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fter I Died, My Husband Went Mad RAW novel - Chapter (154)
내가 죽고 남편이 미쳤다 (154)화(154/171)
외전 1-2
“오랜만이에요.”
“세상에. 로잘린 양, 어서 와요. 그런데 이렇게 밖에 나오셔도 괜찮은 건가요?”
그녀를 본 세벨리아는 놀란 얼굴로 계단을 뛰어 내려왔다. 로잘린은 그렌이 데려온 기사들에 의해 깊은 상처를 입고 요양 중이었다. 상태가 꽤 호전되기는 했으나 거동이 가능할 정도는 아니라 들었는데 이게 어찌 된 일일까. 세벨리아의 얼굴에 깃든 근심을 본 로잘린이 그녀의 손을 붙잡아 올리며 다정히 말했다.
“많이 괜찮아졌으니 걱정하지 말아요. 그리고, 이렇게 직접 얼굴을 보고 감사 인사를 하고 싶었어요.”
이미 편지로 몇 차례 감사 인사를 받은 전적이 있기에 세벨리아는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로잘린은 단호했다. 그녀는 샤테이안 황태자가 호위 명목으로 보내온 황실 기사단을 뒤돌아보며 명령했다.
“가져온 물건들을 모두 옮기도록 하세요. 전하께서 손수 고르신 것들이니 흠집 하나 나지 않도록 주의하시고요.”
“예!”
황실 기사단은 이상하리만치 로잘린에게 고분고분했다. 그동안 그녀가 황실의 보호하에 치료받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것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분위기였다.
‘뭐라고 할까, 주인의 손님을 대한다기엔 뭔가 충직한 느낌이…….’
거기까지 생각하는 찰나, 로잘린이 가까이 다가오더니 수줍은 얼굴로 속삭였다.
“죄송하지만 안쪽에서 이야기를 이어 나가도 될까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사실 오래 서 있기는 힘든 상태라서요.”
세벨리아는 화들짝 놀라 정신을 차렸다. 손님을 앞에 두고 딴생각에 빠지다니. 집주인으로서 소홀했다.
“얼마든지요. 제가 먼저 권해 드려야 했는데, 죄송해요.”
“아니에요.”
세벨리아는 로잘린을 현관에서 가장 가까운 응접실로 안내했다. 후원을 마주 보고 있는 응접실은 아니었으나 햇볕이 잘 들고 전경이 아름다운 곳이었다.
사용인이 차와 다과를 가져다주고 한참 동안 두 사람은 적막을 즐겼다. 그러다 돌연 로잘린이 새된 비명을 질렀다.
“앗!”
“로잘린!”
놀란 세벨리아는 바로 사람을 부르려 했으나 로잘린이 손을 내저으며 그녀를 만류했다. 세벨리아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가라앉히며 로잘린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갑자기 상태가 안 좋아졌다기엔 혈색이 너무 좋았다.
“로잘린, 괜찮아요? 몸이 안 좋다면 일단 돌아가도록 해요. 만나는 건 언제든 할 수 있는 일이잖아요.”
“아뇨, 그게 아니라…….”
로잘린은 당황스러운 듯 눈을 크게 뜨고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확실히 어딘가 아파서 비명을 지른 건 아닌 것 같았다. 그녀는 우물쭈물하다 상체를 숙이더니 무언가를 집어 올렸다.
“이 아이가 발을 밟아서.”
가녀린 손안에서 버터처럼 녹아내린 그건 회색 털의 고양이였다.
“……마야?”
세벨리아의 부름에 응답이라도 하듯 마야가 긴 울음소리를 냈다. 끔뻑이는 초록색 눈동자가 졸음에 겨워 있었다.
“고양이를 키우시는 줄 몰랐어요.”
로잘린은 마야를 무릎에 올려놓고 가만가만 쓰다듬었다. 마야는 팔자 좋은 고양이답게 손길을 익숙하게 받아들이며 눈을 감았다.
창백한 얼굴을 한 검은 머리의 소녀와 회색 고양이는 한 폭의 그림처럼 잘 어울렸다. 평화로운 한때라는 제목을 걸어야 할 것 같은 광경에 세벨리아는 미소를 머금었다.
그리고 로잘린이 마야에 정신이 팔린 틈을 타 방금 전 소란으로 달려온 사용인들에게 귓속말을 했다.
“혹시 모르니 마차를 대기시켜 둬요.”
“알겠습니다.”
저택 사용인들은 공손한 태도로 세벨리아의 명령을 받들었다. 그들이 소리 없이 빠져나간 뒤 세벨리아는 로잘린에게 말을 건넸다.
“괜찮다면 식사까지 하고 가시는 게 어때요?”
“아.”
마야의 앞발을 붙잡고 만지작거리던 로잘린이 당황스러운 듯 눈을 깜빡였다. 그렇게 오래 있을 생각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럼 따로 만나고 싶었던 이유가 있었던 거겠네.’
편지로도 수차례 보내온 감사의 말을 굳이 방문해서까지 되풀이하려는 경우는 몇 없으니 말이다. 세벨리아는 천천히 차를 음미하며 로잘린이 생각을 정리할 시간을 주었다.
이윽고 로잘린은 용기가 났는지 목을 몇 번 가다듬더니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먼저 절 구해 주신 것에 대해 다시 한번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어요. 벨라 양, 아니 이제는 벨라 애쉬렌트 영애라고 불러야 하죠. 죄송해요.”
“그럴 필요 없어요. 편히 말씀하세요, 로잘린.”
로잘린이 필요 이상으로 긴장한 걸 눈치챈 세벨리아가 먼저 그녀를 편히 불렀다.
“그리고 몇 번이나 답장으로 말씀드렸지만, 당신을 구한 건 제 의지였어요. 그 뒤 쓰러진 것도 제가 제 체력을 생각지 않고 무리했기 때문이죠. 그러니 더는 죄책감 가지지 않으셔도 돼요.”
로잘린은 눈을 크게 뜨더니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무언가를 잠시 생각하는 듯한 모양새에 세벨리아는 틈을 놓치지 않고 파고들었다.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니시죠?”
“네?”
“일부러 디하트가 저택에 없는 날을 골라 방문하신 거잖아요.”
세벨리아는 쓴웃음을 지으며 찻잔을 내려놓았다. 마야를 쓰다듬던 로잘린의 손이 우뚝 멈췄다.
“인버네스 가문에서는 몇 번이나 로잘린 양을 공식적으로 초청해 왔는데 쭉 몸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칩거하며 거절하셨죠. 그런데 디하트가 힐렌드 홀로 떠나자마자 이렇게 방문하시니 당연히 그를 피하기 위해서였다는 생각밖에 할 수 없었어요.”
세벨리아의 논리 정연한 말에 로잘린은 허무한 미소를 띠고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정확하게 알고 계시네요. 그분이, 하아. 그러니까 오라버니가 없을 때를 골라 온 건 맞아요. 하지만 그 사람이 보기 싫어서는 아니에요.”
로잘린은 이런 말을 하는 게 어색한 듯 손을 꿈지럭거리며 말을 이었다.
“음, 그러니까……. 이제 와서 하면 참 우스운 말이지만 말이죠.”
“어색한 건가요?”
세벨리아의 직구에 로잘린은 뺨을 붉히며 고개를 돌렸다. 창밖에 고정한 금빛 눈동자가 잘게 떨리는 게 보였다. 세벨리아는 웃음을 삼키며 고개를 내저었다.
“그런 이유라면 어쩔 수 없죠.”
“이해해 주셔서 감사해요.”
“사람 간의 관계라는 건 억지로 밀어붙인다고 해결되는 일이 아니니까요.”
어깨를 으쓱인 세벨리아는 이어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서 절 찾아오신 이유는 뭔가요?”
“그게, 실은 황실과 관련된 일이에요.”
짧게 한숨을 쉰 로잘린은 생각을 정리한 듯 명료한 목소리로 이야기의 운을 떼었다.
“이제 슬슬 몸도 회복되었으니 황궁을 나와 거처를 옮기려 하거든요. 황실 측에도 의사를 전했는데 자꾸만 확답을 피하는 걸 보니 제가 직접 움직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서요.”
“그렇군요. 그럼 오늘 오신 이유가.”
“네. 향후 거처에 관해서 인버네스 측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어요. 가능하면 북부로 돌아갈 생각이에요. 고향으로 돌아간다고 하면 황실 측도 더는 말리지 못할 테니까. 하지만, 오라버니를 직접 대면하는 데에는 용기가 필요한 터라.”
어쩔 수 없이 세벨리아가 혼자일 때 만나러 왔다며 로잘린이 작게 속삭였다.
“잘하셨어요.”
세벨리아는 로잘린의 결단을 칭찬하며 그녀 옆자리에 앉았다. 머릿속으로는 어떻게 디하트에게 이 일을 상의할까 생각하면서.
“그런데 혼자 북부로 가도 괜찮겠어요?”
“아, 세이나가 영지에서 올라오기로 했어요. 그 애와 함께 갈 계획이에요.”
세이나라면 로잘린의 소꿉친구로 요전날 발레리 남작과 삼황자가 로잘린을 협박하기 위해 붙들어 놓은 인질 중 하나였다. 그렇지 않아도 그들의 안위가 걱정되었는데. 다행히도 무탈한 듯싶었다.
“그럼 황궁에 있는 짐은…….”
“제 물건은 별로 없으니 나오는 데 무리는 없을 거예요.”
앞으로 어떻게 할지에 대해서 세벨리아와 로잘린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였다. 밖에서 말 울음소리가 길게 들리더니 혼잡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잠시 뒤 응접실에 나타난 건 붉은 눈을 번뜩이는 제국의 황태자, 샤테이안 벨크람이었다.
“오랜만이야.”
“황태자 전하! 기별도 없이 어쩐 일로.”
“영애의 몸이 좋지 않다는 말을 들었거든.”
자리에서 일어나는 두 여성을 손짓으로 앉힌 황태자는 부드러운 미소와 함께 자리에 앉았다.
“약이 필요할 거 같아서.”
황태자가 테이블 위에 내려놓은 봉지를 본 로잘린은 복잡한 얼굴이 되었다.
“사려 깊으시네요. 이렇게까지 해 주시지 않아도 되는데.”
“그렇게 거리 둘 필요 없어, 영애. 그대의 건강을 챙기는 건 내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니까.”
“황실에 더 이상 부담을 드릴 수는 없는 노릇이죠.”
로잘린이 천천히 고개를 저으며 약 봉투를 가져갔다. 샤테이안은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다 작게 콧소리를 냈다.
“흐음.”
“다과를 다시 내오라 할게요.”
세벨리아가 하인을 부르려 하는데 샤테이안이 거절했다. 어차피 오래 머물 생각이 없었다면서 말을 꺼낸 그는 로잘린을 향해 물었다.
“정말 떠나려는 건가?”
“…….”
“그대 한 사람 머문다고 황실 재정이 파탄 나는 일은 없어. 부담을 느낀다면 더더욱 말도 안 되는 일이고. 어디까지나 그대는 삼황자와 이황비의 피해자니까.”
가만히 그를 응시하던 로잘린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샤테이안은 고집스러운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다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하는 수 없군. 더 설득하려 하지 않을 테니 일단 함께 돌아가지.”
“죄송합니다, 전하. 저는 오늘부터 이곳에 머물 생각입니다.”
사전에 협의되지 않은 말에 세벨리아는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로잘린은 자신의 생각보다 황궁을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았다.
‘황궁에 머무는 게 그리도 싫었나.’
하지만 여기서 로잘린의 말을 부정해 상황을 망치는 일은 하지 않았다. 한편, 샤테이안은 눈살을 찌푸린 채 로잘린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한동안 두 사람의 신경전이 이어지고, 샤테이안이 한숨을 터트리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