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fter I Died, My Husband Went Mad RAW novel - Chapter (4)
내가 죽고 남편이 미쳤다 (4)화(4/171)
어처구니없게도 그녀와의 결혼생활은 나쁘지 않았다. 중앙이 떠넘긴 신부는 마치 제 트라우마를 자극하려는 듯 사생아 출신이었으나 성정은 그다지 나쁘지 않았다.
디하트는 그게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자고로 순조로운 현재란 시련 가득한 미래를 위한 발판이나 마찬가지였다.
특히나 자신같이 불운한 인간에게는 더더욱.
그때, 그의 고민을 치워 버리려는 듯 라이언의 목소리가 치고 들어왔다.
“제법 잘 지내시는 것 같습니다.”
“부관을 새로 뽑을 때가 되었나 보군. 네가 날 상대로 농담을 던지니 말이야.”
깊은 유감이 담긴 눈으로 라이언을 응시한 디하트가 펜을 휘갈겼다.
“하지만 매번 식사를 함께하지 않으십니까. 오늘도 이렇게…….”
라이언이 순식간에 끝난 업무를 바라보며 인자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일찍 퇴근하시기 위해 정력적으로 일하시니 참 보기 좋습니다.”
“정말로 후임을 뽑을 때가 된 것 같군.”
디하트가 혀를 차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벌써 벗어 두었던 외투를 입은 상태였다. 누가 봐도 집에서 오매불망 기다릴 신부를 위해 퇴근을 서두르는 새신랑의 모습이었다. 비록 그 자신은 끝까지 인정하지 않고, 감시를 위해서라며 치를 떨지만 말이다.
“그 여자, 입맛도 괴상하더군. 이상한 향신료를 좋아해. 어디서 배워 온 버릇인지…….”
디하트는 투덜거리면서도 그녀의 입맛을 꿰고 있다는 걸 줄줄 흘리고 있었다. 물론 본인은 믿을 수 없는 여자에 대한 정보수집이라고 피력했다.
“아무튼 무슨 속셈인지 낱낱이 알아 둬야겠어. 매번 웃음으로 무마하니 자꾸만 그냥 넘어가게 된단 말이지.”
이상한 투지를 불태우는 상관을 보며 라이언은 고개를 내저었다. 그러나 그 기묘한 평화는 그의 예상대로 오래가지 못했다.
“변명해 보세요, 부인.”
“디하트, 나는. 난…….”
그녀의 아름답고 상냥한 가면이 산산조각이 나서 그의 심장을 찔렀다. 그 부정할 수 없는 고통에 디하트는 뒤늦게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어리석게도 그녀를 마음에 담고 말았다는 사실을.
* * *
“……제기랄.”
잠에서 깬 디하트는 욕설을 내뱉으며 얼굴을 감쌌다.
“빌어먹을.”
거세게 뛰는 심장을 움켜쥐며 그는 이를 세게 깨물었다. 그는 두 눈을 느리게 깜빡이며 스스로의 어리석음을 비웃었다. 그녀의 순진한 연기에 속아 놓고 다시금 그때의 꿈을 꾸는 멍청한 자신을.
“또 배신당해도 할 말이 없군.”
동이 트고 있는 창밖을 바라보며 그가 창백한 얼굴로 웃었다.
* * *
쾅쾅쾅!
몽롱한 정신으로 일어난 세벨리아는 지진이 난 줄 알았다.
콰앙! 쾅!
그러나 그건 지진이 아니라, 처음 맞이해 보는 손님이었다.
“세벨리아! 당장 이 문 열어!”
그것도 제멋대로 온 불청객 말이다.
“세벨리아!”
우렁찬 목소리가 연신 문을 울렸다. 뒤이어 자신을 걱정하는 듯한 애원 섞인 말이 뒤따랐다.
“더러운 소문에 휘둘릴 필요 없다 하지 않았느냐. 어서 문을 열거라, 이 오라버니는 그런 말 따위 믿지 않는단다…!”
‘저게 무슨 헛소리…… 잠깐.’
세벨리아는 문밖에서 들리는 가식적이고 허세 가득한 목소리가 익숙하다는 걸 깨닫고 몸을 굳혔다.
‘네이튼이잖아.’
그녀의 배다른 오빠이자, 넬리아의 쌍둥이인 네이튼.
그는 앞장서서 자신을 인버네스 공작가로 보내자 주장한 자이기도 했다.
[넬리아보다는 세벨리아를 북부로 보내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저 애에겐 그곳 분위기가 잘 맞을 겁니다. 문제를 일으킬까 하는 걱정은 마세요. 제가 자주 찾아갈 테니.]자신보고 죽으라는 거냐며 북부로 가기 싫다 울부짖는 넬리아 앞에서 네이튼은 잘도 그렇게 말했다.
[흠.]그리고 아버지는 논리 정연하게 포장한 그의 헛소리를 고심하는 척 기다렸다는 듯 받아들였다.
그렇게 세벨리아의 결혼이 결정되었다.
물론 너무 당연하게도 네이튼은 그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인버네스는커녕 북부에 발을 들인 적 조차 없으니. 하지만 어쩌겠는가. 세벨리아는 이미 북부 공작의 부인이 되었고, 네이튼은 수도에서 평생을 살 사람이었다.
그렇게 세벨리아에겐 그의 거짓말을 책벌할 기회도, 권리도 주어지지 않았다. 그런데 자신을 팔아 치운 공신이 바로 지금 저 문밖에서 자신을 부르고 있는 것이다.
그때였다.
콰앙!
“계속 이렇게 오라버니를 걱정시킬 셈이냐…… 젠장, 제발 문을 열어 주렴!”
네이튼이 애원하는 척 문을 한 번 더 거세게 흔들었다. 어찌나 과격한 안부 인사인지. 마침내 경첩이 삐거덕거리기 시작했다.
“하아….”
세벨리아는 일단 제 머리맡에서 종종거리는 새를 되돌려 보낸 뒤 잠옷 위로 카디건을 껴입었다.
네이튼의 성격상 오래 기다려 주지 않을 게 분명했다. 태평하게 옷을 갈아입을 시간 따위는 없었다.
게다가….
‘저리 소란스럽게 구는 걸 보니 집사와 이미 이야기가 끝났나 보군.’
사용인 한 명 달려오지 않는 걸 보면 암묵적인 허락이 있는 듯했다.
그 순간이었다.
빠직-
마침내 경첩이 부러지며 문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쾅!
“콜록…….”
바람에 먼지가 떠올랐다. 세벨리아는 자연스럽게 입가를 막으며 뒷걸음질 쳤다. 네이튼이 곧장 그녀에게로 들이닥쳤다.
“세벨리아, 너.”
도망친 범죄자를 잡으러 온 듯한 분위기였다. 붉어진 얼굴로 악귀처럼 제게 달려드는 그의 모습에 세벨리아의 몸이 반사적으로 굳었다. 어린 시절 그녀의 손목을 부여잡고 끌고 가던 네이튼의 모습이 그 위로 겹쳐졌다.
그리고 끌려가는 자신을 보지 못한 척 스쳐 지나가던 어른들, 붉어진 얼굴로 연신 소리 지르던 네이튼, 문틈에 얼굴을 내밀고 소리 죽여 웃던 넬리아의…….
“내 널 내버려 뒀더니 아주 돌아 버렸나 보더구나.”
귓가에 속삭이는 목소리가 음험했다. 문은 어느새 굳게 잠겨 있었다.
‘언제 이렇게 가까이.’
세벨리아가 창백한 얼굴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네이튼이 그녀의 팔목을 세게 틀어쥐었다.
“이거 놔… 윽!”
“경거망동하지 말라 분명히 경고하지 않았니, 내 귀여운 동생아.”
소름 끼치는 음성이 귓가를 훑어 내렸다. 다정한 척 눈웃음치는 네이튼의 얼굴이 역겹기 그지없었다.
그는 항상 이런 식이었다.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더 없이 자상하고 엄격한 오라버니인 척, 자신을 몰아붙이고 숨 막히게 만들었다.
“읏.”
“버릇없이!”
팔을 빼내려던 세벨리아는 큰 소리에 자연스럽게 몸을 움츠렸다. 어린 시절부터 배인 학습의 효과였다. 그 모습을 본 네이튼이 피식 웃더니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 바닥에 내던졌다.
거친 소음에 세벨리아는 다시 한번 몸을 떨었다. 네이튼이 손가락으로 아래를 가리키며 날 선 목소리로 속삭였다.
“네가 헤프게 몸을 굴리고 다닌다는 소리가 웨든까지 퍼졌다.”
“무슨…….”
“눈이 있다면 직접 봐라. 사람들이 너와 웨든을 상대로 어떤 저질스러운 말을 쏟아 내고 있는지!”
머리 위에서 떨어진 날벼락 같은 소리에 세벨리아는 눈을 깜빡였다. 그녀는 바닥에 널브러진 종이들을 천천히 읽어 내렸다.
“아.”
그곳엔 남편이 자릴 비운 사이 외로움을 이기지 못한 공작부인이 남자들을 유혹해 끌어들인다는 이야기가 적혀 있었다.
그 어디에도 디하트와 자신의 이름 따위는 적혀 있지 않았으나…… 지칭하는 대상은 명백했다.
“칼리지의 친구들까지 내게 그 소문이 진짜냐고 편지를 보내더구나.”
네이튼이 붉으락푸르락해진 얼굴로 으르렁거렸다.
“도대체 처신을 어떻게 했길래!”
거기까지 이야기가 진행되자 세벨리아는 드디어 작금의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네이튼은 그 무엇보다도 평판을 중요시하는 사내였다. 그런 그에게 네 여동생이 진짜 남자를 침대에 끌어들이냐는 친구들의 편지는 참을 수 없는 모욕이었겠지.
“하….”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세벨리아는 모든 게 피곤해졌다.
‘그래. 오라버니가 내가 걱정되어 여기까지 올 리 없지. 그가 걱정하는 건 오로지 제 평판과 명예뿐이니까.’
심지어 그가 들고 온 린 포스트는 온갖 허위 가십을 퍼트리고 책임은 지지 않기로 유명한 일간지였다.
‘이런 걸 믿고 여기까지 찾아왔다고….’
내가 결혼한 뒤로 한 번도 발걸음하지 않았던 사람이 말이지.
그 순간 극심한 피로감과 허무감이 세벨리아를 감쌌다. 동시에 온몸을 무력하게 만들던 공포심이 일순간에 사라져 버렸다.
세벨리아는 나른한 한숨을 내쉬었다. 떨리던 눈꺼풀을 깊게 감았다 떴다.
‘참 우습네.’
이 모든 게 너무 우스꽝스러워.
“세벨리아. 정신 똑바로 차리고 대답해야 할 거야.”
네이튼이 겁박하듯 으르렁댔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아까처럼 무섭지 않았다. 눈앞의 남자는 한평생 그녀를 억압하고 공포에 질리게 만든 대상이 아닌, 그저…….
‘이기적이고 기회주의적인 데다 옹졸하기까지 한 사내.’
그래, 그녀가 그토록 두려워한 오라버니는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그 사실을 깨닫자 가슴 위를 무겁게 짓누르던 돌덩이가 깃털처럼 가벼워졌다.
“한숨? 지금 한숨을 내쉬어야 할 사람이 누군데 감히.”
네이튼은 아직도 그녀가 예전처럼 쉽게 무릎을 꿇을 거라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사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세벨리아는 오랜 시간 학습된 무기력과 공포심에 굴복해 그럴 뻔했다.
그런데….
‘내가 왜 그래야 하지?’
그녀는 달라졌다. 더는 무릎 꿇어 용서를 빌고 싶지 않았다. 그럴 이유도, 필요도 없었다.
어린 시절엔 가족에게 미움받는 게 가장 무서운 일이었다. 사생아 주제에 후작가에 얹혀사는 것은 매일매일이 살얼음 위를 걷는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어차피 죽을 건데. 당신들이 날 미워해 봤자 무슨 소용이겠어.’
그러자 마음 밑바닥에 남아 있던 두려움마저 사라졌다.
그곳에 숨어 있던 어린 세벨리아는 더 이상 네이튼이 무섭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세벨리아는 고개를 숙인 채 빙그레 웃었다.
아, 죽음이 주는 자유와 안도감이란 이리도 달콤한 것이었다.
그쯤 되자 네이튼도 이상함을 느꼈다. 그는 버럭 고함을 지르다 말고 세벨리아의 얼굴을 틀어쥐고 자신과 눈을 맞추게 했다.
“너…뭐 하는 거냐?”
그의 일그러진 얼굴은 말하고 있었다.
너답게 행동하라고. 당장 엎드려 용서를 빌고 제 발치에 매달려 개처럼 짖으라고.
그러나 그의 오만하고 얄팍한 기대는 아주 쉽게 부서졌다.
“그러는 오라버니야말로 뭘 하고 계신 거죠.”
귀찮음에 감긴 나른한 음성이었다.
“뭐?”
난생처음 받아 보는 대거리에 놀란 네이튼이 입을 크게 벌렸다. 한계까지 떠진 눈이 퍽 멍청해 보였다. 세벨리아는 네이튼이 이렇게까지 별 볼 일 없는 사람이었나, 생각하며 말을 이었다.
예전에는 너무 무서워 마주치는 것조차 공포였는데.
“이니셜도 써 있지 않은 신문 기사를 보고, 제가 뭘 어떻게 해 드려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나는- 하. 지금 네가 내게 맞먹으려 드는 거냐?”
논리 정연한 그녀의 말에 말문이 막힌 네이튼은 반사적으로 역성부터 냈다.
세벨리아를 억누를 때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기도 했다. 그녀는 큰 소리를 무서워하니까. 그러나 이번에는 아무 소용 없었다.
“맞먹으려 들다니요.”
“그럼 그 버르장머리 없는 눈부터-”
“저희 지위가 같지 않은데.”
오라버니는 아직 후작도 아니시잖아요. 세벨리아가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