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fter I Died, My Husband Went Mad RAW novel - Chapter (33)
내가 죽고 남편이 미쳤다 (33)화(33/171)
방으로 돌아온 세벨리아는 짐을 내려놓고 눈을 감았다. 내려져 있던 손이 부드럽게 올라와 어깨와 수평을 이루었다. 아주 짧은 시간, 누군가 공기를 양쪽에서 잡아당기듯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그리고 다음 순간 환한 빛이 그녀의 손안에서 피어올랐다.
파앗-!
세벨리아는 눈을 뜨고 손을 퉁기듯 활짝 폈다. 그러자 빛무리가 허공으로 떠올라 그녀의 앞에 자리했다. 스르륵…….
손바닥만 했던 빛이 조금씩 커지더니 이윽고 사람만 한 크기로 커졌다.
“됐어.”
다른 사람들이 이 광경을 보았다면 필시 놀라다 못해 경악했으리라.
“이번에도 네게 부탁할게.”
그녀가 만들어 낸 건 다름 아닌 또 하나의 자신이었다. 세벨리아는 자신과 똑 닮은 환영을 마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제발 그가 정신을 차렸으면 좋겠네.”
창백한 세벨리아의 환영이 조용히 눈을 깜빡였다.
* * *
일레이가 여태껏 숨기고 있던 비밀은 디하트를 분노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다행인 점은 디하트가 스스로를 의심하고 있는 상황이었다는 것이다.
그는 일레이가 지적한 그의 허점, 즉 사망한 세벨리아를 직접 확인했다는 사실 때문에 혼란스러운 상태였다. 그는 두 눈으로 세벨리아의 시신을 보았고, 그 차가운 뺨을 만졌으며, 그녀의 이마에 마지막 키스를 남겼다.
‘그렇다면 내가 본 건 도대체 뭐지?’
미치광이는 답을 내릴 수 없었고, 뿌리 깊은 의문은 그를 괴롭히기만 했다.
그녀는 부정할 수 없을 정도로 세벨리아와 똑같은 생김새를 가지고 있었다. 심지어 자신을 목격한 이후에는 눈에 띄게 당황했으며, 어떤 수를 썼는지는 몰라도 자신을 뿌리치고 달아났다.
결국 그는 앞선 결심을 반복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녀를 만나야 해.”
스스로 답을 내릴 수 없다면, 그녀에게서 그 답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디하트는 일레이가 말한 숙소로 기사들을 이끌고 달려왔다. 도시의 출입문으로 보낸 이들을 제외하고 남은 인원을 모두 끌고 온 셈이다.
“입구부터 봉쇄해라. 딕슨은 가서 주인에게 상황을 설명해. 러들리, 너는 뒤로 돌아 직원용 출입구가 있는지 살피고 있다면 그곳을 지켜라.”
“예!”
“알겠습니다.”
명령을 받은 기사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사방으로 흩어진 이들이 출입문을 봉쇄했다. 아, 그녀를 붙잡을 시간이 머지않았다. 다시 한번 그 푸른 눈을 들여다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런.”
디하트는 심장이 귀에 달린 것처럼 미친 듯이 뛰고 있는 걸 느꼈다. 그는 흥분을 가라앉히기 위해 잠시 멈춰 섰다. 일레이가 그의 뒤에 따라붙었다.
“괜찮으십니까?”
“됐으니 가서 합류해라.”
디하트가 손을 내저었다. 그러나 일레이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디하트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동안은 주변을 신경 쓸 여력이 없어 그의 방자함을 내버려 둔 감이 없잖아 있었다. 하지만 계속 이런 식이면 곤란했다.
“일레이 허스필드, 딱 한 번만 말하지…….”
“공작님, 위를 보십시오.”
답지 않게 떨리는 목소리였다. 디하트는 눈썹을 치켜올렸고, 일레이는 떨리는 손으로 그의 어깨를 붙잡았다. 디하트의 시선이 일레이를 따라 움직였다.
“……안 돼.”
고개를 든 모든 이들이 동시에 신음을 흘렸다. 건물의 가장 높은 곳, 활짝 열린 창문 사이로 흰 커튼이 나부꼈다. 그리고 깃발처럼 위세를 떨치는 하얀 커튼 뒤로 한 사람이 앉아 있었다.
바람결에 가볍게 흔들리는 갈색 머리, 무심한 푸른 눈동자. 왕좌에 앉아 있듯 오만하고 담담한 눈빛.
“세벨리아.”
그 이름을 입 밖으로 꺼내는 순간, 불길이 목구멍까지 치솟아 올랐다. 두 눈이 불에 달궈진 듯 홧홧해지고 물에 처박힌 것처럼 귀가 먹먹해졌다.
그러나 세벨리아는 그런 그의 사정 따위는 모르는 듯, 무심한 얼굴로 창틀에 앉아 있을 뿐이었다.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처럼 아슬아슬한 그녀의 모습이 흰 천에 가려졌다 드러나길 반복했다.
당장에라도 그녀에게 달려가려는 몸을 저지한 건 일레이였다.
“저리 비켜!”
“진정하십시오!”
일레이가 창백해진 얼굴로 디하트를 붙잡았다. 창틀에 앉은 여인을 본 순간부터 그의 머릿속은 완전히 엉망진창이었다.
‘설마 정말로 공작부인이었던 건가?’
일레이는 디하트에게 숙소를 알려 주는 순간까지도 믿지 않았다. 그는 그저 공작부인과 닮은 여인을 디하트와 대면시키고, 현실을 납득시키려는 의도였을 뿐이었다.
그런데 상황이 이상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일레이는 기껏해야 여인이 크게 화를 내고, 자신들은 서프레디 남작에게 쫓겨나는 상황을 최악으로 상정했다.
‘그런데 창틀에 올라가다니?’
부정하고 싶었지만 일레이에게는 그녀가 자신들의 접근을 두려워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빌어먹을.’
그는 결국 상관의 비이성적인 추측이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데에 생각이 닿았다. 만약 저 여인이 그저 닮기만 했을 뿐 아무 상관없는 제삼자라면 이딴 행동은 하지 않았을 테니까.
그는 결국 자신을 걷어차는 디하트를 억지로 붙잡으며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제가 올라가겠습니다. 가서…… 저분을 설득해 보겠습니다!”
“네 시간 낭비에 어울려 줄 생각 없다.”
“만에 하나 잘못된다면 공작님께서 저분을 안전하게 받아 주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날카로운 시선이 일레이를 파고들었다. 그는 저도 모르게 숨을 삼키며 디하트를 잡은 손을 놓았다. 일순간 정말로 칼에 베이는 환각이 보였다.
“가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디하트는 이를 꽉 깨문 채 세벨리아를 올려다보았다. 그녀는 평온한 얼굴로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방금 전 마주쳤을 때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
그리고 디하트는 그런 태도를 다른 데서도 익히 본 적 있었다.
‘마지막 각오를 하고 전투에 나서는 기사들.’
사랑하는 모든 것들과 작별인사를 끝내고 죽음을 결사하여 칼을 드는 자들. 그들만이 내보이던 초연한 분위기가 지금의 세벨리아에게서 엿보였다.
“젠장!”
디하트가 결정을 내리고 일레이를 보내려던 순간이었다.
“으아악!”
“사람이……!”
“안 돼, 받아!”
비명과 절규가 하늘을 찌를 듯 높이 솟아올랐다. 두 사람의 시선이 동시에 세벨리아에게 향했다. 세벨리아가 창틀 위에 서서 허공을 향해 발을 뻗고 있었다.
“……!”
고민할 시간 따위는 없었다. 지금 이 순간 생각이란 죄악이었다. 디하트는 땅을 박차며 두 팔을 멀리 뻗었다.
‘제발, 제발, 제발!’
가슴이 터져 나갈 것만 같았다. 머릿속에서 끔찍했던 그 날의 장면들이 지나갔다. 장례식장의 장엄한 종소리, 사제의 길고 끔찍한 미사, 관 속에 평온한 얼굴로 누워 있던 그녀.
차갑게 식은, 다시는 눈을 뜨지 않을 그녀의 모습.
털썩.
그리고 다음 순간, 거리 전체가 형언할 수 없는 안도감으로 물들었다. 그러나 단 한 사람만은 예외였다.
세벨리아를 품 안에 꽉 끌어안은 채 땅을 구른 디하트만이 차가운 공포 속에서 덜덜 떨었다.
“공작님!”
일레이가 달려와 그와 세벨리아 두 사람을 살폈다. 그는 거친 숨을 토해 내며 세벨리아를 꽉 껴안는 디하트의 모습에 신음을 삼켰다.
‘진짜였나.’
의심과 혼란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던 이성이 조금씩 디하트에게로 기울어졌다. 일레이는 이제 저 갈색 머리의 여인이 진짜 공작부인이 아니더라도, 공작부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렇게까지 원한다면 비록 다른 인물이라 하더라도 공작부인으로 살아가게 만드는 것도 나쁘지 않아.’
나름대로 만족스러운 결과를 도출해 낸 일레이는 기사들을 불렀다. 디하트가 정신을 차리는 대로 세벨리아를 곱게 모셔가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순간, 기절한 줄 알았던 세벨리아의 눈이 번쩍 뜨였다. 푸른 눈이 정처 없이 흔들리더니 디하트를 향해 고정되었다.
“세벨리아!”
디하트가 가장 먼저 그것을 알아차리고 그녀의 뺨을 손으로 감싸 안았다. 갈기갈기 찢어진 음성으로 그가 세벨리아를 연신 불러댔다.
“세벨리아, 세벨리아……. 정말 당신이 맞는 건가? 내가 보고 있는 게 정말 당신이야?”
절망과 희망, 공포와 기대가 뒤섞인 끔찍한 목소리였다. 아무리 냉정하고 무심한 이라 하더라도 끝없이 무너져 내리는 그 목소리 앞에서는 동요하지 않고서는 못 배길 정도였다.
그러나 그를 올려다보는 푸른 눈은 지독하리만치 차갑고 무심했다. 가까이서 두 사람을 지켜보던 일레이가 그 섬찟함에 주춤할 정도로.
이윽고 그녀의 입술이 조심스럽게 열렸다. 그 사이로 새어 나온 목소리는 아주 작고 희미해, 디하트는 고개를 기울이고 나서야 겨우 들을 수 있었다.
“…….”
입술이 닫히는 순간, 나락이 입을 벌렸다. 디하트는 절망에 빠진 얼굴로 그녀를 붙들었고…….
화악-!
그의 품에 안겨 있던 세벨리아는 푸른 깃털이 되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이게 무슨…!”
일레이를 비롯한 기사들이 바로 사방으로 흩어졌으나 소용없었다. 그들의 눈에 보이는 것이라고는 거리 위로 눈처럼 흩날리는 푸른 깃털들뿐.
‘설마 했는데, 마법사였나?!’
일레이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이제야 알아차리다니, 인버네스의 기사로서 실책이었다. 만약 마법사라면 죽은 공작부인인 척 위장을 하고 그들을 농락했을 가능성도 없지 않았다.
‘공작님의 정신을 망가트리기 위한 수작인가!’
북부를 대표하는 인버네스 가문의 수장이 그의 아내가 죽은 뒤 정신적으로 취약해졌다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 그걸 이용해 인버네스 전체를 흔들려는 추악한 자가 나타난 걸지도 몰랐다.
“역겨운 자식들.”
일레이는 욕설을 삼키고 디하트의 곁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 디하트는 세벨리아를 안아 들었던 자세 그대로 바닥에 두 무릎을 대고 있는 상태였다.
“……공작님.”
“…….”
“명령을 내려 주십시오. 감히 이런 짓을 저지른 이를 잡아 올리겠습니다.”
무겁게 침잠한 금빛 눈동자가 일레이를 담았다. 녹이 슨 금속처럼 탁하게 빛나는 두 눈 위로 그의 모습이 튕기듯 스쳐 지나갔다. 일레이는 문득 불안해졌다.
소름 끼치도록 낮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자신은 이미 죽은 자라더군.”
“……예?”
“내가 본 건, 내가 보길 바란 건…… 돌이킬 수 없는 과거라고, 세벨리아 인버네스는 결코 살아서 내게 돌아올 수 없다고 하더군.”
하, 하하. 소리 없는 웃음을 터트리며 디하트가 두 손에 얼굴을 파묻었다.
역시 미치광이는 결코 원하는 답에 다다를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