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fter I Died, My Husband Went Mad RAW novel - Chapter (42)
내가 죽고 남편이 미쳤다 (42)화(42/171)
늘어난 업무로 괴로워하는 건 워츠만이 아니었다.
“…이대로 눈을 감으면 그대로 죽을 수 있을 것 같은걸.”
서프레디로부터 한참 떨어진 곳, 장엄하고 위대한 인버네스의 저택인 힐렌드 홀. 아주 잠시지만 그곳의 대리인이 된 라이언은 위경련으로 쓰러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아니, 그냥 이대로 죽었으면 좋겠어.”
사라진 데니사 대신 다른 공범을 찾았다며 서프레디로 향한다는 소식이 마지막이었다. 믿을 만한 정보이며,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는 말에 라이언은 하루에 홍차를 열다섯 잔씩 마시며 업무를 처리하고 림스 후작의 패악질을 견뎌 냈다.
그런데 그 모든 노력의 결과가 바로 이건가? 라이언은 정말이지 이대로 세상을 떠나 버리고 싶었다.
부들부들 떨리는 그의 손에서 두툼한 편지가 떨어져 내렸다. 일레이가 보낸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존경해 마지않는 라이언 형님께. 다름이 아니라 형님께서 꼭 아셔야 할 사항이 있어 이렇게 편지를 씁니다.]입에 발린 미사여구로 시작된 편지의 내용은 너무나도 간단명료하고, 그만큼 끔찍했다.
디하트의 실종.
“그것도 언제, 어떻게, 어디로 사라지셨는지 모른다고…!”
일레이로부터 받아든 소식은 어처구니없다 못해 화가 날 지경이었다. 라이언은 끓어오르는 속을 식은 홍차로 달래려 노력했다. 그러나 소용없는 짓이었다.
당장에 그 보잘것없는 도시로 달려가 일레이의 멱살을 잡고 만신창이로 만들어야만 이 속이 풀릴 것만 같았다.
“으윽…….”
창자가 끊어지는 듯한 고통에 라이언이 신음했다. 매일같이 림스 후작이 그렌과 라쉬를 탑에서 꺼내라며 그를 들들 볶고 있었다. 그걸 견딜 수 있었던 건 다 ‘얼마 남지 않았다.’라는 말 때문이었는데.
‘정말 돌아 버리겠군.’
라이언은 머리를 싸매고 앓는 신음을 흘렸다. 어찌 되었건 디하트는 실종되었고, 일은 돌이킬 수 없었다. 이렇게 된 이상 일레이를 도와 디하트를 찾는 동시에 그가 사라졌다는 걸 철저히 감춰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라이언은 창밖을 흘끗 보고 인상을 찌푸렸다. 힐렌드 홀이 제 것인 것마냥 오늘도 여기저기 간섭하고 다니는 림스 후작의 모습이 보였다.
마차를 탈 준비를 하는 걸 보니 예의 그 살롱에 가려는 모양이었다. 라이언은 림스 후작이 최근 힐렌드 홀 근처에서 열리는 살롱에 참석해 새로운 지지 기반을 닦아 놓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장기전이 되면 위험하다.’
그곳에는 북부뿐만 아니라 중앙 출신 귀족들도 여럿 드나들고 있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림스 후작의 영향력이 지금보다 훨씬 커질 가능성이 있었다.
그리고 그 영향력을 라쉬와 그렌을 자유롭게 하는 데에 쓰겠지.
“어떻게든 다른 데로 신경을 돌려놓아야 해. 그게 아니라면….”
라이언은 쪼개지는 듯한 머리를 부여잡고 림스 후작에 대한 보고서를 찾아 들었다.
당하기 전에 미리 약점을 쥐고 선제공격을 한다. 가문의 어르신을 상대로 상당히 폭력적인 전략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 상관에 그 부하라는 말이 괜히 있는 법이 아니니까.
* * *
만약 디하트가 그의 결정을 알았다면 티는 내지 않아도 내심 뿌듯하게 여겼을 것이다. 그러나 디하트에게는 천리안이 없었고, 있다 하더라도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쓸 수 없었을 것이리라.
“커헉…!”
헛구역질과 함께 쓴물이 식도를 타고 넘어왔다. 두통, 발작에 이어 구토까지. 증상이 너무 많았다. 진정시키기 위해 투약했던 처방은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왔다.
“젠장.”
클로드는 더 이상 태연한 척할 수 없었다. 자신을 미워하는 조카의 앞에서 두려움을 숨기기 위해 일부러 가벼운 척 입을 놀릴 수도 없었다.
그는 막막함에 이를 사리물었다. 잘못된 판단으로 눈앞에서 가족을 참혹히 떠나보내야만 했던 그에게 고통에 신음하는 디하트의 모습은 견딜 수 없었다.
“내려가서 쉬어.”
“워츠.”
그런 그의 어깨를 억지로 붙잡아 돌린 건 워츠였다.
“아니. 내가 해야 할 일이야.”
그렇지 않아도 늘어난 일 때문에 매번 잠도 못 자고 연구실에 있는 게 미안했는데, 그에게 간호까지 맡길 수는 없었다. 클로드는 워츠의 손을 붙잡아 내리고 진정제를 집어 들었다.
가장 효력이 약한 약이었다.
‘지금으로서는 이것밖에 길이 없어.’
디하트 또한 제 상태가 왜 이렇게 된 건지 모르는 눈치였다. 어쩌다 한 번, 그는 워츠에게 자신은 불면증과 편두통 외에 앓은 적이 없다 말했다.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워츠가 원인을 밝혀내야 했다.
그전까지는 이 약한 진정제가 다였다.
“투약하게 좀 붙잡아 줘.”
“내가 하는 편이 빠를 거야. 네가 붙잡아.”
워츠가 그의 손에서 주사기를 빼앗아 가며 말했다. 클로드는 순간 멈칫했으나 그의 말에 따랐다.
“디하트, 잠시만 참아 봐.”
그의 몸에 손을 대는 순간, 클로드는 심장이 내려앉는 걸 느꼈다. 고통에 신음하는 와중에도 제게 날아와 박히는 그 뚜렷하고 선명한 적의. 숨길 수 없는 적대감과 살의.
클로드는 다시 한번 깨달았다. 그가 진심으로 자신을 미워하고 증오하고 있다는 현실을. 그리고 결코 자신을 신뢰하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클로드, 정신 차려!”
워츠의 날카로운 질책에 그는 고개를 털었다. 그래, 그가 자신을 미워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자신은 가족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죄인이니까. 오만하고 멍청한 클로드 인버네스는 조카로부터 이런 취급을 받아도 쌌다.
‘이건 모두 내 과업이야.’
클로드는 아직도 선명한 과거를 떠올렸다. 큰 형인 길런드의 가족과 함께 중앙을 떠나기 전날이었다. 그는 오래된 친구이자 제 부관인 이로부터 편지를 받았다.
바로 그가 몇 달에 걸쳐 추적하던 배신자의 덜미를 잡았다는 소식이었다.
[드디어!]클로드는 바로 길런드에게 달려가 사정을 설명했다. 북부로 가는 길에서 멀지 않으니, 도중에 들려서 그를 잡아가는 게 좋겠다고 주장했다.
[클로드, 일단 진정해라. 그리고 그 일은 부관에게 맡겨. 우리가 직접 나설 필요 없다.]그러나 길런드는 곤란한 기색을 내비쳤다. 클로드로서는 이해할 수 없었다. 감히 디하트의 목숨을 노렸던 녀석이었다. 아버지가 되어 자식의 목숨을 노린 자를 직접 처단하지 않겠다니, 제정신인가?
한창 정의감과 용맹심에 불타오르던 클로드는 격렬하게 반발했다.
[형님이 정 그렇다면 나 혼자라도 가겠어. 가서 그놈의 목을 베어와 디하트에게 줄 거라고. 그때 가서 그 애가 누구를 더 신뢰하는지 한번 두고 봐.] [클로드!]뛰쳐나가는 자신을 붙잡은 건 형수였다. 상냥하고 어여쁜 형수님, 그렇게 비참한 결말을 맞이하면 안 되었던 곱고 아름다운 아이리스.
[우리는 멀리 있고, 당신과 클로드만 가까이 간다면 괜찮아요.]그때까지도 자신은 길런드가 무엇을 두려워하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공명심에 사로잡혀 그런 건 시야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걱정 말아요, 형수님. 내가 꼭 디하트의 복수를 이뤄 줄 테니까.]그리하여 그 거친 산길에서 습격을 받았을 때. 그리고 죽어가는 형으로부터 아이들을 부탁받았을 때. 그의 품에서 유품과 함께 나온 협박편지들을 보았을 때.
[이게, 무슨…….]그제야 클로드는 너무나도 늦게 어른이 되었다. 자신이 지켜야 할 어린아이들을 등 뒤에 두고, 암살자들을 모두 데리고 절벽으로 향하면서 그는 뒤늦게 눈물을 흘렸다.
‘그러니 억울해하지마, 클로드.’
그는 이를 악물고 디하트의 사지를 내리눌렀다. 발버둥 치며 자신을 노려보는 조카의 살기 어린 눈빛을 온몸으로 받아 내며, 그를 살리고자 억눌렀다.
‘난 네게 아무것도 말하지 않을 거야.’
고작 내 억울함을 풀겠다고, 사실은 나도 상처받았고 슬펐다고 하소연하는 짓은 하지 않을 거야. 진실을 알려 주겠다고, 사정을 설명하겠답시고…….
“큿…!”
아직도 상처가 아물지 않은 눈으로 나를 보며 울부짖는 너에게 다시 한번 상처를 주는 일은 절대로 하지 않을 거야.
클로드는 고통에 몸을 뒤트는 디하트를 내리누르며 끓어오르는 숨을 삼켰다. 할 수만 있다면, 가능하다면 그의 모든 고통을 제게로 옮겨 오고 싶었다.
‘길런드, 형님. 제발. 이 애가 더 이상 고통스럽지 않게 해 줘.’
클로드는 지친 얼굴로 몸을 일으키며 간절히 기도했다.
‘그리고 부디 내가 로잘린을 찾을 수 있게 해 줘.’
자신이 모르는 어딘가에서 로잘린이 디하트처럼 울부짖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그는 미칠 것 같았다.
* * *
세벨리아가 클로드와 마주친 건 새벽의 일이었다.
“벨라 양.”
세벨리아는 잠이 오지 않아 잠깐 산책을 하고 들어오는 길이었다. 그녀는 계단을 내려오는 클로드의 모습을 보고 순간적으로 뒷걸음질 칠 뻔했다.
마치 걸어 다니는 시체를 본 기분이었다.
“…괜찮으세요?”
어쩐지 이 집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항상 같은 질문을 하는 기분이었다. 세벨리아의 말에 클로드는 기계적으로 웃었다. 그러나 이내 그럴 기운도 없는지 무표정으로 돌아갔다.
“얼른 들어가서 자요. 환자한테 숙면은 중요하니까.”
클로드는 비척거리는 걸음으로 부엌으로 갔다. 세벨리아는 그가 걱정되어 뒤를 따랐다. 저러다 넘어지기라도 하면 큰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한 잔 줄까요?”
진한 코코아를 타며 클로드가 넌지시 물었다. 세벨리아는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마주 앉아서 침묵을 공유했다. 별달리 할 말이 있는 것도 아니거니와, 클로드는 무척 지쳐 있는 상태였다. 세벨리아도 그의 상황을 이해하고 굳이 말을 걸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약속된 침묵은 바로 다음 순간 깨져 버리고 말았다.
창을 타고 들어오는 달빛을 받아 선명하게 반짝이는 그의 금안과 시선을 마주친 순간. 어쩐지 절박한 얼굴로 그가 불현듯 물어보았기 때문이다.
“정말로 디하트의 상태에 대해 아는 게 없습니까?”
말을 마친 클로드는 당황한 것처럼 보였다. 아마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온 듯했다.
“아니, 미안해요. 말이 헛나왔어요. 워츠가 알아보고 있으니 곧 알아낼 수 있을 거예요. 편두통이 있었다 했으니 아마 그와 관련된 거겠지요. 내가 지금 제정신이 아니라…….”
하지만 세벨리아는 이로써 확신할 수 있었다.
‘역시 처음부터 디하트를 알고 있었구나.’
그래, 그렇지 않고서야 그를 치료하기 위해 열과 성을 다할 리도, 내게 이렇게 매달리듯 물어보지도 않겠지. 가만히 눈을 깜빡이던 세벨리아는 문득 클로드의 말을 곱씹었다.
“편두통이었다면… 가지고 다니는 약이 있지 않았을까요?”
“모두 뒤졌는데 어디에도 그런 건 없었어요.”
시무룩하게 어깨를 늘어트리는 클로드를 바라보며 세벨리아가 고개를 갸웃했다.
“이상하네요. 그러고 보니 외투가 없었던가요?”
디하트는 외출할 때 완벽한 옷 가짐을 중요시하는 성격이었다. 그런 그가 달랑 셔츠만 걸친 채 이곳까지 왔을 리 없는데. 세벨리아의 말을 들은 클로드의 눈이 점점 크게 뜨였다.