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fter I Died, My Husband Went Mad RAW novel - Chapter (158)
내가 죽고 남편이 미쳤다 (158)화(158/171)
외전 1-6
“마음대로 해요.”
툴툴거리며 돌아서는 모습이 마음 상한 아이 같아 세벨리아는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내가 말을 너무 차갑게 했나. 그녀는 주머니 안의 반지를 꼼지락거리다 재빨리 디하트의 옆에 붙었다.
“옷은 같이 맞추는 거죠?”
무슨 소리냐는 듯 눈을 맞춰 오던 디하트의 입가에 가느다란 미소가 서렸다.
“나랑 세트로 맞춰도 되겠어요?”
“그게 뭐가 어때서요.”
“내 취향 모르잖아요.”
세벨리아는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반사적으로 아니라고 외치려다 그의 말이 사실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두 사람의 관계는 역경을 넘어 순풍에 돛단배처럼 순조롭게 흘러가고 있었으나, 한때 부부였던 사이치고는 아직도 미지의 영역으로 남은 부분이 너무나 많았다.
세벨리아는 저도 모르게 시무룩한 얼굴이 되고 말았다.
“그건…….”
“핀잔주려던 건 아니에요. 당신 취향을 모르는 건 나도 마찬가지니까.”
쓴웃음을 지은 디하트가 그녀의 손에 깍지를 끼며 말했다. 살짝 고개를 숙여 시선을 맞춰 온 그가 사르르 눈매를 접으며 속삭였다.
“실은 모르는 부분이 있어서 더 좋아요.”
“…….”
“함께할 날은 많고, 그만큼 당신을 알아갈 일도 많이 남은 거니까.”
깍지 낀 손등 위에 짧은 입맞춤을 남긴 남자가 해사하게 웃었다. 분홍빛 등나무꽃 아래,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미소 짓는 남자는 너무나 사랑스러워 세벨리아는 그가 제게 주기로 한 보석함에 대해서는 까맣게 잊어버렸다.
다음 날, 팔찌의 주인을 찾는 전단지를 붙여야 하나 고민하던 도중 로잘린의 친구라는 도르엔 영애가 저택을 방문했다. 세벨리아는 일단 눈앞의 문제에 집중하기로 했다.
그리고 다행히도 도르엔 영애는 넓은 마음씨의 소유자였다.
“저희 집 말썽쟁이가 벌인 일을 이해해 주셔서 감사해요.”
“괜찮아요. 아기 고양이인걸요!”
녹색 머리칼에 푸른 눈동자를 지닌 도르엔 영애는 씩씩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그녀는 책갈피를 잃어버렸다는 로잘린과 자신의 사과를 선뜻 받아 주는 걸로도 모자라 눈치 보는 마야를 덥석 무릎에 올려 놀아 주기까지 했다.
“원래 아기들은 장난치는 게 일과죠. 그리 중요한 물건도 아니니 굳이 힘들여 찾으실 필요 없어요.”
아기라기엔 너무 크지 않나. 도르엔의 손길 아래 녹아내리는 마야를 흘끗 건너다본 세벨리아가 넌지시 말했다.
“하지만 오래 쓰시던 거라고 들었는데요. 정말로 괜찮으시겠어요? 원하신다면 같은 물건으로 다시 구해다 드릴게요.”
“아뇨! 정말 괜찮아요. 책갈피라면 집에 더 있는걸요. 오라버니가 여행 선물이라며 던지고 간 거라서 별로 애착이 가지도 않아요. 책에 끼워 둔 것도 잊어버리고 빌려줄 정도면 어느 정도인지 아시겠죠? 게다가 이렇게 귀여운 마야가 장난감으로 써 준다니. 오빠에겐 영광일 거예요.”
예법은 한참이나 부족했으나 그만큼 활발한 영애였다. 그렇지 않아도 귀족들과의 사교에 약한 세벨리아는 그녀의 무례함이 편하게 느껴졌다.
적어도 언제 말꼬리를 잡힐까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으니까.
두 사람은 책을 가지러 간 로잘린이 돌아올 동안 즐겁게 이야기를 나눴다.
“책갈피 잃어버려서 미안해, 도르엔. 이건 사과의 선물이야.”
어쩐지 늦게 돌아온다 했더니. 모습을 나타낸 로잘린은 책과 함께 자그마한 주머니를 함께 건넸다.
“이러지 않아도 된다니까!”
도르엔은 한사코 거절했으나 로잘린의 거듭된 강요에 하는 수 없이 주머니를 풀었다. 곧 응접실에 새 지저귀는 소리처럼 듣기 좋은 웃음소리가 번져 나갔다.
“뭐야, 내가 갖고 싶어 하던 거네. 기억해 준 거야?”
“당연하지…….”
로잘린은 쑥스러운 듯 머리카락을 연신 쓸어 넘겼다. 그러자 도르엔이 한 번 더 크게 웃더니 이렇게 말했다.
“다음번엔 더 비싼 걸 빌려줘야겠네. 그럼 더 대단한 걸로 돌려줄 거 아냐.”
대놓고 물욕 짙은 언행에 세벨리아는 살짝 당황했다. 그녀의 그런 기색을 느낀 건지 로잘린이 재빨리 도르엔의 팔짱을 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슨 그런 말을 해, 도르엔. 가자. 내 방 구경시켜 줄게.”
“좋아! 네 방으로 가는 동안 저택 구경해도 될까?”
기대감 어린 목소리에 세벨리아는 자신도 모르게 저택 구경을 제안했다. 내심 책갈피를 잃어버린 것에 대해 신경이 쓰였기 때문이리라.
“시간이 된다면 제가 안내해 드릴게요.”
“어? 그래도 되나요?”
미끼를 문 물고기처럼 도르엔이 재빨리 몸을 돌려 물었다. 세벨리아는 그녀의 기세에 놀랐으나 곧 그럴 만하다는 걸 깨달았다.
인버네스 저택은 귀족들에게 신비의 영역이나 마찬가지였다. 공작이 수도에 머문 뒤로 초대받은 자가 황실 인척을 빼면 아무도 없다는 점에서 인버네스 저택의 신비는 나날이 더해져만 갔다.
그런데 저택의 주인이 직접 집 안내를 해 주겠다니, 기뻐할 만하지. 그녀의 추측대로 도르엔의 푸른 눈동자는 기쁨에 반짝였다.
“구석구석 다 둘러봐도 되죠? 사실 현관에 들어서면서부터 궁금한 걸 억지로 참았거든요.”
뻔뻔하고 당찬 요구에 세벨리아는 어처구니가 없어 웃었다. 어찌나 생기발랄한 영애인지.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그녀의 활기찬 기운이 전해졌다.
그렇게 세벨리아는 도르엔, 로잘린과 함께 저택 구석구석을 돌며 옛 인버네스 공작이 계획한 초기 구역과 새로 단장한 구역이 어떻게 다른지 설명하고 후원과 호숫가까지 한 바퀴 돈 뒤에 다시 저택으로 돌아왔다.
가벼운 산책일 뿐이었는데 웬일로 집사가 그들을 마중 나왔다.
“주인님, 공작님께서 방금 전 귀가하셨습니다.”
“디하트가 돌아왔어요?”
“예. 집무실에서 기다리고 계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금은 손님이 계신데…….”
“로잘린 아가씨의 손님분을 말씀하시는 거라면 함께 오셔도 좋다고 하셨습니다.”
집사의 말에 세벨리아는 의향을 물어보듯 도르엔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딱히 물어볼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 도르엔은 거의 감격에 젖은 눈치였다.
“빨리 가요!”
“그래요.”
똑똑. 노크를 하고 들어가자 디하트가 편한 차림새로 세 사람을 맞았다.
“벨라, 로잘린. 그리고…….”
“세리카 가문의 도르엔 영애예요.”
세벨리아가 소개하자 디하트는 손수 몸을 일으켜 도르엔에게 인사를 건넸다.
“반갑습니다, 도르엔 영애. 디하트 인버네스입니다.”
그 모습이 물 흐르듯 자연스러워 마치 처음부터 그녀의 정체를 알고 있던 사람 같았다.
“로잘린과 친하게 지내 줘서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었습니다.”
“만나게 되어 영광이에요, 공작님!”
친절한 말에 불타오른 도르엔은 순식간에 디하트와 거리를 좁혔다. 디하트의 손을 붙잡은 그녀는 거의 품에 안기다시피 한 상태로 헤헤, 웃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 거리를 벌렸다.
“앗, 죄송해요. 너무 기쁜 나머지 저도 모르게 실례를 범했네요. 오빠가 너는 항상 생각보다 몸이 먼저 나가는 게 문제라고 했는데.”
눈 깜짝할 사이의 일이라 세벨리아는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이해하는 데만도 수 분이 걸렸다. 그리고 그녀가 상황을 파악한 뒤에는 이미 뭐라고 할 만한 분위기도 아니었다.
디하트도 살짝 혀만 찼을 뿐, 딱히 그녀의 무례를 지적하지는 않았다. 동생만 아니었어도 어쩌고 하는 말이 들린 것 같으나 제대로 들린 게 아니었기에 세벨리아는 자신이 잘못 들었다고 생각했다.
한편, 도르엔은 디하트를 향해 연신 죄송하다 외쳤다.
“정말 죄송해요.”
말리지 않으면 하루 종일 그러고 있을 태세였다. 로잘린이 겨우 그녀를 뜯어말리자 도르엔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뺨을 붉혔다.
디하트는 그들에게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은 한숨을 쉬었다.
“일단 다들 편히 앉아요.”
그 말에 도르엔은 폴짝거리며 디하트의 뒤를 따라가더니 자연스럽게 그의 곁에 앉았다. 나머지 두 사람은 눈을 깜빡거리다 남은 두 자리에 앉았다.
세벨리아가 그녀의 지정석에 앉았을 때였다.
“담요 덮어요.”
도대체 어디서 났는지 모를 담요를 가져다주며 디하트가 말했다. 부드러운 담요가 제 무릎을 감싸는 걸 느끼며 세벨리아는 맞은편 대각선에 시선을 주었다.
도르엔의 눈은 여전히 불타오르고 있었다. 동경하던 사람을 만났다는 것에 꽤나 흥분했는지, 주근깨 박힌 뺨은 아직도 식을 줄을 몰랐다.
그 뒤 디하트는 이번에 새로 들여온 몸에 좋은 향초라며 촛불을 켰다가 세벨리아가 기침하자 다시 끄고서는 창문을 여는 등 부산스럽게 굴다 결국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그에게 말 붙일 순간만을 기다렸던 도르엔은 즉각 사격을 개시했다.
“세상에, 공작님. 이렇게 가까이서 뵙게 될 줄은 몰랐어요. 아, 이런 말은 좀 부담스러우시죠? 죄송해요. 저희 가족이 공작님을 정말 경애하거든요.”
북부 공작을 경애하는 중앙 귀족이라니. 희한한 단어들의 조합에 세벨리아의 안색을 살피던 디하트는 눈썹을 치켜올렸다.
“그렇습니까.”
“네!”
두 손을 꼭 붙잡고 열변을 표하는 도르엔의 기세는 엄청났다. 그렇게 혼자서 디하트에 대한 존경심을 털어놓기를 한참. 갑자기 눈을 번뜩인 그녀가 탁자 위에 아무렇게나 놓여 있던 책자를 집어 들었다.
“타르옌 상단에서 운영하는 귀금속 가게의 책자네요! 액세서리를 맞추시려는 건가요?”
“슬슬 계절이 바뀔 때니까요.”
상냥하게 들리는 목소리에는 가까운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짜증이 섞여 있었다. 세벨리아는 조금 놀라 그를 빤히 응시했다. 곁에 있던 로잘린도 마찬가지인 듯싶었다.
“그렇죠. 계절에 따라 어울리는 보석들도 다 다르니까요. 어쩜 공작님께서는 이런 쪽에도 식견이 높으신지. 몸치장을 한심하게 여기는 저희 오빠와는 정말 천지 차이시네요.”
하지만 도르엔은 눈치조차 채지 못한 것 같았다. 어처구니가 없어서일까. 그녀를 살짝 흘기고 자신을 돌아본 디하트의 표정이 살짝 풀리는 게 보였다.
“식견이 높다는 칭찬을 받을 정도는 아닙니다.”
“그런데 타르옌은 새 손님을 잘 받지 않기로 유명한데, 벌써 안면을 트시다니 대단해요.”
“아뇨, 말씀대로 아직 거래를 뚫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말한 디하트는 살짝 고개를 틀어 이쪽을 훑었다. 하지만 자신을 본 거라고 확신할 수는 없었다. 왜인지 주먹을 꽉 쥔 로잘린이 그를 뚫어 버릴 듯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