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fter I Died, My Husband Went Mad RAW novel - Chapter (148)
내가 죽고 남편이 미쳤다 (148)화(148/171)
“뭐, 뭐……!”
사일러스는 뺨을 스치고 날아간 와인 잔에 경기를 일으켰다. 아직도 상대가 어디서 온 누군지 모르는 그로서는 당연한 일이었다.
한편, 남자의 혼잣말을 들은 세벨리아는 망연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설마.’
아니겠지. 아닐 거야. 만약 진짜라면 내가 몰랐을 리 없잖아. 하지만 세벨리아는 스스로에게 되뇌며 깨달았다.
벨크람 제국의 황제가 친히 환영회까지 열며 맞이할 만한 타국의 대사, 오랜 시간의 단교를 깨고 손을 내민 콧대 높은 상대는 자신이 알기로 단 한 곳밖에 없었다.
러크우드.
‘그러면 저 사내는…….’
그녀의 시선을 느낀 건지 사내는 사일러스에게 고정했던 시선을 흘끗 돌려 잠시 그녀를 바라보았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지독히도 차갑고 싸늘했던 눈이 그 순간만큼은 봄날의 미풍처럼 부드럽고 따뜻했다.
“언어가 달라 제대로 듣지 못한 것 같은데 다시 말해 보겠나, 웨든 후작. 자네 말로는 환영술이라는 사술을 쓰는 여자가 마녀고 그녀가 자네의 목숨을 해치려 했다는 것 같은데.”
“그, 그렇습니다만.”
“마녀의 계략 때문에 그녀가 자네의 잃어버린 딸이라고 착각했던 거고?”
“예, 예.”
사일러스는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몰라 어설프게 대답하며 일황비에게 구조 요청을 했다. 그러나 일황비도 이번에는 도와줄 방도가 없었다.
저벅. 그사이 한 걸음 가까이 다가온 남자가 사일러스 앞에 선 채 고개를 돌려 황제를 응시했다.
“이거 아쉽게 되었습니다, 폐하.”
“…무슨 말을 하는…….”
“제국의 심장부에서 애쉬렌트의 핏줄을 모욕하고 해치려 한 자가 아무런 처벌 없이 풀려나는 모습을 보게 된 이상, 러크우드와 벨크람의 국교 수복은 다시 생각해 봐야 할 문제인 것 같습니다.”
“뭐, 뭐?”
사일러스의 비명이 고막을 찔렀다. 황제는 먹이를 빼앗긴 개처럼 입을 헤 벌린 채 사내를 바라보았다.
“하나뿐인 사촌 여동생조차 이렇게 벨크람의 귀족들에게 무시당하는 처지인 것을. 일반 백성들이 왔다가는 쥐도 새도 모르게 죽어 나가겠군요.”
러크우드를 지배하는 일곱 대가문의 수장이자 왕의 명을 받들어 대사로서 벨크람에 당도한 사내, 로스엘 애쉬렌트가 서늘한 얼굴로 사일러스를 노려보았다.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겐가, 저 여인이 자네의 사촌 여동생이라고? 저 마녀가?”
일황비가 믿을 수 없다는 듯 외치자 로스엘이 웃음기 없는 얼굴로 그녀를 응시했다.
“일황비 전하, 그녀에게는 벨라라는 이름이 있으며 또한 애쉬렌트라는 어엿한 가문 또한 존재합니다. 애쉬렌트를 모욕하고자 하시는 것이 아니라면 다시는 그녀를 마녀라 칭하지 마십시오.”
“…….”
일황비를 싸늘한 눈으로 일별한 로스엘이 황제를 향해 나긋하게 말을 건넸다.
“상황이 이렇게 된 것을 어쩌겠습니까. 현장에서 붙잡힌 살인 미수범조차 재판 없이 풀려나는 게 벨크람의 법도라면 받아들여야겠지요. 다만 러크우드는 마음 놓고 제국과 얼굴을 마주할 수 없을 듯합니다.”
“마, 말도 안…….”
입술을 떨던 사일러스는 그제야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파악했다. 애쉬렌트의 가주가 세벨리아의 가족이라면, 그녀의 어머니는.
“……!”
사일러스가 충격에 딱딱하게 굳어 가는 사이 로스엘은 차분한 얼굴로 좌중을 훑어보며 모든 이에게 경고를 남겼다.
“아아, 그리고 애쉬렌트의 가주로서 내 가족이 받은 모욕을 잊지 않으며 이 치욕에 대한 대가는 수십 년의 세월이 지난다 해도 기필코 배로 돌려줄 것이니… 모두 기대해 줬으면 좋겠군요.”
살벌한 작별 인사와 함께 로스엘은 세벨리아에게 다가가 그녀의 귓가에 무어라 속삭였다. 금방이라도 돌아갈 것 같은 분위기에 황제가 다급히 나섰다.
“대사, 기다리게. 이런 일로 국교를 다시 논하다니, 말이 되는 소리인가!”
“태양 아래 영원하신 벨크람의 황제 폐하. 안타깝게도 러크우드의 군주께서는 제게 국교에 대한 모든 권한을 일임하셨습니다.”
로스엘이 따사롭게 웃으며 황제의 간절한 붙듦을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폐하의 건강에 저희 러크우드의 약재가 특별히 효과가 좋다는 건 기쁜 일이지만, 굳이 제 가족의 눈물과 치욕을 무시하면서까지 해야 할 필요성은 느끼지 못하는 바라. 흠, 안타깝게 되었습니다.”
그리 말하며 로스엘은 사일러스와 일황비를 차가운 눈으로 훑었다. 황제는 그가 말하는 바를 바로 알아들었다. 천천히 눈을 감았다 뜬 황제가 짓씹듯 말을 내뱉었다.
“…웨든 후작을 지하 감옥으로 끌고 가라.”
“폐하!”
“일황비는 궁으로 돌아가시오.”
황제가 그녀로부터 등을 돌리며 명령했다.
“기사단은 무얼 하는가, 어서 웨든 후작을 끌고 가지 않고!”
“폐하, 이러실 수는 없습니다. 제대로 된 증좌도 없이…….”
일황비가 분노에 몸을 떨며 항의하는데 어디선가 밤안개처럼 서늘한 목소리가 들렸다.
“증좌라면 차고 넘칩니다. 다만 보여 드릴 기회가 없었을 뿐.”
“너는…….”
세벨리아를 발견한 황제는 끙 앓는 소리를 냈다. 방금 전까지 정체 모를 평민이라 그녀를 무시하던 황제는 이를 악물며 상냥한 낯을 가장했다.
“그래,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냐.”
“괜찮으시다면 사람들을 물리고 공작님과 함께 처음부터 소상히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황제가 인상을 찡그리며 거절하려는 기색에 세벨리아는 작은 한숨을 삼키더니 느릿하게 덧붙였다.
“드리고자 하는 말씀은 그뿐만이 아닙니다. 실은 저와 함께 인버네스 공작님의 도움을 받아 저택에서 지내는 약사로부터 폐하의 건강에 도움이 될 만한 약에 대한 정보를 찾아냈습니다.”
황제의 검붉은 눈동자에 이채가 돌기 시작했다. 짜증에 구겨져 있던 이맛살이 풀리더니 한결 부드러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건 제법 들어 볼 만한 이야기 같구나.”
세벨리아는 그제야 작게 미소 지을 수 있었다.
* * *
황제는 확실히 자신의 건강에 몹시 민감한 게 틀림없었다. 약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자마자 이렇게 태도가 확 변하다니.
세벨리아는 황제궁 시종장의 뒤를 따라 디하트와 함께 접견실로 향하는 중이었다. 자신의 이야기를 들은 황제가 만족스러운 웃음을 보이더니 사람을 물리는 게 아니라 아예 자리를 바꾸자고 했기 때문이다.
그 말을 들은 순간 솔직히 말해서 세벨리아는 조금 놀랐었다. 약에 대한 반응이 그리도 좋을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아무리 황제라 할지라도 죽음 앞에서는 결국 인간일 뿐이라는 걸까.’
예전의 황제를 생각하면 믿을 수 없는 모습이었다. 그도 그럴 게 북부를 꺾고자 정략결혼을 주도했던 게 바로 황제 본인이었다. 그때 황제는 중앙을 제외한 다른 지역의 대귀족들을 종속시키기 위해 이곳저곳을 의욕적으로 쑤시고 다녔다.
그리고 중앙 귀족들은 황제와 뜻을 같이하며 의지를 불태웠다. 뜨겁다 못해 혈기가 끓어넘치던 당시의 분위기를 떠올리며 세벨리아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정원마다 건강에 좋다는 약초와 꽃들이 잔뜩 심어져 있었다.
“…….”
정말로 건강을 소중히 생각하나 보네. 세벨리아는 눈을 가늘게 뜨며 개중 희귀한 약초들이 몇 있다는 걸 발견했다.
‘황제의 병은 근래에 들어 급격히 악화되었다고 했지.’
금영화궁에서 황제의 모습을 본 뒤 그가 어떤 병을 앓는지 궁금해 저택으로 돌아와 워츠와 함께 자료들을 뒤져 본 적이 있었다. 그때 워츠는 자신이 예전에 접했던 환자의 증상과 비슷하다며 흥미로운 기색을 내보였지만.
‘그 환자는 병이 아니라 독초를 약초로 잘못 알고 오랜 기간 복용한 거였다고 했어.’
생각을 이어 나가는 사이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한 듯싶었다. 화려한 접견실의 문 앞에 선 시종장이 목례하며 두 사람을 앞으로 이끌었다.
“후우.”
세벨리아가 작게 심호흡하자 디하트가 뒤에서 그녀의 손을 꼭 붙들었다. 조심스레 와닿는 온기에 세벨리아는 고개를 돌려 살짝 미소 짓고는 시종장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준비가 되었다는 소리였다.
“폐하, 러크우드의 벨라 애쉬렌트 영애와 인버네스 공작이 도착했습니다.”
“들어오라 해라.”
어느새 위엄을 되찾은 목소리로 황제가 명했다. 묵직한 목소리와 함께 느리게 열리는 문을 바라보며 세벨리아는 떨리는 숨을 삼켰다.
* * *
황제가 환영회의 폐회를 선언한 이후, 사람들은 끊임없이 터지는 사건들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웨든 후작의 잃어버린 딸인 줄 알았던 평민 벨라 어펜츠가 실은 러크우드를 지배하는 대가문의 일원이었다는 건 개중 가장 시시한 일이었다.
바로 그 벨라 어펜츠가 황제와 기나긴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믿기 힘든 일들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저건, 인버네스 기사단 아닌가?”
아침이 밝기가 무섭게 북부를 대표하는 힘이자 벼락의 권능으로 전장을 지배하는 공작을 수호하는 인버네스 기사단이 당당한 모습으로 황궁의 문턱을 넘었다.
그리고 그들을 맞이하는 건 다름 아닌 샤테이안 이황자였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가.”
믿을 수 없는 광경에 사람들이 놀라는 것도 잠깐이었다.
사람들은 곧 환영회가 열리는 동안 인버네스 공작과 공작 영애가 동시에 암살당할 뻔했다는 이야기와 그 범인이 각각 웨든 후작과 그렌 인버네스임을 듣고 경악했다.
그리고 남들보다 빠르게 새 정보를 얻기 위해 궁궐 안을 기웃대던 귀족들의 눈에 일황비가 황실 기사단에 의해 황제궁으로 이송되는 모습이 포착되었다.
이 모든 게 점심 무렵까지 일어난 일이었다.
* * *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된 황제궁의 접견실. 기사들에 의해 끌려오면서도 당당함을 잃지 않은 일황비는 문이 열리자마자 소리쳤다.
“폐하, 이는 모함입니다!”
접견실을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에 황제는 차가운 눈으로 그녀를 응시했다. 한편, 황제의 맞은편에 앉은 세벨리아는 무심한 얼굴로 차를 들이켰다.
바로 한 시간 전, 세벨리아는 황제에게 일황비를 주축으로 한 동부 세력이 그를 죽이고 자신의 능력을 이용해 대역을 세우려 했다는 사실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