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fter I Died, My Husband Went Mad RAW novel - Chapter (152)
내가 죽고 남편이 미쳤다 (152)화(152/171)
장미 덤불로 미로라도 만든 걸까. 평범한 추측은 금세 빗나갔다. 아치 안쪽으로 들어온 세벨리아는 말을 잃고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
이 주일 동안 도대체 무슨 마법을 부린 걸까. 높다란 덤불로 둘러싸여 보이지 않았던 안쪽 공간에는 금테를 두른 찻잔처럼 귀엽고 동글동글한 건물 하나가 자리 잡고 있었다.
자신의 기억이 맞다면 분명 온실이 있던 자리였다.
“이게 뭐예요?”
당황스러움을 그대로 담은 물음이었다. 어서 빨리 대답하라는 듯 눈을 맞추며 재차 묻자 디하트는 부끄러워하는 듯 입술을 질끈 물더니 대답 없이 맞잡은 손을 잡아당길 뿐이었다.
“먼저 안에 들어가면 안 될까요?”
떨리는 목소리가 어쩐지 간절하게까지 들려 세벨리아는 저항할 의지를 잃고 말았다.
건물 안은 바깥에서 본 것보다 훨씬 넓게 느껴졌다. 이곳을 뭐라 불러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무척 신경을 쓴 공간이라는 건 알 수 있었다.
자주색 옷을 입은 천사들이 그려진 둥근 천장과 가장자리에 금테를 두른 새하얀 기둥. 벽은 크림색이었으며 통창으로 들어온 햇살을 받아 화사하게 빛났다.
“…….”
자리에 앉은 뒤로 두 사람 사이에는 그 어떤 말도 오가지 않았다. 한 사람은 너무 당황해서, 다른 한 사람은 어쩜 이렇게 자신의 마음에 쏙 드는 공간이 이 주일만에 생겼는지 믿기지 않아서였다.
결국 당황스러움을 가까스로 정리한 디하트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이렇게 당신에게 보여 주게 될 줄은 몰랐어요. 아직 내부를 다 꾸미지도 못한데다, 부족한 게 많은데.”
이게 부족한 거라고? 세벨리아는 놀라 눈을 깜빡였다. 그런 그녀의 시선을 어떻게 해석한 건지 디하트가 앓는 신음을 흘렸다.
“대사가 보낸 편지를 읽고서 나도 모르게 이성을 잃었어요. 정신을 차리고 나니 어느새 이렇게 되어 있네요.”
정리해 보자면 로스엘의 편지 때문에 놀라 준비되지 않은 장소로 자신을 데려온 것 같았다. 장미 덤불로 둘러싸인 후원을 볼 때부터 문득 들었던 생각이 점점 확신이 되어 가고 있었다.
아마 이곳은 자신을 위해 준비된 공간이리라.
어쩐지 파헤쳐진 흙밭 같은 게 있다 했더니. 세벨리아는 뒤편의 통창으로 보이는 자그마한 호수와 만들다 만 텃밭 같은 걸 보며 작게 웃었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곳을 꾸몄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찌 되었든 성의 하나만큼은 높이 사 줄 만했다. 어떻게 안 건지 제 취향을 꼭 반영했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했다.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던 세벨리아는 어느새 감쪽같이 제 앞에 무릎 꿇고 있는 디하트를 발견하고 놀라 헉 소리를 내고 말았다.
“왜 그러고 있어요?”
“아무래도 이편이 나을 것 같아서요.”
크게 숨을 들이쉰 디하트가 고개를 들어 시선을 맞췄다. 설마 고백이라도 하려는 걸까. 가슴이 두근거리기가 무섭게 이어진 디하트의 말에 세벨리아의 얼굴이 미묘해졌다.
“지난번 전시회장에서 일어난 기현상을 해결하러 갔을 때, 깨달은 게 있었어요.”
“네?”
“당신의 힘은 한 공간에 붙들리게 되면 그 장소에 쌓인 기억을 환영으로 만들어 내죠.”
“그건…….”
지금 그 이야기가 왜 나오는 거지? 의아함에 고개를 기울이자 디하트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의 장례식을 치르고 한동안 나는 당신의 환영을 봤어요, 벨라.”
“……!”
“환각초를 피워 본 걸 말하는 게 아니에요. 당신이 머무르던 작은 골방. 당신의 물건이라고는 없는 그 작고 허름한 골방에서 당신의 모습을 본 적이 있었어요. 매서운 불길과 연기로 뒤덮인 방 안에서 당신은 유모의 이름을 부르며 도망치라 외쳤죠.”
디하트의 금색 눈동자 위로 고통스러운 기색이 스쳐 지나갔다.
“도대체 그곳에서 내가 모르는 끔찍한 일들이 얼마나 많이 일어난 건지, 당신은 어떻게 그 괴로운 시간을 버틴 건지 어리석은 나로서는 알 수 없지만…….”
떨리는 숨을 삼키며 디하트가 세벨리아의 두 손을 간절히 붙들며 말을 이었다.
“그날 이후로 생각했어요. 당신을 다시 괴로움만 가득했던 힐렌드 홀로 데려갈 수는 없다고. 그곳은 내게는 집이지만, 당신에게는 고통스럽고 외로운 시간으로 기억되는 장소일 뿐이니까.”
디하트는 그렇게 말하며 세벨리아의 손등에 제 이마를 기대고서 속삭였다.
“그래서 이건 내 이기적인 욕망이 담긴 선물이에요. 고통스러운 과거는 지울 수 없고, 상처마저 흔적을 남기지만… 그 흉터를 들여다볼 생각도 나지 않을 만큼 즐겁고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게 해 주고 싶었어요. 그런 공간을 주고 싶었어.”
“…….”
“당신은 모르겠지만 인버네스 저택은 며칠 뒤 당신 소유가 돼요. 그러니 어딘가로 가더라도 이곳으로 돌아왔으면 해요.”
디하트는 입술을 잘근 물더니 이어 말했다.
“아니, 실은 당신이 여기 머물렀으면 좋겠어. 여기서 당신이 원하는 모든 걸 했으면 좋겠어. 너무 행복하고 즐거워서 언제나 돌아오고 싶고 떠나고 싶지 않은 집이 되었으면 좋겠어. 그리고, 난 그런 당신의 곁에 머무르고 싶어.”
투명하게 빛나는 금빛 눈동자가 세벨리아를 올려다보았다. 떨리는 눈망울은 간절함에 가득 차 있었으나 한편으로 그녀를 붙든 손은 단단하고 힘이 들어가 있었다.
“지금은 별 볼 일 없지만 조금만 기다리면 더 마음에 들 거예요. 약초를 기를 수 있는 텃밭도 만들 거고.”
거절하면 당장에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 같은 눈동자를 들여다보며 세벨리아는 가슴 안쪽이 간질거리는 걸 느꼈다.
그녀는 웃음이 터져 나오려는 걸 억지로 참으며 붙잡힌 손을 비틀어 빼내려 했다. 디하트는 와락 얼굴을 구겼으나 더 이상 붙잡지는 않았다.
시무룩해진 그의 기색을 읽은 세벨리아가 웃음기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이리 와요.”
“네?”
“그러다 무릎 나가겠어요. 이제 내 앞에서 무릎 꿇는 건 금지예요. 옆에 앉는 게 아니라면 말도 안 걸 거예요.”
어린 강아지처럼 고개를 갸웃하던 디하트는 금세 그녀의 말을 알아듣고 냉큼 올라와 곁에 앉았다. 빈틈없이 달라붙은 모양새에 세벨리아는 다시 한번 속이 간질거렸다.
‘나 참.’
디하트에게는 미안하지만 그의 추측과 달리 힐렌드 홀의 골방에 나온 자신은 환영이 아닐 터였다. 왜냐하면 그건 가짜가 아닌 자신이었으니까.
‘그냥 악몽인 줄로만 알았는데.’
죽음을 가장하고 도망친 뒤 꾸었던 꿈. 익숙한 방에서 눈을 뜨고 평소와 같은 하루를 보내는 도중 갑자기 일어난 불길과 연기.
도망치라며 데니사의 이름을 부른 순간, 희미한 목소리가 자신을 불렀던 걸 세벨리아는 기억하고 있었다.
‘그게 당신이었구나.’
그 후로도 여러 번 이상한 꿈을 꾸었던 걸 기억한다. 본관에서 쫓겨나 지내던 별관과 낡은 복도 끝에 이어져 있던 온실을. 그 안에 홀로 우두커니 서 있던 남자를.
‘당신도 거기에 있었구나.’
당신은 무슨 생각으로 그곳에 있었을까. 어떻게 우리의 꿈이 하나로 연결된 걸까.
답을 찾을 수 없는 의문들이 머릿속을 가득 메웠지만 한순간에 흩어져 버렸다. 어깨에 살며시 기대 오는 디하트의 체온에 먼지처럼 흩날려 공기 중으로 사라져 버렸다.
“가지 말아요.”
“…….”
“그를 따라가지 말아요, 벨라.”
조심스럽게 등 뒤를 감싸 오는 두 팔을 느끼며 세벨리아는 입 안쪽의 여린 살을 깨물었다. 그의 목소리가 귓가에 닿을 때마다 눈이 시큰거리고 목 안쪽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가슴속에 뭉쳐 있던 무언가가 콱 하고 튀어 오를 것 같아 세벨리아는 입술을 굳게 다물고서 코로 느린 숨을 뱉었다.
어느새 자신을 꽉 껴안은 디하트가 고개를 들었다. 손바닥 한 뼘 사이의 거리를 두고 허공에서 맞부딪힌 눈동자에 숨을 쉴 수가 없었다.
그래서였을까. 숨이 막혀서, 온몸이 화끈화끈 달아올라서, 방금 전까지 머릿속을 가득 메우던 생각들이 휘발되어 버려서.
“내 아버지가 당신 부모님을 죽였어요.”
어두운 마음속 가장 깊이 가라앉아 있던 고민이 불쑥 튀어나와 버렸다.
“그런데 당신은 아무렇지도 않아요?”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물은 엎질러진 뒤였다. 디하트는 크게 놀란 듯 입술을 벙긋거렸다.
“벨라, 당신 도대체… 하아.”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한숨을 내쉬는 그의 모습에 세벨리아는 심장이 땅으로 떨어진다는 게 무슨 말인지 체감했다.
“시, 실언을 했어요. 내가 하려던 말은 그게 아니라.”
“사일러스 웨든을 러크우드로 보내자는 말을 가장 먼저 꺼낸 사람이 나예요.”
“네?”
갑작스러운 화제 전환에 놀란 것도 잠시, 뒤이은 이야기에 세벨리아는 멍한 얼굴을 했다.
“그가 저지른 일들에 대한 대가가 고작해야 사형이라는 건 어처구니없는 일이죠. 벨라, 러크우드에서 그는 평생을 빛 한 점 없는 감옥에서 천천히 고통스럽게 죽어 갈 거예요. 시시때때로 정체를 알 수 없는 그림자들이 그의 살갗을 쥐어뜯고 영혼을 갉아먹어 미치게 만들겠죠.”
“아…….”
“이번엔 내가 물을게요.”
잠깐의 시간을 두고 디하트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난 당신을 외롭게 만들고 결국 당신이 죽음을 가장해서까지 떠나게 만든 사람이에요. 그걸로도 모자라 당신 아버지를 낯선 땅으로 추방해 그곳에서 죽게 만들고자 한 남자죠.”
세벨리아의 손을 붙잡아 올린 디하트가 그녀의 손등에 입술을 스치듯 누르며 속삭였다.
“당신은 어때요? 내가 증오스러운가요, 아니면 무서운가요. 치를 떨 정도로 역겹고 보기 싫을 정도로 싫은가요.”
어리석은 질문이었다. 무가치하고 무용한 물음이었다. 그러나 그렇기에 세벨리아는 깨달을 수 있었다.
자신의 고민 또한 무가치하고 쓸모없었다는 것을.
“말해 줘요, 벨라. 이렇게 끔찍한 나를 앞에 두고도 당신은 왜 아무렇지도 않아요? 어떻게 나를 곁에 둘 생각을 했어요.”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금빛 눈동자를 바라보며 세벨리아는 숨을 삼켰다. 흐린 미소가 그녀의 입가에 걸렸다.
‘처음부터 고민할 필요 없는 일이었구나.’
“하아.”
느린 한숨을 내쉰 세벨리아가 작게 속삭였다.
“무릎 꿇기 말고 금지해야 할 게 많네요.”
의문으로 둥글어지는 눈을 들여다보며 세벨리아는 이어 말했다.
“그 말 말고 다른 말을 해 줘요.”
“…….”
“당신이 내내 하고 싶었던 말. 곁에 있어 달라는 껍데기로 포장한 속마음. 나는 사실 그게 듣고 싶었어요.”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무게를 지닌 짧은 단어. 한순간의 속삭임에 흘러가 버릴 그 말을 듣기 위해 자신은 지금까지 버틴 걸지도 몰랐다.
“하…….”
달콤하다 못해 심장이 녹을 듯한 요청이었다. 정신이 아찔해질 만큼 아름다운 웃음과 함께 디하트가 고개를 숙였다.
“사랑해요.”
맞닿은 입술에서부터 온기가 퍼져 나갔다. 북부에서는 한 번도 느낄 수 없었던 사랑스러운 온기였다.
[내가 죽고 남편이 미쳤다 (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