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fter I Died, My Husband Went Mad RAW novel - Chapter (161)
내가 죽고 남편이 미쳤다 (161)화(161/171)
외전 1-9
“그래서 어쩐 일로 발걸음 하셨습니까, 전하.”
묵묵한 시선으로 로잘린을 바라보던 샤테이안이 흘끗 고개를 돌렸다. 응접실에는 쓰러진 로잘린과 두 사람뿐이었다.
“시치미 떼는 건 공작으로부터 배웠나, 영애? 그대가 먼저 내게 다급하게 서신을 보내지 않았어.”
“기별도 없이 방문하시길래 다른 용무 때문인 줄 알았습니다.”
“뻔뻔한 것도 점점 닮아 가는군.”
샤테이안이 긴 한숨을 내쉬었으나 세벨리아는 개의치 않았다.
“그래서 답을 주시러 온 건 맞으신지요.”
그녀의 물음에 샤테이안은 가만히 고개를 돌려 다시 로잘린을 응시했다. 주치의와 하인들의 정성 덕이었을까, 창백했던 얼굴에 다시금 생기가 깃들어 있었다.
“여기서 이야기할 내용은 아닌 것 같군.”
샤테이안은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후원으로 향하는 문을 열었다. 세벨리아는 하인을 불러 로잘린을 방으로 옮기게 한 후 그의 뒤를 따랐다.
“소문대로 아름답군.”
후원을 칭찬하며 샤테이안이 말문을 열었다. 소담하게 피어난 꽃을 가만히 들여다보던 그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디하트가 손수 묘목을 골라 심은 조경수며 꽃들을 감상하는 그의 태도에선 여유가 묻어 나왔다.
“…….”
세벨리아는 아무 말 않고 그와 함께 후원을 거닐었다. 재촉해 봤자 바라는 바를 곧이곧대로 말해 줄 황태자가 아니었다. 그리고 그녀의 판단은 정확했다.
장미 덤불로 가려진 곳까지 이르자 샤테이안은 발걸음을 멈췄다. 높은 덤불은 그 어떤 담벼락보다 견고하게 작은 별장을 감싸고 있었다.
“공작은 정말로 자네를 귀하게 여기는 모양이야.”
붉게 피어난 장미를 바라보던 세벨리아의 눈이 그를 향했다. 샤테이안은 덤불 위로 보이는 하얀 건물 끄트머리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말했다.
“하지만 그건 이렇게 가까이서 봐야만 알 수 있는 애정이지.”
샤테이안은 자신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이 점점 강렬해지는 걸 느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코끝에서 느껴지는 장미 향이 지독했다.
“견고한 벽은 사람을 밀어내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들의 호기심을 끌어당기기 마련이니까.”
“그 말씀인즉.”
“그래. 공작에 대한 기사는 내 결정이 아니었다. 아니, 다르게 말하지.”
부드러운 꽃잎을 손끝으로 느끼며 샤테이안이 읊조렸다.
“다른 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터트리려는 걸 누르고 린 포스트에 쥐여 줬다.”
세벨리아는 짧은 숨을 토해 냈다.
“터져야 할 일이었던 거군요.”
“이미 수도의 절반 이상이 떠들고 다니는 이야기였어. 막아 봤자 우스울 뿐이지.”
세벨리아는 머리를 짚으며 작게 신음했다.
“이곳은 북부가 아니야, 영애. 영예로우신 황제가 다스리는 축복의 도시 랑그 엘리사지. 영광과 황금, 호사가들의 도시에서 그대들은 너무 조용하게 지냈어. 그리고 그게 사람들의 심기를 건드렸고.”
세벨리아는 슬슬 사태를 이해했다.
작금의 상황은 결국 자신들을 향한 관심이 폭발해 버린 결과였다. 그녀는 모든 사건이 일단락된 뒤 언제 그랬냐는 듯 연회나 파티에 발길을 끊었다. 그건 사람들과 부대끼는 걸 싫어하는 디하트 또한 마찬가지.
하지만 일황비의 모반을 밝히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이들에 대한 사람들의 호기심은 하늘을 찌른 상태였다. 인버네스 공작과 그 연인의 비밀스러운 생활에 대한 갈증은 사람들을 다른 방향으로 이끌고 만 것이다.
“일이 어떻게 된 건지 알겠군요.”
세벨리아가 조금 질린 목소리로 말했다. 사람들의 생각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갔을지 보지 않아도 뻔했다.
끔찍한 모반을 밝혀낸 인버네스 공작과 그의 연인이라 알려진 벨라 애쉬렌트. 그러나 재판이 끝나고 그들에 대한 소식은 더 이상 들려오지 않고, 화제의 중심인 연인에 대한 궁금증은 조금씩 변질되기 시작했을 것이다.
이를테면, ‘이렇게까지 아무런 말도 없는 걸 보면 무슨 안 좋은 일이 생겼을지도 모른다.’거나 ‘두 사람의 사이가 소원해졌을 가능성이 크다.’ 같은 음험하면서도 즐거운 추측들이 득달같이 터져 나왔겠지.
호기심과 선망은 언제나 같이 오는 형제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 사이에 질투와 경시가 뒤따를 가능성이 컸지.
씁쓸한 현실을 떠올리며 세벨리아는 차갑게 굳은 손가락을 접었다 폈다. 샤테이안은 어느새 몸을 돌려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대들이 호사가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걸 싫어한다는 건 알아. 반역자들을 막기 위해 억지로 연회며 파티에 참석해 왔다는 것 또한 모르지 않지.”
“…….”
“하지만 언제까지고 둘만의 천국에 처박혀 살 수는 없는 노릇이지. 이제 담 밖에서 일어나는 일에도 조금은 신경 쓰는 게 좋을 거야.”
세벨리아는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기사가 샤테이안의 의지였는지 아닌지는 이제 해결되었다. 이제 남은 건.
“기사에 실린 그의 행적은 사실인가요?”
디하트가 방문한 가문들마다 우연찮게 정말로 딱 혼인 적령기의 영애들이 있었는가 아닌가였다.
그녀의 날카로운 물음에 샤테이안은 속으로 혀를 찼다.
‘이런.’
직설적으로 물을 줄은 몰랐는데. 어떻게 하나 고민하던 사내는 말을 돌리려 시도해 봤지만 당연하게도 그런 걸로 상황을 타개할 수는 없었다. 거추장스러운 연회에서 도망칠 겸 인버네스 저택으로 온 걸 아주 잠깐 후회한 샤테이안은 아무래도 좋은 심정이 되었다.
한숨을 쉬는 그를 세벨리아가 채근했다.
“전하라면 분명 아시리라 믿습니다.”
샤테이안은 결국 하늘 어딘가를 방황하던 시선을 내려 세벨리아를 응시했다. 차분한 음성, 단단한 눈빛. 하지만 그 안쪽엔 자신은 알 수 없는 감정이 차오르고 있었다.
분명 좋은 감정은 아닐 터였지만…….
샤테이안은 짧은 고민 끝에 결정을 내렸다.
“사실만 말하자면, 그렇네. 밤 나들이까지는 아니지만 기사에 적시된 대로 여러 가문과 친목을 도모하는 중이라고 알고 있어. 그리고 그 가문마다 혼인 적령기의 영애들이 있더군.”
“……그렇군요.”
생각보다 유한 반응에 샤테이안은 살짝 고개를 갸웃했다. 화를 낼 줄 알았는데. 하지만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었다.
‘자승자박이야.’
꼭꼭 숨기니 이렇게 탈이 나지. 돌아오면 아주 볼만하겠군. 거기까지 생각하자 샤테이안은 무심코 웃음이 새어 나올 뻔했다. 그는 아무렇지 않은 척 앞장서 걸으며 세벨리아에게 말했다.
“슬슬 바람이 차가워지는군, 돌아가도록 하지. 이쯤이면 로잘린도 깨어났을 테니.”
황태자는 정신을 차린 로잘린에게 황실 주치의가 앞으로 격주로 방문할 것을 알렸다. 그리고 떠나기 직전 세벨리아와 짧은 담소를 나눴는데 그날을 기점으로 인버네스 저택에는 용도와 목적을 알 수 없는 물건의 행렬이 이어졌다.
그것들의 대부분은 저택 본관이 아닌 후원 안의 별장으로 향했는데, 사용인들도 허락 없이는 접근할 수 없어 다들 궁금증에 속만 타들어 갔다.
그로부터 일주일이 지나, 디하트가 수도의 방벽을 넘었다. 기다려 마지않던 이의 귀환이었다.
“십 분 뒤에 도착 예정이라고 하십니다.”
집사의 전언을 들은 세벨리아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릎에 누워 있던 마야가 사뿐한 몸짓으로 바닥에 착지했다. 회색 털의 고양이와 잠시 시선을 맞춘 그녀는 거침없는 걸음으로 디하트를 맞이하러 갔다.
활짝 열린 문 너머, 인버네스 가문의 인장이 새겨진 검은 마차가 보였다. 그 뒤로 줄줄이 이어진 마차 따위는 보이지 않을 정도로 커다란 마차였다.
히힝-
다른 가문의 사륜마차와 달리 인버네스 공작의 마차는 두 마리 말이 끌었으나 위용에 있어서는 비할 바가 못 되었다. 북부의 명물인 두 마리 흑마는 덩치와 기질 면에서 다른 말들보다 우수해 보통 군마로 키워졌다.
그러니 감히 누가 인버네스 공작이 탄 마차를 업신여길 수 있겠는가. 세벨리아는 멀리서부터 다가오는 위협적인 마차를 응시하며 저도 모르게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참으로 주인에 걸맞은 마차라고 생각하면서.
대문을 넘은 마차는 서서히 속도를 줄여 세벨리아의 앞에 멈췄다. 마부가 허리를 숙이기도 전에 문이 열리고, 표범처럼 탄탄한 몸의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벨라.”
가볍게 땅에 착지한 남자가 손을 뻗었다. 중저음의 목소리가 공기를 울렸다. 세벨리아는 두 팔을 벌린 그를 향해 몸을 던졌다. 남자의 웃음소리가 머리 위로 울려 퍼졌다.
“이게 무슨 일입니까. 내가 그리도 그리웠어요?”
대답 없이 고개를 드니 그의 얼굴이 선명하게 보였다. 장장 이 주 만의 만남이었다. 그만큼 그의 빈자리가 느껴진 시간이었다. 세벨리아는 자신을 끌어안은 팔의 단단함을 느끼며 그와 시선을 맞췄다.
검은 머리칼을 깔끔히 빗어 넘긴 사내는 열기를 품은 눈으로 자신을 응시하고 있었다.
변치 않은 온도를 확인한 세벨리아가 그의 품을 파고들었다. 디하트는 그녀의 낯선 행동에 조금 당황했으나 그녀를 말리는 바보짓은 하지 않았다. 오히려 아직 닫히지 않은 문 너머로 이쪽을 훔쳐보는 이들을 향해 으르렁거릴 뿐.
결국 디하트의 위협적인 눈짓을 받은 일레이가 문을 닫으러 떠나고, 디하트는 이 감격스러운 재회를 넘칠 만큼 만끽했다.
세벨리아가 입을 연 건 일레이가 문을 닫고 주변의 기자들을 한바탕 쫓아낸 뒤 돌아왔을 때쯤의 일이었다.
“디하트.”
“응.”
“무사히 돌아와서 기뻐요.”
다정한 말에 디하트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하지만 그의 채신머리 없는 행복이 깨지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