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fter I Died, My Husband Went Mad RAW novel - Chapter (147)
내가 죽고 남편이 미쳤다 (147)화(147/171)
“아…….”
세벨리아의 말을 들은 로잘린은 넋이 나간 것처럼 탄성을 터트리다 그대로 축 늘어졌다. 하얗게 반짝이던 금빛 눈동자의 빛이 꺼지자 클로드는 당황한 얼굴로 그녀를 추켜 안았다.
“로잘린? 로잘린!”
“이런, 이마가 불덩이네요. 클로드, 당신은 영애를 데리고 저택으로 돌아가는 게 좋겠어요.”
“하지만.”
흔들리는 클로드의 눈동자를 바라보며 세벨리아가 엄한 표정을 지었다.
“더 이상 당신이 해야 할 일은 없어요. 이다음부터는 저와 디하트가 책임져야 할 일입니다.”
“…….”
“가요, 어서.”
클로드는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더니 짧은 인사를 남기고 로잘린을 안고 자리를 떠났다.
“하아.”
머리가 핑핑 돌았다. 일레이가 다가와 그녀를 부축하려는데 디하트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만 환영술을 거둬도 돼요, 벨라.”
“디하트.”
“무리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잖습니까.”
핏물을 뒤집어쓰고 나타난 사내는 거친 숨을 내쉬면서도 눈빛에 한 점 흔들림이 없었다. 창백한 뺨에 튀어 오른 핏방울을 닦아 낸 그가 일레이에게 턱짓했다.
“가서 남은 잔당들을 모두 포박해 이송해라. 현장이 정리되면 바로 황궁으로 향한다.”
“예.”
일레이가 자리를 떠나고, 대충 핏물을 다 닦아 냈다 싶은 디하트가 천천히 세벨리아에게 다가갔다. 그는 제 손이 깨끗한가 다시 한번 확인한 뒤 조심스레 세벨리아의 손에 제 손을 겹쳤다.
“이제 그만 저택을 둘러싼 벽을 내려요. 더 이상의 도주자는 없을 겁니다.”
세벨리아는 그를 올려다보더니 느리게 고개를 돌려 저택을 둘러싼 푸른 벽을 응시했다.
‘사실 이렇게까지 할 생각은 없었는데.’
현장에 도착해 넬리아를 보기 전까지는 환영술을 쓸 생각도 없었다. 그럴 만한 기력도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넬리아를 보자마자 생각이 달라졌다. 그녀는 자신을 보자마자 있는 대로 저주를 퍼붓더니 자신이 데려온 하인들을 방패막이로 내세우고는 도망치려 했다.
변함없는 모습에 화가 난 것도 잠시, 정신을 차려 보니 어느새 없는 힘을 모두 끌어올려 저택을 고립시켜 버린 것이다.
“……그래요.”
세벨리아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손을 부드럽게 휘저었다. 그녀의 손짓에 맞춰 푸른 방벽이 파도처럼 무너졌다. 근처를 지키고 있던 기사들의 입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잠시 뒤, 일레이가 돌아와 황궁으로 돌아갈 채비가 끝났음을 알렸다. 디하트는 고개를 끄덕이고 세벨리아와 함께 샤테이안을 만나기 위해 황궁으로 돌아갔다.
그곳에서 그들은 뜻밖의 소식을 접했다.
“아버지가 이송 도중 도망쳐 황제궁으로 향했다고요?”
황궁의 문턱을 넘자마자 혼비백산한 얼굴로 달려온 루드밀이 전한 이야기는 그야말로 기절초풍할 만한 이야기였다.
“도대체 그게 어떻게 가능한 거죠? 분명 치안국이 아버지의 신병을 넘겨받아 지하 감옥으로…….”
“빌어먹을.”
디하트가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며 짧은 욕설을 내뱉었다.
“치안국 내부의 첩자가 그를 빼내 주었을 겁니다. 그래서 일부러 기사단을 불러냈는데 하필이면 그때 로잘린이 습격받고 있다는 걸 알게 되어서.”
“그게 그렇게 되었던 거군요.”
어쩐지 황궁을 나서자마자 인버네스 기사단이 기다렸다는 듯 마중을 나오는 게 신기하다 했었다. 세벨리아는 자신이 알지 못했던 뒷사정에 신음을 흘렸다.
하지만 이미 지난 일에 머리 싸매고 고민할 시간 따위는 없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들이 타고 있는 마차는 성실하게 황제궁을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맞은편에 앉아 있던 루드밀이 말했다.
“지금 황제궁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는 저도 알지 못합니다. 샤테이안 황자님께서는 웨든 후작이 황제궁으로 도망쳤다는 사실을 알고는 제게 여러분을 맡기고 바로 그곳으로 떠나셨으니까요.”
그사이 멀게만 보였던 황제궁이 지척에 모습을 드러냈다. 붉은 수정궁과 한 쌍으로 지어진 황금빛 궁전은 어둠 속에서 홀로 빛을 자아내고 있었다.
외벽을 모두 금으로 덧바른 궁전을 응시하며 세벨리아가 입을 열었다.
“아버지가 아무 생각 없이 황제궁으로 향하셨을 리 없어요.”
그리고 샤테이안 황자가 아무 생각 없이 우리를 황제궁으로 불렀을 리도 없지.
다그닥, 다그닥. 말발굽 소리가 점점 느려졌다. 세 사람을 태운 마차는 스르르 미끄러지듯 황제궁 앞에 멈춰 섰다.
* * *
“공작님, 초대장을 받지 않으신 분은 입장하실 수……!”
“비켜.”
디하트의 뒤를 따라 회장 안으로 발을 들이자 몸을 감싼 공기가 달라지는 게 느껴졌다. 그 뒤를 이어 찢어질 듯한 고함이 고막을 찔렀다.
“원통합니다, 폐하!”
황제 앞에 무릎 꿇고 통곡하는 이는 사일러스였다. 일황비는 그 옆에서 그의 어깨에 손을 얹은 채 황제에게 무어라 간언하고 있었다.
그 꼴을 본 세벨리아의 입에서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하.”
그렇군. 일황비에게 빌붙어 어떻게든 살아남아 보겠다는 건가. 세벨리아의 푸른 눈에 불꽃이 일었다. 그녀가 분노를 다스리려 애쓰는데 기운 없는 목소리가 연회장을 울렸다.
“웨든 후작은 조용히 하거라. 초청받지 않은 손님이 온 모양이니.”
세월 아래 낡은 검붉은 눈동자가 세벨리아를 응시했다. 짜증과 피로가 섞인 눈빛 앞에 세벨리아는 당당히 인사를 올렸다.
“태양 아래 영원하신 황제 폐하를 뵙습니다. 샤테이안 황자 전하의 부름을 받아 온 벨라 어펜츠라 합니다.”
“폐하, 악독한 마녀가 폐하의 궁까지 더럽히는 꼴을 두고 보실 셈이십니까!”
인사가 끝나기가 무섭게 사일러스의 비명이 천장을 찔렀다. 세벨리아가 싸늘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자 디하트가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제 아들까지 이용해 사람을 죽이려 한 질 낮은 범죄자 따위가 무슨 낯짝으로 황제궁에서 목소리를 높이는가!”
묵직한 목소리는 긴장감이 넘실거리던 분위기를 일거에 바로잡았다. 디하트는 사일러스에게 시간을 주지 않기 위해 바로 치안국 관리를 불러오라 명했다.
그러자 다급해진 사일러스가 목소리를 높였다.
“그들 모두 인버네스 공작에게 매수당했습니다, 폐하. 생각해 보십시오. 네이튼은 제 하나뿐인 후계자입니다. 소중한 자식을 사람 죽이는 데 이용하다니요. 저는 그런 추잡한 인간이 아니라는 걸 폐하께서도 아시지 않습니까!”
“그의 말이 맞습니다.”
일황비가 그를 두둔하고 나섰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닙니까. 폐하의 충직한 신하는 하나뿐인 아들을 잃고 몸과 마음이 상해 눈물짓고 있습니다. 헌데 매번 폐하의 간절한 부름을 무시하던 오만한 북부 공작이 감히 폐하의 앞에 무릎조차 꿇지 않고 유서 깊은 중앙의 귀족에게 제멋대로 죄인의 낙인을 찍다니요!”
“그렇습니다.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사실 제가 탑에 있던 건 저 마녀가, 악독한 사술을 부려 제 아들을 죽이려는 걸 알아챘기 때문입니다!”
사일러스가 무릎을 짚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포효하듯 외쳤다.
“벨라 어펜츠라는 여인은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세상에 없던 인물입니다. 저는 그것도 모르고, 저 마녀가 정말 제 자식인 줄로만 알고 그녀를 가까이하려 했습니다.”
절절 끓는 목소리가 회장 안에 울려 퍼졌다.
“그 결과가 바로 이것입니다, 폐하. 인버네스 공작의 덫에 걸려 아들을 잃고 하마터면 저 자신까지, 폐하의 하나뿐인 충실한 종까지 목숨을 잃을 뻔했습니다! 그런데 일이 뜻대로 될 것 같지 않자 이황자 전하를 끌어들여 제게 죄를 덮어씌우고 도망친 것입니다!”
“언제까지 거짓말로 상황을 모면할 수 있을 것 같나요.”
차가운 목소리가 달아올랐던 분위기를 해소시켰다. 세벨리아의 푸른 눈이 섬뜩한 빛으로 빛났다.
“폐하, 웨든 후작은 인버네스 공작과 절 해치기 위해 탑에 잠입해…….”
“그만.”
황제가 지겹다는 얼굴로 손을 휘저어 세벨리아의 말을 끊었다. 피로에 찌든 그의 얼굴에 짜증이 서렸다.
“인버네스 공작은 다른 이에게 엄살이 심하다고 말하고 다닐 처지가 아닌 것 같군. 식구라고 들인 평민이 사술을 부리는 정체불명의 마녀라니. 그래서 북부가 그 모양 그 꼴인가.”
“……!”
“오늘 일은 따로 시간을 내서 차차 알아보도록 하지. 공작은 원한다면 후작을 상대로 송사를 벌여도 상관없네. 하지만 웨든 후작은 중앙 귀족 중에서도 몇 없는 유서 깊은 가문이자 황실의 충신인 터, 그리 쉽게 감옥으로 보낼 수는 없다.”
힘겹게 말을 잇던 황제는 통증이 도진 듯 앓는 신음을 흘리더니 말을 끝맺었다.
“자택에 구류하는 것으로 만족하고 다들 돌아가라. 그대들 때문에 먼 곳에서 온 손님이 불쾌해할까 걱정되는군.”
세벨리아는 턱 하고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 순간적으로 시야가 아찔해졌지만 가까스로 정신을 차렸다. 그래, 자신이 너무 쉽게 생각했다.
일황비와 이황비의 세력 다툼에도 무심한 모습을 보였던 황제가 북부 공작과 그 곁의 평민이 엮인 일에 관심을 보일 리가 없었다.
‘하지만 이대로 허무하게 물러날 수 없어.’
아직 물증을 손에 넣지 못했지만 그들은 황제를 죽이고 대역을 세우려 했었다. 그래, 이 이야기를 들으면 아무리 황제라도 그들을 가만히 둘 수 없을 터였다.
세벨리아는 옷자락을 움켜쥔 손에 힘을 주고 숙였던 고개를 치켜들었다. 검붉은 눈동자가 왜 물러가지 않냐는 듯 그녀를 바라보았다.
“폐하, 실은.”
“실례지만 왜 그녀를 마녀라 부르는지 알 수 있을까요.”
부드럽고 낮은 미성이 회장을 울렸다. 안개를 걷어 내는 햇살처럼 따사롭지만 그 안에 칼을 품고 있는 듯, 견고한 목소리였다.
세벨리아는 금세 자신의 말을 끊은 사람을 알아보았다. 그는 황제 근처에서 흥미로운 눈으로 상황을 주시하고 있던 사내였다.
‘그리고 아마도 타국에서 왔다는 대사겠지.’
깨끗한 연하늘색 눈동자는 사일러스를 향해 있었다. 황제는 다 된 일을 다시 들추려는 그의 행동에 피곤한 낯을 지었으나 제동을 걸지는 않았다. 여러모로 그에게 신경을 쓰는 듯했다.
한편 사일러스는 제 편이 하나 더 늘어났다고 생각한 건지 화색이 도는 얼굴로 급히 외쳤다.
“아아, 벨크람에 오신 지 얼마 되지 않아 모르셨군요. 저년이 마법도 권능도 아닌 환영술이라는 듣도 보도 못한 사술을 부리는 탓에…….”
“아하.”
사내가 피식 웃으며 들고 있던 잔을 내던졌다.
“발라크의 말이 정말이었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