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fter I Died, My Husband Went Mad RAW novel - Chapter (156)
내가 죽고 남편이 미쳤다 (156)화(156/171)
외전 1-4
“기억나지 않는 겁니까?”
“음.”
세벨리아가 눈을 굴리자 디하트가 한숨을 내쉬었다.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 머리를 헤집은 그가 고개를 들어 그녀를 응시했다. 열기를 담은 눈동자는 마치 그녀의 속을 파고들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데이트를 나갈 때마다 사이좋은 가족이 보이면 당신은 항상 무의식적으로 그런 말을 했어요.”
사이좋은 남매나 부모에게 사랑받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그녀는 저도 모르게 부럽다는 말을 내뱉곤 했다. 그녀는 자각하지 못한 행동이었겠지만 늘 그녀의 곁에 있던 디하트는 그 모든 일을 전부 기억하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건 그가 줄 수 있는 행복이 아니니까. 그는 세벨리아에게 하나뿐인 연인이자 영원한 사랑을 맹세할 수 있었지만, 그녀에게 형제로서의 우애와 부모로서의 사랑을 줄 수는 없었다.
평화로운 나날, 행복하기만 한 생활에서 오로지 그것만이 그의 괴로움이었다.
“이렇게 말하면 날 나쁜 놈으로 볼 걸 알아요. 그렇지만.”
그는 괴로운 듯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나로 만족하면 안 됩니까?”
그래서 그는 저도 모르게 또 애원하고 말았다. 숨결에 애정을 담고, 눈빛에 열망을 담아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 그리하면 흔들릴 것을 알고서.
“앗.”
생각대로 세벨리아는 어쩔 줄 몰라 했다. 조금씩 높아져 가는 그녀의 체온을 느끼며 디하트는 그녀에게 바짝 다가가 앉았다.
“디, 디하트.”
“당신이 원하는 거라면 무엇이든 줄게요. 그러니 다른 이를 부러워하지 말아요, 벨라. 응?”
어느새 손목에 입술을 붙인 디하트가 이를 드러냈다. 애교 부리는 강아지처럼 그는 세벨리아의 눈치를 보며 그녀의 살갗에 작은 흔적을 남겼다.
고른 이가 살갗을 살짝 물었다 떨어지는 감각에 세벨리아는 온몸이 간지러웠다.
“뭐 하는 거예요? 그만해요.”
빠르게 속삭이자 디하트가 투정을 부렸다.
“싫어요.”
“왜 떼를 써요?”
“약속해 줘요. 그럼 그만할게요.”
“디하트!”
“…….”
“곧 하인이 디저트를 가져올 거라고요.”
발갛게 달아오른 귓불을 숨기며 세벨리아가 시선을 피했다. 디하트는 번뜩이는 눈으로 그녀의 움직임을 하나하나 쫓다 하는 수 없이 고개를 들어 거리를 벌렸다.
“억지 부려서 미안해요.”
아쉬움 가득한 숨을 내뱉으며 그가 말했다. 저 하고 싶은 대로 다 해 놓고 한다는 말이 참 가관이었다. 세벨리아는 붉은 반점이 점점이 찍힌 손목을 재빨리 소매 안으로 밀어 넣고 그를 흘겨보았다.
하지만 디하트는 이미 멀쩡한 낯을 회복했다. 멀끔한 모습으로 하인이 가져다주는 디저트를 한 입 먹는 모습에 세벨리아는 기가 찼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그 모습이 귀여워 보이는 자신에게 조금 환멸을 느꼈다.
“에휴.”
“왜 그래요?”
“아니에요.”
세벨리아는 제 몫으로 나온 셔벗을 한 스푼 떠먹으며 한숨을 삼켰다. 디하트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눈을 깜빡이다 고개를 갸웃했다.
다 먹고 나면 후원 산책이라도 할까, 세벨리아가 가만히 생각을 이어 나가는데 때마침 일레이가 찾아왔다.
“식사 시간을 방해해서 죄송합니다. 급한 일인지라 무례를 범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니에요. 무슨 일이죠?”
“공작님께 급한 전갈이 도착했습니다.”
정말 급한 전갈은 맞나 보다. 초조한 표정을 한 일레이는 디하트에게 귓속말을 했다. 심각한 내용인 듯, 디하트는 미간을 구겼다.
“벨라, 미안하지만 먼저 일어나 봐도 되겠습니까?”
“그럼요.”
그렇지 않아도 식사를 끝내려던 참이었다. 디하트는 한 번 더 양해를 구한 뒤 일레이와 함께 자리를 떴다. 그리고 세벨리아는 혼자 정찬실을 나오다 갑자기 든 의문에 걸음을 멈췄다.
‘음?’
어쩐지 두 사람을 보내면서도 뭔가 이상하다 했더니. 세벨리아는 방금 전 제 눈치를 보며 슬쩍 디하트에게만 전갈에 대해 말하던 일레이를 떠올렸다.
‘평소에는 내가 있어도 아무렇지 않게 기밀 사항들을 떠벌리던 사람인데.’
그런데 오늘은 어째선지 제 눈치를 보면서까지 입 한 번 벙긋하지 않았다. 세벨리아는 미묘한 위화감에 입술을 꾹 물었다가 다시 걸음을 옮겼다. 갑자기 이유 모를 서운함이 밀려들었기 때문이다.
‘아냐. 서운할 게 뭐 있다고. 정말로 심각한 일이었나 보지.’
분명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을 거라며 세벨리아는 스스로를 다독였다. 그리고 재빨리 후원으로 향하는 문을 열어젖혔다.
잡생각을 떨치는 데에는 텃밭 일구기가 최고였다.
“아, 꽃대 세우기로 했는데 잊고 있었네.”
텃밭이라기엔 너무 호화스러운 풍경을 둘러보며 세벨리아가 혼잣말했다. 키우기 쉬우면서도 보기 좋은 약초들을 선별해 심은 덕에 텃밭은 겉으로 보기에는 꽃밭이나 다름없었다. 실제로 그렇기도 했고.
“흠, 어쩔까.”
꽃대를 세우는 데 필요한 재료들을 사려면 마를렌 지구에 들러야 했다. 세벨리아는 허리를 세우고 하늘을 보며 시간을 가늠했다. 다른 곳은 몰라도 유동 인구가 많은 마를렌 지구는 한 번 갔다 오는 데 꽤 많은 시간과 기력을 소모해야 했다.
‘내일 해야지.’
빠르게 포기하고 장갑을 벗으려 하는데 발치에서 무언가가 살랑였다. 고개를 내려 살펴보니 마야였다.
“마야, 무슨 일이니?”
살갑게 묻자 마야는 그르릉 소리를 내며 텃밭 위에 나동그라졌다. 회색 털 위로 흙먼지가 잔뜩 피어오르는 모습에 나직한 탄성이 터졌으나 고양이는 알 바 아니라는 듯 뻔뻔한 얼굴로 땅에 등을 비볐다.
“아…….”
장탄식이 터졌다. 이미 늦은 거, 세벨리아는 천천히 챙 모자를 벗고 도구를 정리한 뒤 마야를 안아 들었다. 안락한 품이 마음에 들었는지 긴 꼬리가 팔 위에서 살랑였다.
“클로드 씨의 고충을 이렇게 느낄 줄이야…….”
이런 어리광쟁이 캐트시도 세상에 다시 없을 거라며 세벨리아는 고개를 내저었다. 그래도 클로드 씨의 말을 들어 보면 서프레디는 자기 영역이라 혼자서도 잘 지냈다고 하던데, 수도로 온 이후에는 세상에 다시 없을 어린애처럼 굴었다.
심란한 마음을 알아차렸는지 마야가 팔 안쪽에 이마를 쿵 하고 받으며 작게 울었다. 세벨리아는 금세 사르르 녹은 표정이 되어 마야를 고쳐 안았다. 그 순간 품에서 뭔가 반짝거렸다.
기시감이 뇌리를 스쳤다.
“설마.”
목 뒤가 섬찟해지며 불안함이 급습했다. 세벨리아는 별관 소파에 마야를 눕히고 풍성한 털을 자세히 살폈다. 아니나 다를까, 앞다리와 가슴팍이 이어지는 부근에 반짝이는 뭔가가 얽혀 있었다.
햇살 아래 반짝이는 팔찌는 저택에서 처음 보는 물건이었다.
“이건 도대체 어디서 난 거야.”
마야의 나쁜 버릇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수도 저택은 화려하고 값비싼 물건들의 천국이었고, 그 말인즉슨 마야의 목표물이 될 만한 물건들이 지천으로 널려 있다는 뜻이었다.
‘저번에는 황태자 전하의 브로치를 탐냈지.’
소파 뒤에서 꿈실거리다 단박에 날아오른 마야 때문에 얼마나 놀랐던지. 샤테이안은 괜찮다며 한바탕 웃고 떠났으나 수치스러움은 제 몫이었다.
“이번엔 도대체 누구 거야, 응? 어디서 가져왔어, 마야.”
타박하듯 혼잣말을 하는데 마야는 제 속도 모르고 앞발을 막 휘두르더니 자리에서 펄떡 일어나 도망가 버렸다.
“아아…….”
고개를 푹 숙이며 한숨을 내쉬던 세벨리아는 어쩔 수 없다는 듯 팔찌를 유심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세공의 정도와 만듦새에 따라 주인이 될 만한 사람들을 추려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싸구려나 모조품은 아니야.’
그것만은 확실했다.
백금으로 만든 팔찌는 이음새가 정교하고 광택이 부드러웠다. 겉보기에는 두꺼운 백금 두 줄을 꼬아 만든 듯한 팔찌였는데 자세히 보니 줄 하나당 가느다란 금사 수십 줄을 엮어 만든 것이었다. 털실보다 더 가느다란 금사 사이에는 심지어 모래알만 한 보석들이 박혀 있어 각도에 따라 영롱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엄청난 정성에 세벨리아는 혀를 내둘렀다. 팔찌 하나를 만드는 데 얼마나 많은 노력과 시간이 들어간 건지 짐작도 되지 않았다.
그렇게 만들어진 두 가닥의 굵은 백금 줄은 8자 모양을 만들며 서로 교차했는데, 사이사이 공백을 녹빛 푸르른 보석이 채웠다. 방향에 따라 짙은 푸른색과 산뜻한 녹색을 오가는 보석이었다. 가장자리에는 투명한 보석을 꽃잎처럼 둘렀는데 그것조차 정교한 세공이 들어가 있어 감탄이 나올 지경이었다.
만든 이의 이름은 새겨져 있지 않았으나 어느 모로 보나 명망 있는 장인의 솜씨임이 틀림없었다.
“으음.”
자세히 봐야만 알 수 있는 정교한 세공과 대비되는 단순하고 고급스러운 디자인이라. 어째 들여다보면 볼수록 아리송해졌다. 보통 이런 건 대대로 물려주기 위해 일부러 유행을 타지 않도록 만든 물건일 가능성이 높았으니까.
하지만 오래된 물건이라기엔 장식된 보석의 커팅이 최신식이었다.
‘이런 걸 도대체 어디서 가져온 거지?’
마야의 특출남에 대해 깊이 고민하던 세벨리아는 돌연 떠오르는 생각에 탄성을 질렀다.
“아, 설마.”
로잘린이 저택에 머무르기 시작한 뒤 마야는 줄곧 그녀의 방에서 시간을 보냈다. 그녀와 함께 따라온 새 가구나 기타 물건들이 마야의 흥미를 돋웠기 때문이다.
‘그럼 디하트가 오늘 로잘린에게 준 선물일 수도 있겠네.’
하긴 과하지 않으면서도 우아한 디자인은 북부 사람들의 취향이기도 했다. 미스터리를 어느 정도 해결한 세벨리아는 다리에 힘을 주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로잘린에게 팔찌를 돌려주러 갈 계획이었다.
하지만 사건은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어라, 디하트? 여기서 뭐 하고 있어요?”
“벨라.”
로잘린의 방에서 나오는 디하트를 본 세벨리아의 눈이 커다래졌다. 디하트도 여기서 그녀를 마주칠 줄 몰랐는지 조금 놀란 모양새였다.
“잠깐 이야기 좀 나누고 나오는 길입니다. 북부로 거취를 옮기는 건에 대해서요.”
“아. 그 이야기군요.”
내가 이야기해도 괜찮았는데. 세벨리아는 처음 저택에 온 날 자신에게 중재를 부탁했던 로잘린을 떠올리며 흠, 하고 콧소리를 냈다. 그래도 다행이었다. 직접 마주할 용기가 생긴 모양이니까.
“당신은 무슨 일로 왔어요?”
디하트의 물음에 세벨리아는 자신의 방문 목적을 상기했다. 그녀는 들고 온 팔찌를 보여 주며 말했다.
“마야가 로잘린 양의 물건을 훔친 것 같아서요. 돌려주러 왔어요. 이거, 당신이 선물로 산 게 맞죠?”
그때, 문이 열리고 로잘린이 틈새로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