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fter I Died, My Husband Went Mad RAW novel - Chapter (18)
내가 죽고 남편이 미쳤다 (18)화(18/171)
생각도, 설명도 필요 없었다.
그녀의 죽음 앞에서 모든 단어는 무의미했다.
디하트는 그저 달렸다. 그의 말이 비명을 내지를 때도, 절뚝이다 결국 바닥에 처박혔을 때도.
엉망진창인 꼴이란 건 이런 걸 말하는 거겠지. 스쳐 지나가는 생각이 사납게 그를 비웃었다. 그러나 두 다리는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해가 언제 저물었는지, 빗물에 젖은 옷은 언제 말라붙었는지.
목은 언제 다 갈라졌으며, 두 눈은 언제 감았었는지.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고, 기억할 이유도 없었으며, 기억했다 한들 떠올릴 시간조차 없었다. 그렇게 디하트는 북부에 다다랐다. 그의 고향에, 그의 집에, 그의 가족에게. 그리고 그곳엔 당연하게도 세벨리아가 있어야 했다. 그러나 그의 시야를 물들인 건 검은색의 향연. 하인들의 소스라치는 눈빛들.
“아.”
디하트는 진흙이 말라붙은 신발을 끌고 그대로 종이 울리는 곳을 향해 달음박질쳤다.
창문 너머로 사제의 나지막한 낭송이 시작되고 있었다. 그녀를 떠나보내는, 이 세상으로부터 완전히 작별시키는 마지막 인사였다.
‘안 돼.’
그럴 수 없어.
당신을 보낼 수 없다고.
쾅!
장례식장 안의 싸늘한 공기가 그를 밀쳤다. 그러나 디하트는 걸음을 내디뎠다. 그를 밀어내는 모든 시선을 뒤로하고 가장 높은 곳, 단 위로 향했다. 그곳에서 그녀는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말도 안 돼.”
우수에 잠긴 얼굴로 세벨리아는 평온하게 눈을 감고 있었다. 마치 그가 주던 고통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 평안에 다다른 듯 온전히 행복한 모습이었다.
“……아.”
토해 내지 못하는 비명이 그의 속을 달구었다. 새빨간 감정이 눈앞을 내리 긁었다.
“이게 진짜일 리가 없어. 당신이, 정말로.”
교만한 두 무릎이 어느새 그녀 앞에서 땅에 닿았다. 디하트는 관을 붙든 채 입술을 떨었다.
“안 돼, 세벨리아. 안 돼, 제발…….”
후드득, 빗줄기가 창문을 때렸다. 멀리서부터 천둥이 큰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공작부인의 안타까운 죽음을 추모하기에 적절한 날이었다.
* * *
콰광!
“꺄악!”
굉음과 함께 유리창이 터져 나갔다. 산산조각이 난 유리가 바닥에 흩뿌려졌다.
“허억, 헉…….”
피투성이가 된 하인들이 벽에 달라붙어 떨리는 숨을 내뱉었다. 벌써 며칠째인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공작부인의 장례식이 끝난 뒤 시작된 기현상은 점점 힐렌드 홀을 두려움 속으로 몰아넣었다.
하녀가 하인의 팔을 감싸 안으며 두려움에 떠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녀의 목덜미엔 기다란 상흔이 그어져 있었다. 유리창 파편이 스치고 지나간 흔적이었다.
“어, 어떻게 하지?”
“일단 집사님께 말씀드리자. 여기 더 있다가는…….”
하인은 핏물이 말라붙은 손으로 하녀를 다독이며 복도를 나서려 한 순간이었다.
콰앙!
기다렸다는 듯 지축이 뒤흔들렸다. 새하얀 번개가 지붕 위를 내리찍었다.
“아아악!”
순식간에 여기저기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꺅! 누가 이리 와 줘, 제임스가 사다리에서 떨어졌어!”
세벨리아의 장례식이 끝난 지 나흘.
힐렌드는 살아 있는 지옥도로 변해 가고 있었다.
* * *
깨진 유리창 앞에 서서 디하트는 어둡게 가라앉은 눈으로 저택 안을 내려다보았다.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하인들, 분주하게 그들을 다독이는 집사. 부릅뜬 두 눈으로 자신을 올려다보는 그렌까지.
“하하.”
장례식 직후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우스운 꼴이었다.
아마도 추모를 위해 방문한 귀족들이 모두 넌더리를 내며 돌아가겠지.
‘이게 그 악명 높은 인버네스의 실태라며 제멋대로 떠들어댈 테고 말이야.’
좋았다, 아주 끔찍하도록 좋았다. 가문의 위명과 명예가 진창에 박혀 구르게 되다니 이보다 기쁜 일은 없었다.
한참 동안 웃음을 터트리던 디하트의 얼굴이 일순간 새파랗게 굳었다.
“……세벨리아.”
우울감이 벼락처럼 그의 머리를 파고들었다.
그의 감정은 마치 파도를 타듯 고점과 저점을 미친 듯이 오갔다.
“당신이 이 모습을 봐야 하는데.”
당신을 속여 넘긴 그렌이 저런 추악한 얼굴을 하고 있는 걸 당신이 직접 목격해야 하는데.
그러면…….
‘아, 이게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디하트는 환멸감에 몸을 떨었다. 아니, 실은 그 전부터 그의 손은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하…….”
모든 게 끔찍했다. 이 저택의 모든 게 견딜 수 없을 만큼 넌더리가 났다.
“하지만 가장 끔찍한 건 나겠지.”
스스로의 위선을 비웃으며 디하트는 등을 돌렸다. 테이블 위에 널브러진 술병과 환각초가 반갑게 그를 맞이했다.
“그래봤자 다 변명이지만…….”
그는 연초 대신 환각초를 눌러 담았다. 이 기막힌 물건은 그에게 세벨리아의 환각을 보여 주었다. 무려 그를 사랑하고, 기다리는 세벨리아를 보여 주는 것이다. 텅 빈 웃음이 입술을 타고 새어 나왔다.
아, 그때 그렇게 그녀를 몰아붙이지 말 것을.
화를 내고 돌아서는 대신 한 번이라도 그녀에게 사정을 물어볼 것을.
언제나 그렇듯 후회는 뒤늦게 그를 찾아왔다. 그리고 그는 두 손에 날카로운 채찍을 든 후회를 두 팔 벌려 맞이했다.
“……커헉!”
연기를 깊이 들이마신 그의 입가로 피가 한 움큼 뿜어져 나왔다. 그러나 그의 눈은 감격에 젖어 허공 어딘가를 헤매고 있었다.
“아, 세벨리아. 당신. 거기에 있었군요.”
디하트가 그녀를 향해 손을 뻗었다.
“이리 와요.”
날카로운 유리창 끝이 그의 손을 할퀴었다.
* * *
“도대체 무슨 생각이니, 디하트!”
정신을 차리자 가장 먼저 보인 건 눈물 가득한 플로라와 쓰러지기 일보 직전인 그렌이었다.
“제발 그만하렴. 세벨리아의 죽음만으로도 이미 큰 상실인데 너마저 그렇게 되면…….”
말없이 눈을 깜빡이던 디하트는 제가 창가에서 떨어지기 직전 누군가에 의해 끌어올려졌다는 걸 기억해 냈다.
‘라이언.’
그의 눈이 방 안을 훑었다. 그러나 라이언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
디하트는 몸을 일으켜 제가 머물던 방으로 돌아가려 했다.
‘세벨리아는 그곳에서만 나타나.’
그러나 그가 침대 밖으로 발을 내딛은 순간, 플로라의 철없는 말이 그의 이성을 끊어 버렸다.
“오라버니, 언제까지 그 저주받은 여자 때문에 이러실 거예요?”
챙그랑! 챙강!
플로라의 말이 끝나자마자 방 안에 있던 모든 유리잔이며 공예품들이 일시에 터져 나갔다.
“너 지금 무슨 짓을.”
그렌이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디하트를 응시했다.
“내가…….”
헝클어진 검은 머리 사이로 벼락이 치는 듯한 금빛 눈동자를 치켜뜨며 디하트가 말을 이었다.
“아직도 아무것도 모른다고 생각하나 봅니다.”
날카로운 비웃음이 뒤따랐다. 그렌의 표정이 일순간 딱딱하게 굳었다.
‘설마.’
그녀의 가슴에 한줄기 의혹이 솟아올랐다. 그사이 플로라는 겁먹은 얼굴로 고개를 도리질 치며 그의 팔목을 붙들었다.
“오라버니, 이러지 마세요.”
지금 그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 미친 여자가 그녀의 오라버니마저 잡아먹으려 하고 있었다.
“제발 정신 차리세요, 네? 제가 주술사를 불러서라도 오라버니를 다시…….”
그 순간, 그렌에게 박혀 있던 그의 시선이 플로라에게 향했다.
“너도 알고 있었을까.”
“네?”
“알고 있었다면 언제부터였을까. 그녀가 권리를 빼앗기기 전부터? 아니면….”
초췌한 안색, 엉망진창인 옷차림새, 형형한 안광. 마치 광인을 앞에 두고 있는 것 같았다.
‘무, 무서워.’
플로라는 저도 모르게 그를 붙잡은 손을 놓고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그러나 디하트는 끈질겼다.
“그만, 그만하렴.”
보다 못한 그렌이 플로라의 앞을 막아섰다.
“디하트, 이미 끝난 일로 가족 사이에 상처를 주지 말자꾸나.”
고개를 빳빳이 치켜든 그녀에게서는 부끄러움이라고는 한 점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리고 너도 알다시피 세벨리아의 죽음은 그녀 혼자만의 비극이야.”
그렌은 내심 그녀가 혼자 자살한 것에 감사했다.
혹여라도 암살자를 썼었다가는 어떻게 됐을런지. 식은땀이 등을 타고 흘렀다.
‘태도를 보건대 아마 옛날에 벌인 수작질 정도만 알아차린 모양이지.’
그렌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이야.’
이런 때일수록 뻔뻔하게 나가야 했다. 잘못 앞에 고개를 숙이는 순간, 제 손으로 상대에게 승리를 가져다 바치는 거나 다름없었다. 그렌은 더없이 다정하고 우수 어린 목소리로 디하트를 설득하려 노력했다.
“우리는 인버네스를 위해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이란다. 선선대 공작님의 가족분들이 원하시는 것처럼.”
“…….”
라쉬와 똑같은 말, 똑같은 태도였다.
그렌을 올려다보는 디하트의 눈에 불꽃이 타올랐다. 그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렌은 무심결에 플로라를 껴안고 거리를 벌렸다. 그러나 디하트는 그녀에게 달려들지 않았다.
“그거 알고 계시나요, 숙모님.”
헝클어진 머리를 쓸어 넘긴 디하트가 살이 빠져 날카로워진 눈매로 그녀를 직시했다. 그와 동시에 방 안 곳곳에서 파직거리는 소음과 함께 작은 빛이 바닥을 때리기 시작했다.
“너, 이게 무슨……!”
경악에 찬 그렌의 얼굴 위로 활활 타오르기 시작한 방 안의 정경이 비췄다.
카펫이며 태피스트리, 창을 가린 두꺼운 커튼. 하물며 최고급 목재로 만든 문까지. 그 모든 것에 하얀 불꽃이 내리꽂혔고, 이윽고 폭죽 같은 불꽃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원래 쥐는 불을 붙여 쫓아낸다고 하더군요.”
나른한 음색으로 설명을 덧붙이며, 디하트가 손수 창문을 열어 주었다.
“그래도 가족이라 그런지 눈앞에서 질식해 죽는 꼴은 좀 그렇군요. 자, 어떠신가요. 뛰어내리는 게 힘들면 등을 밀어 드리죠.”
“오라버니!”
플로라의 절규와 함께 거센 바람이 그의 뺨을 할퀴고 지나갔다.
“……드디어 실성했구나. 그 저주받은 피가 깨어나 버린 거야.”
디하트는 자신을 노려보는 그렌을 마주 보며 차갑게 웃었다. 자신이 미쳤다는 건 딱히 부정할 필요도 없는 사실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