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fter I Died, My Husband Went Mad RAW novel - Chapter (157)
내가 죽고 남편이 미쳤다 (157)화(157/171)
외전 1-5
“무슨 일이에요?”
“아, 미안해요. 로잘린. 우리끼리 이야기하는 데 신경이 팔려서.”
세벨리아는 머쓱한 얼굴로 팔찌를 돌려주러 왔다고 했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로잘린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
“팔찌요?”
“어라, 로잘린 양의 것이 아닌가요?”
로잘린은 팔찌가 무척 예쁘기는 하지만 그런 물건은 처음 본다고 말했다.
“마야가 훔쳐 간 걸로 생각되는 게 있기는 한데, 팔찌는 아니에요. 지난번에 친구가 빌려준 책에 꽂혀 있던 금박 책갈피가 없어졌거든요.”
이제 상황을 모르게 된 건 세벨리아였다.
“그럼 도대체 어디서 난 거지…….”
이렇게 값진 물건이라면 분명 대귀족의 소유일 텐데. 세벨리아는 머리가 복잡해져 그대로 터덜터덜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그래서 그녀는 디하트가 창백한 얼굴로 내내 팔찌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는 알아차리지 못했다.
다음 날 날이 밝자 로잘린이 문을 두드렸다.
“벨라, 일어났어요?”
밤새 잠을 못 이루던 세벨리아는 그녀를 반갑게 맞이했다.
“아, 로잘린.”
“세상에, 괜찮아요? 눈 밑이 새카매요.”
“아……. 새벽까지 잠을 못 잤거든요.”
로잘린이 알 만하다는 낯을 했다. 세벨리아는 밤늦게까지 기사들이며 사용인들을 붙잡고 팔찌에 대해 물었다고 들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팔찌의 주인은커녕 그 물건에 대해 아는 이조차 없었다.
이제는 정말 다른 귀족의 저택을 털어 왔을지도 모른다는 정황을 의심해야 했다.
세벨리아가 눈가를 문지르며 말했다.
“으음, 그래서 아침부터 무슨 일이에요?”
“마야에 대해 여쭤볼 게 있어서요.”
아, 이런. 조금이라도 다른 일에 집중할 수 있을까 했더니 도로 제자리였다. 세벨리아는 심란한 티를 내지 않으려 애쓰며 로잘린의 말을 주의 깊게 들었다.
“내일 점심에 책을 빌려준 친구가 잠깐 들러서 책을 받아 가겠다네요. 그래서 말인데 마야가 평소에 물건들을 어디에 가져다 놓는지 아시나요?”
예정보다 이른 방문인지 로잘린은 살짝 초조해 보였다. 세벨리아는 기꺼이 그녀의 일을 돕고자 나섰다. 사고뭉치의 뒷수습이라는 건 동일했지만 어찌 되었든 쉴 새 없이 몸을 움직이다 보면 답답한 마음이 조금은 나아지지 않을까 해서였다.
그러다 단서가 될 만한 걸 발견하면 더 좋고.
세벨리아는 로잘린과 헤어져 별관을 뒤지며 생각을 이어 나갔다. 마야는 저택 여러 군데에 자기만의 둥지를 꾸려 놓는 걸 좋아했는데 주로 바람이 잘 통하는 구석진 곳을 선호했다.
“여기는 없고…….”
다만 높이에 있어서는 줏대가 없는지라 어쩔 땐 아름드리나무의 옹이 속에 둥지를 꾸릴 때도 있어 각별한 주의가 필요했다. 그렇게 한참을 뒤져 마야가 모은 것으로 발견되는 잡동사니들을 발견했으나 하녀들이 잃어버렸을 게 분명한 골무나 털실 공 몇 개만 있었을 뿐 별다른 소득은 없었다.
“으음.”
허리춤에 손을 얹은 채 세벨리아는 고민했다. 여기 말고 마야가 둥지를 꾸렸을 만한 곳이 어디일까.
‘저택 내부는 로잘린이 맡기로 했고, 외부는 하인들이 훑는다고 했으니…….’
심각한 얼굴의 세벨리아는 한참 동안 그 자리에 머물러 있다가 용감하게 발걸음을 내디뎠다.
그녀가 향하는 곳은 공사가 거의 끝난 작은 호숫가였다.
작은 호수는 장미 덤불로 감싸인 별관에서 조금 더 걸으면 위치한 곳으로 본래 인버네스 저택 뒤 자그마한 저택이 있던 자리였다. 인버네스 저택의 위용 덕에 볕이 들지 않는 터라 집주인이 내놓은 것을 디하트가 사들여 바로 밀어 버리고 땅을 파 물을 채웠다.
세벨리아는 그 대담하다 못해 무지막지한 박력에 놀랐으나 아담한 저택이 있던 자리는 어느새 물이 채워진 지 오래였다. 그래서 별다른 지적도 하지 못한 채 그러려니 넘겼고, 디하트는 기세를 몰아 주변 경관을 꾸민다며 제국 이곳저곳에서 아름답기로 유명한 조경수들을 사다 나르기 시작했다.
‘이제 거의 끝나 간다고 했으니 가도 괜찮겠지.’
도대체 얼마나 대단한 호숫가를 만들고 싶기에 이리도 까다롭게 구는지 모르겠지만 지금 당장 중요한 건 마야가 훔쳐 간 물건을 되찾아 오는 일이었다.
그렇게 별관에서 이어지는 오솔길을 따라 호숫가에 도착했을 무렵, 세벨리아는 그곳에 선객이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어?”
선객의 정체는 무려 디하트였다. 작은 배를 띄울 수 있는 호숫가 가장자리, 분홍색 수양버들 사이에 우두커니 선 그는 가만히 나무둥치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모습이 매우 진지하고 심각해 보여 세벨리아는 쉽게 그의 이름을 부를 수 없었다. 대신 그가 집중할 수 있도록 소리 없이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겼다.
자박.
‘앗.’
조심한다고 했는데 나뭇가지를 밟아 버렸다. 작은 소리가 어찌나 크게 들리던지.
심장이 뚝 떨어져 내리는 줄 알았으나 다행히도 디하트는 알아차리지 못한 것 같았다. 그는 아까 전부터 유심히 살펴보던 나무 쪽으로 다가가고 있었다.
‘거기에 뭐가 있나?’
호기심이 인 세벨리아가 뒤를 쫓았다. 살며시 다가가 훔쳐보자 디하트는 나무 앞에 무릎 꿇어앉고서 그 아래 난 구멍을 보고 있었다. 세벨리아는 소리 없는 탄식을 흘렸다.
어둠 속에서도 반짝이는 보석들이 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마야의 비밀 둥지 중 하나가 바로 여기였구나.
“디하트.”
대강 사태를 파악한 세벨리아는 디하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효과는 굉장했다. 그녀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한 디하트는 화들짝 놀라 몸을 일으켰다.
“벨라!”
팔을 꺾기 위해 내뻗은 손이 자연스럽게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물론 세벨리아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굉장한 태세 전환이었다.
“여기는 어쩐 일이에요.”
“당신이야말로 여긴 왜 왔어요? 공사가 끝나기 전까지는 얼씬도 하지 말라고 했으면서.”
나무둥치 밑의 구멍에 흘긋 시선을 주며 세벨리아가 물었다. 디하트는 한순간 낭패스러운 눈을 했으나 금세 안면을 바꾸고 능청스레 답했다.
“로잘린이 내게 책갈피 찾는 걸 도와달라 했어요. 그 먼지 고양이가 이 주위를 돌아다니던 걸 기억해서 한 번 와 봤죠.”
어쩐지 꽃잎을 묻혀 오는 경우가 많더라니.
가끔씩 옆집까지 침범해서 한바탕 놀다 들어오는 마야의 담대한 성격을 떠올리며 세벨리아는 그의 품에서 벗어났다. 사정은 대강 알겠고, 찾던 물건이 이곳에 있는지 확인할 차례였다. 그녀가 무릎을 꿇으려 하자 디하트가 질색하며 그녀를 말렸다.
“내가 할게요.”
제 옷은 이미 더럽혀졌으니 상관없다며 디하트가 땅에 무릎을 대고 허리를 숙였다. 나무둥치 밑의 구멍은 땅굴처럼 비좁은 데다 뿌리가 얽혀 있어 거의 엎드리다시피 해야 했다.
“윽.”
긴 사투 끝에 디하트는 마야의 보물 창고를 터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찾던 물건 대신 그의 손가락 끝에 딸려 나온 건…….
“반지?”
녹빛 푸른 보석을 중심으로 테두리에 투명한 보석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는 백금 반지는 누가 봐도 일전에 발견한 팔찌와 한 쌍이었다.
“세트로 훔친 거야?”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서일까. 속마음이 제멋대로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디하트가 이쪽을 놀란 듯 바라보는 게 느껴졌다. 평소였다면 뭐라고 수습이라도 할 텐데 이젠 그럴 여력도 없었다.
장인에게 주문 제작해 넣는 액세서리는 보통 팔찌, 귀걸이, 목걸이, 반지로 한 세트가 이루어진다. 그런데 그중에서 두 개나 집에서 발견되다니.
그 말인즉슨, 마야가 훔친 게 더 남아 있을 수도 있다는 말이었다.
‘이걸 어째.’
세벨리아는 허망한 얼굴로 한참이나 디하트의 손바닥 위에 놓인 반지를 바라보았다. 노려보는 눈빛이 어찌나 살벌한지 디하트가 눈치를 볼 정도였다.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눈치를 보던 디하트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벨라, 혹시나 해서 물어보는 겁니다만…….”
“네에…? 네?”
“이런 디자인은 어떻게 생각해요? 당신 마음에 듭니까?”
디하트가 머뭇거리며 한 말에 세벨리아는 느리게 눈을 깜빡였다. 순간적으로 그가 무슨 말을 한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아서였다. 그러나 곧 그가 반지를 슬그머니 내밀자 그가 한 말이 ‘이 반지가 마음에 드느냐’는 것임을 깨달았다.
“갑자기 그건 왜 물어봐요?”
“못 물어볼 일도 아니잖아요.”
세벨리아가 눈썹을 치켜올리자 디하트가 변명하듯 내뱉었다.
“슬슬 계절이 바뀌니 옷을 다시 맞출 때가 되지 않습니까. 그 김에 장신구들도 옷에 맞춰 주문을 넣으려 했죠.”
세벨리아는 바로 그의 의도를 직감했다.
‘여기서 마음에 든다고 하면 비슷한 디자인으로 가져오겠다는 건가.’
훔친 물건과 동일한 걸 차고 다니라고?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아뇨. 전혀요. 팔찌며 반지며 어느 것 하나 제 취향이 아니에요.”
세벨리아는 일부러 정색하고 목소리를 굳혔다. 만일의 사태를 막으려면 여기서 확실하게 쐐기를 박아야 했다.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만 가져다주겠다며 황실보다 더 아름다운 호수를 만들고자 뒷집을 사들여 단번에 저택을 허문 남자다. 그런 사람이 고양이가 훔쳐 온 물건과 똑같은, 아니 어쩌면 그것을 닮았으나 훨씬 더 고급스러운 물건을 들고 오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었다.
‘생각만 해도 무섭네.’
혹여나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세벨리아는 지금 여기서 단단히 주의를 줄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디하트는 제게 몇 번 더 물어보기는커녕 창백한 얼굴로 입술을 떨었다.
그에 세벨리아는 놀라 그의 팔을 붙들었다.
“디하트, 왜 그래요. 혹시 몸이 안 좋은 거예요?”
부작용이 심한 신경 안정제의 복용을 끊은 뒤 그는 간헐적으로 발작이나 공황 장애를 일으키고는 했다. 그래도 최근 들어 좋아졌다고 느꼈는데 또다시 시작되다니. 세벨리아는 초조한 마음이 들어 하인을 부르기 위해 환영을 불러내려 했다.
“아뇨, 괜찮습니다.”
하지만 디하트가 다 꺼진 목소리로 그녀를 만류했다. 제 팔목을 붙든 그녀의 손 위에 손을 겹치고, 그는 슬픈 한숨을 내쉬었다.
그에 세벨리아가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설마 이것과 같은 물건을 가져오려 했다는 말은 하지 말아요.”
“혹시나 해서 물어봤습니다. 쉽게 볼 수 없는 모양이지 않습니까. 그만큼 독특한 물건이니, 그냥 궁금해서…….”
“됐어요. 전 요새 유행하는 스타일이 더 좋으니 굳이 신경 쓸 필요 없어요.”
“그렇습니까.”
고개를 끄덕이는 그의 모습에서 어째선지 처량한 분위기가 흘렀지만 세벨리아는 마음을 굳게 먹기로 다짐했다. 여기서 마음이 흔들려 그에게 넘어간다면 돌이킬 수 없는 추문이 생길 수도 있으니까.
“이건 제가 가지고 있을게요.”
아예 참고조차 하지 못하게 해야지. 세벨리아는 디하트가 꼭 쥐고 있던 반지를 가져다 주머니 속에 홀랑 넣었다. 디하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으나 도토리를 빼앗긴 다람쥐마냥 허망한 얼굴로 눈을 깜빡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