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fter I Died, My Husband Went Mad RAW novel - Chapter (167)
내가 죽고 남편이 미쳤다 (167)화(167/171)
외전 2-4
“다녀, 왔어요.”
“그래.”
안은 팔에 힘이 더해졌다. 그 품 안에서 안도감을 느끼는데, 상념을 깨트리는 목소리가 덮쳐 왔다.
“혼자 내버려 두지 않겠다고 했잖습니까.”
등 뒤에서부터 나타난 남자의 목소리는 억세고 단단했다. 화들짝 놀라 고개를 틀자 디하트와 시선이 마주쳤다. 금빛 눈동자를 반짝이는 그의 입가엔 장난스러운 미소가 걸려 있었다.
놀란 가슴이 가라앉기가 무섭게, 그가 로스엘을 향해 권유했다.
“밖에서 이럴 게 아니라 안으로 들어가죠. 대사께서 그리도 자랑하시는 애쉬렌트의 진면목을 어서 보고 싶군요.”
로스엘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며 세벨리아를 놓아주었다. 그리고 팔을 내밀며 말했다.
“내게 에스코트할 영광을 주지 않겠어?”
무의식적으로 디하트를 흘낏 돌아본 세벨리아는 그가 어쩔 수 없다는 듯 눈을 찡그리자 배시시 웃으며 로스엘과 팔짱을 꼈다.
“기꺼이 드릴게요.”
단단히 팔짱 낀 로스엘이 흡족하다는 듯 웃으며 디하트에게 말했다.
“원한다면 공작께 나머지 한쪽 팔을 내어드리죠. 보아하니 외톨이가 되는 걸 싫어하는 것 같은데.”
“……됐습니다.”
어처구니없다는 듯 작은 한숨을 내쉰 디하트가 세벨리아의 뒤에 섰다. 로스엘은 피식 웃고서 몸을 돌렸다.
놀랄 일은 그다음이었다. 세벨리아가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병졸처럼 서 있던 사용인들이 고개를 숙이기 시작했다.
“어서 오십시오.”
“돌아오셔서 기쁩니다, 아가씨.”
낭랑한 인사말이 정원에 울려 퍼졌다.
‘이게 뭐야?’
어색해서 팔에 닭살이 돋을 정도였다. 세벨리아는 있는 힘껏 무언의 항의를 보냈지만 소용없었다. 결국 도중에 로스엘에게 빨리 걸을 수는 없냐고 재촉했지만 부드러운 웃음만 돌아올 뿐이었다.
“오랜만의 손님이라 다들 들떴나 보구나. 조금만 참아 주렴.”
자신을 제외하면 이렇다 할 사촌 또한 없어, 오랜만에 맞이한 애쉬렌트의 혈통에 다들 기합이 들어간 것 같다며 로스엘이 첨언했다.
그렇게까지 말하자 억지로 말리기도 뭐했다.
“하아.”
나지막한 한숨과 함께 세벨리아는 저택의 문을 넘었다.
그리고 그 순간만을 기다렸다는 듯, 머리 위에서 꽃잎이 흩날렸다.
“어서 와요!”
“클로드!”
손을 탈탈 털어 남은 꽃잎을 털어 낸 클로드가 씩 하고 웃으며 두 팔을 벌렸다. 만세를 취하는 듯한 동작이었다.
“그렇게 오라고 노래를 불렀는데 드디어 왔군요!”
“누가 보면 내가 계속 거절한 줄 알겠어요.”
어찌나 격렬한 환영인지, 그것만 보면 이곳의 주인이 클로드인 줄로만 알 정도였다.
“근데 언제 애쉬렌트로 오신 거예요? 마지막에 편지했을 땐 수도에 계신다고 했잖아요.”
클로드는 연구라는 이름하에 워츠와 함께 러크우드 곳곳을 방랑하고 있었다. 마지막에 받은 편지에는 분명 러크우드의 수도에 머물고 있다는 말이 적혀 있었는데, 지금 와 보니 일부러 자신을 속인 듯싶었다.
“제자가 오는데 스승님이 가만히 있을 수 있나.”
으흠, 하고 콧소리를 내는 클로드는 벨크람을 떠났을 때보다 훨씬 건강해 보였다. 어쩌면 이곳의 공기가 그에게 맞는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머리에 붙은 꽃잎을 떼던 세벨리아는 멀리서 다가오는 사내를 보고 반색했다.
“오랜만입니다, 벨라 양.”
“세상에. 워츠 씨!”
워츠는 클로드 못지않게 건강해 보였다. 연구소에서도, 랑그 엘리사에서도 매일 눈 밑에 퀭한 그림자를 달고 다니던 사내가 이리도 달라지다니.
세벨리아는 러크우드의 공기와 물에 뭔가 있는 게 틀림없다 확신했다.
“머리가 많이 길어지셨군요. 시간이 참 빨리 흐른 듯합니다.”
“그러게요, 워츠 씨도 많이 달라지셨어요.”
“그렇습니까?”
정작 본인은 잘 모르겠다는 듯 의아한 얼굴로 뺨을 쓸었으나, 확연히 좋아진 안색은 숨길 수 없었다.
“그럼요!”
세벨리아가 열성적인 태도로 고개를 끄덕이자 워츠가 희미하게 웃었다.
“고맙습니다, 벨라. 그럼 이만 자리를 비켜 드리죠.”
“같이 가는 게 아니었어요?”
“저흰 일주일 전에 도착해서 이미 둘러볼 만큼 봤습니다. 그리고, 가족 간의 시간을 방해할 만큼 눈치 없는 사람은 아니니까요.”
짧은 웃음과 함께 워츠는 클로드를 데리고 층계 위로 사라졌다.
“이따 봐요!”
크게 손을 휘젓는 클로드에게 작게 손을 흔들어 주고 세벨리아는 로스엘의 에스코트를 받아 애쉬렌트를 둘러보았다.
오래된 고목에 어울리게 지은 정원과 반짝이는 물고기가 헤엄치는 호수, 낯선 옷을 입고 있는 여신상을 지나 부드러운 산책로를 걷다 보니 별채 같은 건물이 나왔다.
옅은 회색 벽돌에 짙은 푸른색 지붕. 외벽을 따라 내려온 덩굴은 없었지만 높게 자란 꽃들이 저택을 둘러싸고 있었다.
여러모로 따사로운 분위기의 풍경이었다. 어째선지 마음이 포근해져 별채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는데, 누군가 문을 열고 나왔다.
발라크였다.
“발라크?”
“벨라.”
생각지 못한 만남이었던 듯, 바라보는 눈에 당혹이 스며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일순간이었다. 로스엘이 짧은 탄성과 함께 외쳤다.
“어디 갔나 했더니 여기 있었구나!”
“아, 형님.”
“집사장이 아까부터 찾고 있었다. 네가 가져온 짐들 중에 세공품이 껴 있어서 어떻게 해야 할지 곤란해하던 것 같던데.”
거기까지 말하자 발라크는 아차 싶은 얼굴을 하고는 손을 흔들어 사라졌다.
“정찬 때 다시 보자, 벨라!”
등장만큼 정신없는 퇴장이었다. 붙잡을 새도 없이 달려가는 발라크에 세벨리아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만 가요.”
고개를 돌리는데 회색 벽돌의 건물이 시야에 걸렸다. 세벨리아는 로스엘에게 말하다 말고 말을 멈췄다.
이상하리만치 시선이 가는 건물이었다. 마치, 꿈속에서 방문하기라도 한 것처럼…….
거기까지 생각하는데, 로스엘이 팔짱을 낀 채로 부드럽게 그녀를 이끌었다.
“그래, 가자꾸나. 서두르지 않으면 이러다 밤이 되겠어.”
“아, 네.”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어째선지 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저곳에 뭔가 있다는 예감이 머릿속을 휩쓸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자신만의 추측일 뿐이었다.
세벨리아는 떨어지지 않는 발을 억지로 떼어 그곳을 지나쳤다. 이윽고 구경이 끝나고, 세벨리아는 화려한 성찬이 준비되어 있는 정찬실로 안내받았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훤칠한 차림새로 자리에서 일어난 사내는 클로드였다. 그 곁에는 워츠가, 맞은편에는 발라크가 있었다. 그들의 환대에 세벨리아는 뺨을 붉히면서도 기쁜 눈치였다.
식사는 조금 어수선하지만 그만큼 들뜬 분위기로 흘러갔다. 로스엘은 처음부터 그것을 예견하고 있었는지, 하인들은 시중을 끝내고는 모두 정찬실을 떠난 상태였다.
“음식은 입에 맞니?”
“네, 정말 맛있어요.”
알싸한 향기를 풍기는 샐러드도, 새하얀 껍질에 달콤한 과육을 가지고 있는 신기한 과일들도, 짙은 색 소스에 듬뿍 절여져 입 안에서 부드럽게 녹아내리는 고기마저도 모두 제 입맛에 딱 맞았다.
처음 먹어 보는 음식인데도 불구하고 세벨리아는 아무런 거부감 없이 식사를 즐겼다. 비록 그녀의 곁에 앉은 디하트는 살짝 침체된 얼굴이었지만, 그래도 아예 먹을 수 없는 정도는 아니라 그도 나름대로 괜찮게 식사를 끝냈다.
“벨라, 너는 이쪽이란다.”
그리고 식사가 끝난 뒤, 배정된 방으로 향하는 도중에 발라크가 그녀를 붙잡았다. 저택에서처럼 당연히 디하트와 같은 방을 쓸 거라 생각했던 세벨리아는 당황했다.
“혼약도 맺지 않은 남녀를 한방에 머무르게 할 수는 없지. 공작의 방은 맞은편 건물에 준비해 뒀다.”
“어, 음. 그게.”
따지자면 이미 한 번 결혼식을 치른 사이인데다, 같은 방에서 잠든 적은 셀 수 없이 많았지만… 그 말을 사촌 오빠의 면전에 대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때, 곁에서 깊은 한숨 소리가 새어 나왔다. 고개를 돌리니 디하트가 보란 듯이 웃고 있었다.
‘설마.’
또 한바탕 싸움이 벌어지는 건 가해서 두근두근한 마음으로 지켜보는데, 디하트가 어쩐지 봐준다는 기색으로 말을 시작했다.
“그렇게까지 신경 써 주시는데, 거절할 수야 없는 노릇이지요.”
“그래?”
디하트의 순순한 태도에 발라크도 당황한 듯싶었다. 그가 무의식적으로 되묻자 디하트가 술술 말을 이어 나갔다.
“결혼을 앞둔 신랑 신부에게 정결한 몸과 마음가짐을 가지길 바라는 건 가족으로서 당연한 일이니까요. 그렇지 않아도 우여곡절이 많았던 저희 둘이니 특별히 신경 쓰고 계신다는 것, 알고 있었습니다.”
무슨 말을 하는 거야, 하는 표정으로 발라크가 그를 멍하니 바라보는데 디하트가 입꼬리를 올리며 말을 이었다.
“걱정하시는 대로 벨라와의 열정적인 신혼 생활을 위해 정결하고 순수한 육체를 유지하도록 노력하죠.”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세벨리아는 이마에 닿는 입술에 놀라 손을 들어 올렸다. 그러나 이미 디하트의 입술은 이마를 떠나 짓궂은 미소와 함께 뺨을 꾹 누르고 멀어진 뒤였다.
“일이 이렇게 됐으니 너무 아쉬워하지 말아요, 벨라.”
“자네 지금 무슨 말을……!”
슬슬 상황을 이해한 발라크가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디하트는 이미 그들로부터 한 걸음 멀어져 두 손을 팔랑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내일 아침에 봐요, 벨라. 물론 자다가 갑자기 견딜 수 없이 외로워진다면 내 방으로 와도 좋아요. 어차피 우리 외에 이곳에 머무는 사람도 없다고 들었으니.”
천연덕스러운 말에 세벨리아가 웃으며 맞장구를 쳤다.
“무서울 때 가도 괜찮아요?”
“물론이죠. 천둥소리 때문에 무섭다면 내가 귀를 가려 줄게요.”
뻔뻔한 태도에 세벨리아가 한바탕 웃음을 터트렸다. 발라크는 포기한 듯한 얼굴로 집사에게 손짓해 디하트를 반대편 건물로 쫓아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