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fter I Died, My Husband Went Mad RAW novel - Chapter (32)
내가 죽고 남편이 미쳤다 (32)화(32/171)
하늘을 갈망하듯 날아가던 푸른 새들은 잠시 뒤 흔적도 없이 녹아내렸다. 기현상에 시선을 주었던 사람들은 다시 자신들의 논쟁으로 되돌아갔고, 디하트만이 시간 속에 갇힌 듯 서 있었다.
“공작님.”
일레이가 그를 불렀다. 머뭇거림 하나 없이 뻔뻔스러운 성격은 이럴 때 진가를 발휘했다.
“괜찮으십니까?”
그러나 눈치 없는 일레이라 하더라도 디하트를 보고서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고개를 끄덕이는 디하트의 금빛 눈동자에서 섬광이 뚝뚝 떨어져 내렸고, 전율에 덜덜 떨리던 두 손은 주먹을 꽉 쥐고 있었다. 혼란에 잠식되어 있던 기색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에게선 차가운 의지만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그래.”
일레이는 형언할 수 없는 압박감을 느꼈다. 마치 얼음 속에서 춤추는 불꽃을 바라보는 것 같았다. 금방이라도 유약한 얼음의 결을 부수고 나와 세상을 불태울 존재를 속절없이 응시하고 있어야만 하는 기분.
일레이는 자신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
‘이런 모습은 처음 보는데, 설마 이게 본모습이신 건가.’
사촌 형인 라이언의 추천으로 합류하기 전까지, 일레이는 디하트를 가까이서 대면한 적이 없었다. 그래서 그는 디하트가 본래 성정이 불같고, 판단에 있어서 성급하며, 하나에 몰두하면 다른 건 모두 잊어버릴 정도로 편집증적이라 생각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공작이 되기에는 결손이 많은 인물이라 판단했다.
하지만 눈앞의 디하트는 그 판단과는 사뭇 달랐다. 자신의 생각대로라면 그는 죽은 공작부인과 닮은 사람을 만난 순간 폭죽처럼 터지고 앞뒤 분간 못한 채 날뛰어야 하는데…….
지금의 그는 소름 끼칠 정도로 차분했다.
일레이에게 그건 청신호가 아니었다. 디하트는 지금 단발머리의 여인을 공작부인이라 착각하고 있으니까. 착각으로 인해 정신이 돌아왔다면, 그 착각이 거짓임을 깨달았을 때의 반작용은 더욱 클 것이다.
“……정말로 그분이라 확신하시는 겁니까.”
일레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일레이의 질문에 디하트가 무슨 당연한 소리를 하냐는 듯 눈을 치떴다. 일레이는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그의 착각이 굳어지기 전에 재빨리 깨 버릴 필요가 있었다. 이건 그를 위해서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인버네스를 위해서이기도 했다.
“불쾌하게 생각하지 마시고 들어주십시오. 힐렌드 홀에서 열린 장례식에서…… 직접 두 눈으로 보시지 않으셨습니까.”
“…….”
“공작님께서는 직접 공작부인의 마지막을 확인하셨습니다. 그리고 힐렌드 홀의 모두가 함께 그분을 보내 드렸지요.”
그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하다못해 중앙에서 온 이들까지 세벨리아의 시신을 확인했다.
“힐렌드 홀의 가족묘지에는 아직도 그분이 누워계십니다. 훗날 공작님께서 마지막 안식을 취하게 되실 자리의 바로 옆에.”
일레이의 날카로운 지적에 디하트의 입매가 딱딱하게 굳었다. 억지로 외면했던 현실이, 희망과 마주친 순간 그에게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정말로 확신하시는 겁니까?”
어째서 그분이 공작부인이라고, 믿고 계시는 겁니까?
일레이의 조심스러운 질문이 화살처럼 그의 가슴을 꿰뚫었다. 디하트는 그의 질문에 답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녀가 세벨리아니까.’
그딴 헛소리밖에 지껄일 수 없는 게 현실이니까. 하, 디하트는 실소를 터트렸다. 수천 개의 바늘이 따갑게 피부를 찔러 대는 기분이었다.
“……미치광이가 진실로 자신이 미쳤다는 걸 자각하는 기분이 이런 건가.”
일레이의 지적이 그에게 이성이라는 찬물을 뒤집어씌웠다. 과거와 대치되는 현실이 열기에 불타오르던 뇌를 차갑게 식혔다.
가슴은 방금 전 그가 마주친 여인이 현실이라 답했다. 그러나 머리는, 그가 겪은 경험과 이성은 그저 닮은 이일 뿐이라고, 진짜 세벨리아는 이미 죽었다고 외쳤다.
‘무엇이 사실인가. 아니, 나는 무엇이 진실이라고 믿고 싶은 거지.’
세벨리아가 자살하지 않았을 거라는 그 얄팍하고 협소한 믿음. 그 믿음 하나를 가지고 이곳까지 다다랐다. 그런데 갑자기 살아 있는 그녀가 자신 앞에 나타났다? 죽음에 관한 진실의 마지막 퍼즐을 찾으려는 이 순간, 바로 이 장소에서?
“다 환상이었나.”
디하트가 갈라진 목소리로 부서지는 음절들을 내뱉었다.
“두 눈으로 보았다고 생각했으나 실은 그렇게 보기를 원한 것뿐이었나.”
희망에 부푼 머리가 완전히 돌아 버려 끝내 환각을 사실이라 착각하게 되었나.
‘나는…… 사실 그녀가 살아 있기를 바랐던 건가?’
날카로운 쇠붙이가 속을 득득 긁어내리는 것 같았다. 감추고 감춰 왔던 속마음이 완전히 까발려졌다.
미치광이라는 소리를 들으면서까지 그녀의 죽음에 비밀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 온 이유. 하나 남은 가족들을 탑에 몰아넣고 북부를 떠나면서까지 매달려 온 이유.
사실은 그녀가 죽었다는 걸 믿고 싶지 않아서.
그녀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가 없어서.
‘적어도 자살이 아니기를, 누군가에 의해 억울하게 죽었다면…… 아주 조금은,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아서.’
“하…….”
피비린내가 자욱하게 퍼지는 생지옥. 그 가운데서 디하트는 하얗게 물들어 가는 두 눈을 느리게 깜빡였다.
일레이는 그런 디하트를 담담하게 바라보았다. 공작부인이 살아 있다고 생각하는 그 어리석은 믿음을 버리길 바라면서. 그러나 디하트는 멍하니 하늘을 응시하더니, 입을 열었다.
“……도시의 남문과 서문에 기사단원들을 상주시켜라.”
“예?”
“남작에게는 협조를 구해서 야간 경비와 순찰을 강화해. 일단 빠져나가지 못하게 막는 게 일 순위다.”
“공작님!”
일레이의 눈이 일그러졌다.
“환각인지 아닌지, 내 착각일 뿐인지 아니면…… 내가 모르는 비밀이 숨겨져 있는지 다시 만나면 알 수 있겠지.”
태양처럼 환하게 떠오른 금빛 눈동자 위로 새하얀 벼락이 내리치고 있었다. 일레이는 그 모습에 숨을 삼켰다.
미치광이는 스스로 답을 내릴 수 없었다.
* * *
앞서는 디하트를 따라가며 일레이는 고민했다. 그의 상관은 정말 미쳐 버린 것일까. 아니면 정말 믿기 힘들지만 공작부인이 사실 쌍둥이였던 걸까. 눈치는 없지만 이성적인 일레이에게 공작부인이 살아 있다는 사실은 납득할 수 없는 오류였다.
왜냐하면 공작부인은 죽었고, 절차에 따라 장례식까지 치렀으며, 공식적으로 사망 처리가 완료되었으니까.
한 사람을 세상에서 지우는 일은 그리 허술하게 이뤄질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수많은 관례와 그 관례를 집행하는 사람들의 식견이 개입된다.
‘그런데 저택에 틀어박혀 있던 공작부인이 그런 일을 벌일 수 있다고?’
만약 공작부인이 살아 있다는 게 사실이라면 시체부터 구해야 했을 터이다. 그것도 자신과 똑같이 생긴, 죽은 지 얼마 안 된 싱싱한 사체를.
그리고 그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를 어쩐다.’
일레이는 일사불란하게 기사들에게 명령을 내리는 디하트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대로 내버려 둔다면 피해를 입는 사람들의 수는 늘어날 터였다.
그리고 그 첫 타자는 필시 공작부인과 닮았다던 그 여인이겠지. 일레이는 수척하고 생기 없어 보이던 공작부인과 달리 당차 보이던 갈색 단발머리의 여인을 떠올렸다.
도망간 걸 보아하니 사정이 있거나 공작님이 제정신이 아니라는 걸 느껴서일 텐데. 그러면 분명 도시를 떠나려 할 거고, 필연적으로 부딪힘이 생길 게 뻔했다.
‘어차피 붙잡히게 될 바엔, 불이 커지기 전에 미리 진화하는 게 나아.’
잠시 고민하던 그는 결국 디하트에게 다가갔다.
“공작님.”
“혹시 모르니 유적에도…… 뭐지?”
지시를 내리던 디하트가 고개를 돌려 그를 응시했다. 하얗게 물들었던 그의 눈동자는 어느새 찬란한 금빛으로 돌아와 있었다.
일레이가 조심스럽게 그의 귓가에 속삭였다.
“실은 방금 전 만나신 분이 묵고 계시는 곳을 알고 있습니다.”
찌를 듯한 시선이 돌아왔다. 당장에 두 동강을 내고 싶다는 눈빛이었다. 일레이는 침을 꿀꺽 삼켰다.
‘섣불렀나.’
아니다. 어차피 꺾이게 될 희망이라면 그것이 기지개를 켜기 전에 짓밟는 게 나았다. 일레이는 결의를 다지고 디하트에게 여관의 주소를 말했다.
디하트의 입술이 꽉 다물렸다.
* * *
짐을 챙겨 나온 세벨리아는 복도를 날듯이 뛰었다.
‘뒷골목을 통해서 언덕으로 가자.’
디하트가 무슨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방금 전의 상태를 보아하니 일단 붙잡히면 안 된다는 건 확실했다.
‘그런 눈은 처음 봤어.’
지독한 눈이었다. 수십 번의 희망을 배신당한 눈, 수백 번의 기대가 짓밟힌 눈. 그러다 어느 순간 다시 한번 꿈을 꾸는 듯한 눈.
세벨리아는 디하트가 그런 눈으로 자신을 바라봤다는 사실에 소름이 돋았다. 그리고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자신이 이미 ‘공식적’으로 죽은 사람이라는 사실은 그에게 아무런 소용도 없을 거라는 것을. 수백 번의 좌절과 절망을 맛본 사람의 앞에 나타난 그녀라는 기회는 그 어떤 이성의 작용도 무의미하게 만들 거라는 사실을.
그러니 차라리 마주치지 않는 게 상책이었다. 만에 하나 피할 수 없더라도, 동등하게 맞붙을 수 있는 상태에서 마주하는 게 최선이었다.
“그러니 지금은 안 돼.”
기억이 잘못된 게 아니라면 그의 곁에 있었던 건 일전에 라이언으로 착각한 외양의 사내. 그렇다면 그는 정말로 라이언의 친인척일 가능성이 컸다.
‘공작씩이나 되는 이가 겨우 한 명의 기사만 대동하고 왔을 리 없지.’
바삐 걸음을 옮기는 그때, 창 너머의 거리가 갑자기 떠들썩해졌다. 세벨리아는 계단을 내려가려다 말고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푸른 눈이 다시 없을 만큼 크게 확장되었다.
‘벌써!’
창밖으로 보이는 건 대여섯 명의 기사와 그들을 이끄는 디하트였다. 일부러 가문의 표식이 달린 정복을 입고 왔는지 사람들이 놀라 길을 터주는 게 보였다.
‘작정을 했구나.’
세벨리아는 떨리는 손으로 창틀을 짚었다. 기사들이 여관의 입구를 봉쇄하는 게 보였다. 어떻게 하지. 그녀는 입 안쪽의 여린 살을 깨물며 정신을 차리기 위해 노력했다.
‘정면돌파는 무리야.’
기사들을 이끌고 오는 디하트에게서 말이 아닌 힘으로 제압하겠다는 의지가 느껴졌다. 잡힌 뒤에는 자신이 아무리 세벨리아가 아니라 항의한다고 하더라도 소용없으리라.
“애초에 내 장례식까지 참석했으면서 어떻게 내가 살아 있다는 생각을 하는 건지…….”
정말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오만하던 남자가 미치기라도 한 걸까? 보통 사람이라면 닮았다고 생각하지,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을 텐데.
초조해하던 세벨리아는 문득 떠오른 생각에 눈을 깜빡였다.
“…그래.”
그가 바라는 게 ‘살아 있는 나’라면 그걸 주면 되겠어.
세벨리아는 차분한 얼굴로 등을 돌려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