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fter I Died, My Husband Went Mad RAW novel - Chapter (145)
내가 죽고 남편이 미쳤다 (145)화(145/171)
[내가 지킬 수 있어!]앳된 목소리가 머리를 울렸다. 에티라, 너 드디어 말을 할 수 있게 되었구나. 그런데 어떻게……?
멍한 정신으로 가만히 생각하는 가운데, 세벨리아는 클로드가 주고 간 귀걸이가 뜨겁게 달아오르는 걸 느꼈다. 이윽고 끔찍한 비명이 몽롱한 정신을 뒤흔들었다.
“아아악!”
가물거리는 시야에 네이튼의 모습이 잡혔다. 역소환되는 에티라 아래, 무릎 꿇은 그의 몸에서 피가 분수처럼 솟아오르고 있었다.
“아…….”
다행이다.
안도와 함께 탈력감이 온몸을 휩쓸었다. 잠시라도 정신을 놓으면 이대로 기절할 것만 같았다.
“벨라.”
태양처럼 아름다운 눈동자가 지척에 있었다. 세벨리아는 그제야 참았던 숨을 터트렸다. 디하트가 그녀를 안아 드는데 탑 바깥에서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려왔다.
무너진 벽 바깥으로 몰려드는 불빛이 보였다. 대부분 치안국 소속으로 보였으나 안심할 수 없었다. 내부의 누군가가 도와주지 않고서는 사일러스가 탑에서 자신들을 기다리고 있을 수 없었을 테니.
세벨리아가 어둠 속에서 그들을 훑는데, 다급한 몸놀림으로 탑 가까이 온 자가 목소리를 높였다.
“사람들의 접근을 막아라, 현장이 정리될 때까지는 누구도 들이지 마!”
어둠 속에서도 빛을 잃지 않는 붉은 눈동자, 달을 녹여 만든 듯 매끄러운 하얀 머리칼. 샤테이안 이황자였다.
참 타이밍 좋은 등장이었다. 세벨리아는 안심하는 한편, 의아함에 눈을 깜빡였다.
‘어떻게 알고 미리 황제궁을 나온 거지…….’
“내려갑시다.”
세벨리아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디하트는 그녀를 잠깐 고쳐 안더니 무너져 내린 벽에 꽉 막힌 문과 바깥으로 뻥 뚫린 구멍을 번갈아 보았다.
순간 목 뒤가 섬찟했다.
“디하트, 잠깐…….”
“괜찮아요.”
산뜻한 대답과 함께 디하트는 순식간에 도약해 허공을 날았다. 눈 깜짝할 사이 땅에 닿은 그는 세벨리아를 향해 괜찮냐고 물었지만 그녀는 대답할 만한 정신이 없었다.
“으…….”
“공작!”
디하트가 당황한 얼굴로 세벨리아를 다독이는데 샤테이안 황자가 그들을 발견하고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 잔뜩 굳은 얼굴은 어째선지 화가 나 보이기까지 했다.
“전하.”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꼴들은 그게 도대체 뭐고.”
제대로 말을 걸기도 전에 끊고 들어오는 목소리가 날카로웠다.
“사고인가, 습격인가?”
“함정이었습니다.”
디하트가 세벨리아의 뺨에 묻은 먼지를 조심스레 닦으며 답했다. 그의 말에 샤테이안의 눈빛이 일변했다. 서슬 퍼런 빛을 품은 그의 붉은 눈이 하늘을 한 번 올려보았다가 다시 두 사람을 향했다.
“상대는?”
“제 아버…… 윽!”
세벨리아가 답하려다 말고 숨을 삼켰다. 갑작스레 상체를 앞으로 푹 숙이는 그녀의 모습에 샤테이안과 디하트가 깜짝 놀라 그녀에게 다가섰다.
“괘, 괜찮아요.”
“벨라!”
그때, 샤테이안이 타고 온 마차에서 누군가 뛰어내리더니 세벨리아를 향해 달려왔다. 검은 망토를 뒤집어쓰고 모자를 푹 눌러쓴 사람의 목소리가 몹시 익숙했다.
“클로드…….”
다 죽어 가는 목소리로 세벨리아가 그를 불렀다. 망토 아래, 어느새 제 모습을 되찾은 클로드가 어쩔 줄 모르는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샤테이안은 얌전히 있으라는 제 명령 따위는 가뿐하게 내던진 클로드에 눈살을 찌푸렸지만 그 이상 타박하지는 않았다.
“공작, 벨라 양의 말에 따르면 웨든 후작이 그대들을 습격했다는 말인데 사실인가? 그렇다면 그자는 어디 있지?”
디하트가 샤테이안과 함께 짧게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세벨리아를 바닥에 편히 앉힌 클로드가 그녀의 상태를 살폈다.
“저번보다 상태가 좋지 않아. 귀걸이는…… 미치겠군. 이걸 쓰고도 모자랐단 말이야?”
“저는 괜찮아, 요. 하아…….”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구나.”
클로드가 뒤를 흘끗 보며 샤테이안과 디하트를 살폈다. 두 사람은 심각한 얼굴로 무언가를 상의하고 있었다. 때마침 위로 올려 보낸 이들이 밖을 향해 큰 소리로 외쳤다.
“전하, 웨든 후작을 발견했습니다!”
샤테이안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먼저 그를 지하 감옥으로 이송하라고 명령했다. 탑이 이 꼴이 났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한편, 디하트는 날카로운 눈으로 치안국 관료들을 훑었다.
“저들에게 맡겨도 괜찮겠습니까, 전하? 그들 중 누가 웨든 후작에게 붙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의 신병을 수비대에 맡길 수도 없는 노릇이지. 걱정 말게, 공작. 다른 때라면 모르겠지만 지금 그는 현행범으로 붙잡혔어. 쉽게 빠져나갈 수 없을 걸세.”
그걸로는 안심할 수 없었다. 디하트가 그들 주변을 눈치껏 서성이는 루드밀에게 손짓하며 말했다.
“제 쪽에서도 기사 몇을 빌려드리죠.”
치안국을 못 믿겠으니 제 기사들을 파견해야겠다는 말이었다. 샤테이안은 헛웃음을 흘렸으나 거절하지는 않았다. 루드밀이 가까이 다가오자 디하트가 그에게 말했다.
“저택으로 가서 기사단에게 최소한의 인원을 제외하고 모두 입궁하라 전해 주게. 최대한 빨리.”
“알겠습니다.”
루드밀이 뒤돌아 사라지는 걸 보고 디하트는 낮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렇게 일이 끝나는가 싶었던 순간이었다.
“으윽!”
세벨리아가 머리를 끌어안은 채 신음을 흘리고 있었다. 디하트가 놀라 달려가는데 클로드가 손을 들어 그를 막았다.
“방해하지 마.”
“뭐? 무슨 소리를.”
“방금 전에 연결되었다고 했어. 보지 않아도 된다고 했지만 그럴 수 없다더군. 그러니 가만히 있어, 디하트.”
디하트는 그제야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했다. 세벨리아는 지금 넬리아에게 붙인 염탐용 환영과 마지막으로 교신 중인 것이다.
하지만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 사일러스가 붙잡힌 지금, 웨든 후작가는 끝난 거나 마찬가지였다. 이런 상황에서 넬리아에게 붙인 환영과 감각을 공유할 필요가…….
“로잘린의 이름을 들었다고 했어.”
“뭐?”
디하트는 그 자리에 얼어붙고 말았다. 그가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클로드를 바라보았다. 클로드는 세벨리아를 마주 본 자세 그대로 고개조차 돌리지 않고 말을 이었다.
“넬리아에게 붙인 환영에서 그렌 부인의 목소리와 함께 그녀가 로잘린의 이름을 언급한 걸 들었다고 했어. 아무래도 그녀가 또다시 더러운 수작을 부리려는 모양이야.”
“맙소사.”
디하트가 얼굴을 구기며 침음했다. 그녀가 수도에 있다는 정보를 입수한 뒤 그 뒤를 추적하기 위해 사람을 푼 게 바로 어제였다.
‘이리도 빠르게 움직일 줄이야.’
그가 주먹을 꽉 쥐며 스스로를 탓하는데 샤테이안이 싱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엉망진창이로군, 그래. 어떻게 살아왔기에 가족들이 돌아가며 위험에 빠지나?”
활활 타오르는 금빛 눈동자가 그를 향했다. 자신을 잡아 죽일 것 같은 눈빛에 샤테이안은 어깨를 으쓱이더니 마차 쪽을 향해 턱짓했다.
“내 참 무서워서 말도 못 하겠군. 생각해 보게, 공작. 우리가 어떻게 딱 맞춰 도착할 수 있었다고 생각하나. 웨든 후작의 계획을 사전에 알아차려서?”
그럴 리가 있나, 샤테이안이 냉소하며 말을 이었다.
“하레스의 곁에 있어야 할 로잘린 영애가 보이지 않더군.”
“…….”
“왜일까? 폐하의 앞에서 로잘린 영애를 선보일 절호의 기회였는데 말이야. 그렇게 생각하자니 걸리는 게 하나 더 있더군.”
시종장이 가져온 은백합궁과 관련된 소식. 그건 누군가를 태운 마차가 새벽녘 조용히 은백합궁을 빠져나갔다는 정보였다.
“그래서 내 친히 연회를 빠져나와 함께 로잘린 영애를 찾으러 나온 거네. 그러다 탑 쪽에서 굉음이 들려 방향을 바꿔 이곳에 와 자네들을 도울 수 있었던 거고. 자, 이제 내게 마음껏 감사를 표해도 좋네.”
사실 믿는 구석이 있어서 빠져나온 거긴 하지만 거기까지 설명할 이유는 없었다. 샤테이안이 눈웃음을 치자 디하트가 있는 대로 인상을 찌푸렸다.
그 무렵, 세벨리아는 염탐용 환영과의 희미한 연결을 붙든 채 그렌과 넬리아의 대화를 한마디라도 더 듣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너는 이제 돌아가도록 해.] [하하, 그럴 수는 없지요. 절 떼어 놓고 이곳까지 몰래 오려 한 이유를 안 이상, 저는 모든 걸 보고 아버지께 보고할 의무가 있어요.]지긋지긋하다는 얼굴로 돌아보는 그렌을 향해 넬리아가 대꾸했다. 두 사람이 말다툼을 벌이는 사이 세벨리아는 재빨리 주변을 훑었다.
‘너무 어두워.’
사위가 어둠에 가려져 도무지 어딘지 알 수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렌의 뒤편 저 멀리 황제궁에서 터트린 불꽃놀이가 보인다는 것.
‘적어도 수도를 떠나지는 않았구나.’
세벨리아가 안심하는 사이 두 사람의 말다툼은 절정에 다다르고 있었다.
[사일러스가 꼭 저 닮은 딸을 낳았구나. 쥐새끼처럼 사람 말을 엿듣지 않나 거머리처럼 달라붙지 않나.] [어머, 이럴 시간이 있으신 건가요?]넬리아가 웃음을 터트리더니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키며 대꾸했다.
[저러다 로잘린 영애가 먼저 자리를 떠나면 계획은 물거품이 될 텐데?]‘뭐?’
세벨리아는 심장이 뚝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샤테이안의 이야기를 듣지 못한 그녀는 로잘린이 당연히 환영회에 참석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말도 안 돼.’
심장이 쿵쾅거리는 와중에도 세벨리아는 다시 정신을 집중하려 애썼다. 만약 그렌이 로잘린을 해치기 위해 움직인 거라면, 지금 그녀가 어디에 있는 건지 알아내야 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운이 좋지 않았다. 환영과의 연결이 끊어지기 시작했다. 환영의 수명이 다한 것이다.
“안, 돼. 으읏……!”
연결이 완전히 끊기자 반동이 그녀의 몸을 덮쳤다. 파도처럼 제 안을 휘젓는 격통에 세벨리아는 이를 악물었다. 그녀는 식은땀을 흘리면서도 정신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