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fter I Died, My Husband Went Mad RAW novel - Chapter (16)
내가 죽고 남편이 미쳤다 (16)화(16/171)
“취향 한 번.”
인상을 찌푸린 디하트는 손끝으로 목걸이를 튕겼다. 수수하기 짝이 없는 보석에 이 미치도록 신실한 디자인이라니.
“본인이 저주받은 공작가에 시집온 건 자각하고 있는 건지…….”
쯧, 혀를 찬 디하트는 이윽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 라이언이 본다면 놀랄 정도로 풍부하고 빠른 감정 변화였다.
곧 그는 몹시 싫은 일을 억지로 한다는 듯 상자에서 목걸이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느릿느릿한 손놀림으로 목걸이를 차고 셔츠 안쪽으로 보이지 않게 밀어 넣었다.
마치 양파를 싫어하는 아이가 좋아하는 선생님을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억지로 양파를 먹는 듯한 모양새였다.
“…어울리는 건가.”
거울 안을 지그시 노려보던 디하트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세벨리아와 자신은 취향이 맞지 않았다. 입맛부터 안목까지 정반대임이 틀림없었다. 하지만 굳이 내미는 선물을 거절할 정도로 그녀가 싫은 건 아니었다.
“……흠.”
디하트는 테이블을 몇 번 두드리더니 이내 자리에서 일어났다. 중앙 출신이라 그런지, 그녀는 온기가 없으면 종종 잠을 설치고는 했다.
* * *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디하트는 의외로 그녀가 자신의 셔츠 안을 볼 일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빌어먹을.”
때마침 날이 조금씩 더워졌다. 라이언은 그에게 뱃놀이를 추천했다.
디하트는 잠시 고민했다. 그러나 곧 뱃놀이 따위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온몸을 얼어붙게 하는 사건이 터졌다.
“……그게 무슨 말인지 다시 한번 설명해 봐.”
“내부에 첩자가 있는 게 틀림없습니다.”
머리를 조아린 사내가 분통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최근 접선한 인물 중 대다수가 상해를 입거나 역으로 포섭당했습니다. 정보가 새어 나갔다고밖에는 볼 수 없습니다.”
디하트는 짧게 웃고 머리를 쓸어 넘겼다.
“일은 중단해, 그리고…… 어떤 놈인지 확실히 찾아와.”
그의 금안이 섬뜩한 빛으로 물들었다.
* * *
세벨리아는 요사이 저택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 것을 느꼈다. 그러나 섣불리 입 밖으로 그 말을 내뱉지는 않았다.
“뱃놀이는 못 가게 됐어요. 미안하군요.”
뒤숭숭한 분위기의 중심에 디하트가 있다는 걸 어렴풋이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그는 저번부터 갑자기 완벽한 성장 차림을 하기 시작했다. 세벨리아는 그 모습을 낯설게 느끼면서도 쉽게 시선을 빼앗겼다. 바로 지금처럼.
“부인, 제 말 듣고 있습니까?”
“아, 네.”
정신을 차린 세벨리아가 디하트를 마주 보았다. 그의 눈은 살풋 찡그려 있었다. 어쩐지 봐준다는 느낌이었다.
“좋아요. 그럼 당분간 대외활동은 하지 말고 저택 안에만 있어요. 심심하면 플로라나 숙모님이 있으니 걱정 말고.”
“그럴게요.”
세벨리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 말아요. 조심할 테니.”
그런 그녀를 복잡미묘한 눈으로 보던 디하트는 뭔가를 말하려는 듯 입술을 달싹였다.
세벨리아는 이어질 말을 기다렸다. 그러나 디하트는 그가 하려던 말을 삼켰다. 그리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녀에게 인사했다.
“얌전히 잘 있어요, 부인.”
그 이후로 며칠간 디하트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세벨리아는 몇 번이나 잠을 설쳤으나 그를 찾지 않았다.
그리고 그날이 오고 만 것이다.
* * *
어쩐지 아침부터 불길한 날이었다고, 세벨리아는 뒤늦게 그날을 떠올리며 생각했다.
“변명해 보세요, 부인.”
폭격을 맞은 것처럼 어지럽혀진 방 안. 옷깃 하나 흐트러지지 않은 차림새의 디하트가 그녀를 맞이했다. 그러나 더없이 완벽해 보이는 그의 소매에는 누구 것인지 모를 핏방울이 맺혀 있었고…….
손에는 익숙한 상자가 들려 있었다.
“당신이 본 적 없는 것들이라고. 존재조차 모르는 것들이라 한번 말해 보세요.”
숨 막히는 살기와 거친 태도.
이미 세벨리아는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이게 무슨…….”
아버지와 주고받은 편지들이 담긴 상자가 반쯤 부서진 상태로 디하트의 손에 쥐여 있었다. 그 안에 있던 펜던트나 목걸이는 그의 발치를 나뒹굴고 있었다. 도무지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던 세벨리아는 당혹스러움에 고개를 저었다.
“디하트, 난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지.”
“하.”
얼굴을 거칠게 쓸어내리며 디하트가 경멸에 찬 웃음을 터트렸다. 내내 참고 있던 무언가를 내던지는 듯한 웃음이었다. 처음 보는 그 모습에 세벨리아는 다가가려다 멈칫했다.
“아, 부인……. 보석과 비단이 필요하면 말을 하지 그랬어요. 내가 주는 돈이 부족하다면 차라리 짜증을 내며 도자기를 집어던지는 편이 효율적이었을 텐데.”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에 세벨리아의 얼굴이 창백하게 굳었다. 그러나 디하트의 폭언은 끊이지 않았다.
마치 그녀가 상처받아 눈물 흘리는 모습을 원하기라도 하듯, 그의 금색 눈은 집요하게 세벨리아를 응시했다.
“당신을 냉대하는 남편의 비밀을 팔아 치워 보석을 챙기니 아주 기분이 좋았겠어요. 복수와 돈을 한 번에 얻다니……, 참 현명하고 똑똑한 부인을 얻었군요, 내가.”
그제야 세벨리아는 자신이 끔찍한 상황에 처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남편의 비밀을 팔아 치웠다니, 내가?
충격에 크게 떠진 눈으로 세벨리아가 고개를 도리질 쳤다.
“이건, 이건 모함이에요. 저는 절대 그런 짓을 저지르지 않았어요.”
“아하, 모함이라. 너무 흔한 레파토리인데.”
“제가 도대체 왜 그런 짓을 저지르겠어요. 디하트, 한 번 더 생각해 봐요. 내가 당신에게 그럴 리 없잖아요.”
세벨리아가 떨리는 두 손을 모아 쥐며 그에게 항변했다. 그와 자신이 쌓은 추억과 기억에 호소하기 위해 두 눈에 힘을 주었다.
“이런 때에 말하고 싶지 않았어요. 하지만 난….”
“날 사랑하기라도 한다고. 그런 변명은 하지 않는 게 좋을 텐데.”
감정 없는 목소리와 서슬 퍼런 눈이 그녀의 마음을 난도질했다. 세벨리아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떨리는 눈으로 디하트를 응시했다. 그러나 디하트는 그녀의 헛된 노력이 안타깝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그간 모아 온 자료를 그녀에게 흩뿌릴 뿐이었다.
“당신이 사랑하는 건 내가 아니라 당신 아버지겠지. 사랑스러운 웨든의 막내딸이시여.”
빈정거리는 목소리와 함께 두꺼운 종이들이 엉망진창이 된 방 안을 눈처럼 하얗게 뒤덮었다.
“자, 당신이 데려온 하인들에게서 받아 낸 자백과 웨든 후작가에서 사용하던 암호문의 해석본이에요. 이래도 모른 척할 수 있는지 한 번 보죠.”
“…….”
발치에 흩뿌려진 종이를 집어 든 세벨리아는 그 내용을 읽고 속을 게워낼 것만 같았다.
“말도 안 돼.”
어떻게 입수한 건지 그곳엔 제가 하인들의 부탁을 받아 쓴 편지의 내용이 낱낱이 적혀 있었다.
그리고 그 밑에 깨알 같은 글씨로 적힌 첨언들은…….
“이게, 이게 대체 무슨.”
평범한 안부 인사와 사소한 일상생활이라 믿었던 내용은 전부 암호문이었다.
인버네스의 비밀 정보와 저택에 출입하는 주요 인사들에 대한 세세한 정보가 적혀 있는 암호문.
세벨리아는 세상이 뒤집힌 듯한 충격을 받았다. 그동안 하인들과 아버지가 함께 작심하고 자신을 속여 온 것이다.
“당신 덕에 힐렌드 홀의 모든 게 중앙으로 흘러들어 가고 있었어요.”
새파랗게 질린 모습으로 덜덜 떠는 세벨리아를 내려다보며 디하트가 싸늘하게 웃었다.
“나는…… 난. 나도 속은 거예요, 디하트. 나는.”
“아, 괜찮아요. 더 이상 항변할 필요 없어요.”
디하트가 주저앉은 채 눈물 흘리는 그녀의 턱을 잡아 쥐고 시선을 맞췄다.
“비록 내 등에 칼을 꽂았지만 당신은 내 아내잖아요. 그것도 콧대 높은 중앙이 억지로 내게 안겨 준 고귀한 신부.”
“디하트…….”
눈물로 얼룩진 눈가에 마디 굵은 손가락이 와닿았다. 세벨리아는 손수 제 눈물을 닦아 주는 남편을 바라보며 입술을 떨었다.
“들켰다고 너무 억울해하지는 말고. 사람이 살면서 실수 한 번 할 수 있는 법이잖아.”
“…….”
“하지만…… 주제 파악하라는 내 말을 제대로 기억했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
다정한 그의 손길이 뺨을 어루만졌다.
“그렇지, 세벨리아?”
그 순간, 세벨리아는 머리를 망치로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았다.
‘주제 파악.’
아, 설마 이 남자는.
‘처음부터 이런 사태를 예견해 두고 있던 건가.’
그래. 북부 공작씩이나 되는 이가 아무 생각 없이 날 받아들였을 리 없지.
세벨리아는 가슴 속에 차오르던 어떤 기대감 같은 것이 완전히 무너져 내리는 걸 느꼈다. 그렇다면 내게 조금씩 마음을 열어 가고 있었다는 건 다 거짓말이었던 걸까. 이 순간을 위해 내게 맞춰 줬을 뿐이었나.
‘아아, 난 도대체 어떻게 했어야…….’
자괴감에 세벨리아는 어깨를 떨었다. 눈물은 끊임없이 떨어져 내렸고, 디하트는 계속해서 그 눈물방울을 쓸어 담았다. 그리고 그의 서늘한 금빛 눈동자가 세벨리아의 푸른 눈과 마주쳤다.
“…….”
디하트는 말없이 그녀를 응시했다. 세벨리아는 도무지 어찌해야 할 바를 몰라 눈을 돌리다 고개를 떨어트렸다. 그녀의 머리 위에서 낮은 한숨 소리가 들렸다.
“앞으로 식사하러 내려올 필요 없어요.”
디하트가 그녀의 어깨를 부드럽게 쓸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세벨리아는 다급히 고개를 들었다. 그러나 그의 표정은 샹들리에의 빛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디하…….”
“내가 비위가 좋지 못해서.”
“……!”
세벨리아가 간절히 내민 손을 정중히 거절하며 디하트는 등을 돌렸다.
그렇게 끝이었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세벨리아는 그를 찾아갔으나 번번이 거절당했다. 저택은 완전히 그녀에게 적대적으로 돌변했고, 웨든에서 온 하인들은 모두 쫓겨났다.
모든 증거와 자백, 증인들이 그녀가 범인이라 지목하고 있었다. 그렇게 신뢰를 잃어버린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저 데니사 한 명만이라도 남겨 달라 비는 게 다였다.
“디하트, 당신도 알다시피 데니사는 이 사건에 연루되지 않았어요. 다 내 잘못이니 그녀만은 보내지 말아 줘요.”
“…….”
“저택 밖에서 지내게 하겠어요. 절대로 이곳과 관련된 일을 알 수 없게…….”
식사 중에 난입한 세벨리아는 간절한 목소리로 자비를 청했다.
디하트는 무미건조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다 골치 아프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무언가를 잠시 생각하는 듯하던 그는 곧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하지만 접근 가능한 구역에 제한이 생길 겁니다.”
“……고마워요.”
한시름 놓은 듯한 그녀를 흘끗 바라본 디하트가 뭐하냐는 듯 말했다.
“더 할 말 남았습니까.”
“네?”
되묻는 세벨리아를 응시하며 디하트가 칼끝으로 접시를 긁었다. 끼이익. 소름 끼치는 소리가 정찬실에 울려 퍼졌다. 디하트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가르치듯 말했다.
“비위가 상한다고 했을 텐데.”
“……아.”
“그럼 나가 봐요.”
세상에 이보다 잔인한 축객령이 또 있을까.
세벨리아는 아직도 그 차가운 목소리를 잊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