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fter I Died, My Husband Went Mad RAW novel - Chapter (150)
내가 죽고 남편이 미쳤다 (150)화(150/171)
“그래서 감히 애쉬렌트의 일원을 죽이고자 한 사일러스 웨든의 신병은 러크우드로 인도되는 걸로 결정됐어요. 실은 희귀 약재를 더 확보하고 싶은 황제 폐하와 대사의 이해관계가 일치한 것뿐이지만.”
“……네?”
내가 지금 무슨 소리를 들은 거지? 세벨리아는 재빨리 쓰디쓴 약초 젤리를 삼키고서 다른 이야기를 시작하려는 클로드를 말렸다.
“자, 잠깐만요. 조금 전에 아버지가, 그러니까 그 사람이 어디로 가게 되었다고요?”
“러크우드요. 으음, 이해를 못 하는 얼굴이군요. 내 말을 하나도 안 들은 모양이에요.”
“미안해요, 사실 아까부터 정신이 없어서. 처음부터 전부 설명해 줘요. 그리고 하나 더, 혹시 신분을 회복한 거예요?”
지금 그녀의 앞에 있는 클로드는 칼 어펜츠가 아니라 본래의 모습이었다. 심지어 그 모습으로 로잘린과 함께 저택을 배회하고 일레이와 이야기도 나누었으니, 놀라지 않는 게 무리였다.
“제 생각이 맞는 거예요? 어떻게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누명이 벗겨진 거죠?”
떨리는 그녀의 목소리에 클로드는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싶더니 아예 의자를 가지고 침대 곁으로 다가왔다.
“그래요, 처음부터 이야기하죠. 그렇지 않아도 내 누명이 벗겨진 것과 관련해서 당신도 알아야 할 게 있으니…….”
그렇게 클로드는 세벨리아가 정신을 잃고 누워 있는 일주일 동안 수도를 들썩거리게 만들었던 재판들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다.
몇몇 재판에는 직접 증인으로 섰던 만큼 무척이나 생생하고 흥미진진한 이야기였으나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았다.
“첫 재판에서는 일황비를 주축으로 한 동부 세력과 세타아르 간의 유착 관계가 밝혀졌어요. 일황비의 공범으로 그렌 부인과 웨든 후작이 지목되었죠.”
그날 디하트는 세타아르의 본거지를 수색해 가져온 자료를 내놓아 모두를 기함시켰다. 그에 더해 일황비 궁과 웨든 후작 저택에서 찾아낸 서약서에는 딜리언 일황자를 옹립시키기 위한 이들의 이름이 모두 적혀 있었다.
“가장 인상적인 건 황제 폐하였어요. 오랜 시간 병환을 앓고 계셨다는 게 믿어지지 않을 만큼 어찌나 무섭게 화를 내시던지.”
워츠의 도움을 받아 회복세에 들어선 황제는 전성기와 같은 기세를 뽐내며 죄인들을 몰아붙였다.
그렇게 황제를 시해하고 딜리언 일황자를 옹립하기 위해 오랜 세월 저질러 온 추악한 범죄들이 사람들 앞에 모두 드러났다.
일황비와 웨든 후작은 격렬히 부인했으나 소용없는 일이었다. 서로를 믿지 못해 작성했던 서약서가 그들의 발목을 잡았으니까.
“일황비는 사형을 언도받고 지금은 지하 감옥에 있어요. 일황자는… 아직 궁에 유폐된 상태지만 언제 목숨이 달아날지는 모르는 일이죠.”
클로드가 덤덤한 목소리로 말하며 세벨리아와 시선을 맞췄다. 마치 여기서 이야기를 끊고 다음번에 이어서 하자는 듯한 분위기였다.
하지만 아직 본론이 나오지 않았다. 세벨리아가 말없이 눈빛으로 그를 채근하자 클로드는 나지막한 한숨을 내뱉었다.
“일황비가 세타아르를 이용해 꾸민 계략 중에, 선대 인버네스 공작 부부 암살이 있었어요.”
“…잠깐만요. 그 이야기는.”
“아주 치밀하게 계획된 음모였죠. 그렌 부인이 공작 부부의 일정을 일황비에게 먼저 넘기고, 일황비는 웨든 후작을 이용해 내 친구를 포섭했습니다.”
세벨리아는 말을 잃고 그를 가만히 응시했다. 클로드는 쓴웃음을 지으며 제 머리칼을 헤집었다.
“바보 같은 나는 내 친구가 나를 배신한 줄도 모르고 신이 나서 덫으로 달려들었죠. 내 가족을 모두 이끌고서. 하지만 그들의 계획은 반만 성공했던 겁니다.”
“디하트와 당신이, 그리고 로잘린이 살아남았으니까요.”
세벨리아의 읊조림에 클로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현장에 내 시체가 없다는 걸 그들은 일찍이 알아차렸죠. 그래서 혹시나 내가 돌아와 사실을 밝힐까 두려워 누명을 씌웠던 겁니다. 디하트의 경우에는… 그날의 기억을 묻어 두기 위해 애썼던 거고.”
뒤늦게 밝혀진 진실은 참혹했다.
“선대 인버네스 공작 부부를 죽인 게 그들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샤테이안 황자가 내게 신분을 회복하지 않겠냐고 제안했어요. 덕분에 클로드 인버네스로서 다른 재판에도 증인으로 참석할 수 있었죠. 이를테면, 환영회 날 로잘린을 구출했을 때 있었던 일이라던가.”
형용할 수 없는 기분에 손을 움켜쥐었던 세벨리아는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에 숙였던 고개를 퍼뜩 들었다.
“클로드. 내가 제대로 들은 게 맞다면 분명 당신의 친구를 매수한 사람이…….”
클로드가 서글픈 미소를 띠며 고개를 끄덕였다. 세벨리아는 심장 한가운데에 화살을 맞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아버지가, 그가 디하트의 부모님을 죽인 거로군요.”
“벨라.”
클로드가 다급하게 그녀를 불렀다. 세벨리아는 그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 것 같아 손을 내저었다.
분명 공작 부부를 직접 살해한 건 세타아르였으며 그것을 지시한 건 일황비였다. 하지만 그들을 죽이는 데 웨든 후작이 개입했다는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의 부모님을 죽인 사람이……. 하.”
당신의 유년 시절을 앗아 간 범인이, 그토록 오랜 세월 동안 괴로움 속에 홀로 몸부림치게 만든 사람 중 한 명이 내 아버지였다는 말이지.
피가 차갑게 식고 심장이 얼어붙는 기분이었다. 머릿속에 여러 감정과 생각이 뒤엉켜 제대로 된 말도 내뱉을 수 없었다.
그녀가 죄책감을 가질 만한 일이 아니었다. 사일러스는 세벨리아에게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아버지인 적 없었으니 그의 행동에 대한 부채감을 가질 필요조차 없었다.
하지만 사람이란 온전히 이성적일 수 없는 존재였다.
‘내가 좀 더 빨리, 아니. 아니야.’
내가 미리 알았다고 한들 뭘 할 수 있었겠어? 만약 사실을 알았다면, 감히 디하트에게 내 복수를 도와달라 말할 수도 없었겠지.
머리가 복잡했다.
앓는 신음을 삼키던 세벨리아에게 클로드가 무언가를 건넸다. 로스엘이 보낸 편지였다.
“깨어나면 전해 달라 부탁하더군요.”
세벨리아는 말없이 그가 건네는 편지 봉투를 받아 들었다. 자신의 예측이 틀리지 않다면 편지 안에는 웨든 후작의 러크우드 이송에 관한 이야기가 실려 있을 가능성이 컸다.
이러나저러나 그는 제 인생에 있어서 가장 골치 아픈 존재인 건 확실했다.
세벨리아가 입술을 깨물며 봉투 가장자리를 손톱으로 꾹 눌렀다.
“아직 몸이 다 회복되지 않았을 테니 이만 쉬어요. 이따가 다시 한번 워츠가 검진하러 올 테니 되도록 잠들지 말고.”
고장 난 축음기처럼 멍하니 고개를 끄덕이는 세벨리아를 두고 클로드는 방을 떠났다. 적막 속에 홀로 남은 세벨리아는 자꾸만 수그러드는 고개를 겨우 들어 올려 창밖을 바라보았다.
1층에 새로 꾸민 방에서 바라보는 바깥 풍경은 여태껏 보았던 광경 중 가장 싱그럽고 화사했다. 풍성한 꽃잎들이 저마다의 색을 뽐내며 이슬을 머금은 채 바람에 살랑이는 평화로운 광경.
골치 아픈 생각들을 떨쳐 버리기에 최적인 풍경을 바라보며 세벨리아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달칵, 창문이 열리고 바람에 실린 달콤한 향기가 콧방울을 부드럽게 쓸었다. 세벨리아는 깊은숨을 내쉬며 창틀에 몸을 기댔다.
‘꽃이 참 아름답게 피었네.’
누구의 솜씨인지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손에 든 봉투를 만지작거리며 고뇌에 찬 눈동자를 깊이 내리떴다.
바스락. 떨리는 손이 봉투를 열었다. 손가락 끝에 묻어 나온 반짝이는 가루가 바람을 타고 흩날리는 모습이 예뻤다.
세벨리아는 의외로 간결한 편지를 보고 조금 놀랐다. 연하늘색 편지지는 봉투만큼 가볍고 얇았으나 부드러운 향이 입혀져 있었다.
푸른 눈동자가 다정한 인사말을 읽어 내리던 때였다. 노크 소리와 함께 나지막한 저음이 문 틈새를 타고 들어와 세벨리아의 귓가를 감쌌다.
“벨라, 들어가도 될까요.”
“아.”
세벨리아는 들고 있던 편지를 급히 테이블 위에 놓인 책 사이에 끼워 넣고, 머리를 단정히 빗어 내렸다.
“잠깐만요.”
디하트는 충실하게 허락이 떨어질 때까지 기다렸다. 세벨리아는 마지막으로 제 안색이 괜찮은지 확인하고 그에게 들어와도 된다고 이야기했다.
문을 열고 들어온 사내는 어째선지 아침보다 한결 훤칠해져 있었다.
눈 아래 짙게 깔려 있던 그림자를 말끔히 걷어 내고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디하트는 세상 그 누구보다 행복한 얼굴로 품 안 가득 들고 있던 무언가를 들어 보였다.
“의원에게 허락받은 것들입니다. 마음껏 먹어도 좋다 했으니 괜한 걱정 말고 다 먹어요.”
그렇게 말한 디하트는 창가에 놓인 테이블을 성큼 들고 다가왔다. 자칫 잘못하면 그 위에 놓여 있던 책이 떨어질까 봐 세벨리아는 가슴을 졸여야 했다.
“여기 든 건 수도의 유명한 과자점에서 사 온 것들이에요. 다른 봉투에 든 건 지난번에 사 왔던 빵 가게고. 마지막으로 이 사치스러운 상자는 샤테이안 이황자, 아니 이제는 황태자 전하라 불러 드려야겠군요.”
혀를 찬 디하트가 금세공 한 상자를 멀찍이 밀어내며 말을 이었다.
“황실 요리사가 솜씨를 발휘했다는데 뭐, 그리 맛 좋은 것들이라면 시간을 좀 두었다 먹어도 괜찮겠죠.”
세벨리아는 편지를 숨긴 책 위에 놓인 상자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뺨을 간질이는 시선에 고개를 돌렸다. 이맛살을 미세하게 찌푸린 디하트가 자신을 응시하고 있었다.
“…아까부터 왜 아무 말도 없어요? 혹시 내가 뭔가 기분 나쁘게 한 거라도.”
“아, 아니에요. 정말로 아니에요. 그냥 정신이 없어서.”
“그래요? 흠, 열이 있는 건 아닌데.”
무람없이 다가온 손이 뺨을 쓸고 이마를 매만졌다. 세벨리아는 정신이 아찔해졌다. 가슴이 두근거리기가 무섭게 그의 태연한 태도에 숨통이 막혔기 때문이다.
당신도 알고 있을 텐데.
내 아버지가, 웨든 후작이 그의 부모님을 죽이고 그마저 죽이려 했다는 걸. 끝 모를 욕심과 악의가 그의 인생을 망쳐 놓았다는 걸 이젠 알고 있을 터인데.
그런데 당신은 왜 아무렇지 않지.
기대와 공포, 벅차오름과 죄악감이 뒤엉킨 혼란스러운 감정 속에서 세벨리아는 조심스레 제 뺨을 쓰다듬는 손을 붙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