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fter I Died, My Husband Went Mad RAW novel - Chapter (155)
내가 죽고 남편이 미쳤다 (155)화(155/171)
외전 1-3
“그렇다면 매일같이 약을 배달할 수밖에 없겠군.”
“그렇게 하지 않으셔도…….”
“황실 주치의를 이곳에 취직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잖아.”
로잘린은 뜻밖의 진행에 눈을 깜빡이며 무어라 항변하려 했으나 샤테이안이 자리를 떠나는 것이 그보다 빨랐다.
“그럼 즐거운 시간이었네, 두 사람 모두 가까운 시일 내에 다시 보지.”
샤테이안은 바람 같았던 등장처럼 순식간에 사라졌다. 세벨리아는 그가 사라진 자리를 가만히 바라보다 로잘린에게 고개를 돌렸다.
“오늘부터 머무르신다고요.”
“미, 미안해요. 황태자 전하의 고집을 꺾으려다 보니 어쩌다.”
“아뇨. 좋은 생각이라고 말하려 했어요.”
세벨리아가 환히 웃으며 로잘린의 손을 붙들었다. 그렇지 않아도 디하트가 없어 하루가 너무 심심하고 적막했던 차였다.
“그럼 이른 시일 내에 로잘린 영애의 짐을 이쪽으로 옮기는 걸로 하죠. 내일 아침 기사들을 보내 황태자 전하께 말씀드릴게요.”
“고마워요…….”
상냥한 눈빛과 따뜻한 온기에 로잘린은 뺨을 붉게 물들였다. 때마침 하인이 점심 식사가 준비되었음을 알렸다.
“식사부터 해요, 우리. 그러고 나서 후원을 둘러보지 않을래요?”
세벨리아가 생긋 웃으며 그녀를 정찬실로 이끌었다.
* * *
그렇게 시간이 지나 디하트가 돌아왔을 무렵, 인버네스 저택에는 군식구 한 명이 늘어나 있었다.
“무사히 돌아오셔서 기쁩니다, 공작님.”
디하트는 평소처럼 마차에서 내려 계단을 올랐다. 곁에 따라붙은 집사의 말을 대충 중요 사항만 파악하고 나머지는 흘려들으며 걸음을 옮기는데 어디선가 뜨거운 시선이 느껴졌다.
“…….”
그 먼지 덩어리 고양이인가, 하면서 그가 아무렇지 않게 고개를 돌린 순간이었다. 두 쌍의 눈이 허공에서 마주쳤다.
“…….”
“…….”
마치 거울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았다. 디하트 본인조차 그런 착각이 들 정도로 비슷한 색채와 온도를 지닌 금안이었다.
“로잘린.”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로잘린은 달려 사라졌다. 재빠르기가 사슴에 비견될 만했다. 그 경악스러운 속도에 놀란 것도 잠시, 디하트는 고개를 틀어 집사를 노려보았다.
어떻게 제게 말한 주요 이야기 중에 로잘린에 관한 것이 하나도 없었냐는 의미의 시선이었다. 그에 집사는 아차 하는 기색이었다.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집사가 입을 열었을 무렵이었다.
“그, 그게 말입니다.”
“어머, 디하트?”
때마침 구원자가 나타났다. 현관의 중앙 계단을 타고 내려오던 세벨리아가 그를 발견한 것이다.
“어쩐 일이에요. 이틀 뒤에 온다고 하지 않았어요?”
“놀라게 해 주려 했죠.”
디하트가 머쓱한 얼굴로 세벨리아의 손을 잡아 그녀를 계단 아래까지 에스코트했다. 세벨리아는 환한 얼굴로 그를 마주 보다 무언가 떠올랐는지 탄성을 냈다.
‘로잘린이 현관에서 기다린다고 했는데.’
어쩐지 집사가 자꾸 제게 무언의 눈짓을 보낸다 했다. 세벨리아는 쉽게 사태를 파악할 수 있었다. 아마도 두 사람이 현관에서 마주친 거겠지. 로잘린이 보이지 않는 걸 보니 그를 보자마자 도망갔을 테고.
“흠.”
“벨라?”
이걸 어쩐다. 그가 도착하면 천천히 설명하려 했는데. 계획이 어그러졌으나 세벨리아는 당황하지 않았다.
“일단 들어가서 옷부터 갈아입도록 해요. 북부에 다녀온 이야기는 그 뒤에. 그동안 저택에서 있었던 일도 그때 들려줄게요.”
디하트는 그녀를 가만히 응시하다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고 싶은 말도, 묻고 싶은 것도 많았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었다.
디하트가 옷을 갈아입는 동안 로잘린과 짧게 이야기를 하고 돌아온 세벨리아는 그와 함께 정찬실로 향했다. 평소보다 이른 점심을 준비하느라 하인들의 이마에 비지땀이 흐르는 것을 봤으나 어쩔 수 없었다.
디하트가 일찍 도착하겠답시고 식사를 건너뛰며 강행군을 펼쳤다는 이야기를 일레이에게 들었기 때문이다.
“자꾸 이럴 거예요, 정말?”
계속 이런 식으로 나온다면 워츠를 다시 저택에 상주시키겠다며 세벨리아가 으름장을 놓았다. 그건 또 싫었던지 디하트는 즉각 사과했다.
“미안합니다. 그러니 그것만은 봐주겠어요?”
저택의 주인은 세벨리아이기에 그로서는 이렇게 빌 수밖에 없었다. 디하트가 눈썹을 늘어트리며 사과하자 세벨리아는 기가 차면서도 그 모습이 귀여워 한 번은 봐주기로 했다.
“딱 이번 한 번만 넘어가 주는 거예요.”
“너그럽기도 해라. 역시 주인님답군요.”
“하인처럼 말하지 말아요.”
연구소에서 있을 적 디하트가 하인마냥 제 시중을 들던 때가 떠올라 세벨리아는 몸서리를 쳤다.
“왜요? 이곳의 주인은 당신 맞잖아요.”
“그렇다 해도.”
“주인님.”
작게 속삭이는 목소리에 세벨리아가 어처구니없다는 듯 입을 벌리자 디하트가 웃음을 터트렸다. 너른 복도에 두 사람의 웃음소리가 가득 퍼져 나갔다.
그렇게 두 사람은 서로 짓궂게 놀리기도 하고, 티격태격하면서 정찬실로 향했다. 그 와중에 디하트는 가능한 힐렌드 홀에 관한 이야기를 피하려 했으나 세벨리아가 먼저 그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 달라 하자 망설이면서도 조금 기쁜 기색이었다.
“본관 보수 공사에 가장 의욕적인 건 라이언과 새 집사예요. 이렇게 된 김에 본관 인테리어를 아예 새로 하자고 밀어붙이더군요.”
“그럼 공사 기간이 늘어나겠네요?”
“아무래도 그렇게 되겠죠. 수도 기술자들을 모집한다는데 잘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벌써부터 의심하는 거예요?”
“염려하는 거죠.”
정찬실에 이르러 두 사람의 목소리는 자연스레 흩어졌다. 하인이 열어 준 문 안쪽으로 먼저 발을 들인 세벨리아는 눈을 깜빡이더니 고개를 갸웃했다.
“어머.”
아직 디하트를 보는 게 불편하다며 따로 식사를 하겠다고 한 로잘린이 먼저 와 있었기 때문이다. 세벨리아는 살짝 놀랐으나 크게 개의치 않았다. 마음이야 언제든 바뀔 수 있는 것이니까.
다만 디하트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세벨리아의 뒤를 따라 들어온 그는 경직된 얼굴로 입술을 살짝 벌리더니 손을 쥐었다 피고선 고개를 끄덕였다.
“오랜만이구나, 로잘린.”
“네, 오랜만이에요. 오라버니. 아까는 실례했어요.”
“신경 쓰지 않아도 돼.”
“네.”
이보다 더 삭막한 남매 사이가 있을까, 하고 생각한 세벨리아는 자신의 경우를 깨닫고선 고개를 가로저었다. 하긴 어느 형제자매를 데려온들 저를 죽이려 한 언니 오빠보다야 나을 것이다.
“일단 앉죠. 하인들이 눈치 보잖아요.”
세벨리아는 자연스레 식사 분위기를 주도했고, 그녀의 부드러운 카리스마에 로잘린은 조금 감탄했다. 그렇게 어색하면서도 친밀한 점심 식사가 시작되었다.
다행히도 식사는 편안한 분위기로 이어졌다. 디하트는 눈치 없이 로잘린에게 억지로 친해지려 말을 붙이지 않았고, 로잘린도 갑작스레 차오르는 죄책감에 두서없는 사과와 눈물을 흘리는 일도 없었다.
‘내 생각보다 훨씬 괜찮은 것 같은데.’
디하트의 얼굴을 보는 게 어색하다며 그가 없는 틈을 타 저택에 방문했던 것치고 로잘린은 생각보다 잘 버티고 있었다.
‘엄살이었나?’
하긴 그럴 수도 있지. 거의 이십 년 가까이 얼굴도 보지 못하고 따로 살아온 남매 아닌가. 세벨리아는 속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두 사람 간의 미묘한 기류를 모르는 사람처럼 아예 다른 화제들을 입에 올렸다.
“이번에 7지구의 호수 공원에서 뱃놀이가 열린다는데 알고 있나요, 로잘린?”
“세이나가 말했던 것 같아요. 연날리기 행사도 같이 주최한다고 하던데.”
“맞아요. 저녁이 되면 연에 불을 붙여 날아가는 모습을 감상할 수 있대요. 장관이라던데.”
“황실이 용케 그런 행사를 허가해 줬군요.”
“비꼬지 말아요, 디하트. 무려 황태자 전하께서 친히 안전 검증을 하신 행사니까.”
“흠…….”
세 사람의 대화는 세벨리아를 중심으로 물 흐르듯 이어졌고, 세 사람 모두 그것에 만족했다. 애초에 세벨리아도 누군가 부탁하지 않는 이상, 딱히 두 사람의 관계 개선에 개입할 생각이 없었고 두 사람도 그걸 바라지 않기 때문에 점심 식사는 아주 평화로웠다.
놀라운 일은 로잘린이 식사를 거의 끝마쳤을 때 발생했다.
“오라버니.”
디저트를 거절하고 자리에서 일어난 로잘린이 디하트를 바라보며 그를 불렀다. 디하트는 잠깐 놀란 듯했으나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무사히 돌아오셔서 기뻐요.”
화살처럼 말을 던진 로잘린은 빠르게 정찬실을 나서려 했다. 하지만 한 번 당하지 두 번 당할 디하트가 아니었다. 재빨리 정신을 차린 그가 작지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방에 올라가면 선물이 있을 거다.”
“…….”
“클로드가 준비한 거야.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구나.”
로잘린은 겨우 고개를 돌려 디하트를 바라보았다. 두 사람의 시선이 잠시 교차하고, 로잘린은 고개를 겨우 움직여 까딱이고는 다시 몸을 돌렸다. 그리고 현관에서 마주쳤을 때처럼 순식간에 달아나 버렸다.
“푸하.”
왠지 모를 긴장감에 침묵을 지켰던 세벨리아는 그제야 숨을 내쉬었다. 디하트가 손 끄트머리로 물잔을 밀었다.
목을 적신 세벨리아가 여상한 태도로 입을 열었다.
“클로드가 산 게 아니죠?”
“무슨 말인지 모르겠네요.”
“그는 지금 힐렌드 홀에 없잖아요.”
클로드는 워츠와 함께 러크우드로 떠났다. 스승을 만날 겸 워츠와 같이 그곳의 약재와 의술을 배우기 위한 견학 목적이었다.
디하트는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은 채 미소 지었다. 대답을 회피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하지만 세벨리아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녀는 어서 답하라는 듯 그를 뚫어져라 응시했고, 결국 디하트는 두 손을 들었다.
“당신 선물을 사려고 상인들 창고를 털다 보니 눈에 들어오는 게 많아서 말이죠. 사는 김에 같이 사 왔습니다.”
너무 서운해하지 말라며 디하트가 덧붙인 말에 세벨리아는 오히려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한다는 듯 웃음을 터트렸다.
“무슨 말이에요? 그렇게 말하지 말아요, 디하트. 오히려 칭찬받을 일이죠. 여동생에게 선물을 사 오는 오빠라니. 조금 부럽네요.”
별생각 없이 던진 말이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반응이 돌아왔다. 짧은 침묵 후, 디하트가 입술을 깨물며 그녀의 손목을 붙잡아 온 것이다.
“당신이 가끔씩 그런 말을 할 때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응?”
“아무리 부러워한다 한들, 난 당신의 오빠나 아버지는 되어 주지 못할 테니까.”
세벨리아는 얼떨떨했다. 자신이 그런 말을 예전에도 했었던가? 기억을 더듬어 보는데 눈앞의 디하트는 그것마저 마음에 들지 않는지 어느새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