 들어 온 이들을 중심으로 조사를 시작. 그녀의 고참 하녀 중 한 명이 주기적으로 들르는 장소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일레이가 잠시 말을 끊었다. 서류를 읽어 내리는 디하트의 눈빛이 어둑해졌다. 그의 손이 어느 한 지점을 짚었다. 방금 전 일레이가 보고를 올린 내용이 보다 자세히 적혀 있는 곳이었다.
“그곳이 세타아르의 지부 중 한 곳이던 거군. 여태껏 평범한 가게인 척 위장 영업하고 있었고.”
“……예, 그렇습니다. 어젯밤 비밀리에 그곳을 습격해 장부와 조직원들을 포획했습니다. 더하여 공작님께서 추가로 지시하신 건에 대해 보고드릴 것이 있습니다.”
이것이 본론인 듯, 일레이는 긴장감을 숨기지 못했다. 서류를 읽던 디하트가 고개를 들어 그를 응시했다.
새파랗게 날이 선 금빛 눈동자를 바라보며 일레이가 천천히 입술을 움직였다.
“세타아르에 의뢰를 넣어 로잘린 영애를 습격하라 사주한 자를 알아냈습니다.”
“…….”
“그렌 부인이었습니다, 공작님.”
* * *
로잘린이 돌아온 뒤 은백합궁에는 며칠 내내 긴장감이 맴돌고 있었다. 그녀에 대한 믿음이 흔들린 하레스 때문이었다.
그는 제 감정을 잘 다스리는가 싶더니 툭하면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로잘린을 몰아붙이며 그녀에게 폭언을 퍼부었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도대체 언제까지 네 더러운 수작을 모른 척해 줄 거라 생각했어!”
와장창!
물건이 깨지는 소리와 함께 날카로운 유리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화병을 내던진 하레스가 분을 이기지 못하고 씩씩거렸다.
“정말로 날 배신하고 네 가족에게 붙을 생각이었나? 널 아끼고 사랑으로 키워 준 어머니를 배반하고 그들에게 붙을 생각이었냐고.”
로잘린은 또다시 시작된 그의 폭언에 머리를 짚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침착함과 여유로움을 잃지 않는 그녀의 태도에 몇 명 시종은 감탄하기까지 했다.
“하레스, 배신이니 배반이니 그런 말 하지 말아요. 애초에 시간이 지나면 내 발로 돌아갈 생각이었다고 몇 번을 말해야 하죠?”
“그런 식으로 빠져나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처음부터 네가 아무 짓도 안 했으면 이런 일도 없었어. 왜 숨겼지? 왜 공작 부인의 유품을 찾는다고 말하지 않았어.”
땀에 젖은 얼굴로 쏘아붙이는 모습이 퍽 힘겨워 보였다. 체력도 좋지 않으면서 펄펄 날뛰더니 이제야 힘에 부친 모양이었다.
“만약 그랬다면 지금보다 더 일찍 궁에 감금되었겠죠.”
“너……!”
“아닌가요?”
이익, 입술을 베어 문 하레스가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벽에 장식된 검을 집어 들 때였다.
달칵이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더니 이황비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만하렴, 하레스.”
“어머니, 기별도 없이 어쩐 일로.”
흥분에 덜덜 떨리는 손을 감추며 하레스가 억지로 웃어 보였다. 그를 본 이황비의 눈이 가늘게 변했다.
그녀의 아들은 어려서부터 마음이 여려 작은 일에 쉽게 흥분하고 자극받고는 했다. 그래서 일부러 그림이나 음악을 가까이 두고 검 같은 폭력적인 것들은 멀리 치워 두었거늘.
이황비가 한숨을 삼키며 뒤따라온 시종들에게 손짓했다.
“황자를 데리고 가거라. 다시 열병이 오르려는 모양이니 약을 먹이고 푹 쉬게 해.”
“전 멀쩡합니다!”
“괜한 고집 피우지 말거라. 내일 행사에서 우스운 꼴을 보이고 싶은 건 아니겠지. 폐하께서 너를 주목하고 계신다는 걸 잊지 마.”
식은땀을 흘리는 아들의 뺨을 매만지며 이황비가 차갑게 말했다. 하레스는 제 상태를 알고 있는지 어머니의 질문에 차마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결국 그는 고개를 떨구며 힘없는 목소리로 항복했다.
“……어머니의 뜻대로 하겠습니다.”
“착하구나. 가서 쉬도록 하렴.”
하레스가 시종들과 함께 자리를 비우자 방 안에는 로잘린과 이황비만이 남아 있었다. 긴 시간 침묵을 유지하던 로잘린을 바라보며 이황비가 다정한 목소리를 내었다.
“그동안 많이 답답했겠구나. 하레스 그 아이가 제 것에 대한 욕심이 있어서 그래. 너도 모르지는 않을 테지.”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전하께 제 진심을 전하려 노력했는데 와닿지 않으시는 모양이에요.”
로잘린이 힘없는 웃음을 지었다. 이황비가 곁에 앉으며 그녀의 손을 가져다 쥐었다.
“그럼 잠시 바람이라도 쐬지 않으련?”
“예?”
로잘린이 의아한 듯 바라보자 이황비가 그녀의 귓가에 무언가를 나지막이 속삭였다. 로잘린의 눈이 잘게 떨렸다.
“그건…….”
“부탁하마.”
로잘린이 입술을 질끈 물며 고개를 끄덕였다.
환영회 전날의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