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fter I Died, My Husband Went Mad RAW novel - Chapter (160)
내가 죽고 남편이 미쳤다 (160)화(160/171)
외전 1-8
“기대해도 좋아요.”
뭘 기대하라는 거야. 북부와 중앙의 화해를 기대하라는 건가? 영문을 알 수 없는 말의 연속에 세벨리아가 혼란으로 가득 찬 사이, 일레이가 밖에서 그를 재촉했다.
“공작님, 시간이 없습니다!”
“이만 가겠습니다. 저녁 맛있게 먹고, 좋은 꿈 꾸도록 해요.”
디하트는 그녀의 이마에 키스를 남기고 속히 자리를 떠났다. 세벨리아가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혼자 남겨진 뒤였다.
* * *
그래서 이게 대체 무슨 일일까.
린 포스트를 앞에 둔 세벨리아는 불편한 심기를 가감 없이 드러냈다. 신문을 가져다준 집사는 눈치를 보다 줄행랑쳤다.
“밤 나들이라…….”
1면 하단을 장식한 기사는 요 며칠째 행적이 묘연한 동거인에 관련된 내용이었다. 타이틀은 무려 <일편단심 공작의 밤 나들이, 그의 진심은 무엇인가>였다.
내용은 그가 밤마다 다른 저택을 방문해 젊고 사랑스러운 결혼 적령기의 영애들과 만남을 가진다는 이야기로 가득했다. 심지어 기사 중간에는 자신의 딸과 그가 좋은 인연이 될 것 같다며 기대를 밝히는 인터뷰도 있었다.
“흐음.”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세벨리아는 전혀 디하트답지 않은 일화들이 적혀 있는 신문을 보며 생경한 기분을 느꼈다. 그 남자가 처음 보는 여자의 입가를 닦아 주고 고기를 썰어 줬다고?
디하트 인버네스의 전 부인이자 처음으로 만난 날에 결혼까지 속행했던 세벨리아는 단번에 기사의 진위를 파악할 수 있었다. 헛소리도 정도껏 해야 사람이 믿을 것 아닌가. 처음부터 끝까지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불쾌해진 기분이 쉽사리 좋아지는 건 아니었다.
‘분명 일 때문에 바쁘다고 했으면서 도대체 일을 어떻게 했길래 이런 기사가 나는 거야.’
살짝 눈썹을 찌푸린 그녀가 말했다.
“린 포스트 말고 다른 신문들은 어떻지?”
하녀 몇 명이 오늘 자 신문 몇 개를 구해다 줬다. 일간지며 주간지, 심지어 동화 한 개짜리 짧은 소식지까지. 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살펴도 디하트와 관련된 내용은 없었다. 정말 어찌 된 영문인지를 모르겠다.
차라리 디하트든 일레이든 누구든 만날 수 있으면 붙잡고 물어볼 텐데 그럴 수도 없었다. 두 사람은 며칠 전 바이렌을 만나야 한다며 북부로 떠나 버렸으니까.
“아.”
무언가를 깨달은 듯 그녀가 탄성을 흘렸다.
“그래서 저택 근처에 기자들이 얼씬거렸던 거구나.”
어쩐지 경비원들이 아침부터 난감해하더라. 한숨을 내쉰 세벨리아는 신문을 멀리 치웠다. 머리가 지끈거려서 도저히 더 볼 수가 없었다.
소파에 기대어 쉬는데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눈을 뜨자 곁에 누군가 서 있었다.
“제목 한번 저질스럽네요.”
“언제 출근했어, 데니사.”
“방금 전에요. 그런데 이 기사 너무 눈 가리고 아웅 아니에요? 지금 수도에 머무르고 있는 공작님이 디하트 님 말고 누가 있다고 ‘익명의 공작’이라고 쓴데요. 참나, 사일러스의 곁에서 같이 놀아난 주제에 뻔뻔스럽기는!”
한껏 가시 돋친 목소리로 내뱉은 데니사가 삽화를 쿡쿡 찔렀다. 타이틀 아래 우측에 그려진 삽화는 한 사내의 옆모습으로 이목구비가 묘하게 흐렸다.
그래 봤자 기사의 주인공이 디하트라는 건 개나 소나 다 알 일이었지만.
“그래도 지금은 눈치라도 보잖아. 예전이었으면 실명부터 싣고 봤을 거야.”
일왕비와 웨든 후작을 주축으로 한 모반이 발각된 뒤 그들의 입이자 손이었던 린 포스트도 타격을 받았다. 샤테이안의 선처로 폐간까지는 가지 않았으나 중역 대부분이 물갈이당했다.
“그게 더 짜증 나는 일이에요, 아가씨. 눈치를 볼 거면 제대로 보던가. 애매하게 간만 보는 게 딱 보이는데 이걸 어떻게 참아요.”
“음…….”
흐릿한 이목구비를 보며 세벨리아는 말을 흐렸다. 과거와 달리 린 포스트는 친황실 쪽으로 성향이 기울었다. 그 말인즉슨 샤테이안 황태자의 입김이 적지 않게 닿는다는 뜻.
그러고 보니 기사가 나온 타이밍이 수상했다.
‘두 사람 사이가 나쁜 것도 아니고, 함께 국책 사업까지 논의하는 정도인데 디하트가 수도를 비우자마자 이런 기사를 싣는다고?’
일단 이 기사가 린 포스트의 독단적인 결정인지 아닌지부터 알아봐야겠다.
‘디하트를 추궁하는 건 그다음 일이지.’
그가 북부에서 돌아올 날을 기다리며 세벨리아는 샤테이안에게 편지를 썼다. 은근슬쩍 린 포스트의 일을 언급하며 혹여나 현재 진행 중인 사업에 무슨 차질이 있는지 물어보는 내용이었다.
“며칠이나 걸리려나.”
바쁘신 황태자 전하이시니 일주일은 걸리겠지, 하고 세벨리아는 그의 일을 머리에서 지우려 애썼다. 그렇지 않고서는 당장 황궁으로 달려갈 것만 같아서였다.
그리고 참으로 시기적절하게도 로잘린이 도움을 청했다.
“벨라, 할 말이 있어요.”
“뭔데요?”
“아무래도 북부로 가기 전에 책갈피를 찾아서 돌려주고 싶어요. 이대로 떠나면 두고두고 생각날 것 같아요.”
그렇지 않아도 마음속의 번뇌를 쫓아내려 애쓰던 세벨리아는 그녀의 부탁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그렇게 두 사람은 한낮의 따사로운 햇살 아래, 담벼락 밑을 파헤치게 되었다.
“여기도 없네요.”
모종삽을 들고 있던 로잘린이 험악한 기세로 내뱉었다. 수색을 시작한 지 겨우 사흘이 지났을 뿐인데 어찌나 열심히 했던지 모종삽 끄트머리가 벌써 우그러져 있었다.
“이 먼지 덩어리 고양이…….”
점점 디하트를 닮아 가는 언행에 세벨리아는 쓴웃음을 삼켰다.
두 사람은 오늘도 마야가 숨긴 책갈피를 찾기 위해 저택 안을 샅샅이 뒤지는 중이었다.
비록 도르엔은 돌려주지 않아도 된다고 했으나, 떠나는 날이 확정되자 도저히 가만히 있지 못하겠던 모양이었다. 맨 처음에 세벨리아는 사용인들에게 말해 보지 그러냐고 했지만, 로잘린은 그렇지 않아도 바쁜 이들의 일을 늘리고 싶지 않다고 답했다.
그래서 그 결과가 이것이었다.
“북부로 가기 전까지 돌려주고 싶었는데.”
“상심하지 말아요. 그전까지 찾을 수 있을 거예요. 자, 이것 좀 마셔요. 땀을 너무 많이 흘렸어요.”
세벨리아가 그녀에게 차가운 음료를 건네며 말했다.
“하아. 고마워요.”
로잘린이 음료를 마시는 동안 세벨리아는 그녀의 뒤편을 살폈다. 뒤집힌 땅 근처에는 커다란 돌과 나무뿌리 몇 개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나저나 이렇게 구멍 난 곳이 많은 줄 몰랐어요.”
“그러게 말이에요. 조금만 더 넓히면 어린아이도 드나들겠는걸요?”
“설마요.”
세벨리아가 놀라 고개를 저었다. 마침 음료를 다 마신 로잘린은 다시 의지를 다졌다.
“그럼 다음 장소로 가죠!”
세벨리아는 고개를 끄덕이고 로잘린의 뒤를 따랐다. 앞서가는 로잘린의 챙 모자에 달린 리본이 흔들리는 게 보였다. 바람결에 팔랑이는 가벼운 움직임이 춤추는 나비처럼 예뻤다.
리본의 움직임에 따라 멍하니 시선을 옮기다 문득, 로잘린을 따라 나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를 따라 몸을 움직이는 동안 날카롭던 신경이 누그러졌다. 별다른 이유 없이 크게 뛰던 심장도 평소와 같이 돌아왔다.
‘딱히 힘든 일도 없는데.’
폭언을 하는 가족도 없고, 경멸 어린 태도로 무시하는 사용인들도 없었다. 지금 제 주위에는 오로지 좋은 사람들만이 가득했다. 예전에는 생각할 수 없는 평화롭고 행복한 나날이었다.
‘기사도 어차피 거짓말일 테고.’
그러니 아무 일도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런데도 자꾸만 속이 답답하고 신경이 예민해졌다. 마치 해소되지 않은 불안을 껴안고 사는 사람처럼.
“후우.”
인생에 큰 사건을 겪은 사람들은 일이 해결된 뒤에도 때때로 이런 스트레스에 시달린다더니.
역시 워츠의 말은 틀린 게 없다고 세벨리아는 생각했다.
‘돌아오려면 아직도 한참이나 남았던가.’
러크우드에서의 시간이 제법 즐거운지 워츠는 그곳 생활에 완전히 적응한 것 같았다. 때때로 클로드가 보내오는 서신에 적힌 우는 소리들을 떠올리며 세벨리아는 작게 웃었다.
함께 보내던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으나 공유한 시간의 밀도가 높아서일까. 그들을 보낸 뒤 세벨리아는 조금 외로웠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어떻게 알았는지 클로드와 워츠는 제 건강과 안부를 꼬치꼬치 캐묻다 못해 엄청난 잔소리가 적힌 편지를 번갈아 보냈다.
‘괜찮은 약이라도 추천받고 싶었는데.’
하지만 클로드와 워츠는 딱 잘라서 그녀의 제안을 거절했다. 생각이 너무 많아서 그런 걸 수도 있다며 차라리 몸을 움직이라는 말과 함께.
‘단순한 목표와 그만큼 간단한 신체 활동의 병행이라.’
확실히 의원 조수였던 세월이 길어서인지 나쁘지 않은 권유였다.
그래서 세벨리아는 오늘도 제발 자신들에게 맡기라는 사용인들을 물리치고 로잘린과 함께 저택을 수색했다.
하지만 예민해진 신경을 누그러뜨리기 위한 단순 반복 노동도 해가 중천에 머무르자 조금씩 기운을 잃었다. 그렇지 않아도 둘 다 한 번씩 크게 앓았던 사람들인지라 안 그래도 창백한 얼굴에 핏기가 가시기 시작했다.
“햇빛이 세요. 이제 그만 들어갈까요, 로잘린?”
“한 군데만 더 보면 될 것 같은데…….”
쉬게 해 달라는 육체의 비명과 친구의 물건을 소홀히 다루었다는 죄책감 사이의 아슬아슬한 균형에 치명타를 가한 건 샤테이안의 방문이었다.
“둘이서 흙장난이라도 하고 있었던 건가?”
기별도 없이 방문한 황태자는 금방이라도 파티에서 도망쳐 나온 듯한 모양새였다. 화려하다 못해 무겁기 짝이 없는 재킷을 벗어 던진 사내가 성큼성큼 햇볕 아래를 걸었다.
“재미있어 보이는군. 괜찮다면 나도 끼워 줘.”
가벼운 셔츠 한 장 차림이 되어 우두커니 버티고 선 사내의 모습에 세벨리아는 아연해졌다. 로잘린 또한 마찬가지였다.
“으으.”
“로잘린!”
“이런.”
머리를 짚고 쓰러지려는 로잘린을 받아 든 건 샤테이안이었다.
“응접실로 가요.”
세벨리아의 재빠른 지시 아래 로잘린은 시원한 응접실로 옮겨졌다. 그녀가 의원을 불러오라 하인에게 명하려는데, 샤테이안이 그녀를 말렸다.
“황실 주치의가 나와 함께 왔네.”
“예?”
“마차에 있을 테니 하인을 시켜 불러오게.”
그의 명령을 받은 하인이 황실 주치의라는 남자를 데려왔다. 이게 도대체 어찌 된 일이지. 미심쩍었으나 일단 사태가 사태였기에 묻지 않고 넘겼다.
그리고 황실 주치의는 로잘린이 단순히 일사병으로 쓰러진 것이라 말했다.
“무리하지 말라고 했거늘.”
다행히도 물을 섭취하게 하고 푹 쉬면 금방 나을 병이었다. 그래도 쓰러졌다는 게 마음에 들지 않는지 샤테이안은 쯧쯧 혀를 찼다. 두 사람은 잠시간 로잘린을 바라보며 침묵을 공유했다.
먼저 말을 꺼낸 건 세벨리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