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fter I Died, My Husband Went Mad RAW novel - Chapter (143)
내가 죽고 남편이 미쳤다 (143)화(143/171)
구름 한 점 없이 깨끗한 하늘이 아름다웠다. 아침 일찍 일어난 세벨리아는 창을 열고 방 안으로 바람을 들였다.
쾌청한 바람과 눈부시도록 빛나는 태양. 상투적인 문구지만 기분 좋은 하루의 시작이라 부르기에 손색없는 날씨였다.
‘두 번째 심문을 하기 알맞은 날이야.’
오늘은 기필코 아버지의 치부를 잡아내야지. 세벨리아가 가슴 가득히 차가운 공기를 들이마시며 눈을 감는데, 등 뒤에서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침 일찍 그녀를 찾아온 사람은 다름 아닌 워츠였다. 데니사도 다른 누구도 아닌 워츠라니. 세벨리아가 놀라 고개를 갸웃하는데 그가 멋쩍게 인사를 하더니 품 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클로드가 맡기고 간 물건입니다. 준다는 걸 깜빡 잊고 있었네요.”
“아.”
그제야 세벨리아는 클로드가 어제 붉은 수정궁으로 떠났다는 사실을 기억해 냈다. 샤테이안 이황자의 파트너로서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서였다.
“음…. 귀걸이네요?”
물방울 모양으로 커팅된 보석은 그녀의 눈처럼 푸른색이었다.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귀걸이를 보며 워츠가 설명했다.
“심문을 할 때 도움이 될 만한 물건이라고 하더군요. 힐렌드 홀에서 가져온 물건 중에 있었나 봅니다.”
로잘린을 회유하기 위해 가져온 물건들을 말하는 것이었다.
‘유리아의 팔찌 같은 건가.’
이것도 일회용일지 모르니 주의해야겠다며 세벨리아는 귀걸이가 담긴 상자를 조심스럽게 챙겼다. 워츠의 용무는 그게 전부였는지 곧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려 했다.
“아침 식사는 안 하시려구요?”
“아아…. 미안해요. 늦게까지 연구를 하느라 잠이 부족하네요. 맛있게 먹어요.”
워츠가 고개를 내저었다. 어쩔 수 없네. 세벨리아는 금방이라도 복도에 쓰러져 자고 싶어 하는 그를 돌려보내고 문을 닫았다.
피릿. 횃대에 앉아 있던 에티라가 어쩐 일인지 일찍 일어나 있었다. 날개를 편 에티라는 가볍게 날아올라 귀걸이 상자 위로 내려앉더니 부리로 뚜껑을 콕콕 찍었다.
“응? 이게 궁금해?”
피로로, 하는 짧은 울음소리를 낸 에티라가 얼른 열어 보라는 듯 그녀의 손등 위를 통통 뛰어다녔다. 가슴이 간질거릴 만큼 귀여운 모습에 세벨리아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으며 상자를 열어 탁자 위에 올려 두었다.
“아, 이럴 게 아니지. 가기 전에 보고서라도 한 번 더 읽어 놔야겠어.”
사건에 대해 정확하게 알고 있을수록 네이튼의 기억을 파헤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세벨리아는 대충 몸단장을 끝낸 뒤 자리에 앉아 서류를 살피기 시작했다.
반짝반짝.
귀걸이 위를 폴짝폴짝 뛰어다니는 에티라의 날개가 푸르게 빛났다.
* * *
언제나 맑기만 할 것 같았던 날씨는 금세 일변했다. 위세를 자랑하던 태양이 조금씩 지평선 아래로 자리를 옮기자 그때를 기다렸다는 듯 구름이 잔잔하게 하늘을 덮었다.
그러나 붉은 수정궁만은 언제까지고 영원히 빛날 것처럼 보였다. 비단 화려한 외양 때문에 하는 말은 아니었다.
“살면서 이런 경험을 하게 될 줄이야.”
방 안을 가득 채운 보석들이 응접실을 가득 빛내고 있었다. 그 양과 규모만 해도 어마어마한데, 가까이서 보면 내로라하는 장인의 손끝을 거친 최고급품이었으니 클로드는 진작부터 기가 질렸다.
“전하,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겠습니까?”
여인의 모습을 한 그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아무리 그래도 시녀들의 도움을 받을 수는 없어 피치 못하게 황자에게 모든 것을 맡겼는데, 그 결과가 이렇게 화려하고 반짝일 줄은 몰랐다.
그러자 샤테이안이 쿡쿡 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자네는 이 나라에서 내 위치가 어느 정도라고 생각하는 거지? 난 황후 폐하의 유일한 소생이자 적법한 황위 계승자 중 한 명이다. 내 파트너라면 당연히 이 정도는 해야지.”
“…….”
“대답해야지, 카를리네 양?”
부드러운 목소리와 달리 눈빛은 날카로웠다. 순순히 답하지 않으면 금방이라도 쫓겨날 분위기에 클로드가 백기를 들었다.
“하아. 알겠습니다.”
“좋아.”
샤테이안이 싱긋 웃으며 손에 턱을 괴었다. 사실 그는 이 상황이 퍽 재미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누구를 파트너로 대동해서 일황비와 이황비의 심기를 건드려 줄까 고민하던 찰나에 이런 재미있는 제안이 오다니.
‘정체불명의 여인이라. 아주 좋아. 다들 어떤 표정을 지을지 궁금하군.’
그가 루드밀을 시켜 클로드에게 드레스와 액세서리들을 이것저것 대보던 와중이었다. 문밖에서 시종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전하, 잠시 전해 올릴 것이 있습니다.”
분명 부르기 전까지는 가까이 오지 말라 이야기를 해 두었는데. 샤테이안이 눈살을 찌푸리며 문을 돌아보았다. 루드밀이 클로드의 시중을 들다 말고 고개를 돌렸다.
“제가 돌려보낼까요?”
“됐어. 너는 그를 데리고 곁방으로 가 있어라.”
“예.”
두 사람을 내보내고 샤테이안은 시종장과 대면했다. 붉은 수정궁의 시종장은 어릴 적부터 그를 돌봐 온 이로, 어쩔 땐 황제보다 더욱 아버지 같은 사람이었다.
그래서인지 때때로 이렇게 자신의 명을 거스르곤 했지만. 샤테이안이 탐탁지 않은 분위기를 유지하며 물었다.
“그래, 무슨 일이지?”
“은백합궁과 관련된 일입니다.”
묘하게 신경질적이었던 샤테이안의 표정이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 * *
마차는 금세 황궁의 문턱을 넘었다. 오늘따라 문 앞을 지키는 이들의 갑옷이 번쩍거리는 것이 타국에서 온다는 손님을 꽤나 의식한 듯싶었다.
무뚝뚝한 얼굴로 창을 든 기사에게서 시선을 떼며 세벨리아가 물었다.
“이제 곧 환영회가 시작할 텐데 아직도 어느 나라 사람인지 알려지지 않은 건가요?”
황제가 직접 준비했다는 환영회는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게 비밀스럽게 진행되었다. 심지어 손님의 정체에 대해서까지 함구령이 내려졌으니.
세벨리아는 도대체 황제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궁금했다. 디하트가 반쯤 가려진 커튼을 완전히 걷으며 답했다.
“다들 바다 건너 남대륙에서 온 이들이 아니냐 추측하더군요.”
“설마 돌아가신 황후 폐하의…….”
디하트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그렇다면 이해 못 할 행보도 아니네요. 폐하께서도 참 극적이신 걸 좋아하시는 분이시군요.”
마차는 천천히 황궁 안에 깔린 어둠을 밟고 지나갔다. 저 멀리 황제궁에서 새어 나온 화려한 불빛이 먼 하늘을 물들이는 게 보였다.
이윽고 아스라한 음악 소리가 창문 틈새를 타고 넘어왔다. 저녁 바람도 맞을 겸, 세벨리아가 창문을 열었다.
“시작됐나 봐요.”
그러나 감상은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마차는 어느새 탑에 닿았다. 그림자 속에 높이 솟은 탑은 어째선지 오늘따라 더욱 음산하게 느껴졌다.
‘황제궁과 대비되어서 그런가.’
디하트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마차에서 내린 세벨리아가 점점이 불이 밝혀진 탑을 올려다보았다. 그렇지 않아도 외진 곳에 위치해 있어 한풍이 드는 곳인데 늦은 시간에 오니 을씨년스럽기까지 했다.
그래도 하는 수 없었기에 세벨리아는 디하트의 뒤를 따라 탑의 문을 두드렸다.
“어서 오십시오.”
지난번에 얼굴을 비췄던 간수였다. 탐탁지 않은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게 어지간히 마음에 들지 않는 듯했다.
하지만 지난번과 달리 세벨리아는 생긋 웃으며 그에게 말을 붙였다.
“오늘도 잘 부탁해요.”
“…….”
간수는 계단을 올라가려다 말고 흠칫했다. 반사적으로 뒤를 돌아본 그의 눈빛이 어째선지 격렬히 흔들리고 있었다.
‘뭐지?’
더 자세히 보고 싶었지만 간수는 이미 고개를 돌리고 빠른 걸음으로 탑 위를 오르고 있었다. 뭔가 석연치 않았다. 세벨리아는 간수를 따라 급히 계단을 올랐다.
“저기.”
“이번에는 시간이 늘어 세 시간 뒤에 찾아오겠습니다. 무슨 일이 생긴다면 안에 있는 설렁줄을 잡아당기시면 됩니다. 그럼 이만.”
무어라 말을 붙이기도 전에 간수는 그녀에게 열쇠를 넘기더니 쏜살같이 사라졌다. 세벨리아가 멍한 표정으로 그가 사라진 곳을 바라보는데 디하트가 다가와 물었다.
“붙잡아 올까요?”
시선을 올리자 흉흉하게 불타는 금빛 눈동자가 있었다. 세벨리아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내저었다. 그건 거의 본능적인 대응이었다. 여기서 고개를 끄덕였다간 탑 안을 피로 적시게 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니에요. 심문할 시간도 부족한데 굳이 간수를 붙들어 둘 필요는 없죠.”
간수와 대화를 나누는 건 심문이 끝난 뒤에도 가능한 일이었다. 세벨리아는 찝찝함을 털어 버리려 애쓰며 열쇠를 밀어 넣었다.
곧 달칵이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세벨리아는 익숙하게 문을 열고 들어가 네이튼을 찾았다.
“…….”
“네이튼?”
지난번 심문에서 교훈을 얻은 걸까. 네이튼은 자리에 얌전히 앉아 문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도 불편한 심기를 티 내고는 싶었는지 가끔 목을 울려 대는 게 제법 건강해 보였다.
“으읍, 읍!”
“저번처럼 기절하고 싶은 건 아니죠?”
세벨리아가 한숨 섞인 목소리로 말하자 제 처지를 자각한 건지 네이튼은 곧 입을 다물었다. 그의 뒤편에서 디하트가 아쉬운 얼굴로 손목을 만지작댔다.
“그래도 이번엔 치안국에서 특별히 당신의 건강을 고려한 대책을 마련해 줬어요.”
세벨리아는 그렇게 말하며 설렁줄을 잡아당겼다. 이윽고 누군가 탑을 내려오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이렇게 만나게 되어 반갑습니다. 오늘 죄수의 심문을 도와드릴 케힐이라고 합니다.”
두건을 눌러쓴 사내는 지난번 심문에서 억지로 그를 기절시켜야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치안국 측에서 준비한 자였다. 죄수에게 놓을 수면제를 세벨리아에게 맡길 수는 없었으니까.
“부탁드려요.”
세벨리아와 디하트가 뒤로 물러나자 케힐이 가지고 온 수면제를 네이튼의 팔뚝에 놓았다. 네이튼은 잠시 몸을 떠는가 싶더니 곧 힘없이 몸을 늘어트리고 깊은 잠에 빠졌다.
“도중에 다시 잠에서 깨어날 수도 있으니 저는 자리를 지키겠습니다. 아, 방해될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도 제 본분을 아니까요.”
케힐이 허리를 숙이며 조심스럽게 방 가장자리로 물러났다. 세벨리아는 고개를 끄덕이고선 잠든 네이튼의 어깨를 짚었다.
파아앗-
푸른 불빛이 방 안을 가득 메우는 순간이었다.
파르르.
네이튼의 눈꺼풀이 잘게 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