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fter I Died, My Husband Went Mad RAW novel - Chapter (149)
내가 죽고 남편이 미쳤다 (149)화(149/171)
단순히 사일러스 웨든만 내치면 될 거라 생각했던 황제는 몹시 놀라고 분개했으며, 심지어 역정까지 냈으나 세벨리아의 침착한 한마디에 생각을 바꾸었다.
[폐하, 저는 사람의 기억을 들춰낼 수 있습니다.]황제는 바로 시종장을 비롯한 기사들을 불러들여 세벨리아의 능력을 시험했고, 그녀는 뛰어나다 못해 소름 끼칠 정도로 완벽하게 자신의 능력을 입증해 냈다.
[네 능력은 그 어떤 증거도 될 수 없지만, 증거가 될 만한 단서들을 찾아낼 수는 있다 하였지. 그래, 그러면 한 번 펼쳐 보이거라. 단, 그것을 받아들일지 말지는 오로지 내 결정이다.]그렇게 황제는 일황비를 데려오라 명했고, 지금에 이른 것이다.
“모함일지 아닐지는 확인해 봐야 아는 일이지요, 일황비 전하.”
세벨리아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작게 웃었다. 자신을 비웃는 듯한 모습에 일황비가 입매를 굳히며 눈을 부릅떴다.
“네년이 어떤 사술을 부리는지는 몰라도…….”
“한때는 제 능력을 그리도 애타게 원하시더니, 이제 와 모른 척하시는 겁니까.”
서늘한 목소리와 함께 세벨리아가 일황비를 향해 한 걸음 다가갔다.
“뭐?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구나. 내가 언제 너 따위를 원했다고.”
“웨든 후작 저택은 이미 수색에 들어갔답니다, 일황비 전하.”
딱딱하게 굳어 가는 일황비의 눈동자를 들여다보며 세벨리아가 그녀의 뺨에 손을 얹었다.
“걱정 마세요. 곧 기사들이 전하의 궁 또한 찾아갈 것이니.”
화아악!
푸른 빛이 바닥에서부터 뻗어 나와 접견실의 천장까지 닿았다. 남쪽 바다처럼 아름다운 색채가 방 안을 물들이고 곧이어 낭랑한 목소리가 가득 울려 퍼졌다.
[후작, 분명히 하게. 그 계집을 손에 넣으면 잡음 없이 황좌를 차지할 수 있다는 자네 말만 믿고 계획을 미뤘어. 이른 시일 내에 내가 보인 신뢰에 대한 답을 내놓게.] [하아, 전하. 저도 노력하고 있습니다. 다만 시일이 조금 걸릴 듯하여…….] [변명은 지겨워, 후작. 그렇지 않아도 독약을 들여오는 데 시간이 걸리는 것을. 명심하게, 폐하는 반년 내로 승하하셔야 한다.]우아한 웃음과 함께 부채로 입을 가리고 뒤돌아 사라지는 일황비의 환영을 끝으로 접견실 안은 침묵에 감싸였다.
“하.”
탄식과 함께 발작하듯 터져 나온 헛웃음이 접견실을 울렸다. 황제의 웃음소리에 누구랄 것도 없이 얼어붙었다.
“폐, 폐하. 이것은 사술입니다. 신께 맹세컨대, 저것은 제가 아닙니다……!”
겨우 정신을 차린 일황비가 무릎 꿇으며 빌었다. 기품 어린 얼굴 위로 구슬 같은 눈물이 떨어져 내렸으나 그녀를 바라보는 황제의 눈빛은 차가웠다.
“애쉬렌트의 가주가 와서 이미 의혹을 밝히고 갔다.”
“그게 무슨…….”
“러크우드에서 오랫동안 명맥을 유지해 온 환영술사들과 그들의 능력에 대해, 그리고 그 자신조차 환영술사임을 알리고 갔지.”
멍하니 자신을 바라보는 일황비를 응시하며 황제가 말했다.
“게다가 지난날 황비는 샤테이안의 곁에 있다는 환영술사를 딜리언에게 넘겨 달라는 청을 했었지. 그때도 그자의 능력을 사술이라 믿었는가? 벨라 어펜츠가 마녀이듯 그 또한 악한 자라 믿었다면 왜 그런 청을 했지?”
“저, 저는.”
“그대의 말은 앞뒤가 맞지 않아. 부드러운 입술엔 언제나 거짓말과 아첨이 함께 했지. 지금껏 못 본 척 넘겨 온 건 그래도 그대의 뜻이 나와 같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야.”
황제가 이를 악물며 자리를 떨치고 일어났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폐하!”
“일황비와 그녀의 소생인 딜리언 일황자의 유폐를 명한다. 황실 기사단은 두 사람을 북궁에 유폐시킨 뒤 반역에 대한 증거를 수집해라. 또한 웨든 후작 저택을 수색하는 이들에게도 가서 전해라. 일황비와 또 어떤 일을 공모했는지, 어제 일어난 습격 또한 일황비의 짓이 아닌지 밝혀내라!”
“아, 아닙니다. 어제 일어난 일에 대해서는 정말 아무것도 모릅니다. 폐하, 제발. 제 충정을, 폐하를 향한 마음을 믿어 주십시오!”
일황비는 끌려 나가는 와중에도 황제를 바라보며 애원을 그치지 않았다. 그러나 황제는 단호하게 그녀를 외면했다.
“그대의 말이 거짓인지 아닌지는 차차 알게 되겠지.”
“폐하!”
“그만! 황비의 말은 더 이상 듣지 않겠다. 시종장은 샤테이안 이황자를 불러와라. 어제 일어난 일에 대해 더 소상히 알아야겠다. 그리고 그대는.”
황제가 세벨리아를 향해 고개를 돌리며 한숨을 쉬었다. 연이어 일어나는 사건 때문에 머리가 복잡한 듯싶었다.
세벨리아 또한 정신이 없기는 매한가지였다. 애초에 그녀는 어제저녁부터 물 한 모금 제대로 마시기는커녕 눈 한 번 붙이지 못하고 황제와 대면해야 했다.
“일이 정리되는 대로 다시 부를 테니 이만 돌아가거라.”
황제가 미간을 짚으며 손을 내저었다. 세벨리아가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디하트가 그녀의 무릎 위에 손을 얹었다.
“디하트?”
“폐하, 일황비 전하와 웨든 후작 저택을 아무리 살핀다 한들 밝혀낼 수 없는 지점이 있을 것입니다.”
“…공작은 또 무슨 말로 날 곤란케 하려는 것인가.”
황제가 지친 얼굴로 디하트를 응시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그에게 보이던 경계심과 적대감은 어느새 흔적도 없이 사라진 지 오래였다.
오랜 세월 곁을 지킨 이로부터 배신당한 황제는 지치고 상처받은 마음을 숨기지 않고 물었다.
“말해 보게. 내가 알아야 할 것이 더 남아 있는지.”
“세타아르.”
나지막하게 내뱉은 단어에 접견실 안의 공기가 흔들렸다. 기사들은 물론이고 황제의 뒤에 시립해 있던 시종장마저 헛숨을 들이켰다.
“일황비 전하를 위시한 동부 세력이 오랫동안 세타아르라는 지하조직을 이용해 제국을 유린해 왔다는 증거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
황제가 의자 위로 털썩 주저앉았다. 두 손 아래 가려진 그의 얼굴은 잠깐 새에 수십 년은 지난 듯 늙어 있었다.
그러나 다음 순간, 그가 얼굴을 가린 손을 거두자 타오르는 눈빛이 드러났다. 영원히 꺼지지 않을 불꽃과도 같았다.
“증거를 가지고 있다 하였나.”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바라는 것을 말하게, 공작. 그대가 단순한 호의로 내게 이러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있네.”
디하트가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자신이 원하는 바를 말했다.
“제가 원하는 건 이황비와 삼황자가 로잘린의 앞에 모습을 보이지 않는 것뿐입니다. 그들이 감히 내 동생의 소중한 이들을 인질로 잡고 그 아이에게 혼인을 요구했으니, 그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해야겠습니다.”
그의 말에 황제는 눈을 찡그리며 어처구니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어처구니가 없군. 하지만 그래, 일황비가 모반을 일으키려 했다는 게 밝혀졌는데 이황비라고 다를 것이 있을까.”
머리를 짚으며 끙, 하고 신음을 뱉은 황제가 이어 말했다.
“하지만 먼저 자네의 주장을 뒷받침할 증거들을 가져오게. 내일 그대의 앞에서 그것들을 내 눈으로 살펴본 뒤 결정을 내리도록 하지.”
그렇게 저녁을 훌쩍 넘겨 세벨리아는 드디어 황제궁을 나올 수 있었다.
“아.”
노을 지는 하늘을 잠시 바라보는가 싶던 세벨리아는 갑자기 몸에 힘이 풀렸다. 하마터면 계단 아래로 떨어질 뻔한 걸 디하트가 재빨리 감싸 안았다.
“벨라!”
덜덜 떨리는 손에 정신을 차린 세벨리아가 두 눈을 느리게 깜빡였다. 하얗게 질려 있던 두 뺨이 어느새 미열로 붉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미안, 해요. 저택에 도착하면, 깨워 줘요.”
긴장이 풀린 탓이었다. 디하트는 이를 악물고 애타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 걱정하지 말아요. 당신이 다시 눈을 떴을 땐, 그 무엇도 걱정할 게 없을 테니까.”
디하트는 뚝뚝 끊어지는 목소리로 깨어나기만 한다면 일주일 동안 자도 상관없다고 중얼거렸다. 어쩐지 그러길 바라는 듯한 음성에 세벨리아는 푸스스 웃으며 눈을 감았다.
* * *
디하트의 바람이 정말로 이루어진 걸까.
세벨리아는 저택으로 돌아오고 한참이 지나도록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몸을 혹사하다 못해 환영마가 역소환될 정도로 무리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게 이 주일이 지났다.
그동안 지하 감옥에 갇힌 일황비와 그녀를 주축으로 한 동부 세력의 역모에 대한 재판이 마무리되었고, 사일러스에게 매수되었던 간수 치안부 관리, 디하트의 주치의였던 로덴이 처벌받았다.
사망한 그렌의 행적을 밝히던 중 라쉬 인버네스와 플로라 인버네스가 그간 저지른 일도 곁다리로 밝혀졌다. 하지만 역모에 직접적으로 가담한 것은 아니기에 그들의 재판은 북부에서 맡았다.
한편, 이황비와 삼황자는 인버네스 공작 영애를 협박해 강제 결혼하려 했다는 죄목으로 수도 외곽에 있는 탑에 수감되었다.
제국의 후계 구도는 그렇게 샤테이안 이황자 하나만을 두고 정리되었다.
모두가 혼란을 수습하며 바삐 움직이는 가운데, 세벨리아는 드디어 깊은 잠에서 빠져나와 현실로 돌아왔다.
“아…….”
어쩐지 기분 좋은 꿈을 꾼 것 같았다. 온몸을 감싸는 뭉글뭉글한 기분에 세벨리아는 무의식적으로 웃으며 눈을 떴다. 그리고 잠시간 상황을 인식하지 못해 눈을 동그랗게 떴다.
푸른 눈동자가 의아한 듯 몇 번 깜빡이고, 이어 나지막한 탄식이 울려 퍼졌다.
‘그래, 저택으로 돌아왔었지.’
며칠이나 지났으려나. 세벨리아는 제대로 움직여지지 않는 몸에 쓴웃음을 지으며 상체를 일으키려 했다. 그때, 멀리서 급히 숨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디하트였다.
“벨라.”
얼마나 오래 그 자리에 있었던 걸까. 가장자리 벽에 기대 팔짱을 끼고 어두운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던 디하트는 믿을 수 없다는 듯 그녀의 이름을 몇 번 더 부르더니 넘어지듯 달려왔다.
“아.”
순식간에 몸을 감싼 체온에 세벨리아가 탄식을 내뱉기 무섭게, 디하트의 뜨거운 숨결이 그녀의 귓가를 감쌌다.
“하아. 일어났으니 됐어요. 배고프죠? 잠깐만 기다려요.”
안도감에 젖은 한숨을 쉰 그는 곧 숨길 수 없는 미소와 함께 세벨리아의 이마와 뺨에 연신 입맞춤을 하더니 몸을 일으켰다. 그러고는 순식간에 눈앞에서 사라졌다.
“음…. 어?”
세벨리아는 멍한 얼굴로 제 뺨을 더듬었다.
그 뒤로 세벨리아는 여러 사람의 방문을 맞아야 했다. 그런데 입맞춤 때문에 너무 당황해서 그런지 제대로 기억나는 게 없었다.
‘워츠가 검진하러 와서 생각보다 상태가 좋다며 뿌듯해하고 간 것 같긴 한데…….’
세벨리아가 몽롱한 얼굴로 언제 받았는지 기억도 안 나는 쿠키를 쪼개는데 클로드가 먹을거리를 한가득 가지고 들어왔다.
“아니, 아직도 그거 하나를 다 못 먹었어요?”
“아.”
그러고 보니 아까 클로드가 로잘린과 함께 와서 뭔가를 잔뜩 주고 갔었던 것 같다.
‘맞아. 로잘린 양도 생각보다 상태가 좋아 보였지.’
기억 속의 로잘린은 여러 군데 자상을 입은 데다 권능을 남용한 터라 당장 죽어도 이상할 게 없는 상태였다. 그런데 오늘 본 그녀는 어찌 된 일인지 자신보다 훨씬 건강해 보였다.
‘역시 워츠 씨의 실력은 최고라니까.’
세벨리아는 멍한 얼굴로 클로드가 이것저것 먹을 걸 건네주며 하는 잔소리를 한 귀로 흘렸다.
문제는 그녀가 건강에 좋다는 약초 젤리를 한 움큼 털어 넣을 때 발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