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fter I Died, My Husband Went Mad RAW novel - Chapter (153)
내가 죽고 남편이 미쳤다 (153)화(153/171)
외전 1-1
사랑을 고백하는 것만으로 모든 일이 순조롭게 잘 풀린다면 얼마나 좋을까. 디하트는 세벨리아와 관계를 회복한 뒤 행복한 나날만이 이어지리라 꿈꿨지만, 사랑만으로 살아가기에 세상은 너무 복잡했다.
“공작님, 라이언 경이 도대체 언제쯤 돌아오실 거냐며 매일 울부짖고 있습니다만.”
“림스 후작의 공석을 채우기 위한 회의가 소집된다고 합니다. 의장에게서 꼭 참석해 달라는 편지가 왔습니다.”
“그렌 부인 휘하의 하인들을 모두 내쫓고 난 뒤 힐렌드 홀의 일손이 부족해졌습니다. 새로운 이들을 뽑기에 앞서 공작님의 고견이 필요합니다.”
매일 아침저녁으로 전해지는 소식에 신경증이 재발할 것 같았다. 그렇지 않아도 죄인들의 뒤치다꺼리를 위해 밤낮없이 황실을 들락거리던 게 어제 일이거늘. 수하라는 녀석들이 상관의 고충은 헤아려 주지 못할망정 겨우 시작하게 된 신혼 생활을 방해하다니 어찌 되먹은 충정이란 말인가.
디하트는 죽어 가는 얼굴로 세벨리아를 위해 만든 별관으로 들어섰다. 그녀는 오늘도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모습으로 그곳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디하트, 왔어요?”
“벨라.”
우는 소리를 내자 그녀는 언제나처럼 따스하게 웃으며 자신을 반겨 주었다. 아, 그녀를 품에 안자 가슴 위로 쌓였던 시름이 순식간에 녹아내렸다.
“저 녀석들은 나를 무슨 부모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어떻게 된 게 혼자 할 줄 아는 것도 없고, 날 한시도 내버려 두지 않는지 모르겠습니다.”
“후후. 일단 앉아요. 앉아서 이야기해요.”
세벨리아가 이끄는 대로 창가의 긴 소파에 앉은 디하트는 자연스럽게 그녀의 무릎에 머리를 기댔다. 뻔뻔스럽기 짝이 없는 행태에 세벨리아는 웃음을 삼키며 차를 내오려던 사용인을 손짓으로 돌려보냈다.
“지금으로선 아무것도 입에 안 들어갈 것 같아요.”
“그 정도로 혹사당하고 있는 거예요?”
“만져 봐요. 지난번보다 살이 내려갔습니다.”
디하트는 그러면서 은근슬쩍 자신의 뺨에 그녀의 손을 얹었다. 어딜 만져도 매끈매끈하고 뽀송한 게 딱히 피곤해 보이는 구석은 없어 보였다.
‘괜히 엄살을 부리네.’
디하트가 항상 말만 이렇게 한다는 걸 세벨리아도 일찍이 알고 있었다. 그는 수도에 있으면서 힐렌드 홀에서 보내오는 업무를 완벽하게 처리했다. 매일같이 라이언이 보내는 편지도 그저 그의 성질을 건드리려는 장난이지 심각한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세벨리아는 그 점을 굳이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대신 디하트가 강력히 주장하는 검게 내려앉은 눈 밑과 푸석푸석해진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매만질 뿐.
디하트는 그녀의 손길을 느끼며 가만히 누워 햇살을 받았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피로와 짜증에 구겨져 있던 미간이 조금씩 풀어졌다.
“하아, 그래도 오늘은 비교적 방해꾼들이 적은 편이었어요.”
“그래요?”
“예. 일레이를 보내 버려서 그런가, 시끄러운 목소리도 없고. 매일 오늘만 같으면 좋겠습니다.”
세벨리아는 별생각 없이 그의 투정을 받아넘겼다. 디하트가 진심으로 일레이와 라이언이 싫어 투덜거리는 게 아니라는 걸 아니까.
“당신 곁에 있으면 긴장이 풀려.”
노곤한 목소리와 함께 디하트는 천천히 눈을 깜빡였다. 속눈썹에 걸린 햇살이 자그맣게 부서져 눈동자 위를 덮었다.
“벨라.”
심장을 건드리는 목소리, 평생 볼 수 없을 거라 생각했던 편안한 미소. 부드럽게 말린 검은 머리카락 아래 보석처럼 반짝이는 눈은 오로지 자신만을 담고 있었다.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그만큼 숨 막히도록 저릿한 애정이 담긴 풍경이기도 했다. 어떻게 모를까. 디하트의 어린아이 같은 행동은 모두 제게 관심받기 위한 행동의 발로였다.
자신을 곁에 두기 위한 그만의 방법이었다.
하지만 혹자는 그가 바보 같아졌다고 깎아내렸다. 여자에 미쳐서 어린애가 되어 버렸다고, 철이 없는 망나니처럼 사리 분별을 할 줄 모른다고 비난했다. 그러나 디하트는 언제나처럼 코웃음을 치며 그들을 무시했다.
자신 또한 마찬가지였다. 힐렌드 홀의 폭군에서 응석 부리는 연인이 되어 버린 디하트는 기분 나쁘기는커녕 오히려 신기하기만 했다. 약한 모습을 드러내는 걸 꺼려 했던 과거를 떠올리면 지금의 그는 그야말로 천지가 개벽할 만큼 달라졌으니까.
세벨리아는 그의 변화가 보기 좋았다.
‘어쩐지 연구소에서 지내던 때가 떠오르네.’
그때 디하트는 자신에게 필사적으로 다가오면서도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처럼 어쩔 줄 몰라 했었다. 가끔씩 도대체 왜 저러는 걸까 싶기도 했는데, 지금은 마치 잘 맞는 옷을 입은 것처럼 투정이 몸에 익었다.
게다가 그를 비난하는 사람들의 말과 달리 자신과 함께하게 된 이후 디하트는 단 한 번도 사리 분별을 하지 못한 적 없었다.
“디하트, 라이언 경이 언제까지 애원하는 편지를 보내게 할 생각이에요?”
세벨리아는 담담한 목소리로 설득을 시작했다. 그러자 처연하게 내리깐 속눈썹 아래로 금빛 눈동자가 이리저리 움직이기 시작했다. 탈출구를 찾는 그의 모습에 세벨리아가 가볍게 얼렀다.
“한 번쯤은 가 봐야 하지 않아요?”
“어딜 말입니까? 아, 남쪽에 휴양지 하나가 새로 단장했다던데. 당신도 그곳 소식을 들었군요?”
능숙하게 화제를 전환하는 디하트의 모습에 세벨리아는 쓴웃음을 머금었다. 그의 속내를 모르는 바는 아니었으나 이만하면 되었다. 그녀는 자신과 시선을 마주치기 거부하는 디하트의 뺨을 두 손으로 잡고 눈을 맞췄다.
금빛 눈동자가 슬쩍 자신을 바라보는가 싶더니 곧 눈꺼풀 사이로 사라졌다.
“디하트.”
“…….”
“일이 마무리된 지 벌써 석 달이 넘었어요. 당신이 힐렌드 홀을 떠난 날부터 따지면 거의 반년 가까이 되었다고요. 난 괜찮으니 이제 슬슬 다녀와요.”
세벨리아의 말을 가만히 듣는가 싶던 디하트는 그대로 몸을 반쯤 굴려 그녀의 무릎에 얼굴을 파묻었다. 세벨리아가 어처구니없다는 듯 한숨을 뱉자, 디하트가 기어드는 목소리로 웅얼거렸다.
“지금도 아무 문제 없는데 꼭 가야 할 필요가 있을까요.”
“디하트.”
“하아, 벨라.”
“그렇게 말하면서도 실은 이번 주 내로 갈 예정이었다는 거 다 알아요.”
무릎에 얼굴을 파묻은 디하트의 몸이 굳었다. 세벨리아는 마지막 카드를 꺼내 들었다.
“매번 뜻하지 않은 일들이 일어나 북부행이 계속 미뤄졌다는 것도 알고요.”
“…….”
“이젠 남은 재판도 없고, 복수니 배상이니 하면서 찾아오는 사람들도 당신이 다 쫓아내 버렸잖아요. 황태자 전하께서도 이젠 굳건하게 자리를 잡으셨으니 걱정 말고 다녀와요.”
그녀의 말대로였다. 디하트가 북부로 가지 못한 건 단순히 힐렌드 홀이 싫어서가 아니라 뒷수습에 상당한 시간이 걸려서였다.
러크우드로 이송된 웨든 백작의 남은 재산을 탐내어 소송을 걸기 시작한 이들부터 살아 있는 줄도 몰랐던 방계와 사생아들, 거기다 더해 남은 잔당들이 응분에 차 달려드는 일까지.
지리멸렬한 일들을 수습하면서 동시에 디하트는 황실을 드나들며 중앙과 북부의 새로운 평화 협정의 기반을 닦고, 로잘린과의 관계를 회복하며 황태자와 향후 정세에 대한 계획을 세워야 했다.
그야말로 몸이 셋이라도 모자란 나날. 점점 이성을 잃어 가는 디하트가 세벨리아의 곁에서만은 나사 빠진 것처럼 평안을 취하는 걸 알게 된 사람들은 북부행이 미뤄지는 걸 납득했다.
중앙 정계에 피바람을 몰고 다니는 처형관이나 다름없는 남자에게도 휴식은 필요한 법이었으니까. 하지만 세벨리아가 나서서 북부행을 주장하니, 그것도 이제는 시효가 다한 듯했다.
“하아.”
디하트는 하는 수 없다는 듯 몸을 일으켰다. 의자에 손을 짚은 채 상체를 숙인 그는 애처로운 눈으로 세벨리아를 바라보았다.
“벨라…….”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는 듯, 자신을 보내지 말아 달라는 눈빛이었다.
‘그렇게는 안 되지.’
세벨리아는 장난스레 웃으며 디하트의 콧방울을 건드렸다.
“잘 다녀와요.”
“…….”
일그러지는 그의 미간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세벨리아는 이어 말했다.
“선물 가져오는 것도 잊지 말고요.”
“선물, 말입니까?”
“네, 선물.”
미간을 타고 콧대를 지나 천천히 아래로 내려간 손가락이 쇄골 쯤에서 멈춰 섰다. 찰랑하는 소리가 들렸다. 디하트는 무의식중에 고개를 내려 그녀의 손이 멈춘 곳을 확인했다.
푸른 보석이 박힌 은 십자가 목걸이. 그것을 감싼 가느다란 손가락을 본 디하트는 옅게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특별히 원하는 거라도 있습니까?”
“음…….”
세벨리아가 고개를 기울이며 생각에 잠겼다. 디하트는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아무거나 괜찮아요. 특별히 생각나는 거는… 아, 보석함?”
“보석함 말입니까?”
의외의 선택에 디하트가 눈을 깜빡였다. 세벨리아는 딱히 치장에 공을 들이는 성격이 아니라 가지고 있는 액세서리도 많지 않았다. 그나마 가지고 있는 것도 다 자신이 억지로 선물한 것들 뿐이고.
‘그런데 보석함이라.’
그의 궁금증을 해소하듯 세벨리아가 가벼운 목소리로 말했다.
“예전에 넬리아가 아버지의 출장 선물로 보석함을 받은 적이 있거든요.”
“…….”
“오래 전 일인데 갑자기 떠올랐어요. 출장 선물이라고 하니 생각났나 봐요.”
디하트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은 것도 모르고 세벨리아는 아무렇지 않게 웃었다. 예전에는 그게 그렇게 부러웠다고 말하면서.
“하아.”
“왜 그래요?”
“아뇨. 알겠어요. 황태자조차 손에 넣을 수 없는 것으로 가져오죠.”
“네?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어요.”
디하트의 과한 의욕에 세벨리아가 질색하자 그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였다.
“어차피 사 오는 사람 마음 아닙니까.”
“하지만…….”
“알겠어요, 알겠어. 그럼 당신 마음에 드는 걸로 가져오겠습니다.”
디하트가 세벨리아의 뺨에 가볍게 입 맞추며 속삭였다. 그제야 세벨리아는 마음이 놓인 듯 작게 웃었다.
“기대할게요.”
“부디.”
디하트는 자신만만한 눈빛으로 자리를 떠났다. 방금 전까지 어린 척했던 남자라고는 볼 수 없는 당당한 뒷모습에 세벨리아는 푸스스 웃음을 흘렸다.
며칠 뒤 그는 예정대로 기사들과 함께 북부로 향하는 마차에 올라탔다. 다만 자리를 비운 기사들의 수만큼 황실 기사단이 파견된다는 건 세벨리아도 몰랐던 일이었다.
그리고 로잘린이 그들과 함께 방문할 줄은 정말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